제82화
시간은 빠르게 흘러 1팀과 0팀이 모이게 되었다.
모인 장소는 B동 617호.
유은영이 지화자와 처음 만난 장소였다. 그녀가 감회가 새롭다는 얼굴로 회의실을 둘러볼 때였다.
“이번 게이트는 말했듯 0팀과 함께 공략하게 됐습니다. 지화자 팀장님? 인사 부탁드립니다.”
조수현의 말에 유은영이 질색하는 얼굴을 보였다.
‘인사라니! 그런 것도 해야해?!’
유은영이 쭈뼛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살짝 꾸벅였다.
“0팀의 지화자입니다. 다들 잘 부탁합니다.”
뒷말에 0팀을 제외한 모두가 술렁였다.
“지화자 팀장님이 잘 부탁한다고 인사했어!”
“나도 들었어!”
“사람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나 보네.”
아무래도 실수 했나보다.
유은영이 도움을 바라는 시선을 지화자에게 보냈지만.
‘뭐 어쩌라고.’
지화자는 알아서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저 인간이 진짜!’
유은영이 뚱한 얼굴로 지화자를 쳐다봤다.
‘이제 내가 자기 몸으로 어떻게 행동하든 아무 상관없다는 거야, 뭐야?!’
며칠 전, 1팀과의 게이트 공략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눈 후 줄곧 저런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유은영이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자신은 지화자에게 답지않게 화를 냈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아. 그러니까 조수현의 앞에서는 몬스터든 뭐든 목숨을 버리는 각오로 덤벼.”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이성이 날아가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는걸.’
그때도 말했지만 이 몸은 자신의 몸이 아닌 지화자.
바로 그녀의 몸이었다.
그런데 목숨을 버리는 각오로 위협에 맞서 싸우라니.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유은영이 지화자를 흘긋 쳐다봤지만 그녀는 유은영을 보지 않고 있었다.
서로 장난을 치고 있는 라이와 리아에게 집중하라며 주의를 주고 있을 뿐.
‘나만 신경쓰고 있지.’
유은영이 괜히 불퉁해져 입술을 삐죽 내미려고 할 때였다.
“그럼, 12월 24일 자정에 생성 예정인 게이트 공략에 관한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수현이 목소리를 내었다.
그는 간단명료하게 게이트 공략을 어떻게 진행할지 설명해줬다.
“간호 관리 부서의 구순철 부장님과 이혜나 팀장님의 경우, 저와 지화자 팀장이 각각 한 명씩 맡아 호위할 겁니다.”
자신은 전방, ‘지화자’는 후방을 맡을 거라며 조수현이 말을 덧붙였다.
“참고로 구순철 부장님과 이혜나 팀장님은 오늘 일이 있어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오기 싫어서 안 온 거겠지.”
낮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황급히 지화자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건들이고는 손을 들었다.
“처음 이야기를 나눴을 때와는 계획이 많이 달라졌네요?”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지화자 팀장님. 게이트에 대한 정보가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전방과 후방으로 나눈 것도 소용이 없을 수도 있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일단 제가 전방, 지화자 팀장님께서 후방을 맡는 쪽으로 했습니다만…….”
조수현이 우물거렸다.
“게이트에 대한 정보가 지금도 계속 달라지고 있어서 말입니다.”
“게이트 안에 들어가 봐야 확실한 상황을 알게 되겠네요.”
“네, 지화자 팀장님.”
유은영이 골치 아프다는 듯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게이트 안에 들어가 봐야 상황을 알 수 있다는 것. 그 말은 무수한 변수를 고려해야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암만 자신이 후방을 맡고 조수현이 전방을 맡는다면서 이야기를 나눴어도.
‘막상 안에 들어갔는데 전방이고 후방이고 할 것 없이 서로 엉뚱한 곳에 떨어진다면?’
이전에 0팀이 처리한 게이트가 딱 그 꼴이지 않았는가?
‘쉬운 게 없네, 쉬운 게 없어.’
유은영이 부디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속으로 기도할 때였다.
“저와 1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는 어떻게 행동하죠?”
지화자가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습니다.”
조수현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전담 어시스트 힐러 분들은 각 팀장을 따라갑니다. 저희 1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는.”
“조수현 팀장님을, 저는 지화자 팀장님을 따라가면 된다는 거군요? 어차피 전방과 후방, 크게 두 팀으로 나눴으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좋네요.”
그 말은, 마치 당신과 함께 움직이지 않게 돼서 다행이다라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게 느낀 건 유은영만이 아닌 듯 1팀의 곳곳에서 불만 어린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우리 팀장님과 함께 움직이지 않게 돼서 영광이라는 것처럼 들리네.”
“그러게나 말이야. F급 힐러라고 하지 않았어?”
“폐급 주제에 저렇게 군단 말이야?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보네.”
유은영은 “목숨이 아깝지 않으면 조용히 하세요!” 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지화자가 재미있다는 듯 웃는 낯으로 저를 두고 수군거리는 1팀의 팀원들을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뭘 저렇게 보는 거야?”
“재수 없어.”
유은영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 순간, 쾅! 테이블을 발로 차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이 오빠네 사람들은 엄청 시끄럽네?”
“그러게 말이야!”
소란의 주인공은 리아와 라이였다. 남매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라이와 리아가 몬스터의 유전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센터의 모두가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유은영’을 앞에 둔 수군거림이 줄어들자 조수현이 말했다.
“1팀, 돌아가자마자 전원 내 자리 앞에 서있도록.”
“…네.”
1팀의 모두가 기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지화자 팀장님. 못 볼 꼴을 보였군요.”
“그런 꼴을 보일 때 팀원들을 좀 말리지 그랬어요?”
라고 말한 사람은 지화자였다.
“유은영 씨!”
유은영이 황급히 지화자의 입을 막으려고 들었지만.
“조수현 팀장님께서는 팀원들한테 참 너그러우신 분인가 봐요? 겁도 없이 회의 중에 저렇게 떠들어댄 걸 보면.”
“너……!”
1팀의 누군가가 ‘유은영’에게 그 입 닥치라며 말하려고 할 때.
“그만.”
조수현이 그의 입을 막았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유은영 씨. 사무실에 돌아가서 따끔하게 혼을 내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지화자가 미소를 그렸다.
“게이트 공략하기도 전에 관계가 틀어지면 곤란하잖아요? 게이트 상황이 지금도 시시때때로 바뀌고 있다면서요?”
지화자의 입가에 걸쳐져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만약의 경우지만 제가 1팀의 분들과만 움직이게 된다면…….”
지화자가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눈웃음을 지었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힐을 해주고 싶지 않을 것 같네요.”
1팀의 모두가 얼굴을 굳혔다. 그 말은 조수현 역시 잔뜩 굳은 얼굴이었다는 말.
유은영이 골치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는 말했다.
“유은영 씨, 그만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화자가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유은영은 험악해진 분위기에 애써 웃었다.
“조수현 팀장님, 저희 팀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회의록은 따로 전달해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가하성 씨.”
“안 그래도 정리해뒀어요.”
유은영이 잘했다는 듯 가하성을 향해 웃어주고는 말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회의실을 나오자마자.
“유은영 씨.”
유은영은 지화자를 불러 세웠다.
“같이 공략에 들어갈 사람들인데 그렇게 날을 세우면 어떻게 해요?”
“딱히 그런 적은 없습니다만.”
그 말에 라이와 리아가 말했다.
“거짓말이에요!”
“맞아, 거짓말!”
지화자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너희 둘은 조용히 해.”
“싫어요!”
“맞아, 싫은데!”
지화자가 아이들의 이마에 딱밤이라도 때려줄까 싶어 손을 들어 올릴 때.
“라이, 리아! 유은영 씨께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타이밍 좋게 하태균이 아이들을 옆구리에 한 명씩 끼고는 말했다.
“팀장님, 애들 데리고 먼저 사무실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네, 그래주세요. 가하성 씨도 먼저 돌아가 주실래요?”
“네, 팀장님.”
가하성과 하태균이 라이와 리아를 데리고 그렇게 0팀의 사무실로 먼저 돌아갔다.
그렇게 남은 두 사람.
“후우, 지화자 씨.”
“누가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1팀 애들 아직 회의실 안에 있잖아.”
“괜찮아요. 조수현 팀장님께서 기합을 주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일 여력 따위 없을 거라면서 유은영이 너스레를 떨었다.
“사무실 돌아가서 기합을 줄 것처럼 굴더니만.”
“지화자 씨께서 괜히 1팀 자극하지 않았으면 그랬을 걸요?”
“그리고 기합도 받지 않았겠지.”
지화자가 말을 이었다.
“조수현, 자기네 애들 엄청 아끼거든. 그런데 자기 자리 앞에 줄 서 있으라니, 뭐니.”
어처구니가 없었다면서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할 일을 한 것뿐이야.”
“네?”
“언니 체면을 세워줬잖아?”
지화자가 속삭이듯 유은영에게 말해주고는 휙 몸을 돌렸다.
“그러니까 이만 가시죠, 지화자 팀장님? 잔소리는 사무실로 돌아간 후에 해주시고요.”
말이나 못하면!
유은영이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언니 체면을 세워줬잖아?”
그 말대로 지화자는 ‘유은영’의 체면을 세워줬다.
암만 폐급 힐러라고 할지라도 귀하디귀한 힐러임을 자신감 있게 뽐냈다는 말씀.
“저기, 유은영 씨.”
앞서 걸어가던 지화자가 걸음을 멈추고는 유은영을 쳐다봤다.
“고마워요.”
난데없는 감사 인사에 지화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음을 흘렸다.
“뭘요. 오히려 감사 인사는 제가 해야하는 걸요?”
“네? 유은영 씨가 왜요?”
“저를 생각해줘서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아서요.”
유은영이 무슨 말이냐는 듯 지화자를 쳐다봤다.
“모르면 됐어요.”
“가르쳐주세요!”
“싫습니다. 어서 돌아가기나 하죠? 12월 24일까지 얼마 안 남았잖아요?”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조수현 팀장님께 모든 걸 맡길 생각하지 마시고 팀장님께서도 A-Index 통해서 게이트 관련 정보 알아보도록 하세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거든요?!”
유은영이 빽 소리 지르고는 성큼성큼 다리를 움직였다. 잔뜩 뿔이난 그녀의 뒷모습에 지화자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아. 그러니까 조수현의 앞에서는 몬스터든 뭐든 목숨을 버리는 각오로 덤벼.”
그 말에 유은영은 화를 냈었다.
“제가 어떻게 그래요?! 이 몸이 제 몸인 줄 아세요? 지화자 씨의 몸이에요!”
“알아.”
“그걸 아는 사람이 왜……!”
조수현에게 들키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죽을만큼 다쳐도 괜찮아. 언니도 알잖아?”
“그 정도로 다치면 원래의 몸으로 서로 돌아간다는 걸요?”
“그래.”
어차피 그 정도로 다치면 서로의 몸을 되찾게 될 테니까.
그래서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지화자는 그때 이해하지를 못했었다.
“지화자 씨는 제가 그 죄책감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유은영이 금방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걸 말이다.
하지만 조금 전 회의에서 지화자는 그녀의 기분을 살짝 느낄 수 있었다.
폐급 힐러라면서 낮잡아 보는 녀석들의 말이 얼마나 듣기 싫던지!
“유은영 씨, 안 오세요?”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갑니다, 가요.”
지화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시간은 무척이나 빠르게 흘러갔고, 드디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자정.
“게이트 생성됐습니다!”
“1팀과 0팀, 준비 바랍니다!”
게이트가 생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