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68화 (68/200)

제68화

조수현이 닫힌 문을 노려보고 있을 때, 부장실 안에서는.

“0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인 유은영 씨 아닌가?”

“안녕하십니까, 우종문 부장님. 다름이 아니라.”

“할아버지! 저희도 왔어요!”

“맞아! 우리도 왔어!”

“오, 라이. 리아.”

즐거운 만담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우종문이 온화하게 웃으며 라이와 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희 둘, 모두 못 본새에 많이 자랐구나?”

“정말? 나 많이 자랐어?”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밥 안 먹고 그러면 안 된다. 알겠느냐? 라이, 너도.”

“네!”

“응!”

우종문이 정말 라이와 리아의 친할아버지라도 된 것처럼 다정하게 굴었다.

“그래서 유은영 씨께서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지?”

“아, 다름이 아니라 라이와 리아의 A-Index 접근 권한 허가를 부탁드리려고 왔습니다.”

“라이와 리아의 A-Index 접근 권한 허가를?”

“네.”

그 말에 우종문이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흐음…….”

“곤란한 사안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만.”

우종문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다가 ‘유은영’에게 물었다.

“지 팀장이 허락한 일인가?”

“네? 네.”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은영’의 몸에 들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지화자였다.

‘그러니까 상관없겠지.’

지화자는 태연스레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우종문은 한참의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허가하지. 애들 생체 정보는 이미 등록되어 있으니까 따로 등록할 필요 없을 거라네.”

“네, 감사합니다. 부장님.”

“나야말로 지 팀장을 도와 이것저것 0팀을 위해 열심히 일해줘서 고마울 따름이지. 그보다 유은영 씨께 내 부탁이 하나 있다만.”

“네, 부장님.”

무엇이든 말해달라는 듯, 지화자가 결연한 얼굴로 우종문을 쳐다봤다.

우종문은 부드럽게 미소를 그리며 지화자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애들 충격받지 않게 잘 대해주도록 하게.”

“네?”

애들 충격받지 않게 잘 대해주도록 하라니?

‘무슨 소리래?’

지화자는 뜻밖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후, 지화자는 라이와 리아와 함께 부장실을 빠져나왔다.

“라이, 리아. 이제 A-Index에서 너희 정보를 한번 열람해봐.”

“어떻게 열람하는 건데?”

“그냥 머릿속으로 A-Index에 대해 떠올려봐.”

원래 성언을 부여받은 자들은 A-Index의 사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하지만 라이와 리아는 성언을 부여받은 각성자가 아니었다.

‘그래, 그랬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A-Index를 허가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왜 해주지 않았던 거지?’

지화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그녀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라이, 리아! 잠깐만!”

지화자가 라이와 리아가 A-Index를 확인하는 것을 말리려고 했지만.

“은영 누님.”

“유은영아.”

한발 늦고 말았다.

“Unknown이 뭐야?”

지화자가 얼굴을 구겼다.

라이와 리아는 각성자 이전에 실험으로 탄생한 존재들.

그들은 우종문이 아니었으면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죽었을 아이들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은 라이와 리아의 A-Index의 접근 권한을 허락하지 않았던 거다.

-Name: Unknown

-Birth: Unknown

-Local: Unknown

-Rank: Unknown

-Number: Unknown

암만 생체 정보가 등록되었다고 해도 라이와 리아는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들.

A-Index의 접근을 허락하는 순간, 아이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철저하게 부정당하는 광경을 보게 될 테니까.

‘멍청한 지화자!’

지화자가 자신을 욕하고는 머리를 쓸어 올렸다.

“가자.”

“어디로요?”

라이의 질문에 지화자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기술 관리 부서.”

각성자의 등급과 랭킹을 나타내는 ‘Rank’와 ‘Number’가 Unknown인 건 이해한다.

하지만 다른 건 아니었다.

‘이름이랑 생일 그리고 출신 국가는 걔들이 알아서 해줄 수 있을 테지.‘

안 된다고 해도 지화자 팀장님의 명령이라면서 몰아붙일 기세였다. 라이와 리아는 두 눈을 데굴 굴리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네, 누님!”

“응, 지화자야!”

그렇게 세 사람은 기술 관리 부서를 한바탕 뒤집어엎으러 갔다.

그리고 그 시각.

“오빠.”

“응?”

유은영은 유승민의 사업용 차에 기댄 채 푸른 하늘을 편안하게 감상 중이었다.

유은영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귀빈 경호라는 게 원래 이렇게 편해?”

“그런 편이지?”

“완전 꿀이네.”

“그렇게 꿀인 건 아니야. 다른 나라에서는 아주 피 말리는 임무나 다름 없거든.”

“그래?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꿀이지?”

“그거야, 네가 지화자 팀장님이니까.”

“그게 뭐?”

유은영이 이해하지 못했겠다는 얼굴로 유승민을 쳐다봤다.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거든. 로렌치니 윌던 씨께는 안타깝게도 그 명성이 닿지 않은 모양이지만.”

“어떻게 유명한데?”

“또라이로.”

내 그럴 줄 알았지.

유승민의 입에서 좋은 말이 튀어나올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설마 ‘또라이’라는 평가가 나올 줄은 몰랐다.

“지화자 씨께서 또라이로 불리는 이유는?”

“으음, 몇 년 전에 일본에서 시비를 건 적이 있었어.”

“일본에서?”

“응, 네가 아직 병상에 누워있을 적의 일인데…….”

유승민이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본에는 랭킹 10위권 안에 드는 유명한 각성자가 있다고 했다.

A급의 각성자지만, S급 못지않은 힘을 쓰는 각성자. 그 때문에 그는 항상 자신의 등급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2팀의 팀장님처럼?”

“2팀의 팀장님이라면 나혜선 팀장님 말하는 거지.”

“응.”

유은영의 대답에 유승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나혜선 팀장님과 비슷하지만, 그 인간은 자신의 등급에 불만을 갖고서 A급이 아닌, S급으로 등급을 조절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녔어.”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응, 자신보다 높은 랭킹의 S급 각성자를 압도하면 A-Index에서 등급 조절을 해주거든.”

유은영이 마치 중력을 처음 발견한 뉴턴과도 같이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었다.

“그래서?”

“찾아왔지, 이곳 한국을.”

“한국에는 갑자기 왜?”

“그때가 지화자 팀장님께서 지유화 님을 죽이고 랭킹 1위가 됐을 무렵이거든.”

고작 그런 이유로 찾아온 거냐고 물으려던 유은영이 순간 깨닫고는 말했다.

“운으로 거져 먹은 랭킹 1위니까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구나?”

“그렇지.”

유승민이 내 동생 똑똑하다며 싱글벙글 웃고는 말했다.

“자국 내, 자신보다 높은 S급 랭커들은 경험 면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까 만만한 사람을 찾아온 거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은영아, 너 내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지?”

“응, 당연히 모르지. 오빠가 말했잖아. 내가 병상에 누워있을 적에 일어났던 일이라고.”

“그래도 일본에서 탑10에 들었던 각성자야. 그럼에도 왜 이름 한 번 못 들어본 걸까?”

“내가 관심이 없어서?”

일 리 있는 말이었다.

크흠, 유승민이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그래, 우리 은영이가 국내 소식에만 관심 많은 거 알지.”

“국내 소식에도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건 아닌데.”

“하여튼!”

유승민이 목소리를 높이고는 유은영에게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그 녀석의 결투 신청을 받아들였어.”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어쨌든 일본의 각성자가 결투하자면서 시비를 튼 거잖아.”

자고로 일본과는 어떤 결투에서도 승리해야하는 법.

지화자는 싫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러지 않았다면 안 그래도 지유화를 죽이면서 뿔난 민심이 더욱 활활 불타올랐을 테니까.

‘지화자 씨께 그런 과거가 있을 줄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싶었다. 그때 유승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화자 팀장님께서 그 녀석한테 뭘 보여줬는지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 말에 유승민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쓰나미를 보여줬어.”

“……쓰나미?”

“응.”

“진짜 쓰나미? 이곳, 대한민국에서 쓰나미를?”

물론, 한국에서 쓰나미가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쓰나미라니!

유승민은 유은영의 놀란 얼굴에 웃음기 섞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투가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일어났었는데, 그 앞바다를 몰아 일으키더라고.”

그야말로 쓰나미가 부산을 덮쳐오는 광경이었다면서 유승민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지화자가 지유화를 죽이고 막 랭킹 1위에 올랐을 때부터 청와대 소속으로 일하고 있었으므로, 정보 획득 차 그 결투를 눈앞에서 직접 관람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정말 대단했지.’

일본의 겁대가리 없던 각성자가 항복을 외치지 않았다면, 지화자는 그대로 그를 수장시켰으리라.

유은영은 멍하니 물었다.

“인위적으로 그걸 일으킬 수 있단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그거야 나도 모르지.”

유승민이 어깨를 으쓱인 후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그 일 이후로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전 세계적으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 즉 ‘또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됐지.”

참고로 한동안 일본에서는 ‘지화자’란 이름이 공포의 대상으로 불릴 정도였다면서 유승민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그 일본인 녀석은 충격으로 방구석 폐인이 됐다고 하더라고.”

“와우…….”

그런 지화자 씨께 나는 초콜릿도 주고, 혼자 가기 무섭다고 같이 가자면서 엉겨 붙었었구나.

‘그리고 게이트에 떨어졌을 때 머리채도 붙잡았고.’

새삼스레 자신이 참 대단하다 싶은 유은영이었다.

“그보다 엘리자베스 윌던 씨께서 곧 나오실 것 같네.”

“그럼, 오늘 일정 끝이지?”

“응, 하지만 우리 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

유승민이 그렇게 말하고는 유은영을 향해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우리 서로 나눌 이야기가 있잖아, 은영아.”

서로 나눌 이야기라니?

‘그런 게 있었나?’

유은영은 질색하는 얼굴로 유승민을 쳐다봤다.

원래 자매든 남매든 형제들 서로 나눌 이야기란, 주먹밖에 없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버터를 잘잘 바른 목소리로 우리 서로 나눌 이야기 있지않느냐는, 그런 연인에게 할법한 고백 멘트를 날리다니!

“아니! 없는데?!”

그것도 절대로 없는데요!

유은영이 기겁하여 두 팔을 ‘X’자로 표시하며 외쳤다.

유승민은 당황스러웠다.

“저기, 은영아. 로렌치니 윌던 씨의 정보 필요 없어?”

“아.”

맞다, 그 자식이 받은 성언이 뭐고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나 알아봐야지?

유은영이 얼빠진 소리를 내고는 손을 들었다.

“그럼, 그거 알려준다고 해야지! 뭘 그렇게 기름칠 바른 목소리로 말하는 거야!”

“아야! 아니, 내가 뭐! 아파! 은영아, 진짜 아파! 악!”

유승민은 S급이 괜히 S급이 아니란 것을 동생에게 맞으면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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