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갑작스럽게 나타난 몬스터를 처치한 건 좋았다.
문제는.
“죄송하지만, 지화자 씨. 몬스터가 그간 살인 사건의 가해자라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지 않습니까?”
서울 전역에서 일어나던 연쇄 살인 사건의 증거가 모조리 사라졌다는 거다.
‘환장하겠네!’
지화자가, 아니. 유은영이 사납게 머리를 헤집었다. 이 와중에 지화자는 태연하게 상황을 구경했다.
그 모습에 유은영은 한껏 얼굴을 찌푸렸다.
“유은영 씨!”
“네, 지화자 팀장님.”
네, 지화자 팀장님?
‘사람이 왜 저렇게 태연해!’
유은영이 치미는 화를 애써 삼키고는 지화자에게 소곤거렸다.
“저분께 뭐라 말 좀 해 주세요!”
“내가 왜?”
왜기는 왜야!
유은영이 속 터져 미치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분께서 지금 라이 씨와 리아 씨를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 중인 거 아시잖아요?”
“알지. 그런데 저 녀석이 뭐 어쩔 거야?”
“네?”
지화자가 비웃음을 흘렸다.
“영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걱정 마, 언니. 지금 당장 라이랑 리아 녀석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날 건 아니니까.”
라고 말하기 무섭게 박지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전화를 끊은 후, 무심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유은영에게 전했다.
“조금 전에 영장 발부됐습니다. 라이, 리아. 두 사람을 서울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네?!”
유은영이 놀라 외쳤다.
“증거도 없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 전에 영장이 발부됐다고 해도 그걸 가져와야 할 것 아닌가!
유은영이 두 팔을 벌려 박지완의 앞을 막았다. 그에 박지완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지화자 팀장님. 라이와 리아, 두 사람의 존재 자체가 그 증거입니다. 모르지 않을 텐데요?”
몰라요! 모른다고!
유은영이 당황해할 때, 지화자가 라이와 리아를 불렀다.
“라이, 리아.”
불안한 눈빛이던 두 사람이 우물쭈물거리며 유은영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지화자에게 다가갔다.
지화자는 라이와 리아의 정수리 위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그러고는 투박하게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라이가 입술을 우물거리며 지화자에게 물었다.
“…아줌마가 우리 구해 주러 올 거예요?”
“생각해 보고.”
그 말에 라이가 금방에라도 울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옆에 있던 리아도 마찬가지.
“유은영 씨, 안 그래도 애들 놀랐을 텐데 놀리지 마세요!”
지화자는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휴, 정말!’
저 성격 파탄자를 어쩌면 좋아!
유은영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라이와 리아에게 다가갔다.
“라이 씨, 리아 씨.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으세요. 묵비권 행사할 줄 알고?”
“그게 뭔데요?”
“맞아, 묵비권이 뭔데?”
음, 모르는구나.
유은영이 멋쩍게 웃고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으시면 돼요. 알겠죠?”
“네.”
“응!”
라이와 리아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은영은 아이들의 고갯짓에 옅게 미소를 짓고는 박지완에게 경고했다.
“애들 괜히 위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박지완 형사님.”
박지완은 순식간에 달라진 여자의 분위기에 입술을 살짝 벌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너무 유해서 정말 눈앞의 여자가 ‘지화자’인가 싶었더니.
‘지화자가 맞기는 맞군.’
박지완이 말없이 눈앞의 여자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유은영이 날카롭게 두 눈을 빛내며 대답을 재촉했다.
“박지완 형사님, 제 말에 대답 안 하십니까?”
“…알겠습니다, 지화자 씨. 라이 군과 리아 양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박지완은 그 말을 끝으로 라이와 리아를 데리고 경찰차로 향했다. 그 뒷모습에 지화자가 중얼거렸다.
“언제봐도 참 싸가지 없다니까?”
“박지완 형사님께서 들어요!”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아무리 생각해도 지화자의 성격은 정말 더러운 것 같다.
유은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 어쩌죠?”
“도움을 줄 사람에게 변호사 좀 불러 달라고 해야지. 웬만해서는 돈 몇 푼 쥐여 주면 되는데, 박지완 저 자식을 그걸로 안 되는 녀석이거든.”
형사에게 돈을 쥐여 줄 생각을 하는 지화자 씨가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유은영이 치밀어 오르는 말을 꾹 눌러 삼키고는 말했다.
“도움을 줄 사람이라면…….”
“라이랑 리아 녀석의 보호자 분께 연락드려야지.”
“아.”
유은영이 얼빠진 소리를 내고는 휴대폰을 들었다. 그녀는 곧장 연락처에서 ‘우종문’이란 이름 석 자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몇 번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우종문이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인가, 지화자 팀장?
크흠, 유은영이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부장님, 다름이 아니라 라이 씨와 리아 씨 관련으로 연락드렸습니다.”
유은영은 조심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건넸다.
***
유은영이 우종문에게 연락을 건 그때, 라이와 리아는 취조실에서 한껏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촤르륵―!
테이블 위에 쏟아진 사진들에 라이와 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예요?”
“맞아, 이게 뭐야?”
두 사람의 질문에 박지완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간 피해자들의 사진입니다. 아시는 것 없습니까?”
“모르겠는데요.”
“맞아, 모르겠어.”
라이와 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지화자와 유은영은 두 사람에게 말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지만 라이와 리아는 박지완의 질문에 답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어릴 적, 어두컴컴하고 습하기 그지없던 실험실과도 같은 이곳을 바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아는 것 없습니까?”
“네.”
“응.”
라이와 리아가 불안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책상 아래로 서로 손을 맞잡았다.
‘리아, 여차하면 저 사람 제압하고 이곳을 탈출하자.’
‘응!’
라이와 리아는 말없이 대화를 주고받고는 박지완을 노려봤다. 유은영과 지화자가 알았다면 이마를 짚었을 계획이었다.
어쨌거나 라이와 리아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알 리가 없는 박지완은 말했다.
“보시면 알겠지만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거미줄에 휘감겨 질식해 죽었습니다.”
“그래서요?”
“그런데?”
박지완이 미간을 좁혔다.
“당신들, 정말 모르겠습니까? 이런 짓을 행할 수 있는 존재는, 아라크네의 유전자를 받은 당신들뿐입니다.”
아라크네.
박지완의 입에서 나온 몬스터의 이름에 라이와 리아의 두 눈이 매서워졌다.
그래봤자 앳된 티를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의 눈. 박지완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아니,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라이와 리아의 시선에 오금을 저렸을 테다.
하지만 박지완은 지화자 뺨칠 정도로 성격 더럽기로 소문이 난 형사였다.
라이와 리아는 자신들이 보낸 위협이 박지완에게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않은 것을 알고서 말했다.
“이제 아무 말도 안 할 거예요. 묵비권 행사할 거라고요!”
“맞아! 지화자랑 지화자 옆에 있던 아줌마가 말한 대로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라이와 리아가 박지완한테서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박지완은 쯧, 가볍게 혀를 찼다.
취조실에 불청객이 찾아온 건 그때였다.
“박지완 형사님, 센터의 우종문 부장님께서 찾아왔습니다.”
우종문, 그 이름에 박지완의 얼굴이 처음으로 금이 갔다.
***
“괜찮을까요?”
“괜찮을 거야.”
“하지만…….”
유은영이 우물쭈물거렸다.
“지화자 씨께서 그러셨잖아요. 우종문 부장님, 라이 씨랑 리아 씨를 그렇게 생각하시지는 않는 다고요.”
“내가 언제 그랬어? 진짜 자식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했던 것 같은데?”
“어쨌든 같은 말이잖아요.”
“아니거든?”
끼이익, 바뀐 신호에 지화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우종문 부장, 자기가 거둔 애들은 확실하게 챙겨. 진짜 자식처럼 예뻐해 주지는 않지만 말이지.”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는 소리죠?”
“그래.”
지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언니는 오늘 처음 만난 애들한테 관심도 많네.”
“아직 어린 애들이니까요. 그리고 실험체였다면서요? 사랑받고 못 자랐을 게 분명하니까요.”
“실험체가 아니었다고 해도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나는 애들은 꽤 많아.”
“그러겠죠. 하지만 저는 사랑 받고 자랐단 말이에요.”
그 말에 지화자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긴, 언니는 그렇게 보여.”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부러움이 담겨 있는 듯도 했다.
하지만 지화자의 입가에 걸쳐졌던 웃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 걱정되면 부장한테 전화해봐. 잘 해결됐을 테니까.”
“그래도 될까요?”
“싫으면 말고.”
그만 좀 물어보란 듯, 지화자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유은영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바뀐 신호에 출발하려던 지화자가 급브레이크를 밟은 건 그때였다.
끼이익! 멈춘 차에 유은영이 비명을 질렀다.
“악! 뭐예요?! 또 거미라도 나타났어요?”
“거미는 안 나타났고, 경찰차가 나타나서.”
그 말대로 경찰차가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사거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유은영이 그 뒷모습을 보다가 빽 소리 질렀다.
“지화자 씨, 쫓아요!”
“누구를? 경찰차를?”
“아니요! 몬스터를요! 라이 씨와 리아 씨가 처치했던 그 몬스터, 지금 저기에 다시 나타났어요!”
S급 몸뚱이의 예리한 감각에 포착된 몬스터였다.
지화자는 보이지 않는 듯했으나 그녀는 유은영의 말에 곧장 핸들을 돌렸다.
“언니, 내가 박지완 형사에 대해 알려 주겠다고 했었지.”
“네, 그런데 그분 이야기는 여기에서 갑자기 왜 꺼내세요?”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지화자가 액셀을 밟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라이와 리아, 그 두 녀석을 탄생시킨 미치광이 과학자는 살아 있는 인간을 몬스터로 만드는 실험도 진행했었어.”
“무슨 그런 미친 사람이 다 있었대요?”
유은영이 미친 듯이 울리는 배기음 소리에 손잡이를 잡았다. 지화자는 거리의 자동차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미치광이 과학자라고.”
어쨌든 간에.
“그 피해자 중 한 명이 박지완 형사의 동생이었어.”
“네?”
유은영이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지화자는 경찰차의 뒤를 바짝 추격하며 말했다.
“라이랑 리아, 두 녀석은 말이야. 우종문 부장이 거두기 전, 원래 처분당할 운명이었어.”
그야, 인간이 아닌 몬스터에 가까운 존재들이라 그랬다. 사회에 어떤 위협을 줄지 모르니.
“그리고 박지완 형사는 라이와 리아, 두 녀석이 처분당하기를 바라는 녀석이었지.”
지화자는 말했다.
박지완은 라이와 리아가 제 동생의 실험 데이터를 통해 이 세상에 탄생한 녀석들이라 생각한다고.
“그걸 용납할 수 없는 거겠지. 자신의 동생은 죽었는데, 라이랑 리아 녀석들은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게 말이지.”
“…그렇다고 해도, 라이 씨랑 리아 씨한테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걸요?”
“박지완 형사도 알 거야.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건 다르잖아?”
그러니까 네가 이해하라며 지화자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어쨌든, 그래서 박지완 형사는 나랑 사이가 안 좋아. 싫으나 미우나 우종문 부장은 내 상사고, 나는 그 인간의 사람이니까.”
“그렇군요…….”
유은영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이유로 라이 씨와 리아 씨를 용의자로 몰아세우는 건 납득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쫓고 있잖아? 저 몬스터를.”
드디어 지화자의 두 눈에도 몬스터가 포착됐다.
“어때, 언니? 저 녀석 처치할 수 있겠어?”
“네, 차에 블랙박스 있죠?”
“응.”
유은영이 안전벨트를 풀었다.
“녹화 부탁해요. 박지완 형사한테 라이 씨와 리아 씨의 무죄를 밝힐 증거 자료로 제출하게요.”
“걱정 붙들어 매셔.”
블랙박스는 진작 녹화를 시작한 상태였다.
지화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곤 창문을 내려 주었다. 유은영은 그대로 창문 밖에 매달렸다.
서로 틱틱거리면서도 손발이 척척 맞는 두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