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타앗-!
유은영은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하태균이 그보다 앞서 몬스터들을 처리해주고 있어 수월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팀장님! 유은영 씨가 이 앞에 있는 게 확실해요?!”
“아마도요!”
“몬스터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잖아요. 왜겠어요?”
지킬 것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게 아니라면 게이트 내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가 저 앞에 있기 때문이겠지.’
유은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봉을 휘둘렀다.
후웅―!
불이 아닌 바람이 강하게 몬스터들을 향해 들이닥쳤다.
―우끼긱! 우끼!
―우끼익!
몬스터들이 요란하게 비명을 내지르며 날아갔다.
“궁금한 게 생겼는데요.”
“이 상황에서요?”
가하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물었다. 유은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저 몬스터들, 도대체 이름이 뭘까요?”
“글쎄요, A-Index에 기록되어 있는 녀석들은 아니에요.”
“그럼 우리가 이름 붙여 주자!”
리아가 몬스터들을 향해 거미줄을 펼치며 말했다. 그 말에 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우리가 처음 발견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이름을 붙여줘요! 어때요?”
“어떻기는.”
절대로 안 된다고, 가하성이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좋네요.”
유은영이 선수 쳤다.
가하성이 진심이냐는 듯 유은영을 쳐다봤다. 유은영은 그 시선에 어깨를 으쓱였다.
“평범한 원숭이는 아닌 것 같으니까 이렇게 붙이면 어떨까요? ‘광기어린 원숭이’라고요.”
“너무 평범한데요?”
“맞아요, 너무 평범해!”
라이와 리아가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떠들었다. 물론, 유은영도 두 사람의 대화에 함께였다.
“저기, 팀장님? 길을 뚫었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하태균의 말에 유은영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계속 가야죠! 저 앞에 유은영 씨가 계실 테니까요! 리아 씨, 라이 씨. 몬스터들 이름 짓는 건 나중에 하도록 해요!”
“응!”
“네!”
리아와 라이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렇게 유은영이 빠른 속도로 움직일 때였다.
“우왓!”
제 몸집보다 조금 큰 것이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든 유은영이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지 팀장님!”
가하성과 하태균이 놀라 그녀를 불렀다.
“지화자 누님! 괜찮으세요?!”
“지화자야, 괜찮아?!”
라이와 리아는 단숨에 그녀에게 달려왔다. 유은영은 괜찮다는 듯 두 사람에게 환하게 웃어주고는 제 품에 안긴 여자를 살폈다.
“지, 아니. 유은영 씨?”
“안녕하세요, 지화자 팀장님. 이렇게 만나네요.”
지화자가 한 손으로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태연하게 말했다. 그녀와 달리 유은영은 잔뜩 당황한 얼굴이었다.
“뭐, 뭐에요? 어디에서 날아온 거예요?”
“죄송하지만 질문은 나중에 해 주시겠어요? 부러진 팔이 조금 아파서요.”
“네?”
유은영이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그녀의 오른팔을 보고는 빼액 소리 질렀다.
“헉! 팔 부러졌잖아요! 어, 어떻게 해! 힐! 힐 해요!”
“지화자 팀장님, 제 등급이 어떻게 되는지 잊으셨나 보네요.”
유은영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안마밖에 없는 폐급 힐러였다.
유은영이 입술 안쪽을 꾹 깨물며 자괴감 어린 표정을 보였다. 그에 지화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 저는 괜찮습니다.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여기서 상태가 악화되거나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요.”
“네? 그게 가능해요?”
지화자의 오른쪽 팔은 완전히 꺾인 상태였다. 그런데도 지화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가능하죠.”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희게 질려 있는 남매에게 말했다.
“라이, 리아. 둘 중 아무나 실 좀 뿜어서 내 팔을 고정시켜줄래? 이 부목에 말이야.”
“응? 아, 응! 내가 할게!”
리아가 거미줄을 뿜어 ‘유은영’의 부러진 팔을 단단하게 고정했다.
유은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다고 괜찮아져요?”
“괜찮아질 리가 없잖아요?”
지화자가 키득거리며 그리 말하고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프지는 않아요. 또한, 말했듯 여기서 상태가 더 악화되지도 않을 거고요.”
거짓말일 거다.
팔이 바깥으로 완전히 꺾인 상태였는데 아프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화자는 정말 꺾인 팔이 아프지 않았다.
F급에서 E급,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힐(Heal) 능력 때문이었다.
‘계속 폐급이었으면 꼴사납게 비명이라도 지를 뻔했네.’
지화자는 호기롭게 B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나 다름없는 훔바바에게 맞섰고, 보기 좋게 공격당했다.
기세 좋게 나섰다고 해도 폐급이나 다름없는 몸뚱이, ‘유은영’의 몸이 B급의 보스 몬스터에 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결과가 부러진 팔이었다.
‘팔만 부러져서 다행이네.’
팔뿐만이 아니라 다리, 그것도 아니면 갈비뼈라거나 다른 곳이 한 군데 더 부러졌다면 고생 좀 했을 거다.
E급으로 업그레이드 된 능력은 한 부위만 집중적으로 치료를 할 수 있었으니.
‘뭐, 치료라고 할 것도 없지.’
말 그대로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게 고작인 힘이었다.
그래도 안마만 할 줄 알던 폐급 시기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룬 셈.
지화자는 현재의 ‘유은영’에게 만족하기로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예요?”
“빨리도 물어보시네요.”
지화자가 손가락을 들었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한 마리의 오랑우탄같은 몬스터가 콧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저 녀석 때문에 이렇게 됐어요. 적당히 상대 좀 해보면서 달아나려고 했는데 결과는 보시다시피 실패했죠.”
“달아나려고 했다니요? 붙잡혀 있기라도 했다는 거예요?”
“네.”
지화자의 담담한 대답에 유은영이 까드득 이를 갈았다.
“그리고 탈출을 감행했고요?”
“네.”
지화자가 왜 자꾸 물어보냐는 듯 유은영을 쳐다봤다. 그에 유은영이 잔뜩 성난 얼굴로 말했다.
“유은영 씨, 당신 몸이 얼마나 연약한지 아세요?! 폐급이라고요, 폐급! 남들 다 무시하는 F급!”
유은영이 악에 받쳐 소리를 내질렀다.
“저희를 기다렸어야죠!”
지화자는 멍하니 입술을 벌렸다가 곧 짜증스럽게 얼굴을 구겼다.
“당신들이 언제 올 줄 알고요?”
“이 게이트를 공략하기 전에는 유은영 씨를 찾아냈을 거예요! 그리고 구했겠죠!”
유은영이 답답하다는 듯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말했다.
“라이, 리아. 유은영 씨 좀 부탁할게요.”
“네!”
라이와 리아가 힘차게 대답했다.
“유은영 씨는 게이트 공략이 끝난 후 저 좀 보죠. 물론, 부상을 치료한 후에요.”
유은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척! 무기를 고쳐 쥐었다.
“가하성 씨, 하태균 씨. 서포트 부탁드립니다.”
하태균이 기껏 뚫어났던 길이 다시 몬스터로 막혀버렸다.
“팀장님께서 서포트를 부탁하신다니, 새삼스러운 말이네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서포트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 망할 원숭이들이 팀장님을 방해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가하성과 하태균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며 서로 다른 어투로 말했다.
유은영은 비아냥거림이 섞인 가하성의 말은 무시하고 하태균의 목소리에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네, 좋아요.”
유은영이 몸을 한껏 웅크리고는 땅을 박차 날아올랐다.
“부탁할게요.”
가하성과 하태균에게 마지막으로 그 말을 남기면서 말이다.
***
하늘 위로 붕 뜬 유은영은 허공을 박찼다. 본능에 맡긴 움직임이었다.
그녀는 곧장 ‘유은영’을 붙잡아 그녀의 팔을 부러뜨린 몬스터를 향해 화살처럼 날아갔다.
쐐액,
허공을 가르며 몬스터의 앞에 당도한 유은영이 쥐고 있던 봉을 휘둘렀다.
화르륵―!
불길이 타오르며 거대한 몸집의 몬스터를 집어삼켰으나.
―새로운… 인간이 왔군…….
그것은 꿈쩍도 않고 입을 열었다. 그에 유은영이 놀란 눈을 보였다.
‘말을 해?’
몬스터 중에서 말을 하는 개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오직 드래곤과 같은 용족뿐. 그 외의 몬스터가 말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시나리오 게이트처럼 어떠한 종족이라면 몰라도.’
용족이 아닌 몬스터가 사람의 말을 구사하다니! 놀랄 일이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눈앞의 보스 몬스터로 추정되는 녀석을 처치하는 것.
유은영은 먼저 빠르게 A-Index를 통해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하고자 했다.
다행히도 기록이 있었다.
Name: 훔바바
Type: unknown
Class: B급
-서울 관악구 관악로 1번지 S대학교 도서관에 생성된 B급 게이트에서 출현한 몬스터.
-게이트의 최종 보스 몬스터로 생각됨.
-게이트의 핵을 소유 및 지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됨.
지화자가 눈앞의 몬스터에게 붙잡혀 있었다고 했으니, 그녀가 남긴 기록일 터.
“훔바바라.”
이름 한번 특이하네.
‘생긴 건 오랑우탄이면서.’
물론, 오랑우탄이라고 부르기에는 생김새가 꽤나 달랐지마는.
유은영은 따로 몬스터에게 말을 건네거나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대신.
타앗-!
빠르게 땅을 박차 무기를 휘둘렀다. 훔바바가 유은영의 공격을 막으려 들었으나 그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훔바바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몸집은 조금 전에 내던졌던 여자보다 훨씬 더 작으면서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니!
더욱이 이번 인간도 자신을 두려워하거나 겁에 질려 벌벌 떨거나 그러지 않았다.
‘이상하군… 이상해…….’
흐릿한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검은 머리칼의 여자는 분명 말했다.
자신들의 존재는 인간들에게 있어 두려움, 그 자체라고. 자신들을 보며 벌벌 떨기 바쁠 거라면서.
여자는 듣기 좋은 목소리로 속삭였었다.
그런데 눈앞의 여자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크윽……!
훔바바가 몸의 균형을 가까스로 잡고는 날카로운 손톱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그러나 그것은 허공을 베었다.
훔바바가 사라진 여자의 모습에 두 눈을 뜨는 찰나.
“안녕하세요?”
그의 거대한 손톱 위에 올라선 유은영이 싱긋 웃고는 그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고작… 인간 따위가……!
훔바바가 자신의 몸을 타고 올라오는 유은영을 어떻게든 떼어내려고 했지만.
―크으윽……!
오히려 그녀가 휘두르는 알 수 없는 모기에 상처만 입었다.
그렇게 유은영이 훔바바의 어깨 위에 도달해 몸을 살짝 뒤로 물려 가지고 있던 봉을 그의 목을 향해 휘둘렀을 때.
“어랏……?”
훔바바가 사라졌다.
허공을 휘저어버린 유은영은 두 눈을 멍하니 떴다가 가볍게 땅에 착지했다.
그러고 보니 주변이 이상했다.
“유은영 씨! 라이 씨, 리아 씨! 하태균 씨, 가하성 씨! 제 목소리 들려요?!”
분명 자신의 근처에 있어야 할 0팀의 팀원들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유은영은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고개를 들었다.
【02:03:31】
2시간 남짓 남은 시간.
유은영은 일격을 노리는 순간 사라졌던 훔바바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이래서 제한 시간이 3시간이니 뭐니 했구나!’
훔바바는 위기의 순간, 제 몸을 숨길 수 있는 몬스터였다. 그것도 지형지물을 바꾸면서.
‘이런 빌어먹을 오랑우탄!’
사람 귀찮게 하는 데는 누구처럼 도가 텄다면서 유은영이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