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31화 (31/200)

제31화

‘이게 무슨 소리지?’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센터, 그것도 가장 강한 각성자들이 모여 있는 현장 파견 부서 복도에서 울리는 비명이라니.

하지만 놀람도 잠시, 유은영은 곧 그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오, 어깨 부서지는 줄 알았네! 이봐요, 유은영 씨! 폐급 주제에 무슨 힘이 그렇게 세?!”

“하하, 호걸.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0팀의 전담 어시스트 분께서 힘이 아주 장난 아니라고.”

“신영웅, 네가 언제 그랬어?! 유은영 씨 안마가 장난 아니라고만 말했잖아!”

“그게 그 말이었어.”

“야!”

신호걸과 신영웅이 0팀의 사무실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게 보였다. 유은영이 그에 미간을 좁힐 때, 신호걸이 그녀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어, 지화자 팀장이다. 지 팀장, 안녕!”

유은영이 어색하게 신영웅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줬다. 그 옆에서 어깨를 주무르고 있던 신호걸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뭐야, 부장님이랑 이야기하러 갔다더니 벌써 돌아왔어?”

“네에, 뭐. 그렇게 됐네요.”

유은영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신영웅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신호걸의 옆구리를 콕 팔꿈치로 찌르며 물었다.

“지화자 존댓말 진짜 어색하지 않냐?”

“인제 와서 이미지 메이킹 중인가 보지. 그렇지, 지화자 팀장님?”

“편하게 생각해 주세요.”

이 몸 안에 든 사람이 ‘지화자’가 아닌 F급 힐러, ‘유은영’이라고 말할 수 없는 노릇.

유은영은 싱긋 웃었다.

그때, 때를 맞춰 지화자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지화자 팀장님, 오셨습니까?”

“네, 유은영 씨. 라이 씨랑 리아 씨는요?”

“사무실 안에 가하성 씨와 하태균 씨와 함께 있습니다. 조금 전, 영웅호걸 팀장님들께서 사무실 안에 들어오려고 해서 지화자 팀장님 부탁대로 쫓아냈고요.”

“제가 언제 그런 부탁을 했다고 그러세요?”

“아니었나요? 라이랑 리아를 부탁한다고 해서 두 사람을 0팀이 아닌 다른 사람들한테는 내보이면 안 된다는 줄 알았는데요.”

“그렇기는 한데…….”

신영웅과 신호걸이 날 선 눈으로 유은영을 쳐다봤다. 유은영은 그 시선을 모른 척 무시하며 말했다.

“아하하, 일단 들어갈까요? 영웅 씨랑 호걸 씨도 이만 각자 팀으로 돌아가도록 하세요.”

“우와, 신영웅. 조금 전에 들었어? 지화자가 우리 보고 영웅 씨랑 호걸 씨래.”

“그러게, 암만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한다고 해도 사람이 저렇게 바뀌면 금방 죽는다던데.”

“헛소리하지 마시고 어서 팀으로 돌아가시죠?”

라고 말한 사람은 유은영이 아닌 지화자였다.

신영웅과 신호걸은 F급 힐러가 겁도 없이 자신들한테 저런 말을 한다는 게 신기하다는 듯이 웃었다.

“네네, 알겠습니다. 라이랑 리아 녀석한테 안부 전해 줘.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지화자 팀장도 유은영 씨도 다들 수고하세요.”

신영웅이 고개를 살짝 꾸벅이고는 신호걸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유은영이 두 사람이 완전히 모습을 감춘 걸 확인하고는 말했다.

“라이 씨랑 리아 씨가 괜한 소리를 한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저 두 사람, 라이 씨랑 리아 씨 구경하러 온 거죠?”

“정확히는 싸우러 온 거야.”

“네?”

지화자가 양 손목을 꾹꾹 누르며 입을 열었다.

“라이랑 리아 녀석을 정말 ‘구경’하러 오는 사람은 2팀의 나혜선 팀장밖에 없어.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고 신기해하거든.”

“그럼, 저 두 사람은……?”

“싸우러 온 거라니까?”

지화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유은영을 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신영웅도, 신호걸도 꽤 호전적이거든. 현장 파견 부서 내에서 저 두 녀석이랑 싸워 보지 않은 각성자는 거의 없어.”

그 싸워 보지 않은 각성자에 해당되는 사람이 바로 라이와 리아라고 지화자는 덧붙여 말했다.

“신영웅도 신호걸도 라이와 리아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란 걸 알아. 그래서 더욱 그 녀석들이랑 싸워 보고 싶어 하지.”

“미친 거 아니에요?! 라이 씨랑 리아 씨가 어린 거 다 알면서!”

“리아라면 몰라도 라이는 그렇게 어리지 않아.”

“열일곱 살이라면서요? 저랑 무려 열 살 차이라고요! 제가 곱셈을 다 떼고 나눗셈에 들어갈 때 라이 씨는 막 태어나 울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니까 라이가 엄청 어린 것 같네.”

“어쨌든요!”

유은영이 빼액 소리를 지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화자 씨를 사무실에 두고 가기를 잘했네요. 영웅 씨랑 호걸 씨가 진짜로 찾아올 줄이야.”

그때, 유은영이 지화자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신영웅이랑 신호걸은 나랑 동갑이야. 나란히 스물다섯이라고.”

“아, 그래요?”

유은영이 아차 싶은 얼굴로 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서로 존중을 표하는 건 어때요?”

“어떨 것 같아?”

유은영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지화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도 이제 몰라. 언니 마음대로 해. 존댓말을 사용하든 반말을 사용하든 아주 그냥 마음대로 하세요, 유은영 씨.”

“고마워요, 모두에게 착한 지화자가 되도록 노력해 볼게요.”

“굳이 노력할 필요는 없는데.”

유은영은 못들은 척 한 귀로 넘겨 들었다.

“그보다 영웅 씨와 호걸 씨는 어떻게 쫓아냈어요?”

“안마로.”

“네?”

되묻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두 손을 쫙 펼쳤다.

“언니 악력이 은근 세더라고. 이 손으로 두 사람의 어깨를 열심히 주물렀더니 아주 비명을 지르면서 난리를 치던데?”

“…….”

사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힐(Heal)’은 사실 공격 스킬이 아니었을까?

유은영이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지화자는 그저 씨익 웃을 뿐이었다.

‘재미있다니까?’

유은영에게는 보이지 않을, 자신에게만 나타난 시스템 창.

[성언(聖言)의 효과로 고유 특성 ‘안녕(安寧)’과 보조 특성 ‘힐(Heal)’의 능력치가 10% 향상되었습니다.]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유은영 씨의 성언(聖言)이 왜 상처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인가 했더니만.’

바보 같은 언니는 제가 가진 힘으로 단 한 번도 남에게 상처 입힌 적이 없을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언니는…….’

지화자의 생각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안쪽에서 라이와 리아가 얼굴을 내밀었다.

“누님!”

“지화자다!”

라이와 리아가 조르르 달려 나왔다. 유은영은 얼떨결에 두 사람을 반겼다.

“라이 씨, 리아 씨. 가하성 씨랑 하태균 씨랑 잘 있었어요?”

“네! 하성 형님이 이제부터 매일 센터에 나오냐고 묻던데 어떻게 대답해요?”

“우리 내일부터 매일 지화자랑 같이 출근해? 그러는 거야?”

아, 맞다.

‘라이 씨랑 리아 씨, 지화자 씨 집에 데려가기로 했지.’

지화자도 뒤늦게 그 사실을 떠올렸는지 골치 아프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유은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맞아요. 하지만 그 전에.”

유은영이 사무실 안을 흘긋거리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라이 씨, 리아 씨. 저랑 약속 하나 해 줄 수 있어요?”

“무슨 약속이요?”

리아가 라이의 질문에 맞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은영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냈다.

“사실, 제집에 동거인이 한 명 있거든요.”

“동거인이요?!”

“쉿!”

유은영이 황급히 라이에게 주의를 줬다.

라이가 두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고는 한껏 목소리를 죽여 유은영에게 물었다.

“남자예요?”

“저도 남자면 좋겠네요.”

지화자가 두 눈을 뾰족하게 세우며 유은영을 노려봤다. 유은영은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라이 씨랑 리아 씨도 아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같이 사는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한 상대라서요. 그러니까, 두 사람.”

유은영이 간절한 목소리로 라이와 리아에게 부탁했다.

“그 사람이랑 제가 함께 사는 걸 비밀로 해 줄 수 있어요?”

라이와 리아는 서로를 한 번 쳐다보고는 이내 활짝 웃었다.

“네, 누님!”

“응, 지화자가 누구랑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꼭 비밀로 해 줄게! 나랑 오빠는 약속 잘 지켜!”

“맞아요, 약속 잘 지켜요!”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유은영이 방긋 웃었다.

“고마워요. 꼭 좀 부탁할게요.”

“네에!”

“응!”

라이와 리아가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화자는 그런 둘을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쳐다봤지만…….

‘어쩔 수 없지.’

명목상 집주인이 된 유은영이 두 사람을 거두겠다는데 자신이 나서 그러면 안 된다고 할 수 없었다.

‘라이랑 리아, 두 녀석 입이 무겁기를 바랄 수밖에.’

지화자는 말없이 라이와 리아를 쳐다봤다. 그녀가 너무 뚫어지게 본 게 죄였을까?

라이랑 리아가 지화자를 보고는 주춤거리며 유은영의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런데 지화자야.”

“네, 리아 씨.”

“유은영이랑 같이 살고 있는 건 아니지?”

유은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리아에게 물었다.

“유은영 씨가 왜요? 싫어요?”

“싫은 건 아닌데 무서워.”

“맞아, 무서워요. 영웅 형님이랑 호걸 형님을 손 하나로 제압하는 사람은 처음 봤거든요.”

지화자 씨, 영웅호걸 팀장님들을 도대체 어떤 식으로 제압한 거예요? 진짜 안마만 해 준 거 맞아요?

유은영은 많은 뜻이 담긴 시선을 지화자에게 보냈다. 당연히 지화자는 그 시선을 못 본 척 무시하며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 이만 사무실로 들어갈까요? 우종문 부장님께서 우리 0팀에 부탁한 일도 있잖습니까? 관련해서 팀원들과 이야기 나눠야죠.”

“아아, 네.”

유은영이 라이와 리아를 챙기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지화자는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들어선 사무실, 유은영은 곧장 밖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팀원들에게 알려 줬다.

또한, 우종문 부장한테서 받은 지시 사항을 팀원들에게 알렸다.

“…최 박사라니, 그 이름 다시는 못 들을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5년 전이었죠? 팀장님께서 단독으로 최 박사네 연구소 박살 내러 갔을 때가.”

“아마 그때쯤일 거예요.”

사실 모르지만 유은영은 대충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정답이었는 듯, 가하성이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연히 그때 연구소가 무너지면서 함께 죽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어디에서 또 그런 미친 실험을 자행 중인 건가?”

“혹시 모를 일이지, 하성아. 최 박사의 추종자들이 그런 일을 벌이고 있는 걸지도.”

“그건 그것대로 문제네요.”

아무래도 최 박사는 자신의 생각보다 꽤 유명한 모양이다.

유은영은 어색하게 웃는 낯으로 팀원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일단, 최 박사의 연구소가 있었던 곳을 주변으로 그의 행적을 좇아야겠네요.”

“저는 중부 경찰서에 가서 팀장님께서 처치하셨다는 몬스터 좀 확인해 보겠습니다. 최 박사의 연구소에서 도망친 녀석이라면, 분명 표식이 있을 테니 말입니다.”

“하긴, 그 자식. 자기 실험체에 자기 흔적 남기는 거 엄청 좋아했죠.”

가하성이 무심하게 내뱉은 말에 라이와 리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오직, 유은영만이 본 변화.

그녀는 라이와 리아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고는 말했다.

“최 박사의 행적을 좇는 건 내일부터 하도록 하죠. 오늘은 이만 퇴근들 해요.”

“그렇게 말한다면야.”

가하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태균이 눈치를 보다 몸을 일으켰다.

“그럼, 팀장님. 보고서 마무리 작업 부탁드리겠습니다. 늦어도 내일 오전에는 부장님께 보고 올리러 가야 하는 거 알죠?”

“네?”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가하성은 수고하라는 말만 남기고 재빠르게 사무실을 벗어나 버렸다.

“하하, 그럼 저도 이만.”

하태균도 가하성의 뒤를 따라 0팀의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유은영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지화자에게 물었다.

“유은영 씨, 주말에 치렀던 S급 시나리오 게이트 관련 보고서는 이번 주 중으로만 정리해서 올리면 되는 것 아니었어요?”

“아아, 지화자 팀장님께 전달이 안 됐나 보군요. 우종문 부장님께서 S급 시나리오 게이트 관련 보고서 늦어도 내일 오전 중으로 올려 달라고 했습니다.”

“…….”

잔업 확정이었다.

“누님, 잔업인가? 그거 해야 되죠?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릴까요?”

“기다려야겠지, 지화자야?”

유은영은 꼬질꼬질하기 그지없는 모습인 라이와 리아를 보고는 씁쓸하게 미소를 그렸다.

“기다릴 필요 없어요. 보고서 마무리 작업은…….”

집에 가서 하면 되니까요.

라는 그 말을, 유은영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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