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72화 (72/200)

제72화

“유은영아! 정신차려! 유은영아!”

“유은영 누님, 왜 그래요!”

하태균에게 붙잡혀 있던 리아와 라이가 곧장 그녀에게 달려갔다.

지화자와 조카의 결투를 보고 있떤 엘리자베스 윌던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우종문 부장, 힐러를 부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유은영 양이 바로 그 힐러이니 너무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렇지만…….”

엘리자베스 윌던이 힘없이 쓰러진 여자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화자 팀장이 새로 힐러를 들인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힐러가.”

“F급 힐러지요.”

우종문이 엘리자베스 윌던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 센터에 F급 힐러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찰싹!

뺨을 수차례 때리는 소리가 찰지게 들려왔다.

“유은영아! 죽으면 안 돼! 눈 떠! 눈 떠봐!”

리아가 유은영을 깨우고자 몇 번이고 그녀의 뺨을 내려치고 있었다. 우종문이 그 광경에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죽은 것 같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엘리자베스 윌던 씨께서는 편하게 결투를 관람하시기를 바랍니다.”

엘리자베스 윌던이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결투는 관람할 것도 없었다.

누가봐도 제 조카인 로렌치니 윌던의 압승이지 않는가?

‘지화자 팀장이라면 저 녀석에게 매운 맛 좀 보여주겠거니 했거늘.’

아무래도 자신이 그녀를 과대평가한 모양이었다.

‘미국이나 중국에 부탁을 할 걸 그랬군.’

엘리자베스 윌던이 속으로 짧게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우종문 부장, 결투를 말리지 않을 겁니까?”

“네, 말했듯 결투는 상대가 항복하거나 기절하거나 죽는 경우가 아닌 이상 중단되지 않습니다.”

우종문이 단호하게 말했다.

엘리자베스 윌던은 입술 안쪽을 꾹 깨물었다.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만 보면, 지화자는 이미 기절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종문이 결투를 중단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녀는 아직 멀쩡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러다 대한민국의 랭킹 1위를 자신의 조카가 죽여버리면 어쩐단 말인가?

‘자칫 잘못하면 외교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암만 지화자에 대한 국내 여론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한국의 랭킹 1위였다.

그런 그녀를 타국의 이방인이 결투에서 죽여버렸다?

‘지화자 팀장이 제 언니를 죽였을 때보다 더욱 논란이 일 터.’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엘리자베스 윌던이 초조함 가득한 마음으로 결투 현장을 바라보며 빌었다.

‘로렌치니, 제발 이제 그만하거라! 그만하면 됐지 않니!’

엘리자베스 윌던이 속이 타는 얼굴로 제 조카를 향해 소리없이 부탁을 보낼 때였다.

“윽…….”

‘유은영’이 정신을 차렸다.

“아윽, 아파라.”

“유은영아?”

리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황급히 그녀를 살폈다.

“유은영아, 괜찮아? 안 죽었어?!”

“리아, 안 죽었으니까 유은영 씨까 깨어난 거겠지.”

“그치마안!”

가하성의 말에 리아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유은영’은 당황한 얼굴로 두 눈을 데굴 굴렀다.

“어, 음… 그러니까…….”

상황 파악이 덜 된 듯, ‘유은영’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며 입을 열었다.

“리아 씨? 가하성 씨?”

“웅! 나 리아야! 유은영아, 나 알아 보겠어?!”

리아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유은영’을 끌어 안았다.

얼떨결에 아이를 마주 안은 유은영이 품 안에 가득 담기는 온기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지, 지화자 씨, 아니. 지화자 팀장님은요?!”

“아직 결투 중입니다.”

가하성의 말에 제 몸을 되찾은 유은영이 다급히 결투장 아래를 쳐다봤다.

“지화자 팀장님!”

자신의 몸을 되찾은 지화자가, 로렌치니 윌던의 발을 붙잡고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피를 뚝뚝 흘리면서 말이다.

***

지화자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가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유은영이 기절을 했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 지화자는 곧장 우종문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일순 시야가 흔들리더니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꼴사납게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결투의 한복판에서 이렇게 깨어났단 말인가?

‘불완전한 영혼석의 영향인가? 뒤바뀐 몸에 위험이 생기면 원래대로 돌아가는, 뭐 그런 원리로 일어난 일인가?’

지화자가 쿨럭, 피를 토해내고는 미간을 좁혔다.

‘내상이 심하네. 외상도 심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화자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뭐야?! 이 X같은 년이!”

그녀에게 발이 붙잡힌 로렌치니 윌던이 사납게 소리 질렀다.

“아, 맞아. 네가 있었지, 참.”

“뭐?”

로렌치니 윌던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그녀를 쳐다보는 순간.

“커헉!”

걷어차인 몸이 붕 뜨며 흙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너… 아직 나한테 혼이 덜 났나 보구나……?”

로렌치니 윌던이 잔기침을 토해내며 사납게 지화자를 쳐다봤다.

지화자는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질끈 묶고는 심드렁하게 목소리를 냈다.

“내가 애새끼도 아니고 누구한테 혼이날 나이는 아니거든?”

“하하! 아하하!”

로렌치니 윌던이 광소를 터트리며 씨익 입고리를 올렸다.

“X만한 년이 죽고 싶어서 발악을 하는군.”

“그래? 죽고 싶어서 발악을 하는 건 너인 것 같은데? 아, 그것도 아니면 혹시.”

지화자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비릿하게 웃었다.

“네 X이 나만큼 작아서 그렇게 지랄발광을 하는 거야?”

로렌치니 윌던이 멍하니 두 눈을 깜빡이다가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는 곧 땅을 박차며 외쳤다.

“죽여버리겠어!”

“사람 죽여본 적은 있고?”

살기를 풀풀 풍기며 자신을 향해 들이닥치는 그를 보며 지화자가 비릿하게 웃었다.

“나는 많은데.”

***

“로렌치니!”

엘리자베스 윌던이 넓은 창을 두드리며 자신의 조카를 애타게 불렀다.

분명 지화자를 압도하고 있던 로렌치니 윌던이 한순간에 그녀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우종문 부장! 지금 당장 결투를 중단시키십시오!”

“말했듯, 그럴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엘리자베스 윌던 씨.”

우종문이 나긋하게 말했다.

“지금 결투를 중단시키면 조카 분께서는 조금 전에 그런 것처럼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뛸 겁니다. 계속 말이지요.”

엘리자베스 윌던이 뭐라고 외치려는 찰나, 우종문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윌던 기업은 대한민국에서 인기가 참 많은 곳이죠. 그런 기업의 후계자가 망나니여서야 되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사람 하나 고쳐 쓰게 된다고 생각하십시오.”

“우종문 부장!”

“엘리자베스 윌던 씨도 그걸 원해서 지화자 팀장과 조카 분을 붙게 한 것 아닙니까?”

엘리자베스 윌던이 할 말을 잃은 듯, 입술을 꾹 다물었다.

우종문의 말에 틀린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 엘리자베스 윌던은 조카의 싸가지를 고치고자 한국을 방문한 것.

사업차 방문했다는 것은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목적이었다.

엘리자베스 윌던이 부들부들 떨다 말했다.

“로렌치니가 죽으면 내 조국이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종문이 싱긋 웃었다.

“지화자 팀장은 적당히한 선을 아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그 선을 아는 사람이 그렇게 제 언니를 죽였단 말입니까?”

날선 목소리에 우종문은 그저 눈웃음을 짓기만 했다. 엘리자베스 윌던은 분노어린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다 휙 고개를 돌렸다.

지화자가 로렌치니 윌던의 등을 짓밟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엘리자베스 윌던은 자신의 조카가 ‘힘’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야만 로렌치니 윌던이 제 주제를 조금에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던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두려웠다.

눈 앞의 지화자가 윌던 기업의 후계자이자 하나뿐인 제 조카를 죽여버릴까봐 말이다.

우종문은 엘리자베스 윌던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와중에도 뜻모를 미소를 그릴 뿐이었다.

그리고 유은영은.

“지화자 팀장님…….”

그녀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무력에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

“나 죽인다더니 목청만 큰 놈이었나 보네.”

“이 빌어먹을 년이…! 아악……!”

지화자가 로렌치니 윌던의 허리를 반으로 쪼개버릴 듯 그를 밟고 있는 발에 힘을 줬다.

“어떻게 할까?”

“아으윽!”

지화자가 제 아래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로렌치니 윌던을 보며 키득거렸다.

“이대로 네 허리를 반으로 쪼개 버릴까? 아님, 너그럽게 놓아줄까?”

“이…! 시발……!”

“거참, 입이 험하네. 엘리자베스 윌던 씨께서 걱정이 참 많으시겠어. 하나뿐인 조카이자 기업의 후계자의 입이 이렇게 걸쭉해서야.”

“커헉!”

지화자가 로렌치니 윌던의 등을 밟고 있던 발을 들어 그를 그대로 걷어차버렸다.

꼴사납게 흙바닥을 뒹군 그가 분하다는 얼굴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와는 달리 지화자는 여유가 만만한 얼굴이었다.

“엘리자베스 윌던 씨께서 왜 너를 한국에 데리고 와 나와 결투를 붙이는지 궁금하지?”

“시끄러! 이 결투는 내가 원해서 고모한테 요청한 거다!”

“그렇구나아.”

지화자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는 듯 무심하게 말했다.

“그래서 소감은?”

“뭐?”

지화자의 입가메 미소가 걸렸다.

“대한민국의 랭킹 1위인 내가 친히 너를 상대해주고 있는데 그 소감이 어떠냐고.”

“소감?”

로렌치니 윌던이 픽 웃고는

“하, 하하! 아하하하!”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얼마 가지 않았다.

뚝, 웃음을 그친 로렌치니 윌던이 지화자를 향해 중지를 치켜들며 이를 드러냈다.

“엿이나 쳐먹어라.”

이제 자신의 성언이 효과를 발휘할 거다. 눈 앞의 X만한 년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그대로 받으며 몸부림치겠지.

로렌치니 윌던의 입꼬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켜 올라갔다.

하지만.

‘뭐지?’

그의 미소가 일그러졌다.

‘지금쯤 고통에 몸부림치며 쓰러져야하는데? 왜 멀쩡한 거지? 조금 전에는 맥도 못 추렸었잖아!’

로렌치니 윌던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할 때, 지화자가 쿨럭거리며 피를 토해내고는 나긋하게 물었다.

“혹시 들었어? 참고 견디는 건 내 전문이란 것.”

“그게 뭐 어쨌다고……!”

“네가 무슨 헛짓거리를 하든, 나는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딜 수 있다고.”

로렌치니 윌던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지화자가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자, 로렌치니 윌던. 다시 한번 더 물을게.”

지화자는 얼어붙은 로렌치니 윌던을 향해 물었다.

“나와 붙는 소감은?”

그의 코 앞에 봉을 들이밀면서 말이다. 지화자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에 로렌치니 윌던은 흠칫 몸을 떨었다.

두려움에 의해 본능적으로 행한 행동.

‘내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고? 누구를? 눈 앞의 여자를?’

로렌치니 윌던이 까드득 이를 갈고는.

“으아아악! 죽어버려!!”

지화자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눈에 읽기 쉬운 공격에 지화자가 픽 웃으며 허리를 뒤로 젖혔다. 동시에 그녀는 봉을 휘둘렀다.

“컥……!”

로렌치니 윌던, 그의 턱 아래를 향해 아주 강하게 말이다.

일순, 시야가 까맣게 점칠됐지만.

“크헉!”

그는 기절할 새도 얻이 걷어차이며 벽에 쳐박히고 말았다.

“옛 말에 그런 말이 있지.”

쿨럭, 지화자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것을 다시 한 번 더 뱉어 내고는 입가를 닦았다.

“당한만큼 두 배로, 세 배로 되돌려주라고.”

그녀는 후두둑, 떨어진 파편에 파묻힌 로렌치니 윌던을 향해 발걸으을 옮겼다.

“너는 그래서 나한테 안 돼.”

당한 만큼만 그대로 돌려두면 어떻게 해?

지화자가 씨익 웃으며 봉을 높이 치켜 들었다. 화르륵, 일어난 불꽃이 그녀를 감쌌다.

로렌치니 윌던은 불꽃에 휩싸인 그녀의 모습에 “히익!” 숨을 들이켜 마시며 벌벌 떨어댔다.

포식자 앞에 놓인 먹이처럼 말이다. 정말이지, 꼴사납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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