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선지자요?”
유은영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었다가 해맑게 말했다.
“선구안은 알아요.”
내가 이 언니한테서 뭘 기대한 걸까?
지화자가 이마를 짚었다.
그래, 기대한 자신이 잘못이다. 지화자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최 박사와 똑같은 미치광이 과학자들이 스스로를 가리키는 명칭이야.”
그러고 보니 지하에서 최 박사가 우종문을 향해 ‘선지자’라니 뭐니 떠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선지자들은 자신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자처하는 성인(聖人)이라고 생각해 부르는 이름이지.”
“웃긴 사람들이네요.”
“그래, 정말 웃긴 녀석들이지. 자신들이 생각하는 더 나은 미래가, 센터가 없던…….”
지화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게이트가 곳곳에서 날뛰고 터지던 시대라니 말이야.”
유은영의 얼굴 역시 구겨져 있었다. 그녀는 지화자와 함께 던전에 들어간 후, 그곳이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 알게 됐다.
‘그런데 그 시대를 찬양하는 사람들이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요, 지화자 씨.”
“응?”
“최 박사의 연구실을 박살 냈던 사람이 바로 지화자 씨죠?”
“응, 그리고 그곳에서 바로 라이랑 리아 녀석들을 발견했지. 갑자기 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뭐가?”
“저는 선지자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잖아요?”
“그야, 언니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동안에 내가 다 정리했으니까 말이지.”
“지유화 씨는 뭐 했는데요?”
묻는 말에 지화자가 입을 다물었다. 유은영은 그런 그녀에게 재잘거리며 물었다.
“지유화 씨도 랭킹 1위였던 사람이잖아요. 그런 분이 최 박사 같은 미치광이 사람들을 가만히 뒀어요? 진작 뿌리째 뽑아버렸을 것 같은데요?”
지화자는 한동안 조용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지유화도 일하기는 했어. 그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내 손에 죽어버려서 내가 제대로 끝을 맺었던 것뿐이야.”
그러고는 픽 웃음을 흘렸다.
“뭐, 최 박사를 보면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한 것 같지만.”
자조적인 목소리였다. 또한, 자괴감 어린 목소리이기도 했다. 유은영이 그것을 느끼고 그녀를 부르려는 찰나.
“우리 언니, 지금보다 더 바빠질 것 같은데 어쩌지?”
“네? 지금도 충분히 바쁜데 여기서 더 바빠질 거라니요?”
“그야, 게이트뿐만 아니라 선지자들도 상대해야 할 테니까, 엄청 바빠지지 않겠어?”
“무리예요! 선지자들은 지화자 씨가 알아서 처리해주세요?”
“내가? 이런 폐급 몸뚱이로 어떻게 상대를 하란 말이야?”
“제 몸한테 폐급 거리지 말아주실래요?!”
그때였다.
“지화자야, 유은영아.”
들리지 말아야 할 목소리가 들렸다. 지화자와 유은영,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뻣뻣하게 몸을 굳혔다.
적막만이 흐를 때, 먼저 입을 연 것은 유은영이었다.
“무, 무슨 일이세요, 리아 씨?”
그러곤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설마 들었나? 내가 지화자 씨한테 지화자 씨라고 하는 걸 들었나? 들은 건가?’
잘못 부른 말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지화자’라고 칭한 상대의 몸이 제 몸인 게 문제였다.
유은영이 공황에 빠져있을 때, 그녀의 몸에 들어가 있는 지화자가 말했다.
“리아, 말을 해.”
리아는 비몽사몽 아직 잠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얼굴로 우물거리며 말했다.
“같이 자줘.”
“네?”
“뭐?”
유은영과 지화자가 동시에 리아에게 물었다.
리아는 그제서야 잠에서 깬 듯,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나 무서워. 꿈에서 친구들이 계속 나와.”
“친구들이라니요?”
설마, 그 거미들을 말하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거야.’
리아가 말하는 친구들이란, 자신과 똑같은 처지였던 실험체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리아가 유은영에게 다가가서는 그 품에 꼭 안겼다.
“우리 싫어하던 아저씨도 꿈에 계속 나와. 우리보고 괴물이래. 괴물이니까 죽여야 한다고 할아버지한테 소리치던 모습이 계속 꿈에 나와서 무서워.”
리아가 말하는 아저씨가 누구인지 유은영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박지완 형사.’
아이에게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건만, 지금보다 훨씬 작았을 리아에게 그런 말을 했단 말인가?
유은영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그녀는 곧 구겨진 얼굴을 펴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래요, 리아 씨. 유은영 씨랑 이야기도 다 끝냈는데 이만 들어가서 같이 잘까요?”
“우웅.”
“싫어요?”
리아는 우물쭈물거리다가 지화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유은영도 같이 자.”
“싫어.”
지화자가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그 대답이 상처였는지, 리아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리아, 울지마. 나 우는 거 딱 질색하는 거 몰라?”
“몰라! 울 거야!!”
리아의 두 눈에 들어찬 눈물이 곧 쏟아질 것 같았다.
히끅, 우는 소리가 금방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아 지화자는 저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니까 뚝! 울지마!”
“웅!”
리아가 방긋 웃었다.
금방 눈물을 그치는 그 모습에 지화자가 입매를 비틀렸다.
‘저 망할 꼬맹이 같으니라고.’
생각해보면 처음 자신이 보호하게 됐을 때도 저랬다. 혼자서 자기 무섭다며, 제 오빠와 얼마나 귀찮게 굴던지!
그래서 그 두 사람이 어느 정도 독립할 나이가 됐을 때, 지화자는 치안도 좋고 살기도 좋은 집을 하나 구해줬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나왔을 때 자신이 뭐라고 했더라?
“드디어 조용해졌네!”
라고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도 했었다.
“너무 조용해졌는데.”
그 순간 지화자는 리아와 라이가 조금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하성과 하태균을 왜 자신의 집에 붙들고 있었냐는 질문에 했던 대답 말이다.
“그치만 무서웠단 말이에요.”
“맞아! 무서웠어! 지화자의 집은 엄청 넓지만 삭막하잖아!”
그래, 자신은 분명 라이와 리아가 제집을 떠났을 때 그런 감정을 느꼈었다.
그걸 왜 이제야 떠올렸을까? 그보다 이제야 왜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걸까?
지화자는 멍하니 있다가 리아를 번쩍 안아 드는 자신을 불렀다.
“지화자 팀장님.”
“네?”
“우리 나중에 시간 좀 남을 때 애들 데리고 쇼핑 좀 갈까요?”
유은영이 품에 안겨 있던 리아와 지화자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다가 활짝 웃었다.
“좋죠!”
물론, 쇼핑을 할 시간은 쉽게 나지가 않았다.
그리지 못할 것 같았다.
***
누구나 싫어하는 월요일의 아침 회의 시간.
현장 파견 부서의 우종문 부장의 부름 아래 각 팀의 팀장들이 모두 모이게 됐다.
“최 박사, 그러니까 최하연의 말에 따르면 교류하고 있던 선지자들은 총 스물다섯. 그들 모두가 그녀와 뜻을 함께 하는 자들이라는 거죠?”
“그렇다네.”
유은영의 말에 우종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영웅호걸이 얼굴을 찌푸렸다.
“선지자들이 언제 그렇게 늘어난 거래요? 그 녀석들, 지유화 누님을 이어서 지화자가 다 정리했던 거 아니었나요?”
“덕분에 저희는 게이트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신호걸의 말을 뒤이어 나혜선이 웃는 낯으로 사람 속을 긁어댔다.
“일이 왜 이렇게 됐겠어? 지화자 팀장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이렇게 된 거 아니겠어?”
유은영은 순간 울컥, 감정을 드러낼 뻔했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우종문이 짝짝,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자자, 그만. 서로 같은 ‘팀장’으로 얼굴 붉힐 일은 만들지 말도록 하게나.”
“네, 알겠습니다.”
각 팀의 모든 팀장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우종문은 흐뭇하게 웃고는 자신이 최 박사로부터 알아 온 정보를 그들에게 풀어줬다.
“선지자들의 경우, 지화자 팀장이 놓친 녀석도 있고 새로 선지자가 된 녀석도 있는 것 같더군.”
“새로 선지자가 된 녀석이라니요? 그런 게 가능해요?”
선지자들은 보통, 센터 설립 이전의 시대를 살았던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센터가 설립된 것이 대략 30년 전이니…….’
암만 새로운 과학자나 그 비슷한 전문가가 ‘선지자’가 되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지화자만이 아니었다. 조용히 있던 조수현이 손을 들었다.
“부장님, 혹시나 해서 묻는 겁니다만 혹시 그 녀석들 말입니다.”
“사이비 종교처럼 세를 불리고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아니었으면 합니다만.”
지화자의 말에 회의실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안 그래도 잡초 같던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사이비 종교라니?
우종문은 조용해진 회의실을 한 번 둘러보고는 한숨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그런 것 같네. 아무래도 남을 현혹하는데 도가 튼 녀석이 사람들을 모아 세를 이루는 중인 것 같더군.”
곳곳에서 앓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우종문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최 박사가 말하기를, 그 녀석이 아니었다면 연구를 새롭게 진행할 수 없을 거라고 했네.”
“연구라면 사람을 몬스터로 바꾼, 그거 말이죠?”
“그래.”
우종문의 대답에 신영웅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것 참 피곤하게 됐군요. 게이트를 수습하는 일만으로도 벅찬데, 수 년 전에 정리된 선지자들이 다시 난리라니.”
“하하, 그래도 조수현 팀장. 선지자들은 아직 조용하니 다행인 것 아닌가? 그리고.”
우종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설사, 그 미치광이 녀석들이 물 밑에서 올라온다고 해도 걱정하지 말게나. 그들에게 대항할 사람은 우리 말고도 충분히 많다네.”
길드.
우종문은 그들을 말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렇게 끝난 회의.
현장 파견 부서의 모든 팀장들이 회의실을 나오며 투덜거렸다.
특히, 영웅호걸이 말이다.
“에휴, 피곤하게 됐네. 부장님께서 저렇게 말하셔도 선지자들 행방을 쫓아야 하잖아.”
“길드한테 맡기면 안 되려나? 센터 내에서 보유 중인 A급이나 B급 아이템 좀 푼다면 나설 길드가 몇 곳 있을 텐데.”
유은영 역시 영웅호걸의 말에 동의하는 중이었다. 자고로 귀찮은 일은 남에게 맡기는 게 최고가 아닌가?
‘간호 관리 부서에 있을 때, 그 귀찮은 일! 내가 다 맡아봐서 알지, 알아!’
유은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화자 팀장.”
의외의 인물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바로, 1팀의 조수현이 말이다.
“커피 한 잔 하지 않겠습니까?”
“커, 커피요?”
“아, 쓴 것 못 마셨죠. 다른 음료라도 좋습니다. 이야기 좀 나누지 않겠습니까?”
유은영은 괜찮다며 거절하고 싶었다. 지화자라면 그랬을 테니.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은 각 팀의 팀장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수현 형님! 저는 커피 잘 마시는데!”
“맞아, 조수현 팀장. 나도 커피 잘 마신다구?”
“저는 지 팀장이랑 똑같이 커피 못 마시니까 다른 음료 마실게요. 그래도 되죠?”
어쩌다 보니 빠질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지화자’였다면 다른 팀장들이 저들끼리 떠들거나 말거나 상관도 않고 자리를 떠났을 거다.
하지만 유은영은 지화자가 아니었고 그렇기에 그녀는.
“네에, 뭐, 그러도록 하죠.”
라고 답했다.
지화자가 들었다면 환장할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