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26화 (26/200)

제26화

유은영은 센터에 소속된 0팀의 미성년자 팀원들이 노숙하고 있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자마자 지화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지화자는 금방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화자 씨?”

―뭐야, 무슨 일이야?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는데. 라이랑 리아 녀석은 만났어? 지금 어디 있어?

“지금 라이 씨랑 리아 씨한테 저녁 사 주고 있어요.”

―웬 저녁?

“그런 게 있어요.”

라이와 리아는 지금 후식을 먹는 중이었다.

그 두 사람한테서 잠깐 떨어진 유은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지화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지금 어디 있는데?

“여기가…….”

아무 생각 없이 가게 주소를 불러 주려던 유은영이 다급히 말을 쏟아 냈다.

“라이 씨랑 리아 씨의 용돈! 아니, 월급! 지화자 씨가 관리 중이라면서요?!”

―아, 맞다. 그랬지, 참.

아, 맞다. 그랬지, 참?!

유은영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하’ 웃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지화자 씨, 장난해요?!”

―내가 뭘?

지화자가 왜 갑자기 짜증을 내냐는 듯한 투로 물었다. 유은영은 그에 버럭 화를 냈다.

“애들 월급을 왜 지화자 씨가 관리하고 있는 거예요! 라이 씨랑 리아 씨가 지금까지 어떻게 생활하고 있었는지 아세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지화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내가 걔들 월급을 관리하고 싶어서 관리 중인 줄 알아? 부장이 관리하라고 했다고.

상관이 까라면 까는 것이 부하의 도리. 그건 랭킹 1위라고 해도 해당이 되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유은영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지화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애들 월급을 단 한 푼도 안 줄 수 있어요? 지화자 씨 돈도 많으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매달 두 사람한테 100만 원씩 꼬박 용돈 보내 줬는데.

그것도 내 돈으로.

덧붙인 목소리에 유은영이 홱 고개를 돌려 라이와 리아를 보았다. 후식을 먹고 있던 라이와 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지화자야, 뭘 봐?”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라이와 리아에게 물었다.

“제가 두 사람한테 매달 용돈 보내 주지 않았나요?”

“그랬죠?”

“그런데 그건 어쩌고 밖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거예요?”

라이가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그게 말이죠, 누님. 인터넷 뱅킹 비밀번호 잊어버렸거든요.”

“그리고 휴대폰도 잃어버렸어!”

맙소사.

유은영이 이마를 짚었다. 앓는 목소리를 들었는지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무슨 일인데?

“라이 씨랑 리아 씨, 바깥에서 생활 중이었대요.”

―집은 어쩌고?

“쫓겨났다는데요.”

―뭐? 당장 이번 달 월세도 입금해 뒀는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화자가 빼액 소리 질렀다.

―연락처에 집주인 번호 있을 거야. 그쪽에 한 번 전화 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 봐.

“알겠어요.”

유은영이 지화자와의 통화를 잠깐 끊고는 연락처를 뒤졌다. 그녀는 그대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삐 소리 이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몇 번을 걸어도 마찬가지. 결국, 유은영은 집주인과의 연락을 포기하고 지화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래.

“안 받는데요.”

스마트폰 너머로 거친 욕설이 들려왔다. 유은영이 제 귀에서 스마트폰을 떼어 낼 정도로 아주 험한 욕설이었다.

―언니? 언니!

“아, 네.”

―일단 어디에 있는지 주소 불러. 당장 그쪽으로 갈게.

유은영은 고민하다가 지화자에게 주소를 남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화자가 도착했으니 내려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때마침 라이와 리아가 후식을 해치운 참이라 유은영은 두 사람을 데리고 가게를 벗어났다.

“지화자 팀장님, 여기입니다.”

다행히도 지화자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유은영은 라이와 리아를 데리고 지화자에게 다가갔다.

라이와 리아가 유은영의 뒤에 몸을 숨기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누님, 저 사람 누구예요?”

“지화자야, 쟤 누구야?”

“저분은 유은영 씨. 0팀의 어시스트로 오신 분이세요.”

“오.”

라이와 리아가 입술을 오므렸다.

“어시스트가 뭔데요?”

“맞아, 어시스트가 뭔데?”

“너희 아프면 치료해 주는 사람.”

답해 준 사람은 유은영이 아니었다.

성큼, 두 사람 앞에 다가선 지화자가 유은영의 얼굴로 차갑게 물었다.

“언제부터 밖에서 생활한 거야?”

라이와 리아가 두 눈을 데굴 굴리고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두 달 됐지?”

“응, 두 달 됐어.”

지화자가 그 말을 듣고는 짜증스럽게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쫓겨난 이유는?”

“자기네들이 들어와서 살 거라고 나가라고 하던데요. 그렇지, 리아?”

“응, 맞아!”

지화자가 기가 차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젠장, 괜히 부장 이름으로 했군. 내 명의로 집을 구해 주는 건데.”

그렇게 말한 지화자가 라이와 리아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연락을 했어야 할 것 아니야?!”

라이와 리아가 움찔 몸을 떨고는 우물쭈물거렸다.

“그렇지만, 우리 처음 보는 사이잖아요.”

“맞아,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인데 어떻게 연락을 하라는 거야?”

“바보 같아요.”

“그치, 오빠? 저 여자 바보 같지?”

저 자식들이.

지화자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언제 봐도 참 죽이 잘 맞는 남매였다. 그나저나.

“돈은 어쩌고 노숙하고 있었던 거야?”

소리 높여 묻는 지화자의 목소리에 유은영이 입을 열었다.

“인터넷 뱅킹 비밀번호를 잊었대요. 휴대폰도 잃어버렸고요.”

“그럼, 센터로 찾아왔어야지!”

버럭 지르는 목소리에 라이와 리아가 데굴 눈을 구르고는 말했다.

“찾아가고 싶었지만 가는 길을 몰랐단 말이에요!”

“그리고 돈도 없었어!”

지화자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런 그녀를 진정시키는 사람이 있었으니.

“유은영 씨, 진정해요. 몸도 안 좋으면서 그렇게 열을 냈다가는 또 쓰러지고 말 거라고요.”

바로 유은영이었다.

그 말에 지화자가 진정하려는 듯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유은영이 잘한다는 듯이 제 등을 한 번 토닥여 주고는 말했다.

“라이 씨, 리아 씨. 일단…….”

함께 가자는, 그런 말을 내뱉기도 전에 누군가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중부 경찰서에서 나온 박지완 형사라고 합니다.”

척, 남자가 유은영에게 제 신분증을 보여 주고는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지화자 씨. 다름이 아니라 라이 군과 리아 양과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싶어서 말입니다.”

갑자기 형사가 왜 찾아왔을까?

유은영은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추정할 수 있었다.

‘라이 씨와 리아 씨는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거론되고 있는 중이라고 했지.’

그리고 불과 몇 시간 전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아라크네.

온몸이 거미줄에 휘감겨 죽은 사람이 나타났다는 말씀.

‘우종문 부장님께서 말씀하신 연쇄 살인 사건의 피해자겠지.’

유은영이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리고는 말했다.

“영장 발부된 게 없으면 그냥 가 주셨으면 하는데요.”

“영장까지 필요 없는 일입니다. 라이 군과 리아 양에게 단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듯, 남자는 단호한 목소리였다.

유은영이 정말 ‘지화자’였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꺼지라고 했을 테지만.

‘어쩌지?’

지금 지화자의 몸에 들어 있는 사람은 유약한 F급 힐러, 유은영이었다.

유은영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을 다물 때, 지화자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녀석들은 댁한테 할 말이 없는 모양인데?”

라이와 리아가 그 말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데없는 불청객의 등장에 박지완은 얼굴을 찌푸렸다.

“누구십니까?”

“유은영.”

지화자가 가볍게 제 것이 아닌 이름을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저 녀석들의 보호자인 지화자 팀장님의 동료 되는 사람인데, 왜요? 헉, 설마 혹시 민중의 지팡이께서 선량한 시민의 입을 막으려는 건 아니죠?”

조롱하는 것이 분명한 목소리.

박지완의 얼굴이 구겨지다 못해 썩어 들어갔다. 지화자는 그에 싱긋 웃어 주고는 말했다.

“지화자 팀장님, 가요. 라이, 리아. 너희도 따라와.”

라이와 리아가 남자를 흘긋거리고는 지화자를 따라 차에 올랐다.

유은영 역시 지화자라면 절대로 하지도 않을 인사를 박지완에게 건네고는 차에 올라탔다.

부르릉, 매끄럽게 가게를 벗어나는 차에 박지완은 얼굴을 굳혔다.

***

백미러 너머로 멀어지는 남자를 보며 유은영이 지화자에게 물었다.

“저 사람 누구예요?”

“서울 중부 경찰서 소속의 박지완 형사라고, 지화자 팀장님께서 딱히 알 필요 없는 녀석이었죠.”

“그 말은 인제 알아 둬야 할 사람이라는 거네요?”

“네, 박지완 형사에 대한 건 나중에 알려 드리도록 할게요.”

지화자가 매끄럽게 핸들을 돌리며 뒷좌석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불렀다.

“라이, 리아.”

라이와 리아가 지화자를 향해 경계 어린 시선을 보냈다. 지화자가 그 시선에 코웃음을 치고는 입을 열었다.

“너희 뭐 사고 친 거 있어?”

“없어요!”

“맞아, 없어!”

그에 유은영이 조심스럽게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럼 라이 씨, 리아 씨. 사건 현장에는 왜 있었던 거예요?”

그에 라이가 말했다.

“당연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구경 간 거죠!”

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리고 우리랑 똑같은 거미 친구가 벌인 짓인 것 같아서 계속 구경하고 있었던 거야!”

거미 친구?

‘그게 무슨 소리지?’

유은영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쿵! 무언가 자동차 위에 올라탔다. 천장이 찌그러질 만큼의 강한 울림. 동시에 지화자가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았다.

“으악!”

“꺄아악!”

난데없는 날벼락에 유은영이 비명을 질렀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라이와 리아 역시 고래고래 살려 달라며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도 자동차가 뒤집어지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끼이익, 가까스로 멈춘 차에 지화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역시 볼보 사기를 잘했다니까?”

지화자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차 계기판을 두드렸다.

“아이고오…….”

유은영은 앓는 목소리를 내고는 뒷좌석을 살폈다.

“라이 씨, 리아 씨! 괜찮아요?”

“괜찮아요.”

“나도 괜찮아!”

라이와 리아가 밝게 말했다.

“다행이다아.”

라이와 리아, 두 사람 모두 다친 곳 없이 멀쩡해 보였다. 유은영이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래요?”

지화자는 말이 없었다.

“지화자 씨?”

부르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싱긋 웃고는 유은영에게 말했다.

“앞을 봐 주실래요, 지화자 팀장님?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앞을 쳐다봤고.

“꺄아아악!”

털 달린 여덟 개의 발에 곧장 비명을 내질렀다.

그 비명을 들었는지 차 유리판에 매달려 있던 커다란 거미가 몸을 돌렸다.

그 덕에 거미와 눈이 마주친 유은영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흐악! 으아아악! 거미! 거미잇!! 에프킬라! 살충제! 퇴치제에!!”

지화자는 고막을 찌르는 비명에 귀를 틀어막았다.

연약한 F급 몸뚱이는 고막이 손상되면 회복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할 줄 아는 것이 안마밖에 없는 몸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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