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지화자’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1팀의 사무실 밖으로 나온 조수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간호 관리 부서의 구순철 부장님과 이혜나 팀장님께서 게이트 공략에 함께 하겠다고 했단 말입니까?”
“네.”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조수현은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어떻게…….”
“친절하게 부탁드리니 알겠다고 하시던데요?”
친절하게 부탁은 무슨, 웃으면서 협박했던 유은영이었다.
조수현이 못 미덥다는 듯 ‘지화자’를 쳐다봤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알겠습니다. 센터 내에서 가장 등급이 높으신 힐러 분들께서 함께 해주신다면야 걱정할 게 없지요.”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천천히 나누도록 할까요? 크리스마스 이브 날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이제 12월 초에 들어선 날이었다. 유은영의 말에 조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유은영이 그대로 몸을 휙 돌릴 때였다.
“지화자 팀장님.”
조수현이 그녀를 멈춰세웠다.
“감사합니다.”
유은영은 들려온 인사를 못들은 척 무시하고 지나갈까 했다. 지화자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조수현을 향해 그런 인사는 할 필요 없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꾸벅여줬다.
조수현이 살짝 입술을 벌렸다. 하지만 유은영은 그에게서 뒤돌아 0팀의 사무실로 가느라 그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조수현은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화자’는 듣지 못한 인사였다.
***
“후우.”
0팀의 사무실 앞에 선 유은영이 크게 숨을 들이켜마셨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어야하지만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보다는 무서웠다.
‘지화자 씨께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분명 이야기 잘 끝내고 왔냐고 물을 텐데!’
유은영이 울상을 지었다.
자신은 분명 지화자에게 그랬다.
조수현에게 당신네들과 게이트 공략따위 할 생각 없다고 말하고 오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말았다.
‘우종문 부장님 때문에!’
유은영이 현장 관리 부서의 가장 높으신 분을 욕하면서 두 눈을 질끈 감을 때였다.
“안 들어오고 뭐하세요?”
“흐악!”
느닷없이 문이 열렸다.
유은영이 자리에서 펄쩍 뛰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유, 유은영 씨?”
“네, 지 팀장님.”
지화자가 꿀껌 침을 삼키고는 유은영을 보고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일이 잘 안 풀리셨나봐요?”
“하, 하하.”
유은영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지화자는 쯧, 짧게 혀를 차고는 휙 몸을 돌렸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그, 그게 말이에요. 조수현 팀장님께 게이트 공략에 함께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기는 했는데요.”
“그런데요?”
“하필 우종문 부장님께서 지나가다 그 이야기를 들으셔서…….”
어쩌다 보니 1팀과 함께 게이트를 공략하게 됐다면서 유은영이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그러니까 지금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 게이트 공략을 하게 됐다는 말이군요.”
“네에.”
유은영이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지화자가 픽 웃고는 0팀의 모두를 향해 말했다.
“다들 들었죠? 12월 24일 자정에 열리는 게이트 공략에 1팀과 함께 들어가게 됐다는군요.”
“그런…….”
가하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고.
“크리스마스 날에 게이트 공략하러 들어가지 않는 게 어디입니까! 그보다 1팀과 함께라니! 이번 기회에 저희 0팀의 전력을 보여줍시다! 지화자 팀장님!”
하태균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라이와 리아는.
“게이트 공략이라니! 저번처럼 원숭이 잡으면 되나요?!”
“원숭이 좋아!”
크리스마스이브든 뭐든 게이트 공략하러 간다는 말에 신이 난 듯했다.
“라이, 리아. 원숭이가 아니라 몬스터. 너희가 잡은 건 몬스터야.”
“원숭이랑 똑같이 생겼었는데?”
“그거야 동물형 몬스터였으니까 그러지. 이번 기회에 알려줄게. 자, 와봐.”
가하성이 라이와 리아를 불렀다.
안 그래도 지난 번 서울 관악구에서 열렸던 B급 게이트 보고서 작성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유은영’의 부상과 함께 보고서 작성 속도가 늦춰진 건 물론, ‘지화자’의 특별 임무 탓에 업무 처리 속도가 더뎌졌다.
이대로면 상부로부터 한 소리 들을 게 뻔한 상황.
가하성은 라이와 리아에게 몬스터에 관해 알려준 후 보고서 작성에 있어 아이들이 손을 보태게끔 만들 작정이었다.
“거미 친구가 왜 동물형 몬스터야? 우리 친구인데!”
“맞아요!”
아무래도 실패로 돌아갈 것 같았지마는.
가하성이 리아와 라이한테 거미형 몬스터에 대해 알려주느라 진땀을 빼고 있을 때였다.
“지화자 팀장님, 잠시 밖에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며칠 전에 공략한 B급 타임 브레이커 유형 게이트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네? 그런 거라면…….”
사무실에서 이야기 나눠도 되지 않냐고 물으려던 유은영이 입을 다물었다.
지화자가 왜 저런 식으로 말을 꺼냈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보나마나 뻔해. 조수현 팀장님과의 일 때문이겠지.’
유은영이 터져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집어 삼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유은영 씨.”
유은영이 지화자와 함께 사무실을 벗어나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유은영 씨와 잠시 이야기 좀 나누고 올 테니까 다들 일하고 계세요. 참고로 조수현 팀장님의 1팀과 함께 조만간 게이트 공략 관련해서 회의 가질 예정입니다.”
“네, 팀장님.”
가하성과 하태균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와 리아는 가하성에게 어서 거미형 몬스터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를 해달라며 조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유은영은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를 그리며 문을 닫았다.
“언니.”
들린 목소리에 유은영의 입가에 걸쳐져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주변에 아무도 없나봐요?”
“그러니까 내가 유은영 씨를 ‘언니’라고 부른 거겠지?”
지화자가 눈웃음을 짓고는 차갑게 목소리를 뱉어냈다.
“따라와.”
“네에.”
유은영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유은영이 지화자와 함께 향한 곳은 지화자만 알고 있다는 비밀 공간이었다.
그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지화자가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말했잖아요. 조수현 팀장님께 함께 게이트 공략하는 건 힘들 것 같다고 말하려는 순간에 우종문 부장님께서 오셨다고요.”
“그 양반이 뭐라고 했는데?”
“1팀과 함께 공략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면서 등을 떠밀어주시더라고요.”
“빌어먹을.”
지화자가 사납게 얼굴을 구겼다.
“그 인간은 왜 그렇게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거야?”
“원래 윗분들이 그렇잖아요. 저희 팀장님도 그랬는걸요? 제 일에 얼마나 사사건건 참견을 많이 하던지!”
잔소리 때문에 귀에 딱지가 앉을 뻔했다면서 유은영이 너스레를 떨었다.
지화자는 기가 찼다.
“그래서 지금 잘 했다고?”
“아니요. 죄송해요.”
유은영이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았다.
“됐어.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잖아? 도로 담을 수도 없는 일인데,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 고민하자.”
어라? 지화자한테서 분명 한소리 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좋게 좋게 넘어 가다니?
“뭐야?”
“의외로 좋게 넘어가서요.”
“그럼 좋게 넘어가지 말까?”
“아니요!”
유은영이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화자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를 흘리고는 말했다.
“나도 사실 좋게 넘어가고 싶지 않아. 마음 같아서는 언니 다리를 한 대 걷어차고 싶다고.”
“걷어 차시면 되잖아요?”
“그 몸이 내 몸인 걸 잊었나봐?”
유은영이 배시시 웃었다.
“내 얼굴로 그렇게 웃지마.”
“넵!”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헤벌레 웃는 유은영이었다. 지화자는 진심으로 자신의 얼굴을 한 대 때려버릴까하다가 그만뒀다.
암만 멍청하게 웃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얼굴이지 않는가?
지화자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일단 중요한 건 들키지 않는 거야. 조수현, 의외로 눈치 더럽게 빠르거든.”
“그건 진작 알고 있었어요.”
유은영은 조수현이 ‘지화자’의 집에 찾아왔던 날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 팀장님. 다른 손님이 또 계신 모양입니다?”
분명 지화자가 자신의 신발과 함께 몸을 숨겼는데도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걸 아는 사람이 부장님이 말 한 마디 얹었다고 조수현이랑 함께 공략 나가기로 한 거야?”
“한 마디가 아니라 두 마디 이상이었는데.”
“쓰읍.”
유은영이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지화자는 마음 같아서는 그녀에게 잔소리를 쏟아 붓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은 조수현과 있을 게이트 공략을 대비하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
“먼저 언니가 알고 있어야할 건 하나야.”
“지화자는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이라는 거요?”
“그건 기본으로 알고 있어야하는 거고.”
지화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아. 그러니까 조수현의 앞에서는 몬스터든 뭐든 목숨을 버리는 각오로 덤벼.”
유은영이 멍하니 두 눈을 깜빡거리다가 빼액 소리 질렀다.
“제가 어떻게 그래요?! 이 몸이 제 몸인 줄 아세요? 지화자 씨의 몸이에요!”
“알아.”
“그걸 아는 사람이 왜……!”
“그럼, 조수현한테 들킬 거야?”
날선 목소리에 유은영이 입을 다물었다. 지화자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은 후 말했다.
“죽을 만큼 다쳐도 괜찮아. 언니도 알잖아?”
“그 정도로 다치면 원래의 몸으로 서로 돌아간다는 걸요?”
“그래.”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은영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뱉어냈다.
“싫어요.”
“뭐?”
“싫다고요!”
유은영이 사납게 얼굴을 구기며 외쳤다.
“죽을 만큼 다쳐서 서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간다고 쳐요. 그 다음은요? 지화자 씨가 이 몸을 되찾은 후 정말로 죽어버린다면요?”
그럼, 언니와 내가 몸이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지화자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조용히 있기로 했다. 그런 식으로 말을 꺼냈다가는 유은영이 엉엉 울어버릴까 싶어서였다.
“지화자 씨는 제가 그 죄책감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망하듯 저를 향해 묻는 말에 지화자가 입술을 달싹였다.
“언니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는 일이야. 내가 부탁한 일이고, 언니는 그저 내 부탁을 따라줬을 뿐일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요!”
유은영이 더더욱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저는 싫어요.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만들 거예요!”
“하지만 언니, 그 방법이 우리가 원래의 몸을 되찾는 유일한 길일 수도 있어.”
“아니요.”
유은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길이 있을 거예요. 없다고 해도 제가 찾을 거예요, 그렇게 아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후 지화자를 지나쳐가며 짓씹듯이 목소리를 뱉어냈다.
“그럼, 저 먼저 들어가볼게요. 천천히 들어오세요.”
지화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지화자’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