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9화 (19/200)

제19화

‘저 바보.’

지화자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유은영을 보았다. 유은영은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때, 남자가 언제 날카롭게 눈을 빛냈냐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이 유은영에게 말했다.

“총사령관님, 마왕 성에서 언제 이곳을 급습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총사령관님께서는 속히 병사를 움직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 넵!”

병사를 어떻게 움직여 달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유은영은 일단 그렇게 대답했다.

지화자가 다가와 말을 건 것은 그 순간이었다.

“지화자 팀장님, 잠시 저쪽에서 이야기를 좀 나누실까요? 장군들께서는 병사들과 함께 주변을 경계해 주세요.”

그렇게 유은영과 함께 자리를 피한 지화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은영 씨, 제발 말 좀 조심해.”

“네? 제가 뭐 잘못했어요?”

“응.”

지화자가 한심하다는 듯이 유은영을 쳐다봤다.

“이곳은 만들어진 세계야. 너한테 말을 건 병사는 게임으로 치면 NPC지. 그런데 사고할 줄 아는 NPC란 말이지.”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자신도 이곳이 만들어진 세계인 걸 안다는 거야. 우리가 공략을 끝내면 자신이 있는 세계가 백지로 돌아간다는 것도 말이야.”

유은영이 놀란 눈을 보였다.

“그게 말이 돼요?!”

“응, 말이 돼.”

지화자가 간결하게 대답해 주고는 유은영에게 물었다.

“몰랐나 보네?”

“당연히 몰랐죠!”

“하긴, 쉽게 접할 수 있는 상식이 아니니까 말이지. 어쨌든 말조심해.”

지화자가 걱정된다는 듯이 유은영을 보며 말했다.

“괜히 입 잘못 놀렸다가는 NPC가 눈 돌아가서 언니를 해칠 수 있으니까.”

말했듯이 NPC라고 부를 뿐, 평범하게 사고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에 유은영은 뒤늦게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깨달았다.

“만들어진 무대 같네.”

남자가 지화자였다면, 당장 저를 죽이려고 들었을 거다. 유은영이 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제가 실수했었네요.”

“알아서 다행이야.”

지화자가 기특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에 유은영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다가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는지, 유은영이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지화자 씨. 혹시, 이곳은 원래 있었던 세계의 일부가 아닐까요?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순간이 시나리오 게이트로 활용되고 있는 거죠.”

“일리 있는 말이야.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도 유은영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거 알지?”

맞는 말이었다. 할 말이 없어진 유은영은 불퉁한 얼굴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공략에나 집중해, 유은영 씨.”

“네에.”

유은영이 대답을 길게 늘어뜨렸다가 지화자를 불렀다.

“그런데요, 지화자 씨.”

“왜?”

“마왕 성까지 어떻게 가요? 이곳에서 동북으로 5km 떨어진 곳에 있다는데, 설마 도보로 이동할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지화자가 유은영을 향해 미쳤냐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그럼, 어떻게 이동할 거예요?”

“말 타고 가야지.”

“말이요?!”

“뭐야, 승마할 줄 몰라?”

“어렸을 적에 제주도 가서 한 번 타 본 적 있어요.”

결국, 승마할 줄 모른다는 소리였다. 지화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승마도 안 배우고 뭐 했어?”

“제가 말 탈 일이 뭐가 있다고 그걸 배우겠어요?!”

하긴 그랬다. 그러나 지화자는 곤란하다는 듯이 난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태균도 가하성도 내가 말을 못 타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 서이안도 그랬다.

갑자기 말 공포증이나 알레르기가 생겼다고 둘러댈 수도 없고 어쩌면 좋담?

지화자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 훌륭한 이동 수단이 보였다.

“유은영 씨, 저건 탈 줄 알지?”

유은영이 지화자가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 끝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미쳤어요?!”

빼액 소리 질렀다.

지화자가 가리킨 것은 날개 달린 몬스터였다. 정확한 명칭은 ‘검은 날개 가고일(A)’로, 마왕 성에서 푼 몬스터들이었다.

그것들이 하늘을 까맣게 뒤덮고 있었다. 지화자가 기겁하고 있는 유은영을 향해 히죽거렸다.

“저거 타자, 언니. 운전은 내가 할게. 유은영 씨는 잡아만 줘.”

“싫어요! 차라리 말을 타고 말지! 지금 승마 가르쳐 줘요!”

“안 돼, 승마 가르쳐 주기도 전에 쟤네가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들 테니까 말이야.”

그 말대로 하늘을 까맣게 뒤덮고 있던 가고일들이 두 사람을 향해 아가리를 벌려 댔다.

바야흐로 시작된 마왕 성의 습격이었다.

***

―키야아악!

―캬아악!

수십, 수백.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가고일이 지상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아가리를 벌려 댔다.

“아오, 귀찮아 죽겠네! 지화자는 도대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서이안이 저를 향해 달려드는 가고일의 아가리를 위아래로 길게 찢고는 소리 질렀다.

그에 가하성이 태연하게 가고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며 말했다.

“유은영 씨와 대화 중이겠죠.”

그러자고 자리를 피했으니 말이다. 가하성의 말에 서이안이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다.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한가롭게 그 폐급 힐러랑 대화를 나누고 있느냐는 거잖아!”

그때였다.

“지화자 팀장님과의 대화는 진작에 끝났답니다, 서이안 씨.”

지화자가 유은영의 몸으로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신이 나게 그녀를 험담하고 있던 서이안이 움찔거렸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유은영의 모습에 가하성이 소리 질러 물었다.

“유은영 씨, 팀장님은요? 팀장님과 함께 있었던 것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너 혼자 있는 거냐면서 가하성이 날 선 시선을 보냈다. 그에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지금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흐아아악!”

하늘 위에서 지화자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다시피 마왕 성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을 탈취 중에 있습니다.”

탈취 중이라고? 저게?

가고일을 사냥하고 있던 모두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보였다.

‘아무리 봐도 가고일한테 붙잡혀 가고 있는 것 같은데?’

‘구해 줘야 하지 않나?’

하지만 지화자였다. 모두가 곧 하늘에서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비명에서 관심을 지웠다.

대신, 그들은 지화자와 함께 대화를 한답시고 사라졌다가 나타난 F급 힐러에게 관심을 보였다.

지화자가 저를 향해 모이는 시선에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곧 지화자 팀장님과 마왕 성으로 향할 겁니다. 그러기 전에 여러분께 지화자 팀장님의 말씀을 전달해 드리도록 하죠. 먼저 하태균 씨.”

“네, 넵!”

“서도안 씨와 함께 병사들을 이끌고 이곳을 정리해 주세요. 남이선 씨는 하태균 씨와 서도안 씨가 마족군을 정리하고 있는 틈을 타서 마왕 성으로 와 주세요. 당신의 머리가 필요할 것 같으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남이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지화자가 옅게 미소를 지어 주고는 말했다.

“하태균 씨와 서도안 씨는 이곳의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마왕 성으로 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으아악! 지화자 씨!!”

“마왕 성에서 봅시다.”

때를 맞춰 유은영이 가고일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지화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지화자가 그 손을 붙잡고서 가고일에 올라탔다.

두 사람은 그렇게 사라졌다.

가하성이 저를 향해 발톱을 세운 가고일을 향해 방아쇠를 한 번 당기고는 하태균에게 말을 걸었다.

“형님, 조금 전에 유은영 씨.”

“팀장님처럼 보였지?”

“네, 그리고 팀장님께서도 유은영 씨를 지화자 씨라고 불렀죠?”

“으음.”

하태균이 이를 드러내며 달려드는 가고일을 주먹으로 내리찍고는 말했다.

“잘못 들은 거 아닐까?”

“하긴, 그렇겠네요. 유은영 씨가 너무 팀장님처럼 보여서 환청을 들었나 봐요.”

가하성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태균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가하성과 하태균처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지화자 씨… 라고?”

S급 각성자, 서이안.

대한민국에서 탑을 달리는 스콜피언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그는 제가 들은 것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었다.

***

“언니, 미쳤어?”

“제가 뭐 했다고 또 미쳤냐는 거예요?!”

“그걸 몰라서 물어? 그렇게 큰 소리로 나를 ‘지화자’라고 부르면 어떻게 해?”

유은영이 아래를 보지 않고자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 질렀다.

“지화자 씨를 지화자 씨라고 부르지 안 그러면 뭐라고 불러요!”

“내가 말을 말지!”

지화자가 사납게 얼굴을 찌푸렸다. 유은영은 슬며시 감았던 눈을 뜨고는 말했다.

“그런데요, 지화자 씨.”

“왜?”

“지금 올바르게 마왕 성으로 가고 있는 거 맞겠죠?”

“응, 점점 가까워지고 있잖아.”

“질문을 잘못한 것 같네요. 왜 자꾸 마왕 성이 점점 가까워지는 거죠?”

그것도 마왕 성의 가장 꼭대기 층의 창문에 말이다.

‘이대로면 부딪칠 것 같은데?’

지화자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가고일의 목덜미를 몇 번 때리더니 이내 방긋 웃었다.

“유은영 씨, 이거 언니 몸인 거 알지?”

그러니까 자신을 눈치껏 잘 보호하라는 거였다. 가고일을 지상에 착지시키는 건 실패했으니 말이다. 유은영의 얼굴에 해괴하게 일그러졌다.

“지화자 씨! 운전은 맡겨 달라고 했잖아요!”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지화자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유은영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창문과 하나가 되기 전에 뛰어내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바닥과 하나가 되고 말겠지.’

아무리 이 몸뚱이가 S급 각성자의 몸뚱이라고 해도 이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건 무리였다.

‘지화자 씨라면 몰라도 나는 무리야, 무리!’

결국,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안전하게 마왕 성 안으로 들어간다!’

유은영이 한쪽 팔로 지화자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한 손에는 어느새 봉이 쥐어져 있었다.

유은영이 긴장감 어린 얼굴로 말했다.

“가고일이 창문에 부딪치기 전에 먼저 창문을 깨뜨릴게요.”

“좋은 생각이야.”

지화자가 어디 한 번 네 마음대로 해 보라는 얼굴로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의 등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가고일은 창문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키에에엑!

그렇게 마왕 성의 가장 꼭대기를 장식하고 있는 넓은 창문과 점점 가까워졌다.

유은영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내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봉을 있는 힘껏 내던졌다.

와장창!

창문이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가고일이 안으로 몸을 날렸다.

유은영이 그 순간에 지화자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로 몸을 기울였다.

가고일의 허리에서 떨어진 몸이 빠르게 바닥으로 추락했다.

중력을 그대로 따르는 감각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화자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키득거리며 유은영에게 물었다.

“언니, 이대로 떨어질 거야?”

“설마요!”

지화자의 몸에 들어 있는 저라면 몰라도 자신의 몸은 크게 다칠 게 분명했다.

‘그건 안 되지!’

유은영이 지화자의 허벅지 안쪽에 손을 넣고는 그대로 안았다.

이름하여 공주님 안기.

얼떨결에 유은영의 목에 팔을 두른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왜 하필 이 자세야?”

“그야……!”

유은영이 소리 질렀다.

“이 자세가 안전하게 착지하기 좋으니까요!!”

쿠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유은영은 지화자를 안은 채로 바닥에 안전하게 착지했다.

“살았다!”

후아,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공략하고 나가면 무조건 승마 배울 거야, 무조건!’

유은영이 그렇게 다짐하며 지화자를 내려 주었다. 동시에 그녀는 힘없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왕 성에 들어서자마자 온몸의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마왕 성에 무사히 도착했네요.”

“그러게. 그런데 언니,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아.”

“왜요?”

라는 질문은 곧장 들려오는 분에 찬 목소리에 답이 됐다.

“웬 인간들이냐!”

유은영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옥좌에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언뜻, 인간으로 보이는 생김새였으나 귀 끝이 뾰족했다. 또한, 잿빛의 피부에 두 눈이 붉었다.

마족(魔族).

시나리오 게이트에서 만날 수 있는 이종족 중에서 엘프 다음으로 가장 흔하게 마주치는 종족.

하나같이 사납고 포악한 성정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는 종족이었다.

그들이 옥좌에 앉아 있는 남자를 중심으로 이 열로 나열해 있었다.

유은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래도 적진의 한복판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것도 최종 보스의 방에.

그러니까 산 넘어 산이었다.

‘망했다.’

유은영이 울지 못해 웃으며 봉을 다시 꺼내 쥐었다. 지화자는 웃는 낯으로 유은영에게 말했다.

“맡겨도 되지?”

맡기기는 뭘 맡겨요!

유은영은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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