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쿠웅―!
거미의 형상을 띈 거대한 몬스터가 맥없이 도로에 쓰러졌다.
유은영은 가볍게 몬스터를 처치한 후, 흐트러진 머리칼을 무심하게 정리했다.
‘생각보다 쉽네.’
라이와 리아가 처리했던 것보다 크기가 작기는 했다.
하지만 S급 몸뚱이를 차지하고 있는 유은영이 아닌, 다른 각성자였다면 손쉽게 처리할 수 없었을 거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지화자 님!”
“아니에요,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이에요”
친절한 목소리에 경찰이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분명, 소문의 지화자였다면 제 말에 ‘알아서 다행이다’라는 식의 말이 튀어나올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오늘 하루만 몬스터 두 마리째네요.”
“네? 아니, 한 마리가 더 있었단 말입니까?”
“네, 광화문 근처 사거리에 그 흔적이 있을 텐데…….”
“아아, 네! 압니다! 웬 오물이 도로에 쏟아져 있다고 하더니만 저것과 같은 몬스터였나 보군요!”
경찰의 호들갑에 유은영이 그렇다면서 방긋 웃었다.
“아이고, 그 몬스터까지 지화자 님께서 처치하셨을 줄이야!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받을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닌걸요? 그럼, 수고하세요.”
유은영은 싱글벙글 웃으며 경찰한테서 걸음을 옮겼다.
‘신기해.’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쁠 줄이야.
‘내 몸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겠지.’
몬스터를 처치하기는 무슨, 잡아 먹히지 않으면 다행인 일이었을 거다.
‘그리고 괜히 나섰어도 F급 힐러가 낄 때 안 낄 때 구분 못 한다고 욕먹었겠지.’
어쨌거나 유은영은 지화자에게 돌아간 후 그녀에게 소곤거리며 물었다.
“지화자 씨, 있잖아요.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오늘만 하더라도 벌써 몬스터가 두 마리나 나타났잖아요. 주변에 게이트가 터진 것도 아닌데.”
게이트가 터졌다면 아주 난리가 났을 거다. 그 말에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하긴 이상하기는 하네. 다른 몬스터가 나타나도 이상한데 같은 몬스터가 두 마리 째라니.”
이상해도 뭔가 단단히 이상했다.
“혹시… 그 새끼 살아 있는 건가……?”
“누구요?”
“라이랑 리아, 그 두 녀석을 탄생시킨 미치광이 과학자.”
유은영이 놀라 물었다.
“죽은 거 아니었어요?!”
“죽었어, 아마도.”
지화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마지막에 제압할 때, 그 자식이 자폭했거든.”
그래서 생사가 불분명하다고 지화자는 덧붙여 말했다. 그 말에 유은영이 경악했다.
“그럼, 저것들! 그 미치광이 과학자가 벌인 짓일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뭐, 그럴 수 있기는 하지만 그 자식의 추종자가 벌인 일일 수도 있어.”
“추종자도 있었어요? 도대체 왜?”
“미친 사람들 생각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지화자가 픽 웃었다.
“일단, 언니가 몬스터를 멋지게 무찌르는 광경은 녹화 잘 됐으니까 중부 경찰서로 가자. 이왕이면 저 사체도 함께 가지고 갔으면 하는데…….”
지화자의 시선이 유은영에게로 향했다. 그 눈빛에 담긴 뜻은 이러했다.
언니가 저 사체를 중부 경찰서까지 끌고 와라.
‘라는 눈빛이겠지!’
지화자의 눈빛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유은영이 기겁했다.
“싫어요!”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지화자가 픽 웃고는 유은영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던 경찰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경찰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눈 후 유은영에게 돌아왔다.
“무슨 이야기 했어요?”
“저 사체 중부 경찰서로 옮겨 달라고 했어. 블랙박스 녹화 영상만으로는 안 믿을 확률이 크니까.”
유은영이 질겁하며 도로 위의 사체를 쳐다봤다. 그새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어 대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안 징그럽나 봐요.”
“대부분 10년 만에 보는 몬스터일 텐데 신기하겠지. 자, 언니. 감탄은 그만하고 어서 차에 타. 라이랑 리아 녀석 걱정된다며? 어서 가 봐야지.”
“아, 네!”
유은영이 후다닥 차에 올라탔다. 지화자는 그대로 차를 몰았다.
면허가 없는 유은영의 몸이건만, 지화자는 태연하게 경찰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몇 번 액셀을 밟은 끝에 유은영은 지화자와 함께 중부 경찰서에 도착했다.
그리고 때를 맞춰 경찰서를 빠져나오고 있는 라이와 리아를 발견했다.
“누님!”
“지화자다! 할배, 지화자가 우리를 데리러 왔어!”
문제는, 두 사람 곁에 우종문이 있었다는 거다.
유은영이 당황하여 멈칫했다.
“부, 부장님?”
“그래, 지화자 팀장. 연락해 준 덕분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네. 고맙네.”
“아… 아닙니다.”
유은영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그녀의 옆에 있던 지화자가 우종문에게 물었다.
“라이와 리아를 위해 직접 움직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센터 소속의 변호사에게 일을 맡길까 했지만, 이 두 녀석이 낯을 워낙 가려서 말이야.”
낯을 가린다고요? 누가요, 라이 씨랑 리아 씨가요?
‘전혀 그렇게 안 보였는데?’
당장, 제 몸을 차지하고 있는 지화자를 향해 아줌마니 뭐니 그런 소리를 했던 둘이다.
유은영은 치미는 말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하하, 그렇기는 하죠. 그래서 직접 오신 겁니까?”
“그렇다네, 나 역시 센터에 소속되기 전에는 변호사로 일했으니 말이지.”
“오…….”
유은영이 입술을 오므렸다.
자신의 민머리 부장과는 다르게 우중문은 참으로 능력 있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긴, 그러니까 부장직을 맡고 있는 거겠지.’
사람이 몇 없어서 꽁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민머리 부장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보다 자네들은 여기까지 무슨 일인가? 라이와 리아가 걱정돼서 온 건가?”
“네? 아, 네에…….”
유은영이 멋쩍게 웃었다.
“하긴, 지화자 팀장. 자네도 알게 모르게 라이와 리아를 챙겼으니 말이지. 하지만 유은영, 자네는 오늘 쓰러졌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움직여도 되는가?”
“네, 괜찮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화자가 싱긋 웃고는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을 도와드리고도 싶고, 무엇보다 박지완 형사한테 전달 드릴 자료도 있어서요.”
“흐음?”
때를 맞춰 유은영이 처치했던 몬스터의 사체가 중부 경찰서로 들어왔다.
“어? 또 다른 거미 친구다! 오빠, 거미 친구야!”
“그러게, 또 만나네!”
리아의 말에 라이가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화자는 중부 경찰서 앞에 끌려온 몬스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라이와 리아가 용의자로 지목된 연쇄 살인 사건의 진짜 범인입니다. 아직 추정이지만요.”
“…저건 몬스터가 아닌가? 그것도 충종의 한 종류인 것 같군.”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거리에 나타나 저희를 공격하더군요.”
정확히는, 몬스터가 사람들을 해치기 전에 유은영이 처리했지만 말이다.
“게이트가 터졌다는 연락은 받은 게 없는데…….”
우종문이 심각하게 표정을 굳히고는 지화자에게 물었다.
“지화자 팀장,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 가는 것 없나?”
“네? 아, 넵. 짐작 가는 게 한 가지 있기는 합니다.”
“뭐지?”
“미치광이 과학자 기억하십니까?”
“미치광이 과학자……?”
우종문이 그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는 듯이 유은영을 쳐다봤다. 그에 지화자가 유은영의 옆구리를 콕 찌르고는 소곤거렸다.
“최 박사라고 해. 그러면 알아들을 거야.”
유은영이 냉큼 말을 내뱉었다.
“최 박사요.”
유은영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라이와 리아가 몸을 움찔거렸다. 우종문은 미간을 좁혔다.
“그 인간, 죽은 것 아니었나?”
“최 박사와 함께 연구소가 폭발되기는 했지만, 그 생사는 불분명했으니까요.”
“흐음.”
우종문이 침음을 삼키고는 이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환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지화자 팀장. 자네 0팀에게 임무를 맡기도록 하지.”
“네?”
임무요? 여기서 이렇게요? 그보다 저, 보고서 정리할 게 아직 남아 있는데요?
유은영이 잔뜩 당황한 얼굴로 우종문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우종문이 싱긋 웃었다.
“최 박사를 쫓도록 하게. 그 생사를 확인한 후, 살아 있다면 포박하도록.”
유은영은 마음 같아서는 안 된다고, 보고서 정리할 게 수십 가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네, 알겠습니다.”
까라면 까야 할 운명.
유은영은 애써 끌어 올린 입꼬리를 파르르 떨며 그렇게 대답했다.
***
“아악! 신이시여! 도대체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안 그래도 일이 산더미인데 귀찮은 일까지 떠맡게 됐다.
유은영은 아직 중부 경찰서였다. 박지완 형사와 우종문이 아직 대화 중이었기 때문이다.
지화자가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 삼키고는 유은영에게 그것을 넘기며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 좋게 생각하세요. 최 박사가 정말 살아 있다면 만일의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잖아요?”
만일의 사태, 그건 최 박사가 수중의 몬스터를 도시에 푸는 일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지옥이 펼쳐지게 되리라.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상황에 유은영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지화자에게 물었다.
“만약, 최 박사가 그때 죽었고 저는 뻘짓을 하는 거라면요?”
“유감이죠.”
저기요!
유은영은 빽 소리 지르고픈 마음을 꾹 눌러 담았다. 대신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센터로 돌아가자마자 가하성 씨랑 하태균 씨한테 최 박사와 그 주변인에 대한 행적을 조사해 달라고 해야겠네요.”
“최 박사는 조사해 봤자일걸? 그 자식 연구소를 습격했던 건, 5년도 더 된 일이니까.”
더욱이 그때, 센터는 최 박사의 사망을 공공연하게 인정한 후 조사를 종료했었다.
“후우…….”
유은영이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쉴 때였다.
“미안해요, 누님.”
“맞아, 지화자야. 미안해.”
라이와 리아가 우물쭈물 유은영에게 사과했다. 유은영이 놀라 두 사람에게 물었다.
“라이 씨랑 리아 씨가 왜 사과를 하고 그러세요?”
라이와 리아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 때문에 그 새끼를 쫓게 된 거잖아.”
“맞아, 우리가 쥐 죽은 듯이 어디 한곳에 얌전히 있었으면 지화자가 할배 말대로 움직일 일이 없었을 거잖아.”
“알아서 다행… 읍.”
유은영이 지화자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달랬다.
“라이 씨, 리아 씨.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저는 정말 괜찮으니까요.”
“그치만…….”
“정말 괜찮다니까요? 그보다 두 사람은 우종문 부장께서 새집을 마련해 줄 때까지 센터 내 당직실에서 지내는 게 어때요?”
라이와 리아가 서로 흘긋거리는 시무룩하게 입술을 씰룩였다.
“어두운 곳 싫어요.”
“맞아, 아무도 없는 거 싫어.”
“아니에요. 아무도 없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아요.”
유은영이 방긋 웃었다.
“센터는 낮이고 밤이고 환한 곳이잖아요? 우리가 뭐예요? 야근의 민족이잖아요!”
라이와 리아가 알아듣지 못했다는 듯 멍한 얼굴로 유은영을 쳐다봤다.
지화자는 제 입을 틀어막고 있던 유은영의 손을 떼어 내고는 짧게 혀를 찼다.
“지화자 팀장님, 저 녀석들은 서로 떨어지기 싫다는 소리를 하는 겁니다. 센터 내 당직실은 남녀가 구분되어 있잖습니까?”
“그래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어서 몰랐다. 지화자는 유은영의 손이 닿았던 입가를 찝찝하다는 듯 닦아 내고는 말했다.
“그냥 사무실에서 재우는 게 좋을 겁니다.”
“사무실에서 어떻게 재워요?!”
있는 거라고는 샤워실과 사용한 적이 없어 보이는 오래된 소파가 전부인 곳이었다.
경악하여 묻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럼, 센터 옥상에 텐트라도 쳐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서울 야경도 보고 미세 먼지도 먹고 좋을 것 같은데요.”
“장난해요?!”
도대체 지화자, 저 인간의 머릿속은 어떻게 되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유은영이 와락 얼굴을 찌푸리던 그 순간.
“지화자야, 그냥 우리 너희 집에서 지내면 안 돼?”
“맞아요, 누님 집 엄청 넓잖아요. 우리 둘 정도는 거둬도 될 텐데. 무엇보다 우리 어릴 때 같이 살았었잖아요!”
라이와 리아가 절대로 안 될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 말은.
“오, 좋은 생각이군.”
마침, 박지완과의 대화를 끝마치고 나오던 우종문이 듣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