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61화 (61/200)

제61화

09. 스캔들

어쨌거나 게이트 공략이 무사히 끝났다.

‘무사히 끝났다고 할 수 있나?’

그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유은영’의 팔이 부러지고 말았다. ‘지화자’였다면 그 누구의 부상도 용납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유은영이 입술 안쪽을 꾹 깨물 때였다.

“게이트 사라졌습니다! 0팀, 모두 무사합니까?!”

“아.”

센터에서 파견 나온 직원의 목소리에 유은영이 황급히 말했다.

“유은영 씨의 팔이 부러져서요. 힐러 분 좀 불러줄 수 있을까요?”

“괜찮습니다, 팀장님.”

지화자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며칠 불편하면 되니까요.”

“그러다 잘못되면 어쩌려고요?!”

“잘못되면…….”

지화자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었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잘못되는 거겠죠?”

아니, 이 사람이?!

유은영이 욱하려는 순간.

“지화자 팀장님.”

가하성이 입을 열었다.

“정 걱정되면 유은영 씨, 저희 협력 병원으로 모시죠, 어차피 제대로 치료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성이 생각에 동의합니다.”

하태균의 말에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네요.”

“저는 괜찮다니까…….”

“제가 안 괜찮아요.”

유은영이 사납게 말하고는 지화자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화냈다.

“지화자 씨, 당신이 지금 들어가 있는 몸은 제 몸이라고요! 제발 좀 소중하게 여겨줄래요?”

그 말에 지화자가 ‘유은영’의 얼굴로 미간을 좁혔다.

“언니야말로 내 몸 좀 소중하게 여겨주지?”

“저는 언제나 소중하게 여겨주고 있거든요?”

유은영이 쏘아붙이고는 하태균과 가하성에게 말했다.

“하태균 씨, 가하성 씨. 라이랑 리아 좀 부탁해도 될까요? 저는 유은영 씨 좀 병원에 데려다주고 퇴근하겠습니다.”

“네에, 뭐.”

가하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S급, 혹은 돌발 게이트가 아닌 이상 공략 당일에 보고서를 작성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A-Index에 보고서 작성시 필요한 기록 좀 몇 자 끄적이면 업무 끝.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가하성은 ‘유은영’의 다친 팔을 흘긋거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태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그는 라이와 리아의 두 손을 꼭 잡고는, 믿고 맡겨만 달라는 듯 결연한 얼굴이었다.

“지화자야! 나도 갈래!”

“맞아요, 우리도 같이 가요! 은영 누님 걱정된단 말이에요!”

리아와 라이가 가기 싫다고 떼를 썼지만.

“리아, 라이. 너희 지화자 씨 말 안 들으면 용돈 삭감이야.”

라는 지화자의 말에 두 남매는 하태균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함께 S대학교에 나타날 게이트를 공략하고자 함께 왔던 팀원들을 모두 보낸 후, 지화자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런데, 언니.”

“네?”

“언니 운전 못하잖아.”

“그렇죠?”

팀원들이 모두 떠난 후에 남은 건, 지화자의 차뿐이었다.

지화자가 ‘유은영’의 몸으로 손수 몰고 온 것.

그런데 팔을, 그것도 오른쪽 팔을 다치고 말았다.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

“어, 음, 여기서 병원까지 얼마나 걸려요?”

“글쎄, 일단 병원이 있는 곳은 서초구야. 바로 옆 동네지. 뛰어서 갈 수 있어.”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뛰어서 갈 수 있다니!

“제가요? 아님, 지화자 씨가요?”

“당연히 유은영 씨가 나를 업고 뛰어갈 수 있다는 소리지.”

“장난해요? 그러다 팔 잘못되면 어쩌려고요!”

“그거야 언니 탓이지.”

환장하겠다. 뭐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 다 있는가 싶으면서도 유은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화자 씨가 뻔뻔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자신이 기억하는 한 없었다.

지화자의 싸가지란 것이 존재할 때는 오직 상관인 우종문 부장 앞에서였다.

유은영이 고민하다가 말했다.

“택시라도 부를까요?”

“멀쩡한 차 놔두고 택시 부르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내 차, 센터에서 가장 좋은 차라서 모두 다 알고 있거든?”

“얼마나 좋은데 그래요?”

유은영의 눈에는 길가에 널린 흔한 차로 보이기만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단 다섯 대만 존재하는, 각성자 중에서는 나랑 서이안만 소유 중인 차지.”

지화자가 그러면서 유은영에게 차를 구입할 때 지불한 금액을 소곤거려줬다.

“허업!”

유은영은 놀라 헛숨을 삼켰다.

매번 타고 다니는 차가 그렇게 비싼 차일 줄 몰랐다.

유은영이 벌벌 떨며 물었다.

“대, 대리 기사를 부르는 건 어때요? 컨디션 안 좋다고 운전하기 싫으니까 대리 기사 부르겠다고 하는 건 다들 그렇겠거니 생각할 것 같은데.”

“오, 좋은 생각인데?”

지화자가 현장 파견 부서 전체 회식 자리에 끌려나갈 때마다 부르는 대리 기사가 있다며, 그의 번호를 알려주려고 할 때였다.

“지화자 팀장님.”

유은영에게도, 그리고 지화자에게도 반갑지 않을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쯤이면 공략이 끝났겠거니 하고 찾아왔는데, 시간 맞춰서 잘 찾아온 모양이네요?”

유은영과 꼭닮은 얼굴, 그러나 그녀보다 더욱 부드러운 인상을 지닌 미남자가 싱긋 웃었다.

“그보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봐요? 차가 고장난 것 같은데, 이 시간이면 정비소도 문을 다 닫았을 것 같은데…….”

목소리의 끝을 흐린 미남자가 웃는 낯으로 물었다.

“실례만 안 된다면 제가 모셔도 될까요?”

유은영과 지화자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방긋 웃었다.

“그럼, 유승민 씨. 실례 좀 해도 될까요?”

그렇게 말을 건넨 사람은 ‘지화자’였다.

***

후우, 유승민의 차에 올라탄 유은영과 지화자가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승민이 엑셀을 밟으며 차를 몰았다. 향하는 곳은 센터의 협력 병원.

‘유은영’의 오른팔이 멀쩡하지 않은 곳을 보자마자 자신이 멋대로 정한 목적지였다.

유승민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은영아.”

“왜.”

라고 대답한 사람은 지화자와 유은영이었다. 유승민이 잠시 멈칫했다가 제 동생의 얼굴을 향해 말했다.

“지화자 씨, 저는 당신의 몸에 들어가 있는 제 동생을 부른 거랍니다.”

“아하, 네네, 그러시겠죠.”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유승민은 그 순간 가슴이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지화자의 반응은 유은영이 평소 유승민에게 보이는 것과 똑같았지만, 그에게는 다르게 느껴졌다.

“은영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오빠가 알 필요 없어.”

유은영이 뚱하게 말하고는 쨍한 목소리로 유승민에게 물었다.

“그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오빠가 각성자라니?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했었잖아.”

“각성한지 얼마 안 됐어.”

“거짓말.”

그렇게 말한 사람은 지화자였다.

유은영과 유승민 사이의 대화가 뚝 끊겼다. 유승민이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제 동생의 얼굴을 한 여자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지화자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남매끼리 편하게 이야기 나누세요. 저는 없는 사람처럼 여기고요.”

그게 말처럼 쉽나 싶었지만, 유은영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세계 일주 떠난다고 했던 거, 거짓말이지?”

유승민이 다급하게 말했다.

“거짓말 아니야. 내가 선물까지 사왔잖아. 선물 잘 받았어?”

“이야기 다른 곳으로 돌리지마! 세계 일주 한다는 사람 얼굴이 왜 이렇게 멀쩡해?”

“오빠가 좀 잘났잖아. 원체 안 타는 체질이기도 하고.”

“웃기시네! 어릴 적 부산 해운대에 놀러 갔을 때, 선크림 바르고 놀았어도 엄청 탔던 거 기억하고 있거든?!”

그리고 그때, 가족 중 유일하게 오빠만 태닝이라도 한 것처럼 살을 태웠다면서 유은영이 말했다.

“그러니까 말해. 언제 각성했고, 지금 어디서 일하고 있는지.”

“오빠 지금 백수인데.”

“백수가 저렇게 차려입나? 어디 면접이라도 다녀왔나 보네.”

라고 말하면서 지화자가 남매의 대화에 끼어 들었다. 다시 한번 더 뚝 끊긴 대화에 지화자가 능글맞게 웃으며 아까와 똑같이 말했다.

“아, 죄송. 조용히 입 다물고 있을 테니까 남매끼리 오붓한 시간 보내고 있기를.”

어느새 센터와 협력 관계에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 지화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유승민의 차에서 내렸다.

“언니, 나 알아서 치료받고 올 테니까 유승민 씨와 편하게 이야기 나눠.”

“혼자 치료받을 수 있어요?”

걱정어린 목소리에 지화자가 픽 웃었다.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혼자서 아주 잘 치료받을 수 있어. 걱정말고 유승민 씨와 못다한 이야기나 나누도록 해.”

지화자가 싱긋 웃고는 차에서 내렸다. 유승민은 그대로 차를 몰고 병원을 빠져날까 하다가.

“지화자 씨 두고 집에 갈 생각이라면 나도 내릴 거야.”

아끼는 동생의 경고에 결국, 병원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끼익, 주차를 끝낸 유승민이 동생에게 물었다.

“은영아, 일단 너부터 말해주면 안 될까? 도대체 지화자 팀장님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같이 돌발 게이트에 휘말렸었어. 지화자 씨의 말로는 불완전한 영혼석인가? 그것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다는데 자세한 이유는 우리도 몰라.”

그 말에 유승민이 희게 질린 얼굴로 질문을 건넸다.

“서로, 원래대로 돌아올 수는 있는 거지? 응?”

“그렇겠지.”

유은영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지화자 씨도 그랬고, 나도 그렇게 믿고 있고.”

“믿는 거로 끝나면 안 돼.”

유승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불완전한 영혼석이라고 했지? 오빠가 한번 알아볼게.”

“오빠가 무슨 수로? 백수라며?”

유은영이 뾰족하게 물었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던 유승민이 결국 말했다.

“오빠 사실 청와대에서 일해.”

“청와대?”

유은영이 놀란 눈을 떴다.

“청와대에서 오빠가 무슨 할 일이 있다고?!”

“그냥, 이것저것.”

유승민이 어물쩍 넘기면서 말을 이었다.

“너무 걱정하지마.”

“누가 걱정을 했다고 그래? 엄마는 알아?”

“당연히 모르지. 아직도 내가 세계 여행 중인 줄 알걸?”

“그래? 그렇단 말이지?”

유은영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오빠.”

유승민의 멱살을 잡았다.

“으, 은영아?”

“도대체 어떤 성언을 부여 받았고, 도대체 언제부터 청와대에서 일하고 왔던 건지는 묻지 않을게. 하지만!”

유은영이 유승민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경고를 날렸다.

“나랑 지화자 씨의 몸이 바뀐 거, 어디에서 함부로 떠들고 다니면 죽을 줄 알아. 알겠어?!”

“은영아, 너는 오빠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니? 내가 그런 걸 함부로 떠들고 다닐 사람처럼 보여?”

“오빠 입 가볍잖아!”

“그거야, 어릴 적에 그랬던 거고! 오빠도 사회인이야, 사회인! 바깥에서 입을 얼마나 조심해야하는지 얼마나 잘 알고 있는데!”

“그래도 못 믿어!”

유은영이 그렇게 유승민과 티격태격 거릴 때, 두 사람은 몰랐다.

유승민의 자동차가 유리창이 훤히 보이는, 보안이라고는 전혀 안 되는 차라는 것도.

그리고.

“오, 이거 특종감인데?”

지화자의 명성을 허무맹랑하게 치부한 어느 언론사의 신인 기자가 유승민과 ‘지화자’가 투닥거리면서 싸우는 모습을.

찰칵!

찍은 것도 말이다.

두 사람은, 다음 날.

[특종] 지화자에게도 꽃이 폈다?!

“푸훕! 쿨럭, 컥, 크흡!”

지화자가 일상처럼 아침 뉴스를 확인할 때까지도 무슨 일이 터질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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