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10. 참교육
이탈리아의 랭킹 7위, 로렌치니 윌던과 대한민국의 랭킹 1위, 지화자.
두 사람의 결투장은 센터에서 소수의 인원만 참관하는 것으로 이뤄졌다.
전국적으로 알리면 꽤 흥행몰이가 될 테지만, 엘리자베스 윌던은 자신의 조카가 오락거리의 일환으로 소비되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그건 우종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이건, 엘리자베스 윌던의 부탁으로 인해 벌어질 결투였다.
굳이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지화자와 외국 랭커와의 결투를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우종문이 뒷집을 진 채, 옆에 서있는 보좌관에게 물었다.
“언론 통제는?”
“기술 관리 부서에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중입니다. 센터에 침입한 기자도 없고요.”
보좌관이 기다렸다는 듯 말끔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때.
“우와, 지화자다!”
“그런데 옆에 남자는 누구지?”
“나 알아! 지화자랑 연애한다고 하던 남자야!”
리아와 라이, 0팀이 등장했다.
두 남매뿐만이 아니었다.
“아니야, 지 팀장님 연애 안 해.”
‘유은영’ 역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우종문에게 물었다.
“부장님, 저희 오빠는 왜 저기다 집어 넣은 겁니까?”
“아아, 그게 말이지.”
“그건 제가 설명하도록 하죠.”
엘리자베스 윌던이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지화자는 황급히 고개를 꾸벅였다.
엘리자베스 윌던은 인사는 괜찮다는 듯 가볍게 손짓하고는 나긋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로렌치니가 각자의 파트너에게 서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런 이벤트를 준비하게 됐지요.”
이벤트고 자시고 지화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유은영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불만이 가득한 지화자의 얼굴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엘리자베스 윌던이 상냥하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각자의 파트너는 안전 구역에서 결투를 보게 될 테니까요.”
“그런 거라면 그냥…….”
여기서 보게 하지 그랬냐고, 그리 말하려던 지화자가 입술을 꾹 닫아다가 이내 미소를 그렸다.
“네, 꽤 재미난 이벤트를 준비했네요.”
“나도 저 이벤트 참여하고 싶어! 지화자 옆자리 내가 차지하고 싶은데! 할아버지, 저 아저씨 몰아내고 내가 지화자랑 손잡으면 안 돼? 응?”
“리아, 부장님께 그렇게 투정 부리면 못써. 기껏 우리도 참관하게 해주셨는데…….”
때맞침 등장한 가하성이 리아를 달랬다. 우종문은 괜찮다는 듯 인자하게 웃고는 리아에게 말했다.
“다음에는 우리 리아가 지 팀장의 파트너가 되게끔 해주마.”
누구 맘대로 저 꼬맹이를 파트너로 만들어 준다는 겁니까!
지화자는 울컥 치미는 목소리를 가까스로 참았다.
‘진정하자. 나는 지금 지화자가 아니라 유은영이다. 유은영이야, 언니라고!’
지화자는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투명한 유리창 너머의 ‘지화자’를 쳐다봤다.
***
―각 랭커 분의 파트너 분들께서는 안전 구역으로 이동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안전 구역이 어디인지는 한 눈에 보였다.
유럽 왕실에서나 볼법한 화려한 의자. 바로 그 자리가 안전 구역일 터.
유승민이 유은영의 손을 놓으며 신신당부했다.
“은영아, 조심해.”
“오빠나 조심해. 어서 이 손 좀 놓고!”
유은영이 유승민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유승민은 상처를 받았다는 듯 울상을 지었지만, 유은영에게 있어 알 바 아니었다.
지금 그녀가 신경써야할 사람은 한 사람뿐.
“읏차! 우리 마리사의 손등에 키스를 해주려면 꼭 이겨야겠네! 그치, 대한민국의 랭킹 1위님?”
윌던 기업의 차기 후계자로 손꼽히고 있는 ‘지화자’와 마찬가지의 S급 각성자였다.
유은영이 웃는 낯으로 마치 ‘지화자’처럼 그를 향해 비아냥거리며 물었다.
“키스를 왜 해줘야하는지 모르겠는데.”
“그야, 마리사는 나의 꽃이고, 나는 그 꽃을 지키는 기사니까!”
로렌치니 윌던이 그렇게 말하고는 단순에 땅을 박차 유은영의 앞에 나타났다.
유은영은 기름을 좔좔 바른 그의 말에 질린 얼굴을 하며 그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아니, 가볍게 막아낸 것은 아니었다.
끼긱―!
남녀의 무기가 불쾌한 소음을 내며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로렌치니 윌던이 유은영을 보며 히죽거렸다.
“어때, 대한민국의 랭킹 1위님? 너는 네 남자의 손등에 키스하고 싶은 욕망같은 거 없나?!”
누구 누구의 남자라고?
유은영이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고는 두 손에 힘을 꽉 쥐어 로렌치니 윌던을 밀어냈다.
로렌치니 윌던은 자신이 힘에서 밀려났다는 것에 놀란 얼굴을 보였다. 유은영은 그런 그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없어, 절대로.”
“이것 참, 그럴거면 저 남자는 왜 파트너로 데리고 온 거야?”
“위에서 까라면 까는게 아랫 사람의 인생이니까.”
“아하, 그래? 그런데 이거 어쩌나? 미안하지만……!”
로렌치니 윌던이 다시 한 번 더 유은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누군가의 아래에 위치한 적이 있어서 네 말을 하나도 모르겠네! 대한민국의 랭킹 1위님!”
로렌치니 윌던이 쥐고 있던 검이 유은영의 목을 향했다. 유은영은 느릿하게 보이는 것을 막고자 봉을 들었지만.
“윽!”
그것은 훼이크였다.
로렌치니 윌던에게 복부를 걷어차인 유은영이 저멀리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
유은영이 소리 없는 비명을 토해내고는 쿨럭거렸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피에 유은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내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일어섰다. 로렌치니 윌던이 휘파람을 불며 그녀를 놀렸다.
“오, 그대로 꼴사납게 쓰러질 줄 알았더니?”
“참고 견디는 건 내 전문이라.”
유은영이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그 말에 로렌치니 윌던이 키득거렸다.
“그래? 나도 그런 것에 있어서는 아주 전문인데.”
“그렇다니 한번 시험해보고 싶은걸?”
화르륵.
유은영을 중심으로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유은영이 봉을 쥐고 있는 손에 꽉 힘을 주고선 이를 드러냈다.
“네가 과연 나만큼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지 말이야!”
일반인의 눈으로는 쫓을 수 없는 공방이 시작됐다.
유은영은 달려들었고, 로렌치니 윌던 역시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선 팽팽하게 서로를 공격하고 막기 시작했다.
그 줄다리기가 끝난 건 유은영이 로렌치니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그를 걷어차면서였다.
“커헉!”
유은영이 그랬던 것처럼 벽에 처박힌 로렌치니 윌던이 피를 토해내며 악을 내질렀다.
“이 빌어먹을 년이!”
“그 말 그대로 반사.”
결투장 내의 목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면 모두가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참, 유치하게들 싸운다고.
하지만 그들의 눈에 보이는 건 막상막하로 결투를 벌이고 있는 두 사람뿐이었다.
“생각보다 로렌치니 윌던 씨라는 사람이 잘 싸우네요. 아님, 우리 팀장님이 약한 건가?”
“지화자는 약하지 않아!”
“맞아요, 하성이 형! 우리 지화자 누님은 약하지 않다고요!”
“그냥 내 생각 좀 말해본 거야.”
가하성이 리아와 라이의 분노 섞인 목소리에 뜨끔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태균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께서 다치신 것 같은데, 괜찮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을 거예요. 우리 팀장, 어떤 부상을 입어도 멀쩡하잖아요?”
가하성이 비아냥거리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결투가 시작된 이후 계속 입을 다물고 있는 여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유은영 씨는 괜찮으세요?”
“네?”
“팀장님이랑 가장 가까운 사이잖아요? 가장 늦게 우리 팀에 합류했는데 말이에요.”
“하성이 오빠, 질투해?”
“맞아요, 하성 형님. 지금 은영 누님 질투해요?”
“질투는 누가 질투를 한다고!”
가하성이 빼액 소리 질렀다. 지화자는 무심하게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묻고 싶은 말이 뭐죠?”
“그러니까 지화자 팀장님 걱정 안 되냐고요.”
“걱정됩니다.”
“네, 걱정 안 하실 줄…….”
잠깐만.
“뭐라고요?”
“걱정된다고요.”
지화자가 유리창 너머 각성자 간의 결투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결투에 있어서 우위는 ‘지화자’가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화자는 불안했다. 로렌치니 윌던이 부여받은 성언, 그리고 그의 고유 특성.
‘그 힘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단 말이야.’
도대체 언제 사용하려고 저렇게 꽁꽁 숨겨 놓고 있단 말인가?
물론, 유은영 역시 자신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상해.’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결투의 한복판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 유승민 역시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도대체 뭐지? 왜 힘을 사용하고 있지 않는 거지?’
지화자의 생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로렌치니 윌던은 자신의 힘을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는 중이었다.
암만 자신의 동생에게 힘으로 밀리고, 복부를 걷어 차리고, 바닥을 굴러도.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그는 제 힘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지 않는 중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동생은 그걸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은영아, 제발!’
모를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자신의 동생이 암만 ‘지화자’의 몸에 들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투에 있어 경험은 무척이나 적은 그녀였다.
암만 백도진과 싸운 전적이 있다고 해도 그랬다.
더욱이 백도진은 지화자와 여러 차례 결투를 벌인 적이 있던 각성자였다.
즉, 그녀가 가진 힘을 발휘하면 편하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였다는 말씀.
하지만 눈 앞의 로렌치니 윌던은 달랐다. 그는 ‘지화자’가 단 한번도 싸운 적이 없는 상대였다.
‘지화자 팀장이 보유하고 있는 성언과 고유 특성, 그것을 사용하기에 상대가 너무 나빠.’
‘지화자’가 로렌치니 윌던과 비슷한 상대와 싸운 적이 있다면 결투는 금방 끝났을 거다.
그녀가 부여 받은 성언, ‘모든 것을 기억하라’는 싸움에 있어 상대방이 지닌 힘과 특성 등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억하는 힘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에 맞춰 형성된 고유 특성인 회고록.’
그건, 지화자의 머릿속에 저장된 싸움의 기록을 꺼내와 그 당시에 벌였던 전투의 상황을 재현해내는 힘이었다.
그런데 유은영은 지금 ‘지화자’의 힘을 온전하게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지화자의 기억에 있어, 로렌치니 윌던과 비슷한 상대가 없을테니.
‘은영아.’
유승민이 두 손을 기도하듯 꼭 모으고는 빌었다.
‘제발 다치지만 마라.’
하지만 그 기도는 닿지 못했다.
“쿨럭……!”
로렌치니 윌던의 목을 향해 빠르게 봉을 휘두르려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유은영의 몸이 기울어지며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로렌치니 윌던이 헛숨을 들이켜마셨다가 이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드디어 시작됐네!”
로렌치니 윌던은 꼴사납게 쓰러진 여자를 보며 살기를 뿜어냈다.
“잘도 나를 몰아붙였겠다?!”
로렌치니 윌던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이제부터는 내 시간이다, 이 X만한 대한민국의 랭킹 1위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