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32화 (32/200)

제32화

05. 동거인이 불편하다

‘망할.’

지화자가 얼굴을 구겼다.

한강 뷰가 인상적인 매매가 30억의 아파트에 불편한 손님이 찾아왔다.

“우와! 누님 집은 언제봐도 참 넓네요!”

“지화자야! 우리 어디서 자면 돼? 나 오빠랑 같이 잘 거야!”

그것도 두 명씩이나.

‘왜 이렇게 된 거지?!’

지화자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 팔자야!’

라이와 리아는 집주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집을 구경하느라 정신없었다.

“우와, 여기 빈방이다! 오빠! 우리 여기서 자자! 지화자야, 그래도 괜찮지?”

“네?”

유은영이 당황하여 두 눈을 데굴 굴렀다.

열일곱과 열네 살, 암만 남매라고 해도 서로 한 방에 재워도 되는가?

그때, 자아 성찰을 끝낸 지화자가 말했다.

“괜찮다고 해.”

“하지만.”

“저 녀석들, 서로가 서로뿐이야.”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라이와 리아는 빈방을 어떻게 꾸밀지에 대해 까르르 웃어대는 중이었다.

지화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암만 우리에게 마음을 연 것 같아도 적당히 선을 그어. 나한테도, 하태균한테도, 그리고 가하성한테도 말이야.”

라이와 리아.

두 사람에게 있어 세상은 그랬다. 지화자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유은영이 그녀에게 물었다.

“라이 씨랑 리아 씨를 처음 발견했을 때가 언제였어요?”

“글쎄? 8년 전일걸? 센터 소속되고 처음 받은 임무가 최 박사네 연구소를 파괴하는 거였거든.”

라이 씨와 리아 씨에 대해 관심이 없어 보이더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유은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지화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지화자는 픽 웃으며 말했다.

“그때 완전 새끼 호랑이 같았어. 도와주겠다고 해도 경계가 얼마나 심하던지.”

“그래도 라이 씨랑 리아 씨, 지화자 씨네 집에서 지낸 적 있다면서요?”

“데리고 있을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부장 새끼가 명령했으니까 어쩔 수 없었지.”

까라면 까라는 인생. 지화자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씻는 법도 몰라, 밥 먹는 법도 몰라. 하나하나 챙겨 준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언니는 모를걸?”

그때 완전 고생도 그런 개고생이 없었을 거라며 지화자가 툴툴거렸다.

“지화자야, 지화자야!”

방을 구경하던 리아가 우다다 뛰어나온 것은 그때였다. 해맑은 물음에 유은영이 방긋 웃었고.

“네, 왜요?”

“왜.”

지화자는 짜증 난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에 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지화자를 불렀는데 왜 네가 대답해?”

“아, 쏘리.”

지화자가 가볍게 사과했다. 리아는 얼굴을 찌푸렸다.

“지화자야, 쟤 이상해. 왜 저런 애랑 동거 중인 거야?”

“하하, 그럴 사정이 있어서요.”

“무슨 사정? 곤란한 거야? 곤란한 거라도 말해줘. 내가 해치워줄게. 나 해치워줄 수 있어.”

해치워줄 수 있다는 건, 말 그대로 유은영의 모습을 하고 있는 지화자를 이 세상에서 없애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열네 살 애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유은영은 오싹하게 이는 감각을 애써 무시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가끔 저러니까 무시해요.”

저 망할 언니가?

지화자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유은영을 노려봤지만 그뿐이었다.

라이와 리아, 두 사람의 눈에는 어차피 자신이 유은영이고 유은영이 지화자로 보일 테니.

‘내 팔자야.’

지화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시선이 느껴졌다.

“뭐야?”

지화자가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리아에게 짜증스럽게 물었다. 리아는 또랑또랑하게 답해줬다.

“유은영아, 사람이 그렇게 한숨을 푹 내쉬면 땅이 꺼진대?”

“누가 그래?”

“지화자가.”

“내가 그랬다고?”

리아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유은영아, 미쳤어? 지화자는 저기 있는데 왜 네가 그랬다고 해?”

지화자는 충동을 억눌렀다. 리아의 머리를 콱 쥐어박고 싶은 충동을 말이다.

“하하, 실수야. 실수.”

“실수도 여러 번 하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어!”

“그건 또 누가 그랬어?”

“지화자가.”

과거의 자신은 애들한테 도대체 무슨 말을 했던 걸까?

지화자는 다시 한번 더 스스로 반성했다.

“지화자 씨, 애들한테 좋은 거 많이 가르쳐줬나 보네요.”

“시끄러.”

지화자가 사납게 얼굴을 구기고는 말했다.

“언니는 보고서나 작성해. 나는 가구 좀 봐야겠어.”

“가구는 왜요?”

“애들 방 꾸며야 할 거 아니야.”

유은영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지화자가 라이와 리아를 생각해 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창고 치워놓기를 잘했네. 라이, 리아. 이리 와.”

“왜요?”

“왜?”

“싫으면 말고. 내 마음대로 너희 방 꾸며버릴 테니까.”

“그건 싫어요!”

“맞아, 싫어!”

라이와 리아가 지화자에게 조르르 달려갔다. 유은영은 픽 웃었다. 라이와 리아가 꼭 새끼 오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미 오리를 따르는 새끼 오리.

‘잘 어울리네.’

유은영이 흐뭇하게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언니.”

“으악, 깜짝이야!”

가까이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유은영이 비명을 질렀다.

“왜, 왜요?!”

“집중하고 보고서 작성하라고. 내일까지잖아?”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유은영은 그 웃음이 참 얄밉다고 생각했다.

“유은영아, 유은영아! 나 이 침대 사고 싶어!”

“저는 이거요!”

“그래,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유은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럼, 힘내.”

얄밉다. 얄미워 죽겠다!

유은영이 멀어져가는 지화자의 뒷모습을 한껏 노려봤다. 그래봤자 제 모습,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는 지화자였다.

“에휴, 내 팔자야.”

유은영은 시무룩한 얼굴로 노트북을 켰다.

***

보고서 작성이 끝났다. 그리고 우종문 부장에게 보고하는 것도 끝이 났다.

지화자는, 아니. 유은영은 의자에 널브러지며 두 눈을 꼭 감았다.

‘피곤해.’

보고서 작성이 언제 끝났더라? 아침 해가 뜰 때쯤 끝이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까지 라이와 리아는 방을 채워 놓을 가구를 고른다고 까르르 웃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태균 형님! 저 한 번만 더 매달려 볼래요!”

“나도!”

하태균의 근육질 팔에 번갈아 가며 매달리며 웃어대는 중이었다.

‘체력도 좋지.’

아직 어려서 그런가?

“그래, 어린 게 좋다.”

유은영이 부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가하성이 기가 차다는 얼굴로 말했다.

“팀장님께서도 아직 어리잖아요.”

“제가요?”

묻는 말에 가하성이 움찔거렸다. 지화자의 존댓말이 아직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하성 씨?”

“아, 넵. 그게, 팀장님께서도 아직 스물다섯밖에 되지 않았잖아요.”

“아참, 그랬지. 나이가 나이인지라 깜빡 잊었네요.”

“아아… 그렇군요…….”

가하성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 순간 문이 활짝 열리며 0팀의 마지막 인원이 들어왔다.

“음료 사 왔습니다.”

지화자였다.

“우와! 딸기 프라페!”

“초코 프라페!”

하태균의 팔에 매달려 놀고 있던 라이와 리아가 달려갔다.

“리아, 초코 프라페는 내 거야. 네 거는 망고 요구르탱이라고.”

“싫어! 초코 프라페 먹을래!”

“이 망할 꼬맹이가?”

지화자의 초코 프라페는 결국 리아의 손에 들어가게 됐다. 지화자가 험상궂게 얼굴을 구기며 자리에 앉았다.

손에 망고 요구르탱을 들고서 말이다. 그 모습에 유은영이 키득거리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지화자 씨, 간호 관리 부서에 있는 동안에 음료 심부름하는데 많이 익숙해졌나봐요?”

“시끄러, 이건 내가 그냥 자의로 사는 거거든?”

유은영과 지화자가 그렇게 티격태격거릴 때, 하태균과 가하성이 각자의 음료를 골라 잘 마시겠다고 지화자에게 인사했다. 지화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평화로웠던 0팀에 갑작스럽게 소란이 일어났다.

“아! 안 돼!”

리아가 들고 있던 초코 프라페를 쏟아버리고 만 것이다.

“히잉, 더러워졌어!”

“괜찮아요, 리아 씨. 제가 하나 더 사드릴 테니까, 아니! 잠깐만요! 뭐 하는 거예요?!”

“먹으려는 건데?”

리아가 바닥에 찰싹 붙어 쏟아진 것을 먹으려 들었다. 유은영이 기겁하며 아이를 말렸다.

“그걸 왜 먹어요!”

“그치만 아깝잖아!”

“하나도 안 아까워요! 가하성 씨, 이것 좀 닦아줄래요? 저는 리아 씨 데리고 카페 좀 다녀올게요.”

“네? 네, 알겠습니다.”

“저도 갈래요!”

유은영이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라이가 따라나섰다. 동생과 떨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유은영은 별말 않고 미소를 그렸다.

“누님, 리아 제가 안을게요.”

“그럴래요?”

유은영이 안고 있던 리아를 라이에게 넘겼다. 라이가 허겁지겁 리아를 끌어안았다.

유은영은 흐뭇하게 웃었다.

‘동생 사랑이 엄청나네.’

하지만 그 사랑도 적당한 게 좋았다. 겪어본 바 그랬다. 유은영은 해외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두 발 달린 혈육을 떠올리며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그곳에서 리아에게 초코 파르페를 손에 쥐여주고 0팀으로 돌아온 그녀는 멍하니 두 눈을 끔벅였다.

“분위기가 왜 이래요? 무슨 일 있어요?”

0팀이 너무 어수선했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 하태균이 말했다.

“놀라지 말고 들으십시오, 지화자 팀장님. 3팀과 4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연락이요?”

“최 박사를 찾았다는 연락이요.”

그렇게 답한 사람은 지화자였다. 그 말에 유은영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최 박사를 이렇게 쉽게 찾을 줄 몰랐는데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일단, 영웅호걸 팀장님들께서 쫓고 있다는데 아무래도 저희 역시 합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화자의 말에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다들 나가죠. 하지만 혹시 모르니 한 명은 대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제가 하겠습니다.”

가하성이 손을 들었다.

“어차피 이런 건 제 전문이니까요. 문제 생기면 통신 부탁합니다. 3팀과 4팀에도 따로 연락 넣어났어요.”

“고마워요, 가하성 씨.”

“네에, 뭘요.”

가하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지화자에게 감사 인사라니, 영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화자는 인원들을 데리고 3팀과 4팀과 합류하고자 길을 떠났다.

지하로 내려온 유은영이 검은색 SUV차량에 놀란 눈을 보였다.

“이게 업무용 차에요?”

“뭐, 그런 셈이지. 이 차를 운전하는 건 오랜만이네.”

라이와 리아는 하태균과 함께 뒤에서 따라오는 중이었다. 그들을 흘긋 본 유은영이 지화자에게 물었다.

“왜요?”

“0팀이 다 함께 움직이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지화자가 태연하게 대꾸하고는 운전석에 앉았다. 뒤늦게 차량에 올라탄 하태균이 물었다.

“유은영 씨, 면허 있습니까?”

“아니요, 없어요.”

하태균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 올랐지만, 곧 잘못 들었겠거니 하며 유은영에게 물었다.

“영웅호걸 팀장님들께서는 지금 어디라고 합니까?”

유은영이 가하성과 잠시 연락을 주고받고는 말했다.

“강남이라고 하네요. 일단, 강남대로 양쪽 모두 차단했고 최 박사 추적 중이라고 하는군요. 유은영 씨, 출발합시다.”

“네, 팀장님.”

유은영이 엑셀을 밟았다. 센터를 빠져나감과 동시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연기가 보였다.

‘싸우고 있나 보네.’

조사에 따르면 최 박사 역시 힘을 가진 각성자라고 들었다.

‘쉽게 붙잡히면 좋을 텐데.’

유은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화자는 다른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그 빌어먹을 새끼,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분명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5년 전, 지화자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단독으로 최 박사의 연구실을 습격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라이와 리아를 발견했고, 둘을 구조했다.

그 탓에 최 박사는 놓치고 말았지만 어쨌거나 연구소가 무너졌으니 죽었겠거니 했었다.

‘무엇보다 왜 지금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거지?’

최 박사답지 않았다.

그는 꼬리 아홉 개 달린 구미호보다 더 교활한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왜 이런 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거지?’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화자의 상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라이 씨, 리아 씨.”

조수석에 앉은 유은영의, 아니. 자신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걱정할 것 없어요.”

유은영이 내고있는 목소리는 분명 제 목소리였다. 그런데 자신의 목소리가 저렇게 따뜻하게 들릴 수 있다니.

지화자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최 박사의 이름이 등장할 때부터 얼굴이 희게 질려 있던 라이와 리아가 말했다.

“걱정 같은 거 안 했어요!”

“맞아, 안 했어!”

라이와 리아가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이를 갈았다.

“최 박사, 그 인간. 우리한테 맡겨 주세요.”

“맞아, 우리한테 맡겨줘.”

리아가 붉은 눈을 번뜩였다.

“많은 친구가 죽었어. 그러면서 또 친구들을 만들어냈어. 그리고 그 아이들을 우리보고 죽이라고 했어. 그러니까 죽일 거야. 최 박사, 내가 꼭 죽이고 말 거야.”

리아가 미친 듯이 중얼거렸다. 라이 역시 동생과 똑같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맞아요, 우리가 죽일 거예요.”

유은영은 오싹하게 이는 감정을 애써 무시하며 가하성과 연락을 시도했다.

“여보세요, 가하성 씨? 영웅호걸 팀장님들 현재 위치 부탁드릴게요.”

―신논현 역 6번 출구 쪽으로 계속 달리면 될 것 같습니다.

유은영이 황급히 네비게이션을 확인했다. 근처다. 더욱이 앞쪽에 노란띠를 펼치고 경계 중인 센터의 직원들이 보였다.

“유은영 씨, 멈추세요!”

“멈추기는 뭘 멈춰요. 최 박사, 그 자식. 근처에 있죠?”

부아앙!

지화자가 액셀을 밟았다.

“지, 아니. 유은영 씨! 미쳤어요?! 멈춰! 멈추라고! 앞에 사람 있잖아요!”

하지만 지화자는 멈추지 않았다.

사람이 있는 게 뭐 어때서? 죽기 싫으면 알아서 피할 거다.

노란띠 밖에서 경계 중이던 센터의 직원들이 우왕좌왕하다 비명을 지르며 양옆으로 몸을 피했다.

노란띠가 찢어졌고.

“꺄아악!”

갑작스러운 급정거에 유은영이 비명을 질렀다.

“커허윽!”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사람이 멈춰선 SUV 앞에서 지레 겁을 먹고 탭댄스를 추다가 고꾸라지는 게 보였다.

“쳐, 쳤어요?”

“아니요? 바로 앞에서 멈췄는데 자기 혼자 넘어졌네요. 그것도 넘어질 때 머리 먼저 부딪쳐서 기절했나 봐요. 운도 지지리도 없지.”

지화자의 태평한 말에 유은영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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