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45화 (45/200)

제45화

유은영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기껏 서이안을 백도진으로부터 구출해왔더니, 이제 선구자들이 난리였다.

“우종문 부장님께서 주신 자료 중에 하태균 씨가 아는 분이 계셨다고요?”

“네, 그리고 그분은 비각성자였습니다.”

“비각성자가 왜 선구자가 된 거예요?”

“그걸 이제 조사해봐야죠.”

“아, 그렇죠.”

유은영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하태균 씨는 지금 어디 있는데요? 보이지가 않는데?”

“그 사람을 확인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요. 태균 형님께서 아는 분이라고 했잖아요.”

가하성의 말에 유은영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분이 선구자라는 게, 자리를 박차고 나갈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던 건가?’

유은영이 끄응, 앓는 목소리를 낼 때였다.

“이름, 나하진. 나이, 스물일곱으로 저와 동갑이네요.”

“유은영 씨! 함부로!”

“자료 훔쳐보지 말라고요?”

지화자가 가하성의 말을 끊어먹고는 싱긋 웃었다.

“어차피 다같이 정리하고 일일이 찾아봐야 하는 사람들 아니에요? 그런데 뭘 훔쳐보지 말라고 해요? 사람 속상하게.”

가하성이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사라질 때는 언제고, 소리 소문도 없이 0팀의 사무실로 돌아온 ‘유은영’이었다.

‘정말 폐급 맞겠지?’

뭉친 근육 풀어주겠다면 안마만 해대는 걸 보면 F급이 맞기는 했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암만봐도 폐급이 아니었다.

‘유은영’은 단순하게 겁이 없다는 수준으로 설명이 안 되는 F급의 각성자였다.

가하성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별 관심 없는 지화자는 유은영이 보고 있던 자료를 살피며 말했다.

“특이 사항으로는 하태균 씨의 동료였던 김지하 씨의 약혼녀였다는 거네요.”

“그게 왜…….”

“김지하 씨는 하태균 씨의 동료였다고 했잖아요.”

지화자가 가볍게 말하고는 유은영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언니, 내가 하태균에 대해 알려줬던 거 잊었지?”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지화자가 쯧, 혀를 차고는 말했다.

“하태균 씨는 불명예 전역한 군인이셨죠. 그 전역 이유를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모르시나 봐요.”

유은영이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모른다는 의미였다.

지화자는 친절하게 그녀에게 그 이유를 알려주기로 했다.

“작전 수행 중, 힘이 폭주하면서 같은 동료들이 그에 휘말렸거든요. 그러면서 다들 죽었죠. 하태균 씨만 제외하고요.”

그렇게 하태균은 불명예 전역을 하게 됐고, 이곳 센터의 0팀으로 배치받게 되었다면서 지화자가 재잘거렸다.

“이봐요, 유은영 씨!”

가하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 질렀다.

“당신이 태균 형님에 대해 뭘 안다고 함부로 떠듭니까?!”

“그럼, 가하성 씨는 하태균 씨에 뭘 안다고 그렇게 화를 내죠?”

가하성이 이를 으득 갈았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유은영이 어쩔 줄 몰라 할 때.

“하성 형님.”

“유은영아.”

라이와 리아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싸우지 마요.”

“맞아, 싸우지 마.”

유은영이 아이들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라이랑 리아 말이 맞아요, 두 분 모두 일단 진정하세요.”

그 말에 가하성이 사납게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쿵, 닫힌 문에 라이가 어떻게 해야 하나 강아지처럼 끙끙 앓아댔다.

“라이, 신경 쓰지 마.”

“네?”

“제 성질에 못 이겨서 담배라도 피러 간 걸 테니까 그렇게 신경 쓰지 말라고.”

지화자가 별일 아니란 말투로 가볍게 말했다.

유은영은 한풀 꺾인 분위기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지화자에게 물었다.

“꽤 친한 사이였나 보네요.”

“하태균 씨랑 김지하 씨요?”

“네, 그러니까 하태균 씨가 충격받고 나간 걸 테죠.”

그 말에 지화자는 입을 닫았다.

하태균이 자신의 동료들과 친했는지 아닌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그의 과거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쩌면 좋을까요?”

묻는 말에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하지만 지금 신병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여자가 유일해요.”

다른 선지자들이란 녀석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없었다. 대략적인 생김새, 혹은 과거에 수상쩍은 일을 벌였는지만 나와 있을 뿐.

물론, 나하진의 행방 역시 불분명했다. 하지만 선지자들 중 유일하게 신상을 파악할 수 있는 게 그녀였다.

“일단, 하태균 씨가 오면 이야기 좀 나눠봐야겠네요.”

라고 유은영이 말하는 순간.

―국가 넘버, 82.

서울 북구 화랑로32길 146-20 게이트 생성 예정입니다.

예상 정보를 전달해드립니다.

Type: 타임 브레이커

Lank: C급

게이트 생성 예정 시간을 아래와 같이 전달해드립니다.

20■■. 11. 24

AM 4: 31―

A-Index로부터 게이트 생성 정보가 눈앞에 떠올랐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게이트야!”

유은영이 버럭 소리 질렀다. 지화자는 태평했다.

“그래도 C급 게이트네요. 시간이 다소 촉박하기는 하지만, C급 게이트니까 빠르게 공략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 이번에는 S급도 A급도 아닌 C급 게이트였다. 유은영이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지화자에게 물었다.

“유은영 씨, 이번에는 우리 팀이 나서지 않아도 되죠?”

“네, 일단은 그럴 거예요. 3팀과 4팀이 출장 중인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불길하게 끝을 맺은 목소리에 유은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화자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다른 팀에서 지원 요청 올 때가 있거든요. 특히나 북구 쪽은 3팀과 4팀이 담당하는 곳인데…….”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야! 지화자!”

“지 팀장!”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신영웅과 신호걸, 3팀과 4팀의 팀장들이 찾아왔다.

영웅호걸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화자는 담담하게 말을 끝냈다.

“3팀과 4팀은 S급 게이트가 아니면 길드 협조를 안 받는 곳으로 유명한 팀이라서요.”

그래서 이렇게 하급 게이트가 생성 예정 때는, 0팀이나 다른 팀에 지원을 요청할 때가 있다면서 지화자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영웅호걸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애들 좀 빌려줘! 이왕이면 하성이랑 유은영 씨 좀!”

“이번 게이트에 비행형 몬스터가 출현할 거란 정보가 떠서 말이지. 우리 애들만으로는 부족해.”

“거기에 충종(蟲種)의 개미 군단도 있을 거래! 우리 애들만으로는 진짜 부족할 거란 말이지!”

“그러니까 이렇게 부탁 좀 할게, 지 팀장.”

정신없이 쏟아지는 말에 유은영이 멍하니 입을 뻐금거렸다.

“가하성 씨라면 몰라도, 유은영 씨는 왜…….”

묻는 말에 신호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클라라가 몸이 좀 안 좋거든.”

클라라는 3팀과 4팀의 전담 어시스트 힐러였다. 그 말에 유은영이 입을 뻐금거렸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유은영’ 씨는 도움이 안 될 텐데요?‘

유은영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영웅호걸이 정신없게 떠드는 탓에 그러지 못했다.

“유은영 씨 빌려주고 싶지 않으면, 라이랑 리아 좀 빌릴게.”

“라이랑 리아, 게이트 실전 경험 아직 없지? 이번에 쌓게 하면 되겠네.”

“네? 그건 절대 안 돼요!”

어디서 아이들을 그 험한 세상에 들여보내려고!

“저와 함께라면 몰라도, 라이랑 리아는 절대 안 돼요!”

이번에 유은영은 빼액 소리 질러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 말에 신영웅과 신호걸이 방긋 웃었다.

“그럼, 하성이랑 유은영 씨 빌려주는 걸로 알게?”

“고마워, 지화자 팀장!”

“역시 지 팀장이야!”

“아니, 잠깐만!”

가하성 씨라면 몰라도 나는, 그러니까 지화자 씨는 안 된다고!

하지만 신영웅과 신호걸은 재빠르게 사라진 뒤였다.

사라지기만 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0팀의 가하성과 유은영이 3팀과 4팀의 공략에 지원하게 됐다는 공문이 떴다.

‘뭐야, 일 처리 왜 이렇게 빨라?’

유은영이 어처구니없어할 때, 지화자가 픽 웃었다.

“말렸네요.”

그 말에 유은영은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제가 지금 영웅호걸 팀장님들한테 말린 거예요?”

“네.”

지화자가 비웃는 낯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유은영은 그에 우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라이랑 리아를 보낼 수는 없잖아요!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뭐, 그건 그렇죠.”

지화자의 대답에 라이와 리아가 한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누님들, 저희는 괜찮습니다!”

“맞아! 신영웅이랑 신호걸, 그 아저씨들 싫지만 우리도 게이트란 거 경험하고 싶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절대 안 돼요!”

자신과 함께라면 몰라, 남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싶지 않은 유은영이었다.

그때, 지화자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유은영에게 물었다.

“신영웅, 신호걸 팀장님들과 함께라면 문제없을 텐데요.”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제가 그분들 따라서 게이트 따라가는 건 괜찮고요?”

“그, 그건…….”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지화자의 시선을 피하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타임 브레이커 유형의 게이트라고 해도 C급이잖아요. 영웅호걸 팀장님들이 어련히 알아서 지켜주지 않을까요?”

지화자가 유은영을 빤히 쳐다보다가 픽 웃었다.

“뭐, 그렇겠죠.”

그렇게 대답한 지화자가 고개를 살짝 숙여 유은영에게 말했다.

“그럼, 저는 가하성 씨와 그날 즐거운 시간 좀 보내고 오겠습니다. 그러니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지화자가 손을 들어 유은영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어주고는 말했다.

“그때까지 하태균 씨와 관련된 선지자, 확실하게 처리해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알겠죠?

살벌하게 덧붙이는 뒷말에 유은영이 꿀꺽 침을 삼켰다. 지화자는 싱긋 웃었다.

“저와 가하성 씨는 게이트 공략 끝날 때까지 앞으로 3팀, 4팀과 함께 움직이게 될 테니까요.”

“네? 왜요?!”

“그야, 합을 맞춰야하니까요. 그래서 대답은요?”

“하, 하하! 물론이죠!”

유은영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음이 가지 않는 대답이었지만 지화자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럼, 믿을게요. 지 팀장님.”

지 팀장님.

지화자와 몸이 바뀐 순간부터 매번 듣는 이름이었지만, 이번에는 꼭 가슴에 돌덩이가 앉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해야지.’

자신이 지금 ‘지화자’인 이상,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현장 파견 부서의 우종문 부장이 유은영을 부른 건 그때였다.

“아, 부장님은 또 왜……!”

“서이안 길드장님 때문이겠죠.”

지화자의 말에 유은영이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당일치기로 강원도 평창을 다녀온 후, 피곤한 몸. 더군다나 같은 S급 각성자인 백도진과 함께 싸우기도 했다.

‘조금 쉬려고 하면 어디 덧나?!’

무엇보다 이제 곧 퇴근 시간이었다. 그런데 부장의 호출이라니!

유은영의 속상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무실 안에 남아있던 0팀의 팀원들이 그녀를 격려했다.

“다녀오세요, 지 팀장님.”

“다녀와요, 누님!”

“잘 다녀와, 지화자야!”

각기 다른 이름이 저를 부른다. 하지만 그건 제 이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유은영은 대답했다.

“네에.”

어차피 자신은 지금 ‘지화자’였으니까. 그 이름이 암만 돌덩이같이 느껴지는 무게를 가지고 있어도.

“퇴근 시간 되면 어련히 알아서들 퇴근하세요. 저는 우종문 부장님과 이야기 나누러 가봅니다.”

유은영은 ‘지화자’를 완벽하게 흉내 내야만 했다.

서로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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