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1화 (11/200)

제11화

“가족은 걱정할 필요 없어.”

“네? 왜요?”

“연 끊은 지 오래거든.”

“아…….”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만인의 사랑을 받았다는 제 언니를 죽였다지 않는가? 자신이라도 연락하는 것이 꺼려질 거다.

“유은영 씨는 어때?”

“어머니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전화하세요. 오빠는 세계 일주 중이라서 볼 일이 없을 거고, 아빠는 저랑 같이 당한 사고에서 돌아가셨어요.”

“그 사고로 뇌사에 빠졌던 거지, 유은영 씨?”

“네? 네, 맞아요.”

유은영이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10년이나 지난 일이라서 지화자 씨가 아실지 모르겠는데…….”

유은영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백화점 붕괴 사고 피해자예요. 저.”

백화점 붕괴 사고.

그 단어에 지화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지화자 씨?”

“백화점이라면, ‘더 완즈 인 더 서울’ 말하는 거지? 그 당시에 가장 큰 쇼핑 문화 복합 공간이었던 곳.”

“네? 네, 맞아요.”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지화자의 낯빛은 어두워지다 못해 흙빛으로 변했다.

“너무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지화자 씨. 사실, 사고 당시에 대한 건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거든요.”

하지만 지화자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결국, 유은영이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화자 씨, 괜찮으세요?”

“응? 아, 으응, 괜찮아.”

지화자가 얼굴을 한 번 문지르고는 말했다.

“가족 이야기는 그만두고 업무 이야기로 들어갈까? 먼저, 현장 파견 부서에 대해 말해 주면…….”

현장 파견 부서에 관해 알려 준다더니, 유은영이 귀가 아프도록 들은 건 하나뿐이었다.

지화자는 잘났다.

유은영은 지화자의 자기 자랑에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언니는 어때?”

“저요? 음, 저는…….”

유은영이 헤실거렸다.

“사내 왕따예요.”

“…무슨 따?”

“사내 왕따요.”

지화자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보였다. 하지만 유은영은 사실을 말한 것 뿐이기에 당당했다.

“월요일에 출근하시면 알게 될 거예요. 지화자 씨, 어떤 불의를 겪게 되더라도 참으셔야 해요. 알겠죠?”

“아니, 나는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인데.”

“저는 참는 성격이니까 지화자 씨도 참아야 해요.”

지화자는 기가 차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주말 동안 서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센터 내 단련실에 가서 훈련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싫어요, 안 해요, 못 해요!”

“응, 싫어도 해야 해. 그리고 언니, 못한다고 말하는 것치고는 잘하고 있는데?”

“그거야, 안 하면 저 징그럽게 생긴 것들이 저한테 올 것 같으니까 그러죠!”

유은영은 우는 얼굴로 봉을 치켜들었다. 충종의 한 종류인 ‘긴 꼬리 팅커벨(C급)’이 커다란 날개를 휘적거리고 있었다.

으으, 징그러!

유은영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지화자는 구현된 게이트 바깥의 안전 구역에서 히죽거렸다.

“그렇게 웃지만 말고 좀 가르쳐 주세요! 공중에 날아다니는 녀석들을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

“어떻게 하기는? 처치해야지.”

“그러니까 어떻게요!”

지화자가 오른쪽 팔꿈치를 왼손으로 받치며, 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지화자는 활짝 웃으며 유은영을 놀렸다.

“잘.”

“지화자 씨!”

지화자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쥐고 있는 그거, 나방 쪽으로 던지면서 폭발시킨다는 이미지를 그려 봐.”

손에 들린 막대기를 나방 쪽으로 던지며, 폭발하는 이미지를 그려 보라고?

‘설마 저걸 방법이라고 가르쳐 준 거야? 정말?’

정말이었다.

유은영이 허, 하고 기가 차다는 듯이 바람 빠진 소리를 내렸다.

어쨌거나 지화자는 최선을 다해 가르쳐 줬다.

유은영이 한껏 얼굴을 찌푸렸다. 지화자에게서 더 이상 가르침을 바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

‘한 번 해 보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해 볼 수밖에 없었다.

유은영이 천장을 뒤덮고 있는 몬스터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폭발… 폭발……!”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그대로 쥐고 있던 막대기를 나방을 향해 있는 힘껏 집어 던졌다.

나방을 향해 날아간 것이, 그 사이에서 그대로 폭발하는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봉이 ‘긴 꼬리 팅커벨(C급)’ 사이로 날아갔을 때다.

콰과광―!

봉을 중심으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허, 헐.”

유은영이 놀라 입을 뻐금거렸다.

그녀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지화자를 향해 다급히 말했다.

“지, 지화자 씨! 괜찮아요? 그, 무기도 같이 폭발에 휘말린 것 같은데요?!”

마찬가지로 다소 놀란 눈이었던 지화자가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말했다.

“괜찮아. 웬만한 공격에는 안 부러져. S급 게이트에서 얻은 광물로 만든 거거든. 못 믿겠으면 다시 꺼내 봐.”

다시 꺼내 보라고?

유은영이 미심쩍어하면서도 지화자의 말을 따랐다.

“와아, 진짜다!”

유은영이 활짝 웃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지화자가 미소를 띤 얼굴로 말했다.

“내 말이 맞지?”

“네! 생각보다 진짜 튼튼하네요.”

“다이아몬드보다 다섯 배는 단단한 광물로 만들어진 거거든. 그보다, 언니. 이제 B급의 몬스터들도 한 번 상대해 보자.”

“네? 잠깐만요!”

“잠깐은 없어, 유은영 씨.”

유은영이 우는 소리를 냈지만, 지화자는 막무가내로 B급의 게이트를 구현시켰다.

―츠즛, 츠즈즛……!

―츠즈읏!

―츠즈즛, 츠즛……!

나타난 몬스터는 ‘붉은 다리 거대 지네(B급)로 이번에도 충종의 몬스터였다.

왜 하필 충종의 몬스터만 계속 구현시키는지 모를 일이었다. 바퀴벌레 다음으로 지네를 가장 싫어하는 유은영이 울먹였다.

“지화자 씨, 다른 몬스터 없나요? 벌레는 이제 지긋지긋하다고요!”

“걱정 마, 유은영 씨. 그 녀석들 처리하고 나면 내가 어련히 알아서 인간형 몬스터들 구현시켜 줄 거거든.”

“그러니까 그 인간형 몬스터들을 지금……!”

―츠즛!

“꺄악!”

유은영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보랏빛을 띠는 끈끈한 액체가 저를 향해 날아왔기 때문이다.

“바… 방금 전에 뭐예요?!”

“뭐기는. 입 그만 나불거리고 자기들 처리해 달라는 거지. 참고로 조금 전에 언니한테 날아간 건 독이야.”

“독이요?!”

“응, 맞는 순간 3도 화상은 기본인 맹독이니까 조심해.”

사람이 왜 저렇게 태연해?!

유은영은 순간 자신이 들어와 있는 몸이 지화자의 몸이 맞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 그러니까 언니. 그렇게 멍하게 있지 말고 어서 처리하기나 해.”

말이 쉽지!

어쨌거나 지화자의 말대로 붉은 다리 거대 지네(B)를 처리하기는 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저것들의 다리와 하이파이브 해야 할 테니. 아니면 독에 맞아 병동에 누워 있어야 할 수도 있었다.

유은영이 울상을 지으며 자세를 잡았다.

저것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파고들어 가 무기를 휘두르기에는 독이 걸렸다.

’그렇다면.‘

유은영은 조금 전과 같이 쥐고 있던 무기를 날렸다.

선두에 있던 붉은 다리 거대 지네(B)에 막대기가 닿는 순간 커다란 불길이 일어났다.

이내 수그러드는 불꽃의 기세에 유은영이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걸려 있던 웃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어……?”

유은영이 당황하여 두 눈을 끔뻑였다. 분명, 조금 전의 폭발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불을 일으켰었다.

그런데.

―츠즛, 츠즈즛!

―츠즈즛!!

껍질을 아주 약간 그을렸을 뿐, 붉은 다리 거대 지네(B급)는 아주 멀쩡했다.

유은영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지화자가 이유를 설명해 줬다.

“그 녀석들 불에 강하거든. 다르게 공략해야 할 거야.”

“그런 건 좀 빨리빨리 말해 주면 안 되나요, 지화자 씨?!”

지화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알려 줬으니 됐지 않냐는 태도.

’내가 앓느니 죽지!‘

유은영이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고는 다시 무기를 꺼내 쥐었다.

붉은 다리 거대 지네(B)는 조금 전에 일어난 거센 불꽃으로 잔뜩 화가 난 모양이었다.

당장에라도 저를 향해 달려들 듯이 구는 모습에 유은영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불이 안 된다면 물이다.

불에도 강한 개체가 물에도 강하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괜히 불을 물로 끄는 게 아니지.

유은영이 손에 쥐어진 막대기에 힘을 주었다.

조금 전, 긴 꼬리 팅커벨(C급)를 처리할 때 지화자는 말했었다. 이미지를 한 번 그려 보라고.

‘그러니 이번에도 같을 거야.’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유은영은 무기를 쥔 채로 붉은 다리 거대 지네(B)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츠즈즛! 츠즛!

지네들이 수십 개의 붉은 다리를 움직이며 유은영을 잡고자 했다.

유은영은 질색하며 무기를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물보라가 솟구쳐 올라 몬스터들을 휘감았다.

‘성공했다……!’

유은영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그러나 그녀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은영은 휘둘렀던 막대기를 바닥에 가볍게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몬스터들을 휘감고 있던 물보라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유은영이 막대기를 들어 강하게 한 번 휘둘렀다. 이내 일으켜진 돌풍과 함께 얼어붙었던 물보라가 산산이 조각나 바닥에 떨어졌다.

그 속에 갇혀 있던 붉은 다리 거대 지네(B) 역시 마찬가지.

바닥에 흩뿌려진 몬스터의 조각들에 유은영이 숨을 토해 냈다.

“됐다!”

혹시나 실패하면 어쩌나 했는데, 저가 바란 대로 상황이 이뤄졌다.

유은영이 환하게 웃었다.

“지화자 씨, 봤어요?!”

“응, 봤어. 잘했어, 언니.”

지화자가 묘하게 웃었다. 그에 유은영이 떨떠름한 얼굴로 지화자에게 물었다.

“정말 잘한 거 맞나요?”

“정말 잘했다니까? 내 놀란 얼굴 안 보여?”

“놀란 건 모르겠고 엄청 즐거워 보이는데요.”

그 말에 지화자가 키득거렸다. 유은영의 말대로 지금 지화자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유은영은 정말이지 가르치는 보람이 있었다.

암만 개떡같이 가르쳐 줘도 척하면 척 알아듣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우수한 학생인 유은영이 자리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하아, 지쳤어요.”

몸과 마음, 심신이 모두 지쳐 일어날 힘이 없었다. 유은영은 이대로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내버려 둘 지화자가 아니었다.

“벌써 지치면 안 돼, 유은영 씨. 이제 언니가 그렇게 바라던 인간형 몬스터를 상대할 차례라고.”

“바란 적 없어요!”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이제 그만요! 아니면 조금이라도 쉬게 해 주세요! 못 해요, 못 해!”

지화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나참, 지금까지 잘만 해 왔으면서 괜히 그러기는.”

“괜히 그러는 거 아니거든요?!”

유은영이 한껏 울상을 지으며 투정 부렸다. 결국, 지화자는 두 손 들고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5분 휴식.”

“10분!”

“3분.”

지화자가 단호하게 휴식 시간을 줄였다. 유은영이 두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덮어 버렸다.

‘신이시여! 도대체 제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인간이랑 얽히게 만든 거예요!’

신이 있다면 멱살을 잡아 흔들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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