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63화 (63/200)

제63화

자신을 노려보는 유승민의 눈빛에 지화자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치, 말이 안 되는 소리지. 그래도 너무 부수지는 말아줘. 인간적으로 우리가 부숴야 할 것도 남겨는 줘야지.”

“하하, 그렇지.”

유승민이 그렇게 말하고는 어서 올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니 어쩌랴?

유은영과 지화자는 순식간에 건물 5층, 에브리데이 뉴스의 사무실에 당도했다.

사무실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죄, 죄송합니다! 그게, 저희가 아직 이 바닥에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해서!”

“그래서 사람들 흥미를 자극적으로 끌 만한 게 필요했다는 말이군요? 그쵸?”

“네! 그렇습니다!”

에브리데이 뉴스의 사장과, ‘지화자’가 유승민과 함께 있던 사진을 찍은 기자가 엉엉 울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두 사람의 앞.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이러면 안 되죠.”

유승민이 멀쩡한 책상 위에 앉고서는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제가 연애요? 우리 동생의 상사분이랑? 그렇죠, 지화자 팀장님?”

생각보다 더 난장판인 사무실의 모습에 멍하니 있던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정정 기사 내. 그러지 않으면 당신들은.”

죽을 줄 알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유은영’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두 사람과 시선을 맞추고는 미소를 그렸다.

“끝인 거 알지?”

안 그래도 유승민과 그 휘하의 장정들로 인해 온갖 험한 꼴을 당했던 남자들이 벌벌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된 줄 알았지만.

“은영아…….”

유승민이 가슴 아프다는 듯 입을 열었다.

“우리 은영이, 협박이라고는 모르는 아이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유승민이 서글프게 울상을 지으며 제 동생의 몸을 노려봤다.

그 몸 안에 들어가 있는 지화자는 뭐 어쩌라는 식으로 유승민을 쳐다봤다.

어쨌거나 스캔들은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아니, 그렇게 된 줄 알았다.

***

“죄송합니다만, 부장님. 제가 잘 못 들은 것 같아서요. 지금, 누구와 함께 귀빈을 맞이하라고 했을까요?”

“하하, 유은영 씨의 오빠 되는 사람인 유승민 씨와 함께 귀빈을 맞이하라고 했네.”

센터의 현장 파견 부서의 모든 팀이 서울에 자리한 상황.

0팀이 남의 팀 땜빵을 뛸 일이 줄어든 때에서 난데없이 잡힌 귀빈의 접대 일정.

유은영은 콱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다.

하지만 이 몸은 자신의 몸이 아닌, 지화자의 몸. 함부로 죽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유은영은 죽고 싶은 심정을 꾹 억누르며 최대한 웃는 낯으로 우종문에게 물었다.

“부장님, 왜 하필 유승민 씨와 함께 귀빈분을 맞이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귀빈께서 그러기를 부탁했다네. 지금까지는 지 팀장, 자네와 우리 국장님께서 항상 귀빈을 맞이하지 않았나? 이번에 오는 귀빈께서 그걸 식상하게 느낀 모양이야.”

우종문이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남녀 간의 청춘을 맘껏 보고 싶다 하더군.”

“죄송합니다만, 부장님. 유승민 씨와 저는.”

“아무런 사이가 아닌 거 알지. 그리고 귀빈분께서도 안다네. 그런데 이번에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귀빈께서 장난기가 심한 분이거든. 아마, 자네도 알 거라네.”

아니요, 모르겠는데요.

유은영은 치밀어 오르는 말을 꾹 삼켰다.

어쨌거나 우종문은 말했다.

그 귀빈이란 작자가 며칠 전에 터졌던 ‘지화자’의 스캔들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서 협조 좀 부탁한다고 말이다.

“어쨌거나 우리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찾아오는 손님인 만큼, 잘 대접해야 한다네. 알겠나, 지 팀장?”

“네에.”

모른다고 해도 알겠다고 해야죠. 상사가 그러라는데 그래야죠.

위에서 까라면 까는 것이 국룰.

그렇게 유은영이 터덜터덜 힘없이 부장실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그리고 유승민, 그자. 청와대에서 알아주는 인사더군.”

“네? 청와대에서 알아주는 인사라고요?”

그 오랑우탄이요?

유은영이 뒷말을 덧붙이려다가 가까스로 참으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얼굴에 우종문이 웃는 낯으로 물었다.

“그래, 몰랐나?”

“네, 관심이 없어서 몰랐습니다.”

“찍힌 사진을 보면, 서로 관심이 많은 줄 알았는데 말이네.”

“그건…….”

유은영이 끄응 앓는 목소리를 냈다. 우종문은 ‘지화자’가 곤란해 하는 모습에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유승민.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보좌관이자, 안보국의 요원이기도 한다더군.”

“잠깐만요, 부장님. 유승민 씨가, 그렇게 대단한 인사였다고요?”

“하하하. 물론, 지 팀장에 비할 바는 못 되는 인사지만 말이지.”

우종문이 ‘지화자’를 칭찬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게이트 공략과는 인연이 없는 자라 랭킹은 낮을 걸세. 하지만 센터에서 파악한 바로는 2팀의 나 팀장 못지않은 A급 각성자라고 하더군.”

그 말은 즉, S급 각성자 못지않은 능력을 가진 자라는 말.

유은영이 미간을 좁혔다.

‘이 망할 혈육 새끼가!’

자신뿐만이 아니라, 엄마한테도 그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있었단 말이야?!

‘만나면 아주 죽었어!’

유은영이 두 주먹을 꽉 쥘 때.

“뭐, 어찌 됐든 간에 지 팀장.”

“네? 네, 부장님.”

“잘 부탁하겠네. 국장님께서도 기대가 커.”

도대체 무엇에 기대가 크다는 거죠? 제가 오빠랑 함께 룰루랄라 귀빈분을 맞이하는 것에 대해서인가요?

유은영은 순간 그렇게 물어볼 뻔했으나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고 대답했다.

“네, 부장님.”

***

“그래서 네 오빠와 함께 귀빈을 맞이하기로 했단 말이야?”

“네, 그 상황에서 그럼 어떻게 말해요?”

뚱하게 묻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차라리 서이안과 함께 하겠다고 하지 그랬어?”

“서이안 씨가 좋아할까요?”

“그럼 네 오빠와 함께 다정하게 귀빈을 맞이하는 건 좋냐?”

유은영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서이안 씨와 함께 귀빈을 맞이할 걸 그랬네요.”

랭킹 1위와 2위의 조합, 얼마나 보기 좋고 재미난 광경인가?

“뭐,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고, 네 오빠는 우리가 서로 몸 바뀐 거 알잖아?”

“그쵸.”

도대체 부여받은 성언이 무엇인지 궁금한 유은영이었다.

“잘하고 와. 아마, 이번에 온다는 귀빈이라면 적당히 서로 다정한 모습 연출해주는 것만으로도 좋아할 테니까.”

“부장님께서는 귀빈분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해줬는데, 지화자 씨는 아나 보네요?”

“나야, 뭐. 여러 사람 워낙에 많이 만나봐서. 이탈리아에서 오는 귀빈이라고 했지? 그럼, 아마 엘리자베스 윌던 씨일 거야.”

“엘리자베스 윌던……?”

유은영이 고개를 살짝 기울었다가 곧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윌던 그룹의 이사장님이요?!”

“아네?”

“네! 당연히 알죠! 제가 지화자 씨께 처음 만났을 때 줬던 초콜릿도 그 그룹에서 나온 초콜릿이었던 걸요!”

지화자는 그 말에 유은영과의 첫만남을 기억해냈다.

“저기요.”

“……?”

“이거 드실래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녀가 내밀었던 초콜릿은 분명, 윌던 그룹의 초콜릿이었다.

지화자가 문득 떠오르는 기억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윌던 씨라면 분명, 언니가 좋아하는 그 초콜릿을 한아름 들고 올 거야. 언제나 그랬거든.”

“정말요?”

유은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하지만 곧, 그녀는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빌어먹을 오빠랑 같이 그분을 맞이해야 하잖아요. 완전 싫어.”

정말로 싫은 것처럼 보였다.

“지화자 씨, 우리 언제쯤 서로의 몸으로 돌아갈까요?”

저렇게 묻는 걸 보니 말이다.

지화자는 유은영의 걱정 섞인 질문에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그래도 언젠가는 돌아가지 않을까?”

그리고, 그때는.

지화자의 두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녀의 눈앞에만 보이는 A-Index의 시스템 창 때문이다.

-Name: 유은영(劉隱映)

-Birth: 20X1. 12. 26

-Local: 82_대한민국

-Rank: E급

-Number: unknown

F급에서 E급, 폐급에서 벗어나게 된 유은영이 자신의 정보를 확인한 후 어떻게 나올까?

어쨌든 중요한 건.

“걱정 마, 유은영 씨. 우리는 분명 서로의 몸으로 돌아갈 테니까.”

언제까지고 서로의 흉내를 낼 수는 없는 노릇.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문드문 드는 지화자였지만 그녀는 알았다.

유은영은 절대로 자신의 짐을 모두 짊어질 수 없다.

또한, 그 짐은 자신이 짊어져야할 것이었다. 절대로 누군가에게 맡길 수 없는 것.

‘더욱이 유은영 씨가 짊어지게 할 수는 없어.’

자신의 죄를 어떻게 남에게 떠넘길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지화자의 낯빛이 어두워질 때였다.

“지화자 씨, 그런데 귀빈분 맞을 때 어떤 식으로 맞아야 하나요? 이대로 입고 가도 되겠죠?”

“별걸 다 걱정하네.”

상념에서 벗어난 지화자가 픽 웃었다. 유은영은 자신의 걱정을 별것 아닌 것처럼 구는 지화자의 모습에 우는 목소리를 냈다.

“걱정할 수밖에 없죠! 윌던 기업이라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업이잖아요!”

“그렇지.”

지화자가 유은영을 아래위로 훑고는 피식 웃었다.

“뭐, 그대로 입고 나가도 돼. 그렇게 격식을 차리는 분이 아니거든. 문제라면.”

지화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장난질이 조금 심하다고 할까?”

꽤 고생 좀 할 거라면서 지화자가 웃는 낯으로 유은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오빠와 함께 즐거운 추억을 쌓고 오기를.”

“그걸 말이라고 해요?!”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

유럽의 반도, 이탈리아.

그곳의 수도, 로마 외곽의 고급 주택에서 늙은 여인이 미소를 그렸다.

“오, 지화자 팀장이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하구나.”

“그럴 줄 알았어요.”

그녀와 마주 보고 앉아있는 젊은 남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지화자 팀장, 소문과는 다르게 윗사람들한테 엄청 깍듯하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면서 그는 물었다.

“그래서 고모, 저 진짜 데리고 갈 거예요?”

“그래, 가기 싫으냐?”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남자가 씨익 웃었다.

“암만 소국의 랭킹 1위라고 해도, 사랑 놀음에 빠져 있다니. 그 낯짝 궁금해서라도 가야겠어요.”

“그건 오보로 밝혀졌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게 기사가 난 것 자체가 문제에요. 그리고 완전한 오보도 아닌 것 같은데요?”

남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재잘거렸다.

“고모의 제안을, 지화자 팀장이 받아들였다면서요?”

그러니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건 사실이지 않겠냐면서 남자가 입을 놀렸다.

늙은 여인은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말했다.

“지화자 팀장의 뮤즈는 그녀와는 다르게 전투에는 영 소질이 없는 모양이니.”

“제 뮤즈도 그렇게 준비하라는 거죠? 그래야 싸울 때 공평하게 싸울 수 있으니까.”

“그래, 지화자 팀장이라면 분명 네게 좋은 상대가 될 거란다.”

“그래봤자 소국의 랭킹 1위일 뿐이잖아요. 저와 상대가 될 것 같아요?”

“물론.”

늙은 여인이 고민도 않고 입을 열었다.

“네 드높은 콧대를 아주 가볍게 눌러줄 거라고 믿는단다.”

“고모도 참.”

못 말린다는 듯, 짧게 혀를 차고는 말했다.

“어쨌든 알겠어요. 제 뮤즈야, 뭐. 널리고 널린 게 여자니까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달칵, 문이 닫히자마자 윌던 기업의 회장인 엘리자베스 윌던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화자 팀장에게는 미안하지만, 버릇없는 조카 녀석 교육을 부탁하게 됐군.”

엘리자베스 윌던의 버릇없는 조카, 윌던 기업의 후계자로 손꼽히고 있는 로렌치니 윌던은 최근에 성언을 부여받은 각성자였다.

문제는, 그가 이탈리아에서 한 손에 꼽히는 S급 각성자라는 것.

안 그래도 높은 콧대가 하늘 드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꼴에 엘리자베스 윌던은 혀를 차던 때였다.

그런데 때를 맞춰 방한 일정이 잡힌 거다.

주기적으로 한국을 찾았던 그녀였기에 엘리자베스 윌던은 이 기회를 이용하고자 했다.

사실, 지화자의 스캔들은 그녀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암만 제 언니를 죽이고 랭킹 1위가 됐다고 하나, 남녀간의 사랑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일.

‘지화자 팀장의 스캔들은 로첸치니에게 물려줄 먹잇감이었을 뿐.’

그러지 않고서야 자신과 함께 할 생각이 없었을 녀석이다.

‘이것 참, 지화자 팀장에게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높은 콧대, 폭삭 내려앉게 만들려면 그보다 높은 콧대가 찍어줘야 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윌던이 생각하기에 그런 상대는 바로 지화자뿐이었다.

“세바스찬.”

“네, 주인님.”

있는 듯, 없는 듯 있던 엘리자베스 윌던의 보좌관이 냉큼 그녀의 곁에 붙었다.

“방한 일정에 아무 문제 없도록 하게. 아, 그리고. 지화자 팀장과 그녀의 뮤즈에게 줄 초콜릿, 넉넉하게 준비하도록 하고.”

“네, 회장님.”

엘리자베스 윌던이 괜히 달력을 쳐다봤다. 한국을 방문하기까지 남은 시간, 한 달 남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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