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04. 답이 없는 남매.
우종문과 대화를 끝낸 유은영은 곧장 지화자를 찾아갔다.
“어떻게 하죠, 지화자 씨?!”
유은영에게 이야기를 전달받은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떻게 하기는? 경찰보다 먼저 찾아서 그 자식들한테 물어봐야지.”
“뭘요?”
“정말 너희가 범인이냐고.”
지화자는 태연했다. 라이와 리아가 범인이든 아니든 상관없다는 태도.
그녀와는 달리 유은영은 초조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보였다.
“라이 씨와 리아 씨가 어디에 계시는지 아세요?”
“아니, 몰라. 하지만.”
하지만?
“대충 어디에 있을지는 알아.”
유은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데 그 범위가 조금 넓거든. 괜찮겠어?”
“당연히 괜찮죠! 저 혼자서 찾을 것도 아닌데요!”
“아닌 게 아닐 텐데.”
“네?”
지화자가 씨익 웃었다.
“라이랑 리아 녀석 말이야. 낯선 사람과는 대면도 안 하거든.”
그러면서 지화자는 말했다.
“그 두 녀석이 마음을 연 대상은 0팀의 인원들뿐이야.”
“그 말은…….”
“언니 혼자서 그 두 녀석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지. 아님, 가하성이랑 하태균 데리고 가든가.”
안 돼!
가하성과 하태균은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물론, 유은영 역시 작성 중이던 보고서를 마무리해야 했지만…….
‘그건 두 사람에게 맡겨도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나 혼자 라이 씨랑 리아 씨를 찾으러 가야 한다니!’
유은영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런 유은영을 보며 지화자가 키득거렸다.
“걱정 마, 언니. 내가 말했잖아? 그 두 녀석이 대충 어디에 있을지 알 것 같다고.”
“그래도요!”
지화자가 울상을 짓고 있는 제 얼굴을 밀어내면서 말했다.
“우는소리 할 시간에 라이와 리아 녀석 찾으러 가기나 해. 그 녀석들이 있을 법한 장소는 추려서 보내 놓을 테니까.”
어쨌거나 한시라도 빨리 라이와 리아를 찾아야 하는 상황.
유은영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센터를 나왔다. 그러기 무섭게 지화자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라이와 리아가 있을 법한 장소를 꾸려서 보낸 문자였다. 그렇게 메시지를 따라 도착한 곳은.
“야, 오늘 PC방 고?”
“코노 가자, 코노!”
서울의 한 고등학교 앞이었다.
“어째서……!”
유은영은 머리를 굴렸다.
라이와 리아, 두 사람은 분명 성인이었다.
‘아닌가?’
생각해 보니 두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지화자가 유은영에게 라이와 리아에 대해 제대로 알려 주지 않은 탓이었다.
‘어쨌든…….’
유은영은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고등학교를 구경했다.
유은영의 나이, 스물일곱.
그녀가 백화점 붕괴 사고에 휘말려 뇌사에 빠졌던 나이가 열일곱이었다.
‘고등학교라.’
제대로 졸업도 못 한 곳에 다시 찾아오니 기분이 참 미묘했다.
“야! 저기!”
“헐, 미친!”
하교 중이던 학생들이 유은영을, 아니. 지화자의 몸을 하고 있던 그녀를 알아본 건 그때였다.
“지화자 맞죠? 지유화 죽이고 랭킹 1위 거머쥔 지화자! 그쵸?”
유은영이 떨떠름한 얼굴로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랭킹 1위이자 S급 각성자인 ‘지화자’를 봤다는 것에 대한 순수한 감탄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유은영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고 곧바로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저기,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요?”
“사실 랭킹 1위 지화자가 아니라 평범한 도믿맨이었어요?”
“아니요!”
유은영이 황급히 질문을 던졌다.
“혹시, ‘라이’와 ‘리아’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 있나요?”
“라이? 리아?”
유은영 주위로 모여든 학생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없는데요.”
“맞아, 그런 이름 들어 본 적 없어요. 그치?”
“응.”
유은영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지화자가 보낸 메시지의 다른 장소를 찾아가 봐야 할 듯싶었다.
‘그래 봤자 여기랑 똑같은 학교지만.’
유은영이 애써 기운을 차리며 학생들을 향해 인사했다.
“알려 줘서 고마워요.”
“말로만요?”
“네?”
유은영이 당황하는 찰나,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사진 찍어 줘요!”
“맞아요, 사진!”
아이들은 유은영이 알겠다고 말하기도 전에 냅다 그녀를 찍기 시작했다.
다른 학교에서도 마찬가지.
유은영은 열 손가락이 넘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사진을 찍은 후에야 원하는 정보를 얻어냈다.
“라이와 리아가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학교 근처에 우리 교복 입고 돌아다니는 이상한 애들 있기는 했어요!”
“정말요? 어디에서 봤는지 알 수 있을까요, 친구?!”
“저기, 골목 돌아가면 PC방이 있는데 그 근처에서 자주 보여요.”
지친 낯이었던 유은영이 환하게 웃었다.
“알려 줘서 고마워요!”
유은영은 곧장 학생이 알려 준 PC방 근처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보자, 라이 씨와 리아 씨는 곱슬기가 도는 검은 머리칼에 붉은 눈을 가진 남매라고 했지?’
두 사람이서 꼭 붙어 다닌다고 들었으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유은영은 그렇게 믿었고.
“찾았다!”
그 믿음은 유은영을 배신하지 않았다.
유은영이 황급히 카페를 벗어나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가고 있는 아이들을 불렀다.
“라이 씨! 리아 씨!”
두 아이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춘 후 고개를 돌렸다.
“지화자?”
“누님이시네?”
아니면 어쩌지 했는데, 다행히도 두 사람은 유은영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라이와 리아였다.
180c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큰 키를 가진 남자가 유은영을 향해 손을 들었다.
“누님, 안녕!”
그러고는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곁에서 재잘거리고 있던 작은 여자도 함께였다.
“지화자, 안녕! 잘 가!”
만나자마자 안녕이라니!
“잠깐만요!”
유은영이 황급히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라이 씨! 리아 씨!”
뭐가 저렇게 빨라?!
유은영이 어떻게든 두 사람을 따라잡고자 했지만
“뭐야, 어디 갔어? 분명 이쪽으로 들어가는 걸 봤는데?!”
유은영은 라이와 리아를 놓치고 말았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었다.
***
유은영이 라이와 리아를 놓친 그 시간, 센터.
“후우… 이 멍청한 언니가…….”
지화자는 SNS를 확인하며 침음을 삼키고 있었다.
[나 오늘 학교 앞에서 지화자 봄]
살인자가 얼굴에 철판 깔고 잘만 돌아다니고 있던데ㅋㅋㅋ?
[(중요)학교 앞에서 지화자 본 후기 올린다]
아는 척하니까 엄청 좋아하더라ㅋㅋ; 뭐, 신기하기는 했음ㅇㅇ
누군가 말했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인생을 낭비 중인 녀석들이 왜 이렇게 많아?’
지화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가 욕을 들어먹는 일이야 한두 번도 아니고, 아주 흔한 일이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지금 ‘지화자’는 유은영이었다. 유은영이 SNS상에 적힌 제 글을 보면 분명 상처받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 때문에 내가 욕을 먹는 거라고 생각할 테지.’
보기보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지화자가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는 게시글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유은영 씨, 부탁하신 자료 가지고 왔어요. 그냥 좀 쉬시지, 굳이 침대 위에서 일해야겠어요?”
제 고민을 아주 기가 막히게 풀어 줄 아군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가하성 씨.”
“네?”
가하성이 살짝 경계 어린 얼굴을 보였다. 눈앞의 여자가 또 제 몸을 봐주겠답시고 안마를 해 줄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자의 입에서 나온 건 의외의 말이었다.
“프로그램 잘 다루죠?”
“컴퓨터요?”
“네.”
“잘 다루기는 하죠. 왜요?”
“부탁할 게 있어서요.”
지화자가 씨익 웃었다.
“링크 몇 개 보내 줄 테니까, 이것들 좀 해킹해 줄 수 있을까요?”
가하성이 대꾸할 새도 없이 지화자는 그에게 저를 욕하던 게시글 링크를 공유했다.
얼떨결에 지화자한테서 메시지를 받은 가하성이 그것을 확인하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뭐, 이런…….”
“부탁할게요.”
지화자가 미소를 그렸다.
“우리 지화자 팀장님, 생각보다 마음이 여리시잖아요?”
“팀장님이 뭐가 여리다고요?”
가하성이 솜사탕을 씻어 먹은 너구리와도 같은 얼굴을 보였다.
“어쨌든 부탁할게요.”
“네에, 뭐.”
가하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기는 할게요. 팀장님 성격에 이것 가지고 인터뷰 들어오면 지랄하실 게 분명하니까요.”
지화자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
유은영은 라이와 리아를 발견한 그 장소에서 잠복하기로 했다.
그야,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추적받고 있다지 않나? 조금 전에 만났던 두 사람은 전혀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즉, 억울한 누명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씀.
유은영은 어떻게든 두 사람을 붙잡아 사건의 전말을 듣기로 마음먹었다.
‘겸사겸사 센터에 데리고 가면 더 좋고.’
일손이 부족한 0팀이었다.
있는 팀원 모두 써도 야근이 일상인 곳인데. 놀고 있는 인력을 저 좋을 대로 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유은영은 벙거지 모자에 선글라스, 바바리코트를 입고 잠복 중이었다.
문제는…….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신고가 들어와서 말입니다. 죄송하지만, 서까지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수상쩍어 보였다는 거다. 더욱이 학교 근처에서 그러고 있었으니 신고가 들어가는 게 당연했다.
경찰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수상한 사람이 계속 거리를 서성이고 있다고 해서요.”
“그건, 누구를 좀 찾으려고…….”
“그러니까 왜 그런 차림새로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까?”
유은영은 입을 다물었다.
정황상, 라이와 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유은영은 경찰차에 올라 서까지 가게 됐다. 유은영의 신원은 조회를 통해 드러나게 됐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저희 막내가 의욕이 넘쳐서…! 야, 인마! 어서 사과드려!”
“죄, 죄송합니다!”
유은영을 데리고 왔던 신입 경찰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유은영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에요, 제 차림새가 확실히 수상쩍어 보이기는 했으니까요.”
그런 생각 따위 한 적 없던 유은영이었다.
그 말에 서장은 죄송하다느니, 제 불찰이라느니 그런 소리를 해댔다.
거듭되는 사과에 유은영이 불편함을 느낄 때쯤.
“대치 4동에서 아라크네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피해자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사건이 터졌다.
“그 미친놈이 우리 구역까지 넘어왔어?! 뭐 해? 다들 출동해!”
경찰서 내의 거의 모든 인원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서장은 짧게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이야기 중에 죄송합니다, 지화자 님. 급한 사건이라…….”
서장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지, 지화자 님? 뭐야, 어디 가셨지?”
분명, 조금 전까지 제 앞에서 저를 죽이겠다는 듯이 살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던 여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유은영은 그런 얼굴을 보인 적이 없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지금 사건 현장으로 출동 중인 경찰차에 올라탄 상태였다.
“저기요.”
“네, 말씀하십시오.”
“아라크네가 뭐예요?”
“아라크네는 현재 서울 전역에서 발생 중인 살인 사건의 용의자에 붙은 별칭… 아니, 야! 서장님 브리핑할 때 못 들었…….”
유은영에게 화를 내던 경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 지화자 님?! 언제 타셨습니까?!”
“조금 전에요.”
유은영이 방긋 웃고는 말했다.
“앞에 보세요. 빨리 가야죠.”
그보다 아라크네라…….
“뉴스에서 못 들어 본 이름인 것 같은데.”
“그, 그게, 언론에 풀리면 사람들이 많이 혼란스러워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현재 비밀리에 수사 중이라고 경찰은 말했다.
‘그걸 나한테 알려 줘도 되나?’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유은영은 좋을 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도착한 사건 현장에서 유은영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라크네.
여신의 미움을 사 거미로 변했다는 여인.
피해자는 온몸이 거미줄에 휘감긴 채로 죽어 있었다.
‘왜 아라크네라는 별명이 붙여졌나 했더니.’
유은영이 굳은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경찰이 몰려든 구경꾼을 몰아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라이 씨! 리아 씨!”
유은영은 놓쳤던 0팀의 팀원들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