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어쨌든 그렇게 해서 유은영은 지화자의 혹독한 가르침 속에서 B급의 몬스터들까지 상대하게 됐다.
무척이나 빠른 성장 속도였지만 유은영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지화자만이 남몰래 감탄할 뿐.
어쨌거나 월요일.
남들 앞에서 지화자를 흉내 내야 할 시간이었다.
유은영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지화자는 간호 관리 부서의 팀장인 이혜나와 함께 센터로 올라간 지 오래.
이제 유은영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좋아, 유은영! 정신 똑바로 차리자! 지화자 씨 흉내를 완벽하게 해내는 거야! 너는 할 수 있어!”
유은영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할 때였다.
부와아앙―!
바이크의 배기음 소리가 지하 주차장을 시끄럽게 울렸다. 이내 멈춰 선 바이크에서 남자가 헬멧을 벗으며 내렸다.
“팀장님?”
“아…….”
유은영은 지화자의 자기 자랑 속에 간간이 섞여 있던 0팀의 정보를 떠올렸다.
제게 알은체를 한 남자의 이름은 가하성.
토요일에 함께 C급 게이트를 공략한 0팀의 팀원이자, A급 각성자였다.
‘랭킹에 크게 관심이 없고, 매사 적당히 하는 걸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했지. 총을 주로 다루고.’
유은영이 한껏 지화자를 흉내 내며 가하성에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
그 인사가, 지화자가 할 법한 인사가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다. 가하성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좋은… 네, 뭐. 좋은 아침입니다, 팀장님. 안 올라가고 여기서 뭐 하세요?”
“출근하기 싫어서.”
“그렇군, 지화자 팀장.”
유은영이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돌렸다.
“부, 부장님.”
현장 파견 부서의 부장, 우종문이 유은영의 뒤에 서 있었다. 우종문이 인자하게 웃으며 유은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출근하기 싫어도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지. 그렇지 않나, 지화자 팀장?”
“네? 아, 하하, 네 그렇죠.”
“그럼, 같이 올라가도록 하지. 하성이, 자네도 같이 올라가지.”
“네, 부장님.”
가하성이 어색하게 웃었다. 유은영 역시 어색하게 웃으며 우종문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자리였다.
하지만 우종문은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는 뻣뻣하게 굳어 있는 유은영에게 아침 안부를 묻듯 태연하게 물었다.
“보고서 정리는 다 했나?”
“네? 네, 오후에 보고하러 가겠습니다.”
“상처는?”
“다 나았습니다. 걱정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그런 것 같군.”
띠잉―!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유은영이 황급히 우종문에게 인사했다.
“그럼, 부장님. 저희는 이만.”
“두 사람 모두 힘내시게.”
우종문은 한 층을 더 올라가야 했다. 스르륵,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마자 유은영이 크게 숨을 토해 냈다.
“후우! 숨 막혀서 죽는 줄 알았네! 부장님께서는 왜 저렇게 일찍 출근하신 거래요?”
가하성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그 얼굴에 유은영이 황급히 말을 고쳤다.
“쟤 왜 저렇게 일찍 출근했대?”
“쟤요…….”
지화자는 아무리 싸가지 없다고 해도 정도는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정도’가 드디어 사라졌나 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기에 가하성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대답했다.
“부장님께서는 원래 일찍 출근하시잖아요. 갑자기 왜 그러세요? 몰랐던 것처럼.”
몰랐으니까 그러지!
간호 관리 부서의 민머리 부장의 출근 시간은 점심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매일 월급 날로 먹는다고 엄청 욕했더란다. 물론, 속으로.
“그보다 팀장님. 보고서는 무슨 보고서요? 토요일에 공략한 건 천천히 해도 될 텐데요.”
“토요일에 공략한 거 말고, 금요일에 휘말렸던 거.”
“아아, 그거요. 하긴, 오류로 일어난 게이트는 빠르게 보고 올려야 하니까요. 힘내세요.”
도와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유은영이 입술을 한 번 씰룩이고는 가장 상석으로 갔다. 어떻게 봐도 저곳이 지화자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정답이었던 듯, 가하성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그 후 찾아온 건 숨 막힐 듯한 정적이었다. 유은영은 가하성의 눈치를 보다 데스크톱을 켰다.
“힘차고 좋은 아침입니다!”
밝은 인사가 들려온 건 그 순간이었다.
가하성이 유은영에게는 보여 준 적이 없는 밝은 얼굴로 하태균에게 인사했다.
“형님, 오셨어요? 또 집에서 센터까지 뛰어서 출근하셨나 봐요?”
“아침 구보는 필수지!”
하태균의 집은 도곡역 근처였다.
센터와는 도보로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곳.
‘사람이신가.’
유은영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하태균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고는 지화자에게 말했다.
“팀장님, 토요일에 공략했던 E급 게이트에 관한 보고는 씻고 와서 올리겠습니다.”
“으응, 씻고 와.”
현장 파견 부서는 각 팀의 사무실마다 샤워실이 딸려 있었다. 야근이 일상인 직장인들을 위한 작은 배려였다.
하태균이 수건을 들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유은영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켜진 컴퓨터를 쳐다봤다.
“풉……!”
“팀장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유은영이 크흠, 헛기침을 터트렸다. 켜진 화면에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고양이라니.’
지화자의 배경 화면은 고양이였다. 날아가고 있는 민들레 씨앗을 신기하게 보고 있는 새끼 고양이.
답지 않게 귀여운 화면이었다.
‘나는 뭐였더라.’
자신의 바탕 화면을 생각하고 있던 유은영이 벌떡 일어났다.
“헉……!”
망했다!
유은영이 놀란 얼굴로 제 뺨을 붙잡았다.
“왜 그러세요, 팀장님?”
“바탕 화면 어떻게 해!”
“……?”
가하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진심으로 지화자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짜고짜 웃지를 않나, 이제는 바탕 화면을 어떻게 하느냐니.
‘아무래도 간호 관리 부서 쪽에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네.’
우리 팀장님께서 미치신 것 같은데, 좀 봐달라고 말이다.
***
“와, 대박.”
지화자는 진심으로 감탄하는 중이었다.
―toesa까지 앞으로 한 걸음―
세상, 어느 직장인이 회사 컴퓨터 배경 화면을 이런 식으로 해 둔단 말인가.
지화자가 피식 웃었다.
“유은영 씨답기는 하네.”
간호 관리 부서의 부서실 내에는 지화자 한 사람뿐이었다. 함께 올라온 이혜나는 가방을 두고 곧장 부서실을 나가 버렸다.
조용한 부서실에 지화자는 심드렁한 얼굴로 턱을 괬다.
“백화점 붕괴 사고 피해자예요, 저.”
지화자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더 완즈 인 더 서울.
붕괴 원인은 불명, 그러나 수천의 사상자를 냈던 21C 최악의 사고였다.
하지만 지화자는 ‘더 완즈 인 더 서울’의 붕괴 원인을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지화자가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다. 지끈거리며 통증이 일어나 그녀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부서실에 아무도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조용했던 부서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끄러워졌다.
“어머, 은영 씨! 안녕!”
“안녕, 유은영 씨! 오늘은 웬일로 일찍 출근했네?”
“다들 안녕하세요.”
지화자가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팀원들을 향해 인사했다.
“지화자 팀장님이랑 게이트에 휘말렸다면서? 다친 곳은 없어?”
“있었다면 출근했겠냐? 그리고 금요일 게이트에 우리 팀장님께서 보러 가셨었잖아. 있었다고 해도 곧바로 멀쩡해졌을걸?”
“하긴, 그렇네.”
유은영의 팀원들이 저들끼리 떠들며 까르르 웃어 댔다.
대화의 주제가 된 유은영은, 아니. 지화자는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아, 맞아. 정신없어서 물어보는 걸 깜빡했네. 유은영 씨, 금요일에 내가 부탁한 일은?”
“메일로 보내 놨다고 하던데요.”
“뭐?”
“아, 실수. 메일로 보내 놨어요.”
“이번에는 실수한 것 없이 제대로 처리했지?”
“네.”
유은영에게 일을 떠넘겼던 팀원이 좋아라 하며 자리로 갔다. 다른 팀원들도 유은영에게 맡겼던 일을 확인한다며 자리로 갔다.
지화자가 그 모습들을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봤다. 자신의 팀원들이었으면 욕을 한 바가지로 해 줬을 텐데. 정말이지 아쉬웠다.
이혜나가 돌아온 건 업무 시작 시간인 9시에 맞춰서였다.
“다들 좋은 아침! 모두 일찍 출근했네?”
“안녕하세요, 팀장님.”
이혜나가 자리에 앉으며 지화자에게 물었다.
“유은영 씨, 오늘 발생 예정인 게이트에 대해서 말해 줄래?”
지화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서울 내에서는 없고, 지방에 세 곳 있어요. 대전 유성구에서…….”
“아아, 됐어. 누가 지방 이야기 듣고 싶다니?”
지화자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일어날 게이트를 파악하는 건, 센터 내 모든 부서가 해야 할 중요한 업무였다.
그런데 간호 관리 부서의 팀장이란 사람이…….
‘엉망이군.’
지화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유은영이 바탕 화면에 퇴사를 외칠 만도 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엉망이든, 아니든 간에 유은영으로서 일해야 했다.
그것이 아무리 재미없는 엑셀 작업이라고 해도 말이다.
지화자는 한숨을 푹 내쉬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때, 이혜나가 팀원들에게 물었다.
“누구, 현장 파견 부서에 잠시 다녀올 사람?”
‘현장 파견 부서’라는 이름에 지화자가 손을 들었다.
“제가 다녀올게요.”
“그럴 줄 알았어, 은영 씨!”
이혜나가 밝게 말했다.
“2팀에서 줄 물건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 좀 받아와. 그리고 겸사겸사 오는 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좀.”
“네?”
2팀의 출장이 오늘 끝났던가? 아니, 그보다 뭘 사 오라고?
이혜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팀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손을 들었다.
“나는 카라멜 마끼야또, 따뜻한 걸로.”
“나는 딸기 스무디로 부탁할게.”
“나도 딸기 스무디로!”
지화자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오, 뭐야.”
“오셨어요, 부장님?”
“응, 좋은 아침이야. 이혜나 팀장. 그보다 은영 씨, 커피 심부름 가나 봐?”
지화자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커피 심부름은 아니고요. 2팀에서 가지고 올 물건이 있다고 해서 가려는데…….”
“나는 아메리카노로 부탁할게. 샷 두 번 추가, 따뜻한 걸로.”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 이 망할 대머리야.
지화자는 진심으로 간호 관리 부서를 뒤집어엎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은영 씨, 안 가고 뭐 해? 뭐 사 와야 할지는 다 외웠지? 아니면 한 번 더 말해 줘?”
“팀장님, 한 번만 더 말해 주도록 하죠? 우리 유은영 씨 머리 나쁘잖아요.”
정말, 참아야 할까?
지화자가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렸다.
“저요? 음, 저는…… 사내 왕따예요.”
“…무슨 따?”
“사내 왕따요.”
사내 왕따라더니, 이런 식이라서 그런 말을 했던 건가 싶었다. 지화자가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가야죠. 그리고 저 다 기억했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에 카라멜 마끼야또 하나. 그리고 딸기 스무디 두 잔이랑 아메리카노 맞죠? 부장님 거는 샷 두 번 추가해서. 따뜻한 걸로.”
“정답~!”
정답은 개뿔이다, 망할 팀장아.
지화자의 입꼬리가 비딱하게 일그러졌다.
겁도 없이 나한테 커피 심부름을 시켰겠다?
“그럼, 다녀올게요.”
지화자는 유은영의 얼굴로 방긋 웃었다. 유은영이 할 법한 복수를 생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