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지화자는 순간 그렇게 물어보려 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타잔은 무슨 타잔이야.’
설사, 그런 이름으로 몬스터의 정보가 기입되어 있어도 자신이 고치고 말 거다.
기술 관리 부서를 뒤집어엎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어쨌거나 지화자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몬스터가 입을 열며 자신을 소개했다.
―‘훔바바’다…….
“훔바바?”
지화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A-Index에 ‘훔바바’에 관한 정보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암만 바깥 세계와 차단됐다고 해도 A-Index의 기능은 일부 이용할 수 있었다.
‘나중에 보고서 쓸 때 고생 좀 하겠네.’
자신이 아니라 유은영이 말이다.
새로운 몬스터의 출현, 더욱이 게이트의 생태 환경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생성된 게이트는 언제나 동굴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지금은 드넓은 밀림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이것저것 조사할 게 많을 터.
‘우종문 부장한테 보고 올릴 때 어떻게 할련지.’
지화자가 보고서를 정리하고 또 보고하느라 쩔쩔맬 유은영의 모습을 떠올리며 픽 웃었다.
자신의 일이었다면 절로 어깨가 추욱 늘어졌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유은영의 일이지 않나?
그렇기에 지화자는 입가에 미소를 환하게 걸쳤다.
B급 게이트의 핵을 보호하고 있는 훔바바가 그런 그녀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 시선에 지화자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뭘 봐?”
―너는… 이상한 인간이구나…….
“내가?”
―그래…….
훔바바가 붉은 눈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며 말했다.
―인간은… 보통 이 상황에…….
“두려워하면서 떨지 않느냐고?”
지화자가 몬스터의 말을 끊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보통 인간이 아니거든. 그보다 우리 훔바바 씨.”
하지만 지화자의 입가에 걸쳐져 있던 웃음은 곧장 사라졌다.
“그런데 너, ‘인간’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는 거냐?”
날 선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두 눈이 눈앞의 몬스터를 샅샅이 훑었다.
훔바바는 아무 말 없이 지화자를 바라봤다.
***
“흐어억!”
유은영이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원숭이 형태의 몬스터들이 던지는 온갖 것들을 피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하고 있는 가하성에게 말을 걸었다.
“있잖아요, 가하성 씨. 제 꿈이 태국의 원숭이 언덕에 여행을 가는 거였거든요?”
“그곳에는 왜요?”
“원숭이들이 관광객 음식이나 뭐 이것저것을 채간다는 데 그런 걸 경험해보고 싶어서요.”
“지 팀장님께서 그런 꿈을 가지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하여튼 그래서요?”
“그 꿈, 이제 접으려고요.”
유은영이 처억, 꺼내든 무기를 몬스터 무리를 향해 내던지며 쨍하게 소리 질렀다.
“이 빌어먹을 원숭이들! 이제 그만 좀 사라져라, 제발!”
그 외침과 함께 화르륵, 불길이 일었다.
―우끼긱! 우끽!
―우끼기이!!
불길에 휩싸인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리고 그건 유은영 옆에 있던 가하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으악! 지 팀장님! 화력 좀 조절하세요! 이러다 저도 타겠어요!”
“아, 죄송해요.”
유은영이 멋쩍게 웃었다.
지화자의 힘을 사용하는 데 암만 능숙해졌다고 하나 아직 조절을 잘 못 하는 유은영이었다.
가하성이 흩날리는 재를 손으로 휘휘 치워버리며 말했다.
“어쨌거나 근방의 몬스터들은 다 해치운 것 같은데 이제 어쩌죠? 다른 팀원들을 찾아볼까요?”
“일단, 그러는 게 좋겠네요.”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쿵! 대지가 크게 흔들렸다.
“저쪽으로 가볼까요? 하태균 씨께서 싸우고 계시는 것 같은데.”
“동감이에요.”
가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에 유은영은 남몰래 웃었다.
0팀 내에서 가장 사이가 멀다고 생각했던 가하성과 이번 공략을 계기로 한층 가까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오직 유은영의 바람일 뿐이었다.
어쨌거나 도착한 곳에서.
“우와! 태균 형님, 멋져요!”
“맞아, 멋져!”
라이와 리아가 쏟아지는 핏빛 빗줄기에 손뼉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으랏차!!”
후두둑,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는 몬스터들을 보며 유은영이 구역질을 참았다.
허공에서 흩날리고 있는 몬스터의 사체들이라니.
‘이렇게 끔찍할 수가!’
더욱이 라이와 리아에게 있어서는 보기 좋지 않은 광경이었다.
자고로 아이들은 예쁘고 좋은 것만 보고 자라야 한다는 게 유은영의 지론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하태균을 향해 빼액 소리 질렀다.
“하태균 씨, 그만!”
그 말에 하태균이 거짓말처럼 뚝 멈춰 섰다. 원숭이 형태의 몬스터를 손에 붙잡은 채로 말이다.
유은영은 그대로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거, 내려놓으세요.”
“넵, 팀장님!”
하태균이 손에 쥐고 있던 몬스터를 바닥에 내려줬다. 유은영은 핏물로 범벅이 된 그의 손을 무시하며 힘을 사용했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길에 몬스터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유은영은 최대한 그것의 고통을 줄여주고자 봉을 휘둘러 목을 꺾어 버렸다.
“진작 목을 꺾어버리지 그랬어요? 왜 불을 붙였나 몰라.”
“아, 그건… 얼떨결에…….”
습관적으로 붙이고 만 불이었다.
유은영이 머쓱하게 뺨을 긁적일 때, 가하성은 하태균에게 다가가 그를 살폈다.
“다친 곳 없으세요?”
“그래, 없다. 하성이 너는?”
“저야 무사하죠. 팀장님과 함께 떨어진 덕분에요.”
가하성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에 라이와 리아가 물었다.
“하성 형님, 우리는 괜찮냐고 안 물어봐요?”
“맞아, 안 물어봐?”
아이들의 질문에 가하성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봐도 괜찮아 보이는데, 굳이 물어봐야겠어?”
“응!”
라이와 리아가 동시에 대답했다.
가하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라이와 리아도 제 눈에는 ‘아이들’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크게 보였지만.
‘애는 애인가?’
그리 생각하면서 가하성은 투박하게 라이와 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너희는 괜찮냐?”
“괜찮아요!”
“맞아, 괜찮아!”
괜찮을 줄 알았다.
가하성은 쯧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유은영 씨는요? 분명 하성 형님이랑 같이 있는 줄 알았는데요.”
“우리는 팀장님과 함께 계실 줄 알았는데?”
모두의 시선이 유은영에게로 향했다. 자신을 향해 몰리는 모두의 눈빛에 유은영이 두 손을 들었다.
“저는 몰라요. 떨어질 때부터 가하성 씨와 쭉 함께였거든요. 그렇죠, 가하성 씨?”
“네? 뭐, 그렇기는 하지만요.”
“그럼, 지금 유은영 씨 혼자 이곳에 떨어져 있다는 말입니까?”
쏴아아―!
바람이 불며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가 시끄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은영’을 제외한 모두가 꿀꺽 침을 삼켰다.
“설마, 유은영 누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에이, 그건 아닐 거예요!”
유은영이 황급히 말했다.
“하지만 팀장님, 유은영 씨께서는 F급 힐러이지 않습니까?”
“맞아요! 은영 누님이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다고 그래요?”
라이가 던진 질문에 유은영이 말했다.
“기가 막히게 안마해주기?”
라이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 기가 막힌 안마 실력을 손수 맛본 가하성은 헛기침을 터트렸다.
“어쨌든 지금 유은영 씨 혼자 이 정글을 헤매고 있다는 거네요?”
가하성의 말에 하태균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 팀장님.”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기가 막힌 안마뿐인 F급 힐러의 몸뚱이에 들어가 있는 지화자.
사실, 그녀는 맨몸이 아니었다.
대 몬스터 용 특수 총이라거나, 그런 자잘한 무기를 챙긴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정글이 그녀에게 위험한 건 변치 않는 사실.
‘빨리 찾아야 해.’
유은영이 초조함 가득한 얼굴로 주변에서 가장 높게 선 나무 위로 올라갔다.
보이는 거라고는 푸른 잎사귀로 가득한 나무뿐이었다.
“팀장님, 뭐가 보여요?”
가하성이 심드렁하게 던진 질문에 유은영이 고개를 저었다. 대신 그녀는 힘껏 숨을 들이마신 후.
“유은영 씨! 어디 계세요!!”
우렁차게 목소리를 냈다.
정글 속, 온 몬스터가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
“유은영 씨! 어디 계세요!!”
유은영의 간절한 외침은 지화자에게까지 닿았다. 하지만 지화자는 그녀의 목소리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저 미친 언니 같으니라고.’
원래 몬스터란 이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소리나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곳으로 몰려드는 특징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유은영이 정글 속의 모든 몬스터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어그로를 끌어버리고 말았다.
“후우, 진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고 칭찬했던 것 같은데 취소다.
그렇게 지화자가 나무줄기로 엮인 감옥 안에서 한숨을 푹 내쉴 때였다.
―유은영…….
게이트의 핵을 지키고 있는 몸집 큰 몬스터, 훔바바가 입을 열었다.
―너의… 이름이냐……?
“글쎄, 잘 모르겠는걸?”
지화자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훔바바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한껏 미간을 좁혔다.
지화자는 그 얼굴이 참 못생겼다고 생각하면서도 말했다.
“내 질문에 대답해주면 말해줄게, 내 이름.”
훔바바는 아직 지화자가 던진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인간’에 대해 어떻게 아느냐는 그녀의 질문에 말이다.
훔바바는 물끄러미 지화자를 보다 고개를 돌렸다.
―인간의 이름 따위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아이고, 그러세요?”
그것참 어련하시겠다면서 지화자가 비아냥거렸다. 훔바바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인간이… 가르쳐줬다…….
“뭐?”
―인간은… 우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존재들이라고…….
훔바바가 물끄러미 지화자를 보며 말했다.
―인간이 가르쳐줬다.
명확하고, 단호한 목소리.
지화자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가 그에게 물었다.
“그 인간이 누구인데?”
―모른다…….
훔바바가 고개를 저었다.
―이름도, 얼굴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서 훔바바는 덧붙여 말했다.
―그 인간은… 너와 같은 암컷이었다…….
암컷이라니.
지화자가 훔바바의 말본새에 픽 웃고는 말했다.
“역시, 너는 짐승 맞다니까?”
놀리듯,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훔바바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
다른 평범한 인간이라면, 아니. 웬만한 각성자라도 흠칫거릴 살기 어린 눈빛이었지만 지화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있는 소란에 집중했다. 쿵, 쿵! 땅이 울리는 소리. 그리고 몬스터들이 지르고 있는 비명.
‘오고 있나 보네.’
정확히 0팀의 모두가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지화자는 씨익 웃고는 숨겨뒀던 나이프로 투둑, 줄기로 얽혀져 있던 감옥을 끊어냈다.
훔바바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어떡해……!
“풀었냐고?”
지화자가 센터에서 특수 제작된 나이프를 고쳐 잡았다.
“내가 말했잖아.”
그녀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 씨익 웃었다.
“나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