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52화 (52/200)

제52화

‘지화자’라면 눈앞의 하태균을 죽였을까? 자신과 함께 움직였던 0팀의 동료를, 하태균을.

‘지화자 씨였다면…….’

아니, 생각하지 말자.

지금 ‘지화자’는 바로 자신이 아닌가? 3팀과 4팀과 함께 C급 게이트를 공략하러 들어간 그녀를 떠올릴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까 유은영은 하태균 앞에 당당히 서기로 했다.

“하태균 씨.”

하태균의 주먹이 유은영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콰광-!

건물이 무너지며 튄 파편이 유은영의 뺨을 스쳤다.

“지화자 누님!”

“지화자야!”

라이와 리아가 당장에라도 뛰어들 듯 굴었다. 그런 둘을 유은영이 막았다

“라이, 리아. 두 사람은 움직이지 마세요. 서이안 씨.”

긴장하고 있던 서이안이 말하라는 듯 ‘지화자’를 쳐다봤다.

유은영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팀원들 좀 부탁할게요.”

“답지않게 또 왜 존댓말이야?”

그러면서 라이와 리아가 꼼짝도 못하게 하는 서이안이었다. 두 사람이 암만 놓으라고 해도 서이안은 아이들을 힘으로 제압했따.

유은영은 고맙다는 듯 미소를 그려주고는 하태균을 보았다. 높게 치켜든 그의 주먹이 보였다.

콰앙-!

유은영의 바로 옆, 주먹에 내리꽂힌 자리가 움푹 패였다. 웬만한 각성자라면 그 힘 앞에서 벌벌 떨었을 거다.

그러나 유은영은 아니었다.

“하태균 씨, 계속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죠? 저희 0팀에 소속된 이후로도요.”

이성을 잃은 하태균에게는 들리지 않을 목소리였다.

“그리고 나하진 씨도 그렇겠죠.”

나하진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곧, 그녀는 웃음을 터트리며 비아냥거렸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저를 하태균 씨와 동급 취급하지 마시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태균이 유은영을 향해 다리를 치켜들었다. 유은영이 가까스로 무기를 들어 그를 막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하진이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

“저딴 살인자랑 나를 동급으로 취급하지 말란 말이야!”

유은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냈다.

“나하진 씨.”

흠칫, 불린 이름에 나하진이 몸을 떨었다. ‘지화자’가 내뱉은 목소리에 공기가 울린듯한 감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은영은 두 눈을 선명하게 빛내며 말했다.

“저는 아무도 죽게 만들지 않을 거예요. 당신도.”

그리고.

“나의 팀원인 하태균 씨도요.”

유은영이 막고 있던 하태균의 발을 가볍게 밀어 쳐냈다. 하태균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러나 이성을 잃은 그가 몸이 무너진다고 해서 그녀를 공격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태균은 빠른 속도로 주먹을 내뻗었다. 유은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피한다고 피했건만 팔 한쪽이 으스러졌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지화자 씨의 보조 특성을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지화자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보조 특성 중, 하나.

인내(忍耐).

그리고 남은 두 가지 보조 특성은 견고와 예리한 감각.

유은영이 그녀의 보조 특성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웬만한 공격에는 반응할 수 있을 거고, 웬만한 부상을 입어도 참고 싸울 수 있을 거야.”

그 말대로였다. 한쪽 팔이 으스러졌다고 해도 유은영은 하태균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었다.

유은영이 하태균의 손에 콱 봉을 눌렀다. 하태균이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무기를 부수고자 들었다.

하지만 ‘지화자’는 하태균의 힘으로 부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하태균이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유은영은 이를 악물었다. 하태균의 손바닥에 구멍이 뚫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제압해야 했다.

“뭐 하는 거야! 죽여! 우리 지하 씨한테 그랬던 것처럼 네 눈앞의 사람을 죽여버리라고!!”

나하진은 입가에서 피를 줄줄 토해내며 소리 질렀다. 마찬가지로 하태균에게는 들리지 않을 목소리였다.

유은영이 제압하고 있는 하태균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하태균 씨.”

그러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미소를 그렸다.

“동료들, 찾아간 적 있어요?”

초점이 없던 하태균의 두 눈이 일순 선명해졌다.

“어… 없…….”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주르륵, 눈물이 남자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유은영은 그에 싱긋 웃었다.

“나중에 저랑 같이 찾아가 봐요. 알겠죠?”

하태균은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곧.

“커헉……!”

명치에 가해지는 압력에 그는 피를 토해내고는 정신을 잃었다.

“후우.”

하태균의 명치 부근을 있는 힘껏 짓밟은 유은영이 고개를 돌렸다.

“나하진 씨.”

“쿨럭, 크, 크흐흑.”

나하진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흐느끼며 웃었다.

“당신이 암만 랭킹 1위의 S급 각성자라고 해도 하태균 씨의 힘을 폭주시키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나하진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미소를 그렸다.

“제가 너무 어리석었나 봐요.”

“원래 복수에 눈먼 사람들은 다들 어리석어진다고들 하죠.”

“그런 적이 있나 봐요?”

유은영이 하태균의 손을 찍어 누르고 있던 무기를 거두고선 웃는 낯으로 말했다.

“아니요, 들은 이야기에요. 알고 있는 오랑우탄한테서.”

“오랑우탄……?”

“그런 사람이 있어요. 나하진 씨는 몰라도 되는 사람이에요.”

“그렇겠죠.”

나하진이 피식 웃었다.

“저는 곧 죽을 테니까요.”

“나하진 씨, 제 말을 잊으신 것 같네요.”

성큼성큼 나하진의 앞에 다다른 유은영이 한쪽 무릎을 굽히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아무도 죽게 만들지 않을 겁니다.”

진심 어린 목소리였다.

나하진은 금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리다가 픽 웃었다.

“지화자 씨, 제가 무슨 성언(聖言)을 받았을 것 같나요?”

“글쎄요, A-Index에 기록되어 있는 정보를 열람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소용없을걸요?”

나하진이 눈앞의 여자를 조롱하듯 입을 열었다.

“저는 아무런 성언도 부여받지 않은 몸이거든요.”

“네……?”

그럴 리가! 유은영이 놀란 눈을 보이는 사이, 나하진은 두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숙인 채로 말이다.

“크흐, 흐흐흑.”

애처로우면서도 애달프고, 또한 분노와 증오가 뒤섞인 웃음소리였다.

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태균을 쳐다봤다.

자신의 소중한 연인을 앗아간 주제에 어떠한 벌도 받지 않고 센터에 소속된 남자.

“지화자 씨, 마지막으로 한마디 할게요.”

나하진의 시선이 유은영에게로 향했다.

“저를 죽게 만들지 않을 거라고 했죠? 소용없을 거예요, 그거.”

쿨럭, 나히진이 피를 토해냈다. 그것을 끝으로 그녀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나하진 씨?”

유은영이 기울어지던 여자의 몸을 황급히 붙잡아 흔들었다.

“나하진 씨! 정신 차려봐요!”

그러나 그녀의 두 눈은 이미 풀린 채, 머나먼 곳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나하진 씨!!”

“그만.”

어깨에 닿은 손에 유은영이 숨을 들이켜 마셨다. 서이안이 유은영의 어깨를 꽉 쥐고는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시체 훼손시킬 생각 아니라면 그 여자 그만 흔들어.”

그 말에 유은영은 정신을 차렸다. 품에 안긴 여자의 몸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죽음.

제품에서 나하진이 맞이한 것에 유은영의 두 눈이 잘게 떨렸다.

“내가 죽인 거야?”

내뱉은 목소리 역시 마찬가지.

묻는 말에 서이안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그럴 리가 없잖아.”

서이안은 ‘지화자’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죽음에 이렇게 예민하던 여자였나?

‘아니었지.’

절대로 아니었다. 오히려 숱한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 해도 무감각할 사람이 바로 지화자였다.

그런데 이렇게 충격을 받은 모습이라니?

서이안은 ‘지화자’를 물끄러미 보다 물었다.

“그보다 괜찮냐?”

유은영이 입술을 꾹 깨물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보다시피.”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는데?”

오른쪽 팔이 엉망진창이었다.

유은영이 하태균에 의해 입은 상처를 한 번 눈에 담고는 느릿하게 목소리를 냈다.

“…알면 힐러 좀 빨리 불러. 불러 달라고 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안 와?”

“야, 지금 새벽인 거 몰라서 그래? 안 그래도 재촉했으니까 곧 올 거야!”

서이안이 짜증스레 말했다.

조금 전에는 ‘지화자’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더니, 이제는 또 평소와 다름없는 그녀였다.

‘다중인격도 아니고.’

서이안은 괜히 짜증을 냈다.

“아오, 진짜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세상 귀한 힐러라고 내가 봐줄 줄 아나?”

“안 그래도 지금 왔습니다.”

유은영과 서이안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어… 그, 유, 유은영 씨……?”

“네, 지화자 씨.”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서이안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뭐, 뭐야. 폐급 힐러가 왜 여기서 나와?”

“제가 이 상황에서 나오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아니, 그건 아닌데.”

힐러를 원하기는 했지만, F급의 힐러는 원하지 않았던 서이안이었다. 그가 원했든 그러지 않았든 지화자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중얼거렸다.

“치료할 환자들이 많네요.”

“잠깐! 서도운은 건드리지 마! 걔는 우리 측 힐러가 치료할 거야!”

“걱정하지 마시죠. 서이안 길드장님의 길드원을 건드릴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으니까요.”

지화자가 비딱하게 웃었다. 유은영은 그에 애매하게 웃으며 그녀를 불렀다.

“저, 유은영 씨?”

“네, 지화자 팀장님.”

“그… 게이트는……?”

“진작 공략하고 왔죠. 생각보다 몬스터의 개체 수가 많아서 다들 고생 좀 했지만요.”

“가하성 씨는요?”

“퇴근했죠.”

“그런데 유은영 씨께서는 왜 퇴근하지 않으시고.”

“이쪽으로 왔냐고요?”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화자는 눈웃음을 짓고는 고개 숙여 그녀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내가 왜 온 것 같아, 언니?”

살벌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유은영은 꿀꺽 침을 삼켰다.

지화자는 가라앉은 눈으로 제 몸에 난 상처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유은영 씨가 그랬던 것 같은데. 이 몸은 언니의 몸이니 소중하게 여겨 달라고.”

“하, 하하, 제가 그랬나요?”

“응, 그랬어. 그런데…….”

지화자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내 몸은 왜 이 지랄이 났지?”

유은영은 조용히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녀를 구원한 건 다름이 아니라 서이안이었다.

“야, 폐급 힐러. 지화자 그대로 둬. 우리 측 힐러가 금방 도착한다고 하니까…….”

“괜찮습니다.”

지화자가 단호하게 서이안의 말을 끊었다.

“제가 암만 폐급 힐러라고 해도 뼈 하나 못 맞출까봐요?”

“어, 저기, 잠깐, 지화, 아니. 유은영 씨?”

이거 단순히 뼈 부러진 게 아닌데요?!

하지만 유은영이 지화자에게 무엇이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움직였다.

우드득, 살벌한 소리가 조용해진 일대를 울렸다.

“아윽!”

유은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절로 신음이 나올 정도로 격한 고통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지화자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보조 특성이 무력해질 정도로 아주 큰 고통이 말이다.

그에 지화자가 놀란 눈으로 유은영에게 물었다.

“뭐야, 단순히 뼈 부러진 거 아니었어요?”

“그런 거라면 제가 알아서 맞췄겠죠!”

유은영이 우는 소리를 내고는 멍한 얼굴의 남자에게 물었다.

“서이안, 너희 측 힐러 언제 도착해? 서도운 씨 말고도 나랑 하태균 씨 좀 봐줄 수 있을까?”

“어? 어어, 뭐, 당연하지.”

서이안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은영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지화자에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읊조렸다.

“지화자 씨, 제가 당신 몸 소중하게 다루지 않은 거 정말 죄송한데요.”

유은영이 울상을 지었다.

“이거 지화자 씨 몸인 걸 제발 잊지 말아줄래요? 이러다 이쪽 팔 영영 못 쓰면 어떻게 하려고 그런 거예요!”

“도대체 얼마나 다쳤는데 그래?”

“말해줘요?”

“응.”

“오른쪽 어깨에서 손까지, 모든 뼈가 으스러졌어요. 됐나요?”

“오…….”

지화자가 입술을 오므렸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멀쩡해 보이는데? 언니, 괜히 꾀병부리는 거 아니지?”

그게 아니란 걸, 지화자는 스콜피언 측의 힐러가 도착한 뒤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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