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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0화 (10/200)

제10화

“끔찍했어요.”

“응, 그렇게 보여.”

유은영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거실 바닥에 대(大)자로 뻗었다. 지화자는 그런 유은영을 무시한 채, 보고서를 정리 중이었다.

월요일에 올릴 보고서와 이번에 유은영이 공략하고 나온 게이트에 관한 보고서를.

“언니, 그만 일어나. 현장 파견 부서의 업무에 관해 배워야지.”

“나중에 배우면 안 되나요?”

“응, 안 돼. 그리고 우리, 서로에 대한 정보도 공유해야지.”

하지만 유은영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유은영은 센터 내에서 컴퓨터 작업밖에 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막대기 하나를 들고서 몬스터를 상대하고 왔으니 심신이 지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귀찮네.’

지화자가 짧게 혀를 차고는 유은영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를 툭 던졌다.

“조수현, 그 양반 조심해.”

“조수현이요?”

다행히도 유은영이 관심을 보였다. 유은영은 잠깐 미간을 좁혔다가 선이 굵게 생겼던 남자를 떠올리고는 지화자에게 물었다.

“아, 지화자 씨랑 같은 현장 파견 부서의 팀장님 말하는 거죠?”

“응.”

지화자가 노트북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1팀의 팀장인데, 나랑 사이가 그렇게 좋지가 않거든.”

“지화자 씨라면 누구와도 사이가 안 좋지 않나요?”

지화자가 방긋 웃으며 유은영을 쳐다봤다. 명백히 그 입 닥치라는 시선이었다.

유은영은 지화자의 눈길을 피하며 질문을 고쳤다.

“조수현 팀장님과 왜 사이가 안 좋은데요?”

“지유화의 남자 친구였거든.”

“아아, 그렇구나.”

가 아니라.

“뭐라고요?!”

지유화라면 지화자 씨의 언니분 이름이잖아! 그것도 지화자 씨가 직접 죽인!

유은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사이가 안 좋을 만도 했다. 좋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때였다.

딩동―♬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초인종이 울렸다.

지화자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유은영 씨가 나가 봐.”

“네네, 당연히 제가 주인이니까 제가 나가 봐야죠.”

“…….”

저 망할 언니가 여기가 진짜 자기 집인 줄 아나 봐.

지화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유은영을 쳐다봤다.

닿는 시선을 무시하며 인터폰을 확인한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헉, 지화자 씨!”

“왜.”

“조수현 팀장님이세요!”

“누구?”

“조수현 팀장님이요!”

이런, 미친!

“진짜 양반은 못 되는 사람이라니까?!”

“조금 전에 양반이라고 잘만 부르셨으면서?”

“시끄러!”

지화자가 노트북을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살금살금 현관으로 가 자신의, 아니. 유은영의 구두를 챙겨 들고는 소곤거렸다.

“알아서 잘 처신해.”

“저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요!”

“잘!”

지화자가 작게 소리를 지르고는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런 와중에 인터폰은 계속 울렸다.

유은영은 크게 심호흡하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지 팀장님.”

“하하… 안녕하세요…….”

유은영이 어색하게 조수현에게 인사했다. 그런 그녀를 조수현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지화자가 존댓말을 쓰는 거야 조수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제게 항상 그랬으니.

하지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는 어딘가 이상했다.

“드, 들어오세요!”

“네?”

자신을 집 안으로 들이는 것 또한 이상했다. 당황해하는 조수현을 보고 유은영이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어, 제가 무슨 실수라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조수현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지 팀장님께서 그 일 이후로 저를 집 안에 들이는 건 처음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는데요. 실례지만 다시 나가 주실 수는 없겠죠?

유은영은 울지 못해 웃었다.

어쨌거나 이미 안으로 들인 사람. 유은영은 조수현에게 자리를 권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조수현 역시 지화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유은영을 향해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유은영이 권해 준 자리에 앉은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 팀장님.”

“네, 조수현 팀장님.”

차라도 한 잔 내줄까, 고민하고 있던 유은영이 놀라 대답했다.

다행히도 조수현은 유은영이 찰나에 보인 놀란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유화…….”

조수현이 입술을 닫고선, 다시 목소리를 내었다.

“당신 언니분의 생일이 언제인지 기억합니까?”

“네?”

“언니분께서 좋아하셨던 책의 구절은요? 당신께 항상 말해 주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 따윈 모른다.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유은영은 한 가지 알아차렸다.

‘조수현 팀장님, 지화자 씨를 의심하고 있구나!’

정확히 말하면, 지화자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를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하지? 어쩌면 좋지?’

유은영이 두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때, 머릿속으로 지화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알아서 잘 처신해.”

평소의 유은영이었다면, 도대체 뭘 알아서 잘 처신하라는 거였냐며 머리를 감싸 쥐었을 거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 기억해, 유은영 씨. 언니가 안에 들어가 있는 그 몸의 주인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인간이라는 걸.”

뒤이어 떠오른 지화자의 목소리에 유은영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제 앞에서 지유화, 그 인간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제 경고가 참 우습나 봅니다.”

유은영은 자신이 이렇게 차가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조수현은 황급히 고개 숙였다.

“미안합니다, 지 팀장님. 저를 집 안으로 들여보내 주시길래 서로 마음이 풀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유은영은 조수현의 사과에도 서린 얼굴을 보일 뿐이었다.조수현은 그녀를 흘긋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묻고 싶은 것이 많지만, 물어봤자 대답해 주지 않을 것 같군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유은영은 굳이 그 말에 대꾸해 주지 않았다. 그저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는, 조수현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어서, 이 집에서 나가라는 축객령을 품고 있는 시선이었다.

조수현이 두 눈을 낮게 내리깔고서는 몸을 돌렸다. 그렇게 나가려던 그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런데 지 팀장님. 다른 손님이 또 계신 모양입니다?”

지화자가 몸을 숨긴 방, 바로 그 앞에서 말이다.

조수현이 손잡이를 잡았다.

“잠깐……!”

유은영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조수현은 이미 방문을 연 뒤였다.

아니, 뭐 저렇게 무례한 사람이 다 있담?!

이런 상황에서 지화자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답은 나왔다.

“당장 제집에서 나가십시오.”

조수현은 목 옆으로 닿은 봉에 입술을 굳게 닫았다. 또한 그는 보았다.

제 처제가 될 뻔했던 여자가 불쾌감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것을.

눈앞의 얼굴은, 분명 지화자의 것이었다.

‘착각이었던 걸까.’

어젯밤, 게이트를 공략하고 나온 지화자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해 보였다.

그렇기에 찾아온 것이었는데…….

조수현이 고개를 꾸벅였다.

“죄송합니다, 지 팀장님. 지 팀장님께서도 모르는 사람이 집에 들어온 건 아닐까 해서 그랬습니다.”

“그럴 인간 없으니까 이만 나가 주셨으면 합니다.”

명백한 축객령.

조수현은 한 번 더 고개를 꾸벅거리고는 걸음을 돌렸다.

“실례했습니다, 지 팀장님.”

그 말을 끝으로 현관문이 닫혔다. 그러자마자 유은영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후우…….”

그녀는 얼굴을 한 번 문질러 내리고는 방 안을 살폈다.

“지화자 씨?”

분명, 이 방 안에 몸을 숨기는 것을 봤는데 지화자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방이라, 딱히 몸을 숨길 구석도 없는데 말이다.

지화자가 모습을 드러낸 건 그때였다.

“아오, 저 망할 인간. 수납형 침대로 안 바꾸기를 잘했네. 바꿨으면 곤란할 뻔했어.”

“지화자 씨……!”

침대 밑에서 꾸물거리며 나온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조수현 나갔지?”

“네? 네, 갔어요. 완전히 가신 것 같아요.”

“잘했어, 언니. 내 흉내 잘 내던데? 걱정할 것 없겠어.”

“헉, 그래요? 다행이다.”

가 아니라.

“어떡하죠? 조수현 팀장님께서는 아무래도 저한테, 아니. 지화자 씨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의심 중인 것 같던데요?”

“의심하라고 해.”

지화자가 옷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털어서 먼지 한 톨 안 나오는 사람 없다고 하지만, 안 나오면 별수 없잖아?”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안 들키면 된다고.”

지화자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니까 언니, 계속 공부하자.”

“고… 공부요?”

“응, 가르쳐 주려다가 저 인간 때문에 말이 끊겼잖아? 보고서도 정리해야 하고. 자, 다시 앉아.”

“보고서 정리는 지화자 씨가 해 준다고 했잖아요!”

“그거야 집에서지. 센터에서는 해 줄 수 없는 일이잖아? 그러니까 어서 앉아.”

“싫어요! 내 주말……!”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나도 귀한 내 주말에 유은영 씨를 가르쳐 주고 싶지는 않거든? 하지만 그래야 아무 탈 없이 서로를 흉내 낼 수 있겠지? 그러니까 좀 앉아, 언니.”

유은영이 우는 소리를 내며 지화자에 의해 거실로 이끌려 갔다.

황금 같은 주말이 그렇게 쏜살같이 지나갔다.

***

찾아온 월요일.

붉은 스포츠카가 센터 내 지하 주차장에 멈춰 섰다.

“내일부터는 언니가 운전해야 하는 거 알지?”

“사고 나도 전 몰라요.”

“괜찮아, 모른다고 모르쇠 하기 전에 내가 그 예쁜 머리통을 뽑아 버릴 테니까.”

지화자 씨는 가끔, 이 몸이 자신의 몸이란 것을 잊는 것 같다. 저 몸이 내 몸이라는 것도.

유은영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황금 같은 주말에 한 일이라고는, 현장 파견 부서의 업무 체계에 대해 배우기와 운전 주행 연습, 그리고 서로에 대한 정보 공유뿐이었다.

현장 파견 부서의 업무 체계야 간호 관리 부서와 다를 바가 없어서 손쉽게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주행 연습은.

‘끔찍했지.’

유은영은 지화자를 흘긋거렸다.

저 망할 랭킹 1위, S급 각성자한테 들은 욕만 하더라도 자신은 분명 가늘고 길게 살 게 분명했다.

어쨌거나 아침 일찍 센터에 도착한 둘은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지 팀장님? 유은영 씨?”

자신들을 부르는 목소리만 아니었더라면 그랬을 거다.

유은영과 지화자의 얼굴이 동시에 구겨졌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을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둘이 같이…….”

“출근한 거 아닙니다.”

지화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유은영은 지화자처럼 신경질적인 웃음을 보이며 말을 덧붙였다.

“맞아, 그럴 리가 없잖아. 이혜나 팀장. 내가 당신네 폐급이랑 왜 같이 출근을 했겠어?”

나이스, 유은영! 지화자 씨처럼 잘 말했어!

하지만 폐급 소리 들은 지화자의 얼굴은 떨떠름했다. 이혜나는 유은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런데 유은영 씨, 지하 주차장까지 웬일이야? 차도 없으면서?”

“아.”

지화자가 바람 빠진 소리를 한 번 내고는 방긋 웃었다.

“오빠가 태워다 줬어요.”

우리 오빠 해외여행 중이라고 했잖아요, 지화자 씨!

유은영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화자를 쳐다봤다. 지화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생글거렸다. 이혜나 역시 생글거리며 지화자의 두 손을 잡았다.

“정말? 그 잘생긴 오빠분 말하는 거 맞지?! 그새 귀국했어?”

지화자가 이혜나한테 붙잡힌 손을 빼내며 눈웃음을 지었다.

“네, 그리고 지금 출국하러 가고 있어요.”

“뭐……?”

“한국에 잠깐 들린 거라서요.”

나이스, 지화자 씨!

유은영은 지화자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어 주고 싶은 심정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이혜나 팀장은 자신의 하나뿐인 오빠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여우였다.

아무리 인간이 덜된 엄마 아들이라고 해도, 이혜나를 그에게 소개시켜 줄 수는 없었다.

“그보다 팀장님, 어서 올라가요. 어깨 아프시지 않아요? 제가 안마해 드릴게요.”

“정말?!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지 팀장님, 저희는 먼저 올라가 볼게요!”

유은영이 말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지화자가 이혜나를 데리고 사라져 버리자, 유은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야 지화자의 모습으로 센터에서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게 실감이 났다.

“어쩌지…….”

나, 잘할 수 있을까?

유은영은 우울한 얼굴로 주말 동안 지화자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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