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22화 (22/200)

제22화

콰과광―!

주먹질 한 번에 폭발이 일어났다. 그 뒤로 짝짝, 가볍게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서이안 병장님. 훌륭하십니다.”

서이안이 눈가를 찡그렸다.

“병장은 왜 붙인 거야?”

“제 부하이지 않습니까? 일병으로 해 드릴까요?”

“됐어.”

“그런데 서이안 병장님. 지화자 대장군님과 유은영 책사님은 어디 두고 혼자서 돌아오신 겁니까? 설마, 버리신 겁니까?”

“누가 버렸다고 그래? 오히려 버림받은 사람은 이쪽인데.”

서이안이 사납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서도운과 함께 마왕 성에 도착한 직후, 홀로 안에 들어갔었다. 지화자, 그녀와 함께 사라진 폐급 힐러를 찾고자.

하지만 두 사람 중 찾은 사람은 한 명뿐.

“너, 누구야?”

폐급 힐러, 유은영이었다.

그 물음에 주제도 모르는 F급 힐러는 말했었다.

“누구기는요, 유은영이죠. 0팀의 전담 어시스트로 배정된 F급 힐러, 유은영.”

그걸 모르고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제대로 대답을 하라, 그리 몰아붙일 생각이었지마는.

“서이안 씨가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지 몰라도 저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실례되는 생각은 하지 말아 주세요.”

일갈하는 목소리가 너무 날카로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작, F급 힐러의 말이었는데도.

‘꼴사납게.’

다시 생각하니 저가 한심해졌다. 그렇기에 서이안은 짜증스레 머리칼을 헤집고는 말했다.

“지화자든, 유은영이든 알아서 잘하고 있을 거야.”

그 말을 서도운이 정정했다.

“지화자 대장군님과 유은영 책사님입니다.”

“이봐, 서도운. 너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

“서이안 병장님이잖습니까? ‘병장’이 싫으면 ‘일병’으로 불러 드릴까요?”

“닥쳐.”

서이안이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다. 스콜피언의 루키, 서도운은 그가 왜 화를 내는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이 서이안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스콜피언의 길드장인 그는 한숨을 한 번 내쉬는 것으로 화를 다스렸다.

‘참자.’

그러고는 말했다.

“저 녀석은 얌전해?”

“에드워드 엘런 씨 말입니까? 네, 얌전합니다.”

“이름은 관심 없어.”

에드워드 엘런, 그는 이곳 S급 게이트의 거주자였다. 다르게 말하면 NPC.

서도운의 말에 서이안이 미간을 좁혔다.

‘공략을 방해할 줄 알았는데.’

시나리오 게이트가 성가신 이유 중 하나, 그것은 바로 NPC의 방해 때문이었다.

죽이고자 달려들지 않으면 다행, 그 정도로 NPC는 게이트 공략을 방해하곤 했다.

“저 녀석 감시 잘해.”

“에드워드 엘런 씨입니다.”

“에드워드든 마이클이든 감시 잘하라고!”

버럭 소리 지르자마자 서이안의 무릎이 힘없이 꺾였다.

“장군한테 대들지 말라는 경고인가 봅니다.”

“제발 그 입 좀 닥쳐!”

서이안이 서도운을 향해 소리를 지르기 무섭게 그의 고개가 떨궈졌다.

“이건 장군한테 큰 소리 내지 말라는 경고인 것 같군요.”

“그 입…! 닥치라고 했다, 서도운……!”

같은 본관의 이천 서씨에, S급 못지않은 능력을 가진 놈이라 이것저것 챙겨 주려고 했더니만!

아무래도 게이트 공략 이후, 제대로 기강을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서이안이 그렇게 얼굴을 구기는 순간.

“으아아악!”

머리 위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지화자?”

지화자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아니. 엉엉 울부짖으며 누군가를 안고서 추락 중이었다.

“뭐, 뭐야?!”

서이안, 그를 향해서.

서이안은 당황스러웠다.

‘저걸 잡아 줘야 해?’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지화자였다.

‘알아서 하겠지.’

서이안은 그리 생각하며 자리를 비키려고 했다.

하지만.

“아, 미친!”

무너진 마왕 성의 파편 조각에 앞이 막혔다. 서이안이 가볍게 발을 들어 그것을 치우려고 했지만.

“크헉……!”

그의 위로 지화자가 떨어지고 말았다.

“예쓰! 지화, 아니. 유은영 씨! 나왔어요! 마왕 성도 무너뜨렸고요! 이렇게 퀘스트 끝낸 거 맞죠! 네?!”

유은영이, 아니. 그녀의 몸을 하고 있는 지화자가 제 몸을 차지한 유은영의 품에서 내려와서는 입을 열었다.

“네, 맞아요. 곧 밖으로 나가는 문이 열릴 거예요. 아, 서도운 씨. 도착해 있었군요. 혹시 사상자 있나요?”

서도운은 아무 말 없이 두 여자 밑에 깔려 있는 서이안을 쳐다봤다. 그 시선을 따라간 지화자와 유은영이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아…….”

서이안은 죽은 듯이 기절해 있었다. 유은영이 경악하며 입술을 오므렸다. 지화자는 서이안을 발끝으로 톡톡 두드린 후 말했다.

“사상자 없군요, 좋습니다.”

유은영은 지화자가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두 여자가 기절해 버린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있을 때, 에드워드 엘런은 무너지는 마왕 성을 보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그 얼굴은 환희에 차 있었다.

***

―국가 넘버, 82.

서울 마포구 성산동 515-39에 생성된 게이트 공략 완료.

Type: 시나리오 게이트.

Lank: S급.

Atack Time: 4시간 21분 34초.

S급 각성자 ‘지화자’와 ‘서이안’을 포함한 14명의 이름이 A-Index에 기록되었습니다.―

***

“읏차아!”

유은영이 기지개를 쭉 켰다. 개운한 얼굴이었다.

‘인제 퇴근이다!’

자정을 넘긴 시간, 그래도 지금 돌아가면 7시간 정도는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유은영은 싱글벙글 웃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푹 자고 아침에 봐요!”

붕붕,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에 가하성과 하태균이 당황한 얼굴을 보였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팀장님, 자택 가서 보고서 정리하려고 그러십니까?”

“네?”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고서 정리라니? 저게 무슨 개소리람?

“당연히 자야죠.”

그 말에 하태균과 가하성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보였다. 마치,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유은영이 뺨을 긁적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있죠, 문제.”

그렇게 말한 사람은 지화자였다.

지화자가 유은영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미소를 그렸다.

“S급 게이트는 늦어도 이틀 안에 보고를 해야 하거든요. 뭐, 어차피 부장님께서 부르실 테지만요.”

그러니까 간략하게 조금 전에 공략하고 나온 S급 게이트에 관해 보고서를 정리해야 한다는 소리.

유은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화자는 비웃음을 한 번 보여 주고는 센터에서 파견된 직원에게 걸어갔다.

유은영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가하성은 하태균과 사무실에 들어간 후 누가 먼저 씻을 것인지로 가위바위보 중이었다.

“퇴사하고 싶다…….”

오직, 유은영만이 암울했다.

어쨌거나 그녀는 팀원들과 함께 사무실에 돌아왔다.

“사무실에 왜 샤워실이 마련되어 있나 했더니.”

유은영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 먼저 씻겠습니다.”

하태균과의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가하성이 수건을 들고서 욕실로 들어갔다.

그러기 무섭게 지화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세요, 유은영 씨?”

“씻으러요.”

지화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종이봉투를 들었다.

봉투 안에는 옷가지가 들어 있었다.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옷이 있어요?”

“갈아입으려고요.”

지화자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찝찝하잖아요.”

공략을 끝내고 나온 몸. 마족들의 피는 물론이고 흙먼지가 몸에 가득이었다.

갈아입을 옷이 없는 유은영은 울상을 지었다. 그러고는 지화자를 향해 눈빛을 보냈다.

‘옷은 도대체 언제 챙긴 거예요?!’

‘어제 가져다 놨지.’

‘저한테도 옷 좀 챙기라고 미리 말해 주지!’

‘까먹었어.’

유은영과 시선을 주고받은 후, 지화자가 말했다.

“2팀 사무실에서 씻고 올게요.”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하태균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성이 녀석, 오래 씻는 건 어떻게 알고 저렇게 나가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오래 씻는다고 저러는 거래요?”

“기본 1시간이지 않습니까? 그것 때문에 저는 팀장님께서 먼저 씻으려고 할 줄 알았습니다.”

전혀 몰랐다.

알았으면 어떻게든 먼저 씻으려고 했을 거다.

‘찝찝해!’

마왕을 상대하면서 튄 핏물이 온몸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어쨌거나 유은영은 불쾌하기 그지없는 상태로 야근을 시작했다.

시나리오 게이트에서 받은 퀘스트, 나타난 종족과 그들과 치른 전투 등등.

유은영은 S급 시나리오 게이트에 관한 정보를 흰 화면 위에 기입해 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고…….”

유은영이 뻐근한 어깨를 주물렀다. 가하성과 하태균은 퇴근한 지 오래인 시간.

‘옷을 좀 갈아입고 오겠다고 했던가?’

사무실에는 유은영과 지화자뿐이었다.

“지화자 씨, 있잖아요.”

“왜, 뭐.”

“보고서 작성하는 거요. 지화자 씨 혼자서 제대로 처리할 수 있지 않나요?”

“물론,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안 되잖아?”

“네?”

되묻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방긋 웃었다.

“나 혼자서 보고서 처리할 생각 없으니까 자료 좀 검토해 달라는 소리야.”

유은영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지화자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언니, 그 빌어먹을 존댓말은 언제 버릴 생각이야?”

“버릴 생각 없는데요.”

어떻게든 말투를 고쳐 보려고 했지만 실패한 유은영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친절하고 상냥한 지화자 씨가 되어 보는 건 어때요?”

“개소리하지 마.”

유은영이 불퉁하게 입술을 삐죽였다.

“그딴 표정도 짓지 말고.”

유은영은 시무룩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때였다.

“자.”

지화자가 서랍 안쪽에서 또 다른 종이봉투를 꺼냈다. 유은영의 옷가지였다.

“지화자 씨……!”

“감동 먹을 시간에 어서 씻고 나오기나 해. 곧 사람들 출근할 시간이니까.”

성가시다는 듯 말하는 목소리에 유은영은 입술을 삐죽였다. 어쨌든 그녀는 좋다고 욕실에 씻으러 들어갔다.

그렇게 씻고 나온 유은영에게 지화자가 말했다.

“드라이기는 세 번째 서랍 안쪽에 있어.”

정말이었다.

드라이기뿐만 아니라 고데기 등의 다른 미용 용품도 구비되어 있었다.

“없는 게 없네요?”

“처음에 입사할 때만 해도 여기에서 살다시피 했거든.”

“왜요?”

“왜기는 왜야.”

지화자가 비딱하게 웃었다.

“지유화를 왜 죽였냐고 만나는 사람마다 시끄럽게 굴어서 말이지. 나가기 싫었어.”

지화자가 캔커피를 따고는 홀짝였다. 유은영은 그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씁쓸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씁쓸해 보이는 게 아니라…….’

공허해 보였다.

유은영의 시선을 느낀 지화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니요, 아무것도. 그럼, 머리 좀 말릴게요.”

“마음대로 해. 나는 잠깐 로비에 내려갔다 올 테니.”

“로비에는 왜요?”

“당이 땡겨서.”

“조금 전에 초코 우유 마셨으면서?”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초코 우유로는 당이 충전되지 않거든.”

지화자가 씨익 웃고는 유은영에게 물었다.

“머리 말리고 떨어진 머리카락 정리해야 하는 거 알지? 뭐, 마시고 싶은 거 있어?”

“그럼, 저 아아메로……!”

“언니가 머리 말린 후에 사.”

왜 물어본 거야?!

유은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입을 벌렸다. 그 사이 문은 닫혀 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