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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43화 (43/200)

제43화

어두운 조명 아래, 백발의 사내가 중얼거렸다.

“오, 누군가 찾아왔어. 네 똘마니들인 것 같은데?”

그에 양손이 결박된 채로 거친 숨을 내뱉고 있던 서이안이 더듬더듬 목소리를 내었다.

“내… 길드원들한테…….”

“뭐라고?”

“내 길드원들한테 손대지 말라고, 이 개자식아!”

서이안이 그렇게 말하며 쿨럭, 피를 토해냈다. 그러나 그는 핏발 선 눈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내 길드원들한테 손대기만 해봐! 그 잘난 얼굴에 흉터를 하나 더 남겨주지! 지화자가 그랬던 것처럼!”

지화자.

서이안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에 남자가 망설임 없이 그의 배를 발로 찼다.

“커헉!”

서이안이 한 번 더 쿨럭, 피를 토해냈다.

“있잖아. 내 앞에서 그년의 이름은 부르지 말아줄래?”

백발의 사내, 백도진이 미친 사람마냥 중얼거렸다.

“겨우 이성을 붙잡고 있는데 여기서 놓아버리면 나한테 너무 미안하잖아?”

내가 ‘인간’으로 참은 세월이 얼마인데.

덧붙여 말하는 목소리에 서이안이 실소를 터트렸다.

“미친놈. 미안하지만 네 몰골은 더이상 인간으로 안 보이거든? 귀신이라면 모를까. 더욱이 네가 한 짓이 용서받을 것 같아?”

서이안의 시선이 가지런히 누워 있는 인형으로 향했다.

하지만 저건 인형이 아니었다.

팔과 다리, 몸통과 얼굴. 각기 다른 신체 부위를 기워넣은 것을 어떻게 인형이라 부를 수 있을까?

더욱이 그 인형은…….

서이안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유화 님 좀 이제 놓아줘. 지유화 님의 남자친구였던 그 작자는 진작 그분을 놓아줬는데, 너는 뭐하고 있는 거야?!”

“유화.”

백도진이 탄식하듯 이름을 불렀다. 그러면서 그는 서글프게 울상을 지었다.

“내가 우리 유화를 어떻게 놓아주겠어?”

서이안을 말문이 꽉 막힌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백도진은 실실 웃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유화를 살릴 거야. 지화자, 그년이 죽였던 우리 유화를 다시 되살릴 거라고. 나는 할 수 있어. 네크로맨서니까.”

벡도진이 환하게 웃었다.

“여기에 혼만 불어 넣으면 돼. 그러니까, 서이안.”

그가 백골의 사체에 붙잡혀 있는 서이안을 향해 날 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서 죽어. 네가 죽어야지 유화의 몸이 완성된단 말이야.”

지유화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S급 각성자였다. S급 각성자의 혼을 불러내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제물이 필요하다는 말이었고, 백도진은 그 제물로 서이안을 선택한 거였다.

“하하, 미친놈.”

서이안이 힘없이 웃음을 터트리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지유화 님의 편안을 위해서라도 그건 안 되겠는데?”

그 말에 백도진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서 계속 내버려 뒀더니, 입만 살아서는.”

백도진은 서이안에게 천천히 독을 주입하는 중이었다.

‘독주(毒主)’라 불리는 남자가 독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게 우스운 일이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백도진이 따악, 손가락을 맞부딪쳤다. 그와 동시에 곳곳에서 어두운 기운이 형체를 띄며 나타났다.

그가 부리는 사령들이었다.

“그냥 내가 죽여줄게. 네 시체를 갈가리 찢어 혼만 온전하게 남겨주마.”

라고 말하는 찰나.

“서이안 길드장님!!”

와장창!

낡은 유리창이 깨지면서 서이안과 똑같은 붉은 머리칼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도진이 픽 웃었다.

“아아, 서이안. 네 똘마니가 기어코 이곳을 찾았네?”

“야! 서도운! 여기가 어디라고 와! 다른 녀석들은?!”

“스콜피언의 다른 분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뭐?! 그럼 너 혼자 여길 찾아서 쳐들어온 거라고?!”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마찬가지로 낡은 문이 벌컥 열렸다.

“서도운 씨! 혼자서 그렇게 쳐들어가면 어떻게 해요! 사람이 암만 급해도 문으로 들어가야지!”

그리 외치면서 등장한 유은영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죄송합니다아…….”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

조심스럽게 문을 닫은 유은영은 혼란스러웠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당장에라도 싸울 기세인 서도운, 그리고 웬 해골바가지에 붙잡혀 있던 서이안.

또…….

“지화자!!”

“히익!”

유은영이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피했다. 그녀가 닫은 문이 찢어져) 날아갔기 때문이다.

얼떨결에 문과 함께 날아가는 것을 피한 유은영이 백발의 사내를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아, 하하, 안녕하세요? 호, 혹시 백도진 씨인가요?”

“그래, 백도진이다.”

백도진이 두 눈을 빛냈다.

“가만 보니 서이안보다 더 좋은 재료가 있었지.”

“네? 무, 무슨 재료요?”

그렇게 묻자마자 공격이 날아들었다. 빠르게 날아오는 검은 구체에 유은영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굴렀다.

“흐악!”

유은영을 맞추지 못한 것은 땅에 처박혔다. 이내 썩어들어가는 것에 유은영이 꿀꺽 침을 삼켰다.

‘백도진 씨께서는 네크로맨서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 분명 그랬다.

‘사실 네크로맨서가 아니라 서이안 씨와 똑같이 독을 사용하는, 뭐 그런 각성자였던 걸까?’

유은영이 한껏 머리를 굴릴 때였다. 백도진이 광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네 몸을 내놔. 유화가 못마땅해하겠지만, 그래도 움직이기에는 그 몸이 더 좋겠지. 그래, 이왕이면 네 영혼도 내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유은영이 무기를 꺼내 쥐었다.

“이 몸, 절대로 못 넘겨줘요.”

죄송하지만, 몸 주인은 따로 있어서요.

라는 그 말을, 유은영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미친 것이 분명해 보이는 남자와 싸움을 벌일 태세를 갖췄다.

“야! 지화자! 조심해!!”

“서이안 씨?!”

서도운의 도움으로 해골 바가지한테서 풀려난 서이안이 버럭 소리 질렀다.

유은영은 놀란 눈으로 물었다.

“꼴이 왜 그래요?”

“내 꼴은 신경 쓰지 말고 앞!”

“네?”

“앞 좀 보라고!”

화악-!

검은 기색의 불길이 유은영을 향해 들이닥쳤다.

“우왓!”

유은영이 날래게 몸을 굴렀다.

“쥐새끼 같은 년이……!”

백도진이 으득 이를 갈았다.

“그런 네가 유화를 죽였어! 우리 길드의 주춧돌을!”

백도진은 광기에 들어찬 채 계속해서 지화자를 공격했다.

“유화 덕분에 우리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네가 그걸 파괴했어! 네가 모든 걸 무너뜨렸다고!”

유은영이 백도진이 쏟아내는 공격을 날래게 피하면서 말했다.

“저기요, 정말 죄송한데요.”

그 말을 끝으로 유은영은 ‘지화자’와 똑같은 미소를 그렸다.

“지유화, 그 인간 한 명 없어졌다고 무너질 길드였다면 진작 없어졌어야 했던 거 아닐까?”

놀리는 것이 분명한 목소리.

백도진은 멍하니 입을 뻐금거리다가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

“지화자!!”

검은 불길이 홧홧하게 타오름과 동시에 그가 부리는 사령이 움직였다.

‘지화자’를 죽이기 위해서.

유은영은 작게 숨을 내쉬고는 최 박사와의 싸움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곧, 그녀는 ‘지화자’의 몸에 깃들어 있는 성언(聖言)의 힘을 발휘했다.

[20XX년, 7월 18일의 결투를 회고한다.]

유은영은, 지화자가 백도진과 결투를 벌였던 그 날의 일을 선명하게 기억해내며 몸을 움직였다.

***

쾅-! 콰광!

요란스러운 소리에 지화자가 미간을 좁혔다. 리아가 신나 창가에 붙었다.

“센터 앞에서 시비가 붙었나 봐!”

“그러게.”

리의 말대로 센터 앞에서 등급이 낮은 듯한 각성자 둘이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다.

리아가 싸움을 구경하며 재잘거렸다.

“착한 아이는 싸우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저 사람들은 애가 아니라 어른이라서 괜찮아.”

지화자의 말에 리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른은 맘껏 싸워도 돼?”

“응.”

유은영이 들었다면 그게 무슨 소리냐며, 애한테 이상한 것 가르치지 말라고 했을 법한 말이었다.

어쨌거나 유은영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고, 지화자는 리아에게 물었다.

“그래서 가하성이 나를 왜 찾았다고?”

“선지자들 때문에!”

“도중에 아는 사람이라도 나왔대? 쓸데없이 부른 것만 아니면 좋을 것 같은데.”

“응!”

리아의 대답에 지화자가 멈칫거렸다.

“뭐?”

묻는 말에 리아가 말했다.

“하성이 오빠 말고, 태균 오빠가 아는 사람이 나왔나 봐!”

“하태균이 아는 사람?”

“응!”

지화자가 미간을 좁혔다.

“유은영아, 왜 그래?”

“애는 알 필요 없어.”

“나, 애 아니야!”

“열네 살이면 애야.”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0팀의 사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가하성 씨.”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가하성이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지화자는 태평한 얼굴로 사무실을 둘러봤다.

“하태균 씨는요?”

“오는 길에 못 만났어요?”

“네, 못 만났어요.”

“젠장.”

가하성이 거칠게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태균 형님이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대충 아시죠? 지 팀장님께서 말해줬을 거 아니에요. 그쵸?”

“뭐, 그렇죠.”

그 대답에 가하성이 지화자에게 서류 하나를 넘겨줬다. 그것을 빠르게 확인 지화자가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선지자들은 모두 과학자거나, 각성자일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네요.”

“네, 그런 모양이에요.”

가하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화자도 마음 같아서는 한숨을 내쉬며 짜증을 부리고 싶었다.

‘곤란하게 됐네.’

하태균이 왜 자리를 박차고 나갔는지 이해가 됐다.

“형님, 많이 심각한 일이에요?”

“맞아, 많이 심각한 일이야?”

라이와 리아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 아이들의 질문에 가하성이 한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니까 너희는 내가 알려준 문제나 풀고 있어.”

“네에!”

남매가 사이좋게 대답했다. 리아와 라이는 센터의 업무와 관련해서 하나씩 배우는 중이었다.

가하성이 지화자가 서류를 확인 한 것을 알고는 물었다.

“어쩌죠?”

“일단, 지화자 팀장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죠. 오늘 안으로는 돌아올 거예요.”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휴대폰이 울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발신인은 유은영이었다.

“여보세요?”

―지화자 씨!

지화자가 이마를 짚었다.

‘이 언니는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렇게 나를 부르는 거야?’

더욱이 분명, 서도운과 함께 이동 중일 게 분명한 그녀였다. 지화자가 쯧, 혀를 차고는 물었다.

“네, 지 팀장님. 무슨 일입니까? 서이안 길드장님은 찾았습니까?”

―아, 넵! 찾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 좀 해도 될까요?

“네, 하세요.”

―센터 내 힐러 좀 대기시켜주세요. 서이안 길드장님의 상태가 많이 안 좋거든요.

“스콜피언 측에도 우수한 힐러들이 많을 텐데요.”

지화자가 못마땅한 기색의 얼굴로 돌아올 대답을 기다렸다.

―그게 스콜피언으로 바로 갈 수 없는 상황이라서 그래요. 더욱이 서이안 씨께서 길드원들한테 다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나 봐요.

지화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간에 귀찮은 녀석.’

옛날부터 자존심 하나는 그 누구보다도 센 서이안이었다.

―그럼, 부탁 좀 할게요.

“잠깐만요.”

지화자가 황급히 물었다.

“백도진 길드장님은 어떻게 됐습니까? 서이안 길드장님을 감금하고 있던 사람이 정말 백도진 길드장님이셨습니까?”

―네.

“백도진 길드장님을 구금해 함께 센터로 오는 중입니까?”

잠깐의 침묵 끝에 대답이 들려왔다.

―아니요.

“네? 설마 놓쳤습니까?”

놀라 묻는 말에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하지만 다시는 나타날 수 없도록 아주 혼쭐을 내줬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말라니!

‘왜 이렇게 태평한 거야?’

지화자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어쨌든 알았습니다. 힐러 대기시켜놓겠습니다.”

지화자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마자 가하성이 물었다.

“지 팀장님, 귀환 중이래요?”

“네, 그런 것 같네요. 서이안 길드장님께서 많이 다치신 모양이에요. 간호 관리 부서 측에 힐러 좀 요청해주세요.”

“제가요?”

“네, 저는 갈 곳이 있어서요.”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에 가하성이 황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태균 형님 일은 어쩌고요!”

“저희끼리 의논해봤자 답이 나오겠어요? 지 팀장님 오면 다시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죠.”

맞는 말이었다.

두 사람이서 암만 머리를 맞대도 이 문제는 ‘지화자’가 나서지 않는 이상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이었다.

곧, 지화자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0팀의 사무실을 나갔다.

쿵, 닫힌 문에 가하성이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그에 리아와 라이가 우물쭈물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아이들이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걸 알아차린 가하성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너희는 눈치 보지 말고 문제나 풀어.”

“네엡!”

리아와 라이가 밝게 대답하고는 가하성이 준 문제를 열심히 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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