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73화 (73/200)

제73화

‘왜 이렇게 된 거지?’

로렌치니 윌던의 두 눈이 잘게 떨렸다.

그 순간, 느릿하게 다가오는 것 같던 지화자가 단숨에 그의 앞에 당도해 봉을 들었다.

“흐아악!”

지화자의 무기가 로렌치니 윌던의 관자놀이 바로 옆을 가격했다.

쿠구궁!

벽이 부서지며 잔해가 떨어졌다.

로렌치니 윌던이 벌벌 떨며 소리 질렀다.

“나, 나를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겨, 결투 중에 상대방을 죽이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을 텐데!”

“응, 아주 잘 알고 있지.”

지화자가 픽 웃었다.

“A-Index의 랭킹 시스템에 기록되어 있는 네 포인트는 모두 내가 가지게 될 테고, 덕분에 나는 랭킹 1위란 이 위치를 굳건하게 지키게 되겠지. 얼마나 좋아? 사람 하나 죽이는 것으로 이 자리를 계속해서 지킬 수 있다니.”

지화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욕 좀 얻어 먹겠지만, 대중한테 욕 얻어 먹는거야 워낙에 익숙해서 말이지.”

“하, 하하! 대중한테 욕 좀 얻어 먹는 수준으로 일이 끝날 것 같아?! 나를 죽이면 그 순간 전쟁이 일어날 거다!”

“아, 그러겠네.”

지화자가 뒤늦게 로렌치니 윌던의 국적이 이탈리아인 것을 떠올렸는지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그게 뭐?”

“지, 지금 뭐라고…….”

로렌치니 윌던이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지화자는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흘렸다.

“걱정하지마. 결투 중에 상대방을 죽이는 게 처음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아프지 않게 단번에 네 목숨을 끊어줄 수 있어.”

로렌치니 윌던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지금, 눈 앞의 여자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단 말인가?!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에는 지화자의 두 눈에 살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입가에 뚝뚝 흐르고 있는 핏물 때문에 그 모습이은 무척이나 소름끼쳤다.

결국, 로렌치니 윌던은 지화자를 피해 달아나기로 했다.

기권이 아닌 도망.

‘아직 결투는 끝나지 않았어!’

더군다나 성언이 제대로 힘을 발휘한 건 맞는 모양인지, 지화자의 공격으로 입은 데미지가 모두 사라졌다.

‘기회를 엿봐서 저 빌어먹을 년의 무릎을 다시 꿇게 만들면 돼!’

로렌치니 윌던이 비릿하게 웃었다. 겁에 질려 벌벌 떨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지화자는 자신을 피해 달아가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귀엽네.”

로렌치니 윌던이 정말 귀여워서 내뱉은 소리는 아니었다.

자신이 온정을 베풀어 놓아준 것도 모르고 열심히 도망치고 있는 로렌치니 윌던의 모습이 코메디의 한순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로렌치니 윌던을 향한 소리는 명백한 비아냥거림이었다.

‘어떻게 나오려나?’

지화자가 로렌치니 윌던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으며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의 궁금증은 금방 해소됐다.

“지화자!”

지화자한테서 멀찍이 떨어진 로렌치니 윌던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녀를 공격한 것이다.

“오, 드디어 내 이름을 부르네?”

지화자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창에 씨익 웃었다.

“정말 귀엽게.”

지화자는 그대로 땅을 박찼다. 날아들고 있던 창을 순식간에 잡아 채고선.

“커헉!”

눈 깜짝할 사이에 로렌치니 윌던의 앞에 나타나 그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로렌치니 윌던은 지화자의 발길질을 피하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지화자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로렌치니 윌던을 향해 상냥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자, 어디 한번 더 도망가봐.”

이번에도 놓아줄테니.

지화자가 뒷말을 삼키며 미소를 그렸다. 로렌치니 윌던은 잔기침을 터트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제야 그는 알아차렸다.

자신이 지화자한테서 도망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온정을 베풀었기 때문이란 것을.

그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로렌치니 윌던의 이성이 끊어졌다.

“이 빌어먹을 년이……!”

자존심에 금이 가고 만 것이다.

하지만 자존심과 제 목숨을 바꾸는 건 정말이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로렌치니 윌던이 주먹을 쥐고 지화자를 향해 달려들자마자.

퍼억!

다시 한 번 더 그를 향해 발길질이 날아 들었다.

이번에는 가슴 아래의 복부.

로렌치니 윌던이 비명 한 마디 내지르고 못하고 데구르르 바닥을 굴렀다.

“조금 전에는 잘만 내 이름을 부르더니, 그새 까먹었나봐?”

“이… 망할……!”

퍽!

복부를 걷어찼던 발이 로렌치니 윌던의 얼굴을 가격했다.

로렌치니 윌던이 힘없이 한번 더 바닥을 구른 후 기침을 토해냈다.

“쿨럭! 커, 흑!”

터진 입술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로렌치니 윌던이 분한 얼굴로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나한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아……?”

“응.”

지화자가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그에 로렌치니 윌던의 이성이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으아아악! 죽어! 죽어버려!!”

로렌치니 윌던이 의미없는 공격을 시전했다. 주먹을 꽉 쥔 채, 지화자를 향해 휘두른 것이다.

하지만 그 공격을 지화자는 순순히 받아줬다. 그러나 그녀는 로렌치니 윌던처럼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거나 하지 않았다.

“봐봐, 무사하잖아.”

로렌치니 윌던에게 얻어 맞은 한쪽 뺨을 어루어만진 후, 핏물을 바닥에 내뱉을 뿐이었다.

“그보다 죽으라니.”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내가 말했지? 옛말에 그런 말이 있다고.”

당한만큼 두 배로, 세 배로 되갚아줘라.

“걱정마, 죽이지는 않을거야. 내가 생각보다 착한 사람이거든. 하지만 나중에 네가 알아서 빌게 될 것 같네?”

제발 좀 죽여달라고 말이야.

지화자가 웃는 낯으로 로렌치니 윌던을 향해 그의 창을 들었다.

***

“끄아아아악!”

로렌치니 윌던의 어깨에 창이 꽂혔다. 그가 야심차게 지화자를 향해 내던졌던 바로 그 창이었다.

지화자는 날카로운 비명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심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에 꽂은 창을 빙그르 한 바퀴 돌려줄 뿐이었다.

“그… 그만, 아, 아악……!”

로렌치니 윌던의 비명이 끊기는 순간, 지화자가 그의 어깨에 꽂혀 있던 창을 뽑아 바닥에 내던졌다.

곧 그의 상처가 지닌 성언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치료됐다.

지화자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제 무기를 꺼내들어 로렌치니 윌던의 상처가 있던 자리를 세게 눌렀다.

“크으윽……!”

로렌치니 윌던이 이를 악 물었다. 제 어깨를 누르고 있는 봉이 그 무엇보다도 뜨거웠다.

마치 활활 불타고 있던 장작이 제 어깨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결국, 로렌치니 윌던은 굴복하고 말았다.

“차, 차라리 죽여! 죽이라고!”

“아직 버틸만 하나 보네? 나한테 감히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니.”

지화자가 키득거렸다.

“나한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내 윗대가리들 뿐이야.”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로렌치니 윌던의 어깨를 제 무기로 다시 한번 더 꿰뚫어버렸다.

“흐, 흐아아악!”

로렌치니 윌던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지화자는 이번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몸부림치는 그의 몸을 발로 콱 짓누른 채 고통을 줄 뿐이었다. 입가에서 미소를 지운채, 무심한 얼굴로 말이다.

그때였다.

“지화자 팀장님!”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만하십시오! 기절했습니다! 로렌치니 윌던과의 결투는 당신의 승리로 끝났다고요!”

“아…….”

지화자가 다그치는 목소리에 놀란 눈으로 로렌치니 윌던을 쳐다봤다.

“그새 기절했네. 갓 꺼낸 생선처럼 팔팔한 것 같더니.”

쯧, 짧게 혀를 찬 그녀는 제 손목을 붙잡은 남자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그보다 너무한 거 아니야?”

지화자가 제 무기를 사라지게끔 하고는 남자를 향해 능글맞게 웃었다.

“속에 든 알맹이가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그렇게 깎듯하게 굴다니. 실망이야, 오빠.”

오빠라니!

그녀를 말렸던 유승민이 질색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화자야!”

“지화자 누님!”

리아와 라이가 결투가 끝나자마자 내려온 것이다.

후다닥 지화자에게 달려온 리아가 그녀를 끌어 안으며 물었다.

“괜찮아?! 안 아파?!!”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네 덕분에 죽을 것 같아.”

“헉! 죽으면 안 돼! 오빠, 어서 유은영 불러와!”

“응!”

라이가 도로 달려나갔다. 리아는 안절부절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지화자에게 물었다.

“지화자야, 나 때문에 아팠어? 미안해! 아프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내가 잘못했어!”

“괜찮아. 아주 멀쩡하니까.”

그 말에 리아가 화를 냈다.

“지화자 못됐어! 그런 못된 장난을 치다니!”

어느 순간 자신을 대하는 지화자의 태도가 달라진 건 알아차리지 못한 리아였다.

지화자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그녀가 리아를 놀릴 때였다.

“지화자 팀장님!”

“지 팀장님!”

가하성과 하태균이 달려왔다. 그리고 두 사람의 바로 뒤.

“유은영 씨.”

“지… 지화자 팀장님…….”

유은영이 희게 질린 얼굴로 서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갑작스럽게 되돌아간 몸에서 자신이 피를 철철 흘리며 로렌치니 윌던과 싸워댔으니 말이다.

지화자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 상처 좀 봐줄래요? 여기서 더 나빠지면 진짜 죽을 것 같아서 그래요.”

지화자는 제 몸에 들어가있던 ‘유은영’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내며 그녀에게 부탁했다.

“지화자야! 안 죽는다며!”

“말이 그렇다는 거야.”

지화자가 리아를 달랬다. 유은영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자, 잠깐만요. 저한테 상처를 봐달라고 하는 것보다 이혜나 팀장님을 불러 오는 게 더 좋을 거예요! 그, 그러니까.”

“진정하세요, 유은영 씨.”

지화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유은영 씨는 우리 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잖아요? 그러니 진정하고 상처 좀 봐주세요. 이혜나 팀장은 나중에 부를테니.”

“그렇지만……!”

자신은 폐급 힐러였다.

F급의 저가 할 줄 아는 일은 기가 막히게 안마를 하는 것뿐.

유은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화자가 그녀를 물끄러미 보다 픽 웃었다.

“유은영 씨는 언제나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단 말이죠.”

“네?”

유은영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지만 지화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녀가 원하는 대답 대신 다른 말을 건넸다.

“손 이리 줘봐요.”

얼떨결에 유은영이 손을 내밀었다. 지화자는 그대로 그녀의 손을 잡고서 유은영이 가지고 있는 힘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유은영의 손가락 끝에서 희미하게 피어오른 빛이 지화자의 상처를 감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화자가 유은영의 손을 놓아주며 웃었다.

“고마워요.”

유은영이 놀란 얼굴을 보였다.

지화자가 자신의 힘을 운용한 것도 놀라웠지만.

‘그 전에, 내가 어떻게 힐(Heal)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힐을 해본 적 없는 유은영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자신은 분명 힐을 사용했다. 지화자가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유은영이 의문이 가득한 시선을 지화자에게 보냈지만, 그녀는 그저 웃는 낯을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지화자 팀장.”

“네, 부장님. 그리고 엘리자베스 윌던 씨.”

이 결투를 이끌어 낸 장본인인 엘리자베스 윌던이 우종문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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