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41화 (41/200)

제41화

06. 은혜 갚은 여우

지화자가 황급히 유은영의 입을 단속시켰다.

“언니, 너무 큰 소리 내지 마.”

“하지만!”

“방에서 라이랑 리아 녀석들이 무슨 일인가 해서 튀어나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지화자의 경고에 유은영이 황급히 목소리를 죽였다.

“서이안 씨가 실종이라니요? 정말이에요?”

“응, 그런 것 같은데?”

지화자가 파일 좀 제대로 확인해보라며 유은영을 닦달했다.

파일은 서이안의 길드인 스콜피언에서 보내온 그의 실종 수색 협조 요청 공문이었다.

서이안이 일주일 전부터 연락이 끊겼으며, 그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상세히 적혀있었다.

공문을 꼼꼼하게 읽은 유은영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이건. 경찰에 협조 요청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우리한테 협조 요청을 한 거래요?”

“경찰에 협조 요청을 했다가 기자들이 냄새 맡으면 곤란하니까.”

냄새를 맡은 기자들은 분명 곳곳에 기사를 낼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기사들은.

“내가 등장할 게 뻔하지.”

“네? 지화자 씨가 왜요?”

“걔가 2위고, 내가 1위잖아. 그리고 나는 지유화를 죽인 전적이 있는 살인자지.”

그러니까 지화자의 말은 이랬다.

서이안의 실종을 알게 된 기자들이라면, 분명 ‘지화자’가 경쟁자인 그를 죽여 없앴을 거라고 기사를 써 내려갈 거라고.

그 말에 유은영이 희게 질린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런…….”

“언니, 괜히 ‘기레기’란 단어가 존재하겠어? 뭐, 그러지 않을 녀석들도 있겠지만 소수일걸? 그러니까 어떻게 할래?”

“네?”

“어쨌든 서이안의 실종 사실은 기자들이 곧 알게 될 거야. 그를 위해서라면 언니가 그 녀석을 찾아 돌아다니는 꼴이 보기 좋겠지. 여론을 위해서 말이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순간, 여론은 들끓게 될 거다.

‘지화자 씨가 말했던 것처럼 되겠지.’

유은영은 고민도 잠시, 굳게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서이안 씨의 실종 수색, 저희 0팀이 협조해주겠다고 해주세요.”

“오케이.”

지화자가 타다닥, 키보드를 두드렸다. 우종문 부장에게 서이안의 일을 자신들 0팀이 맡겠다는 메일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유은영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안 그래도 골치 아픈 일이 여러 가지인데 서이안 씨는 갑자기 왜 어쩌다 실종되셨담?’

어쨌거나 하기로 한 일, 무조건 수행해야 했다.

그렇기에 지화자는 스콜피언의 관계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는군요. 스콜피언의 돌격 1팀의 팀장. A급 각성자인 ‘서도운’입니다.”

***

스콜피언의 돌격 1팀의 팀장, A급 각성자인 서도운.

유은영은 그를 본 적이 있었다.

‘분명 그때는 슈퍼 루키니 뭐니 서이안 씨가 싸고도셨지?’

그에 반해 슈퍼 루키 님께서는 그를 장병 취급했었지만 말이다.

그때, 유은영과 함께 스콜피언의 관계자를 만나러 온 가하성이 입을 열었다.

“지화자 팀장님, 인사하셔야죠.”

“아……!”

유은영이 얼빠진 소리를 내고는 서도운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센터의 0팀을 이끌고있는 지화자입니다. 서도운 씨와는 시나리오 게이트 공략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죠?”

“네, 그렇지요. 그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에이, 뭘요. 저는 별로 한 게 없는걸요?”

“그렇게 겸손을 떠실 필요 없습니다.”

서도운이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공략대장을 맡은 게 지화자 팀장님이 아닌, 저희 길드장님이었다면 몇 날, 며칠은 걸렸을 게이트였으니까요.”

아니요, 그럴 리는 없었을 텐데요? 서이안 씨, 분명 서도안 씨의 상사일 텐데 그분을 너무 매도하는 거 아니에요?

유은영은 순간 그렇게 말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치미는 말을 꿀꺽 삼켰다.

어쨌든 그녀는 방긋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보는 눈이 많으니까 이야기를 빠르게 진행해볼까요?”

이곳은 센터의 1층, 로비의 카페테리아였다.

다른 곳에서 만나기에는 ‘지화자’의 존재가 너무 컸다. 지금도 센터 내 건물인데도 그녀를 흘긋거리는 직원이 수십이었다.

‘그래서 가하성 씨를 데리고 온 거였는데!’

마음 같아서는 지화자를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그녀는 라이와 리아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어쨌거나 서도운은 유은영에게로 향하고 있는 시선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말했다.

“현재 서이안 씨와 함께 동거 중이라고 들었어요. 서이안 씨가 집을 나선 날이 언제죠?”

“저번 주 월요일입니다. 지금으로 딱 일주일이 됐죠.”

“무슨 일로 나가는지 들었나요?”

“모릅니다. 하지만 그날 조금 이상하게 행동하기는 했습니다.”

“어느 점이 이상했는데요?”

서도운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는 방 안의 포스터를 모두 뗐습니다.”

“방 안의 포스터라면…….”

“지유화 님.”

유은영이 멈칫거렸다.

서도운은 그 작은 움직임을 알아차렸으나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지화자 팀장님 언니분의 포스터를 모두 뗐습니다. 그것도 찢어지거나 그럴 일 없게 아주 예쁘게 말입니다.”

그러면서 서도운은 말했다.

”마치, 누구한테 선물이라도 줄 것처럼 굴어서 참 이상했습니다.그 포스터들, 서이안 씨께서 가장 아끼는 물건들이라서 말입니다.”

그리고 서이안은 정말 누군가에게 선물이라도 줄 것처럼 그것들을 가지고 나갔다면서 서도운은 말했다.

“그리고 일주일째 연락이 전혀 안 되고 있죠. 부길드장님께서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 중이지만 역부족입니다.”

유은영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목소리를 내었다.

“혹시, 납치 가능성은요?”

“없습니다. 누가 그분을 납치하겠습니까? 주변에 원망을 산 분은 많지만, 납치를 당할 만큼 약하신 분은 아닙니다.”

지화자 팀장님께서도 알지 않느냐고 묻는 말에 유은영이 말했다.

“하지만 서도운 씨, S급 각성자는 저와 서이안 씨를 포함해서 열세 명이잖아요. 무엇보다 ‘랭킹’은 대중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일종의 장치일 뿐.”

유은영이 단호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게이트를 공략하거나 그러지 않는 각성자의 랭킹은 낮죠. 암만 S급 각성자라고 하더라도요.”

그 말에 서도운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서이안 길드장님께서 원수처럼 여기던 사람이 두 명 있기는 합니다.”

“누구죠?”

“한 분은 1팀의 조수현 팀장님.”

그렇겠지.

‘조수현 팀장님께서 지유화 씨의 남자친구분이었다고 했지?’

그리고 서이안은 지유화의 지독한 팬이라고 들었다. 그가 충분히 그를 미워할 만도 했다.

‘하지만 조수현 팀장님께서 서이안 길드장님을 납치한다니.’

그는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곰같이 생겼지만 속은 강아지처럼 여린 사람.

유은영이 생각하기에 조수현은 그런 사람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요?”

“넘버(Number)의 백도진 길드장님이십니다.”

“넘버요?”

‘백도진’은 또 누구래?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그와 함께 온 가하성이 말했다.

“넘버는 지유화 님의 사망 이후 그대로 망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네,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넘버가 뭔데요?”

유은영이 눈치 없게 물었다. 지화자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녀의 입을 찰싹 때려줬을 테다.

넘버(Number).

그곳은 지유화가 몸을 담았던 길드였으니.

하지만 이를 알 리가 없는 유은영은 그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쳐다볼 뿐이었다.

***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한가로운 점심시간, 유은영은 지화자만이 아는 비밀 장소에서 그녀와 이야기 중이었다.

“어떻게 됐기는요! 분위기 완전 망했죠!”

유은영이 우는 소리를 냈다.

“서이안 씨랑 가하성 씨가 저 완전 싸이코패스처럼 봤다고요! 저 이제 어쩌면 좋죠?!”

“괜찮아, 나 원래 싸패 아니냐는 소리 많이 들었어.”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유은영은 지화자를 한 대 쳐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참자, 저 몸은 내 몸이다. 저 얼굴은 내 얼굴이다!’

자기 얼굴에 흠집을 내는 바보가 어디 있단 말인가? 유은영은 그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지화자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네?”

“서이안의 실종 건에 대해서 뭐 알아 온 거 있냐고.”

묻는 말에 유은영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백도진이란 사람이 서이안 씨를 납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고 했죠. 그분, ‘네크로맨서’라면서요?”

네크로맨서(necromancer).

그는 죽은 자의 시체 따위를 제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S급 각성자라고 들었다.

온몸에 독을 휘두르고 싸움을 하는 서이안에게 있어서는 어려운 상대였다.

시체에게 독 같은 게 통할 리가 없었으니.

“그런데 지화자 씨, 왜 알려주지 않았어요?”

“뭐를?”

“지유화 씨에 대해서요.”

그에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언니가 관심 없어 보여서 말 안 해줬지. 나도 딱히 말하고 싶지 않았고.”

“하지만 조수현 팀장님이 그분의 남자친구였다거나, 서이안 길드장님이 그분의 열혈팬이라거나 그런 건 알려줬잖아요!”

“그 두 사람이야 언니가 자주 마주칠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랬지. 하지만 넘버는…….”

지화자가 벅벅 머리를 긁고는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유화가 몸을 담았던 그곳의 길드장인 백도진은 아니거든. 나도 언니한테 ‘백도진’의 이름을 듣기 전에는 그 인간, 죽은 줄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네?”

“백도진은 지유화가 죽으면서 폐인이 됐거든. 덩달아 그 인간이 이끌고 있던 넘버도 쫄딱 망해버렸지.”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유은영에게 물었다.

“시나리오 게이트 공략할 때, ‘넘버’라는 길드의 이름 본 적 있어? 없지?”

유은영은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이 그녀는 곧 떠올렸다.

“네, 없었어요.”

S급 시나리오 게이트의 공략 조를 짤 때, 넘버 소속의 각성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언니한테 알려주지 않은 거야. 만날 일 따위 없을 사람 같아서. 더욱이 백도진은 지유화가 죽은 이후에 나한테 한번 덤빈 적이 있거든.”

“네? 그래도 되나요?”

“그럼, 당연하지.”

지화자가 당연한 걸 묻는다는 투로 알려줬다.

“각성자들 간의 싸움은 ‘결투’란 이름 안에서 서로 동의하에 언제든 가능해. 더욱이 ‘랭킹’에 있어서 가장 많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요소지.”

랭킹은 게이트의 공략 기여도, 공략 횟수 등등에 관한 여러 점수를 합산 후, A-Index가 정하는 등수였다.

“그래서 지유화가 죽기 전까지만 해도 각성자들 간의 결투가 엄청 활발하게 진행됐었지.”

그 결투가 지유화의 죽음 이후로 뚝 끊기고 말았다며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유은영은 꿀꺽 침을 삼켰다.

“패배하면 죽어서요?”

“그랬다면 지유화가 죽기 전에 각성자들 간의 결투가 아예 금지됐겠지?”

지화자가 픽 웃었다.

“각성자들 간의 전투는 말이야.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어. 그런데 내가 그걸 깨뜨려버린 거야.”

지유화를 죽이면서.

“이 이야기, 언니한테 해 준 적 없나 보네?”

“네… 없어요…….”

유은영이 충격을 먹은 듯 희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이라도 해줬으니 상관없지? 어쨌든, 백도진은 지유화가 죽은 후 내게 복수를 하겠다면서 결투를 신청했지.”

당연히 지화자는 그 결투를 받아들였다.

그때의 그녀는 겁이 없었다. 두려움도 없었다. 애초에 감정이란 게 결여되어 있었다.

“그리고 결투는 당연히 내가 이겼지. 백도진은 그 이후로 모습을 감췄어.”

그래서 그대로 죽은 줄 알았다며 지화자가 말했다.

“길드장이 모습을 감췄는데 길드가 제대로 돌아갈 꼴이 있나? 더욱이 그 길드의 부길드장님이 바로 지유화였거든.”

“저는… 지유화 씨가 센터 소속의 각성자셨을 줄 알았어요…….”

“걔가?”

“네, 만인의 사랑을 받으셨다는 분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사사로운 이익보다 국민의 안전에 더욱 힘을 쓰는 센터 소속일 줄 알았다는 거지?”

“네? 네에.”

그 말에 지화자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재미난 소리를 들었다는 듯, 배꼽 빠질 것처럼 웃어댔다는 말이다.

“언니, 그거 알아? S급 각성자들은 하나같이 개복치 같은 거.”

“네? 개복치요?”

“응, 개복치.”

지화자가 미소를 그렸다.

“개복치는 원래 쉽게 죽는 생물이 아니야. 그저 주변 환경에 엄청 예민한 녀석일 뿐이지.”

지화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유은영을, 제 얼굴을 향해 말했다.

“우리가 그래.”

유은영은 금붕어처럼 멍하니 입을 뻐금거렸다. 지화자는 그녀의 반응에 픽 웃었다.

“S급 각성자는 하나같이 예민하고, 성질 더러운 녀석들 뿐이지.”

“하지만.”

“조수현을 보면 아니지? 서이안을 봐도 아닌 것 같고.”

“서이안 씨는 조금 그런 것 같지만요. 어쨌든, 그래서요?”

“참는 거야.”

지화자가 말했다.

“나랑 처음에 몸이 바뀌었을 때 기억해?”

“네, 기억해요.”

그 끔찍한 순간을 잊었을 리가 없다. 온몸의 감각이 하나하나 느껴지던 그 소름 끼치던 경험을 어떻게 잊겠는가!

지화자가 제게 감각을 조절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분명 폐인이 되었으리라.

“그 감각을 조절했던 것처럼, 꾸준하게 마음을 다스리는 거야. 우리가 정말 개복치처럼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굴다 죽지 않도록.”

자신을 비롯한 S급 각성자들을 향해 꽤나 날카로운 평가였다.

“하지만 백도진은 그게 안 되는 상태겠지. 그래서 어디 동굴 같은 곳에 들어가서 폐인처럼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지화자가 쯧, 혀를 찼다. 유은영은 가만히 그녀를 보다가 물었다.

“백도진 씨께서 정말로 서이안 씨를 납치하셨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그럼,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기는?”

지화자가 씨익 웃었다.

“백도진의 위치는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언니는 그 자식한테 한 방 먹여주고, 서이안에게 빚 좀 지게 하면 돼.”

대화로 이야기는 안 되나요. 빚도 굳이 지어줘야 하나요.

자신의 얼굴로 사악하게 웃는 지화자를 보며 유은영은 그렇게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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