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51화 (51/200)

제51화

“하태균 씨! 괜찮습니까?!”

“괜… 찮습니다…….”

옆구리를 깊게 찔린 하태균이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서도운은 잔뜩 당황한 얼굴이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힘조절이 안 돼서.”

“하하, 그럴 수도 있죠. 그보다 계속 합시다.”

연극은 계속돼야 했다.

나하진, ‘선지자’라는 그녀가 올 때까지 마리다. 서도운이 답지 않게 긴장한 얼굴로 앞서 말했다.

“이번에는 왼쪽을 찌르도록 하겠습니다. 실수하지 않을 테니.”

조심하라는 말을, 서도운은 내뱉지 못했다.

“이런……!”

그러기도 전에 하태균을 다시 한 번 더 찔러버렸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더욱 깊은 상처가 그의 몸에 새겨졌다.

―서도운! 무슨 일이야?!

“길드장님, 이상합니다! 힘이 제 의지를 벗어난 것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아니다.

“하태균 씨! 피하십시오!”

서도운의 몸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태균이 어떻게 할 새도 없이 그의 앞에 당도한 서도운이 일그러진 얼굴로 창을 높이 쳐들었다.

당장에라도 그를 베어버릴 기세에 하태균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피하려면 피할 수 있는 타이밍.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온몸이 굳은 것처럼, 그저 다가오는 창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하태균은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았다.

채앵-!

울린 소리와 함께 서도운의 창을 막아선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 지화자 팀장님.”

서도운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유은영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라이, 리아. 그 여자는?”

서도운을 향한 질문이 아니었다. 라이와 리아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잡았어요!

―그런데 아무런 반항도 안 하는데? 지화자야, 이거 괜찮아?

“글쎄요.”

유은영이 가볍게 서도운의 창을 밀어내고는 싱긋 웃었다. 그녀가 그리는 미소에 서도운이 창을 꽉 쥐며 말했다.

“지, 지화자 팀장님, 저는.”

“알아요, 서도운 씨 잘못 아니란 거. 그러니까 멈추게 해줄게요. 그 전에 하태균 씨, 괜찮으세요?”

“네… 견딜 만합니다…….”

근육으로 이뤄진 단단한 몸이 한몫한 듯, 그는 치명상은 대부분 피한 것 같았다.

“좋아요.”

유은영이 웃는 낯으로 매섭게 제 무기를 휘둘렀다.

“서도운 씨, 미안하지만 잠시 눈 좀 붙이도록 하세요.”

그 말과 동시에 유은영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녀가 다시 모습을 보인 건 아주 찰나의 시간이 지났을 때.

“커헉……!”

서도운의 바로 앞에서였다.

가슴 한가운데, 명치 부근을 정확하게 찌른 것에 서도운이 쿨럭거리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서이안이 뒤늦게 도착한 건 그때였다.

“야! 지화자! 우리 길드원한테 무슨 짓이야?!”

“잠재운 것뿐이야. 나하진 씨께서 아무래도 ‘각성’하신 것 같아서 말이지.”

각성을 했다는 말은 곧, 성언(聖言)을 부여받았다는 말씀.

원래 성언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주어졌다. 그러나 그 순간, A-Index는 언제나 새롭게 각성을 한 그들의 정보를 업로드했다.

‘그리고 그 정보는 모두 현장 파견 부서에 내려오지.’

현장 파견 부서는 게이트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롭게 업로드된 정보를, 각 팀장은 매일 아침 첫 업무로 확인했다.

유은영 역시 그랬다.

‘그랬지만 나하진 씨의 이름은 없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유은영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야 기술 관리 부서에 물어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일단은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

“라이, 리아. 나하진 씨 여기로 데려와요.”

―네엡!

라이와 리아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유은영은 곧바로 하태균을 치료했다.

“하태균 씨, 정말 괜찮아요?”

“네, 정말 괜찮습니다. 다친 게 오랜만이라 고통이 조금 심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유은영이 애써 웃으며 하태균의 상처를 치료했다.

‘내가 힐러였다면.’

아니, 힐러였어도 그렇게 도움이 되지 못했을 거다. 그야, 자신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기가 막힌 안마뿐인 폐급이니까.

유은영이 이를 으득 갈았다.

“서이안, 너희 측 힐러 좀 불러줄 수 있을까?”

“남의 길드원 기절시켜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길드원께서 우리 팀원을 이 꼴로 만든 건 안 보이나 보지?”

“그건……!”

서이안이 무엇이라 소리를 지르려다가 그만두고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알겠어.”

그리고 그 대답과 동시에 라이와 리아가 도착했다.

“지화자 누님!”

“지화자야! 데리고 왔어!”

거미줄로 꽁꽁 묶인 초췌한 낯의 한 여자와 말이다. 유은영이 그들을 반길 새도 없이 리아가 놀라 하태균에게 달려갔다.

“태균 오빠! 오빠, 왜 그래? 많이 다쳤어? 이고 연극 아니었어? 그런데 왜 이래?”

“사고가 조금 있었어요.”

“저 여자 때문에?”

유은영의 말에 리아의 붉은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저 여자 때문이지?”

“리아 씨.”

유은영이 리아의 어깨를 꼭 끌어 잡았다.

“진정해요. 착한 아이는 싸우면 안 된다고 배웠잖아요. 그쵸?”

“우웅.”

리아가 뚱하게 말했다. 그 사이, 하태균은 제 앞에 나타난 여자를 보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나, 나하진 씨…….”

들린 이름에 유은영이 그에게 물었다.

“하태균 씨, 눈앞의 여성분이 나하진 씨가 맞나요?”

“네… 맞습니다…….”

그에 유은영이 말했다.

“라이 씨, 리아 씨. 나하진 씨를 풀어 주세요.”

“그래도 될까요?”

“네, 걱정 말고 풀어 주세요.”

라이가 못마땅하다는 기색으로 붙잡고 있던 여자를 풀어줬다. 그녀는 두 손이 자유로워지자마자 입을 열었다.

“스콜피언 길드가 의뢰를 들어준다고 해서 정말 기뻤는데.”

여자, 나하진의 공허한 눈이 서이안과 유은영에게로 향했다.

“서로 짜고 치는 연극이었나 보네요. 나도 참 바보 같지.”

허무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픽 웃고는 제 앞에서 죄인처럼 무릎 꿇고 있는 하태균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하태균 씨. 우리 지하 씨 장례식장에서 본 이후로 처음 보는 거죠? 아니지, 참.”

나하진의 얼굴에 순식간에 증오가 차올랐다.

“당신, 우리 지하 씨 장례식장에 찾아오지도 않았었지.”

“그, 그건.”

하태균이 파들파들 떨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차마 찾아갈 용기가 없었습니다. 찾아가는 것조차 실례라고 생각해서…….”

“그런 줄 알았으면 죽었어야죠.”

날 선 목소리에 하태균이 움찔 몸을 떨었다. 나하진은 그 위로 성난 목소리를 쏟아냈다.

“찾아와 사과할 용기는 없는데 찾아오는 것이 실례라는 걸 알았다면 그냥 죽었어야죠.”

하태균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나하진은 이를 으득 갈았다.

“센터에서 암만 손을 내밀었어도 죽었어야죠, 하태균 씨. 죽어서, 당신 동료들한테 사과했어야죠. 그랬어야지!”

악에 받친 목소리와 함께 기절했던 서도운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창을 휘두르면서 말이다.

“우왓!”

서이안이 그것을 피하며 버럭 소리 질렀다.

“야, 인마! 서도운! 너 미쳤어?”

하지만 서도운에게는 그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듯했다. 서도운은 초점 없는 눈으로 느릿하게 몸을 움직여 나하진 앞에 섰다.

그에 서이안이 미간을 좁혔다.

“뭐야? 저 자식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왜 저러겠어?”

유은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말했잖아. 나하진 씨, 각성하신 것 같다고. 그 힘인가 보지, 뭐. 그래도 다행이네.”

라이와 리아, 두 사람에게는 나하진의 힘이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라이, 리아. 하태균 씨를 보호해주세요.”

“네!”

라이와 리아가 힘차게 대답하고는 하태균의 앞을 막아섰다.

가급적, 아이들을 전투 현장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던 유은영이었다.

하지만 하태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 라이와 리아를 위해서라도 둘을 싸움에 참여시켜야 했다.

유은영이 가볍게 봉을 고쳐잡고는 입을 열었다.

“서이안, 네가 막을래? 내가 막을까?”

“뭘?”

“서도운 씨.”

그 말에 서이안이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당연히 내가 막아야지.”

“그럼, 나는.”

유은영이 나하진을 향해 봉을 치켜들었다.

화르륵.

불길이 일며 그녀 주위를 감쌌다.

“나하진 씨를 막아볼까?”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나하진이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랭킹 1위는 달라도 뭔가 다르나 보네요.”

“제가 좀 남들보다 뛰어난 구석이 없지 않아 있죠.”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그 말에 나하진이 미소를 그렸다.

“그거 알아요? 우리 지하 씨도 그 숫자를 꿈꿨어요.”

나하진이 과거에 잠긴 듯 중얼거렸다.

“파병에서 돌아오면 군을 전역해 센터에 들어가려고 했죠. 거기서 제일 높은 사람이 되는 게 우리 지하 씨가 꿈꿨던 미래였어요.”

자신과 함께 꿈꿨던 미래였다.

“그런데 우리 지하 씨, 파병에서 돌아온 몸이 팔 하나뿐이었던 거 있죠?”

나하진의 두 눈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나머지는 어디 있냐니까, 글쎄 우리 지하 씨와 가장 친했던 분께서 곤죽으로 만들어놨다는 거예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아주 곤죽으로.”

나하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그 사람이 바로 저기에서 멀쩡하게 보호받고 있네요.”

하태균이 그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유은영은 그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말은 똑바로 해야죠, 나하진 씨. 하태균 씨 상태가 멀쩡하게 보입니까? 당신 덕분에 상처 입은 거 안 보여요?”

“그래도 죽지는 않았잖아요? 우리 지하 씨는 죽었었는데.”

목소리의 끝이 낮아졌다. 하지만 곧, 나하진은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 그래.”

짝, 가볍게 손뼉을 친 나하진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죄책감에 못 이겨 스스로 죽게 만들면 되겠네요.”

저 여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유은영이 눈가를 찡그렸다. 하지만 그녀는 곧, 나하진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지 깨달았다.

“리, 리아… 라이…….”

두 사람에게 보호받고 있던 하태균이 파들파들 몸을 떨며 아이들을 불렀다.

“형님?”

“오빠?”

라이와 리아가 뒤를 돌아 하태균을 봤을 때.

“으아아악!”

하태균은 이성을 잃은 채 아이들을 향해 주먹을 번쩍 치켜들고 있었다.

“서이안!”

서이안은 진작 서도운을 제압한 상태였다.

“아오, 빌어먹을!”

서이안이 라이를, 유은영이 리아를 붙잡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하태균의 주먹이 대지를 두드렸다.

콰앙-!

하태균의 주먹에 대지가 가라앉았다. 주변 건물도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하하, 이런 미친. 저 녀석 A급 맞지?”

“응, 맞아.”

A급 중에서도 ‘힘’에 특화 되어있는 각성자. 단순 힘만으로는 센터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그였다.

그런 그가 이성을 잃었다.

‘왜?’

유은영이 그런 의문을 품을 때.

“쿨럭, 컥, 허윽.”

피를 토하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유은영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나하진 씨! 멈춰요!”

하태균을 폭주시키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니라 나하진임을.

“제가… 멈출 것 같아요……?”

나하진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진작 이럴 걸 그랬어.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가장 쉽게 저 목숨을 끊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쿨럭, 나하진이 한 번 더 피를 토해내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그런데 멍청하게 날고 기는 길드한테 의뢰를 하고 있었네?”

나하진의 두 눈이 밝게 빛났다. 동시에 하태균이 마구잡이로 날뛰기 시작했다.

“아아악! 으아아악!”

대지는 물론, 건물 곳곳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대로면 통제 구역을 벗어나는 것도 시간문제.

“지화자! 야! 어떻게 할 거야?! 힘이 강제로 폭주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스스로 힘을 폭주시킨 각성자와 강제로 힘이 폭주 된 각성자는 서로 차이점을 보인다는 것.

전자는 금방 이성을 차린다는 것, 하지만 후자는 죽을 때까지 제 힘을 쏟아붓는다는 것.

그리고 하태균은 후자에 속하는 축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죽여야 해! 죽여야 한다고!”

죽여야 한다고?

유은영의 두 눈이 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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