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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9화 (9/200)

제9화

―끼야! 끼야아!

―꺄! 꺄아!

―끼야아아!!

초록색 피부를 지닌 몬스터들이 시끄럽게 비명을 질러 댔다.

“저, 저것들 뭐예요? 아니, 저것들 뭐야?”

“고블린이잖아요.”

가하성이 심드렁한 얼굴로 유은영에게 물었다.

“고블린 처음 보시는 것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놀란 눈이에요?”

처음 봤으니까 그렇지!

유은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고블린들은 모두 대여섯 살 정도 되는 아이처럼 작은 키였다.

손에 들고 있는 가시 박힌 몽둥이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거다.

“팀장님, 조심하십시오. 옵니다.”

“흐아아악!”

유은영이 크게 놀라 막대기를 꺼내 휘둘렀다.

화르륵―!

일어난 불꽃이 고블린들을 집어삼켰다.

―끼에엑!

―끼약! 끼야아악!

―끼에에!

불꽃에 휩싸인 고블린들은, 마치 마귀와도 같은 얼굴이었다.

“무슨 몬스터가 저렇게 사악하게 생긴 거야?! 징그러!!”

사악하고 징그럽게 생긴 고블린을 순식간에 불태워 버린 유은영이었다.

가하성과 하태균이 떨떠름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하태균이었다.

“으음, 고블린이 사악하고 끔찍하게 생겼기는 합니다. 하는 짓도 그렇고요.”

그에 가하성이 맞장구쳤다.

“형님 말씀이 맞죠. 공략에 실패해서 게이트 터지기라도 해 봐요. 저것들, 밖에 나가자마자 사람들 가죽을 벗기려 들걸요?”

사람들 가죽만 벗기려고 할까? 약자는 귀신같이 알아보고 그들을 붙잡아 먹으려고 들 터였다.

유은영은 두 귀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간호 관리 부서에서 키보드만 두드리고 있던 유은영에게 이 상황은 무척이나 버거웠다.

―끼야아악!

“꺄아아악!”

그러면서도 유은영은 착실하게 나타나는 고블린들을 제압했다. 지화자가 봤다면 잘한다고 손뼉을 쳐 줬을 거다.

【00: 19: 32】

그렇게 게이트에 들어온 지 10분이 넘어갈 때.

“어? 길이…….”

“세 갈래로 나누어졌네요.”

세 갈래의 갈림길이 0팀의 앞에 나타났다. 가하성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한 명씩 원하는 길 골라서 찢어지죠?”

“네? 왜요!”

“왜요… 라니…….”

“아니, 왜!”

존댓말이 문제가 아니었는데요.

가하성이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30분 안에 공략해야 하는 게이트잖아요. 세 가지 길 중 한 곳에 핵이 있을 것 같은데, 세 명이서 함께 찾아다니는 건 효율이 떨어지잖아요.”

“세 가지 길 모두 그 끝이 핵이 있는 장소로 연결되어 있으면요?”

“그럼, 끝에서 만나겠죠.”

“아…….”

유은영이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가하성은 “거참, 오늘 좀 많이 이상하시네”라고 중얼거리고는 말했다.

“저는 왼쪽 길로 갑니다.”

“그럼 저는 오른쪽 길로 가겠습니다, 팀장님.”

유은영은 자연스럽게 중앙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려니 겁이 났다. 유은영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저… 있잖아…….”

그러나 가하성과 하태균은 이미 안쪽으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유은영이 울상을 지었다.

“괜찮아, 유은영. 아니, 지화자. 너는 지화자잖아. 랭킹 1위, 대한민국 최고의 각성자!”

그러니까 죽지는 않을 거야!

유은영이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고는 힘차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치, 땅굴처럼 형성된 길. 곳곳에는 넝쿨이 얽혀 있었다. 그리고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라고 말하는 것도 잠시.

유은영은 자리에 멈춰 섰다. 센터 내 교육에서 들었던 게이트에 관한 상식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게이트 안에서 주변에 몬스터들이 없는 이유는 단 두 가지뿐이라고 했었다.

상위 개체가 그것들을 모두 잡아먹었거나, 혹은 상위 개체를 피해 모두 도망가 버렸거나.

유은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키르르륵.

머리 위로 크게 그림자가 졌다. 유은영은 뻣뻣하게 굳은 목 관절을 억지로 움직였다.

“어… 엄마…….”

지금까지 봐 왔던 고블린들과는 차원이 다른 몸집.

하태균의 두 배는 될 법한 대왕 고블린이 침을 철철 흘리며 입을 벌렸다.

―키르라아아악!

“엄마야아악!”

유은영은 기절하고 싶었다.

***

“괜찮을까 모르겠네.”

지화자는 게이트 주변을 서성이는 중이었다.

그녀가 유은영을 던전 안으로 밀어 넣은 건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움직임, 폐급 수준이 아니었어.’

아무리 하드웨어가 좋다 하더라도 소프트웨어가 나쁘면 소용이 없었다. 게이트 공략에는 좋은 몸뚱이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 좋은 몸뚱이를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니까.

그런데 폐급이었던 유은영이 자신의 몸을 차지하자마자 엄청난 실력을 보여 주었다.

지금 그냥 본 것만으로도 최소 B급 이상의 실력. 아직 몸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는 걸 감안하면 훨씬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그 정도라면 D급 던전에서는 그냥 봉을 휘두르기만 해도 공략이 가능할 터였다.

만에 하나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일행들이 있으니,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유은영을 포함한 0팀의 일행이 게이트 공략을 위해 안으로 들어간 지 벌써 10분이 흘렀다.

‘지금쯤 나와야 하는데.’

그래, 자신이었다면 10분이라는 시간이 채 가기도 전에 게이트를 공략하고 나왔을 거다.

지화자의 두 눈이 가늘어질 때였다.

“유은영 씨?”

“아, 네.”

지화자가 고개를 돌렸다가.

‘망할.’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을 부른 사람은 남자였다.

어젯밤에 자신과 유은영을 부장실로 데리고 갔던 남자, 현장 파견 부서 제1팀의 팀장인 조수현.

자신과 같이 S급 각성자이자, 또한 같은 S급 각성자였던 지유화의 남자 친구였던 사람.

남자 사람 친구가 아닌, 미래를 약속했던 말 그대로 제 형부가 될 뻔했던 사람이었다.

지화자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조수현은 당황했다.

자신과 유은영은 어젯밤 처음 만난 사이였다. 그런데 왜 술집에서 진상을 부리고 있는 취객을 보듯 저를 보고 있단 말인가.

어쨌거나 지화자는 곧 능숙하게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말했다.

“안녕하세요, 조수현 팀장님.”

조수현이 뒤늦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유은영 씨. 설마 이 자리에 계실 줄 몰랐습니다. 0팀에서 어시스트라도 요청했던 겁니까?”

어시스트(Assist).

게이트 공략 전, 혹은 후에 혹시 모를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간호 관리 부서에 힐러의 지원을 요청하는 일이었다.

지화자가 유은영의 얼굴로 미소를 그렸다.

“아니요, 우연히 지나가는 길이었어요. 그러는 조수현 팀장님은 황금 같은 주말에 이곳에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어제의 일로 지 팀장님께 여쭤볼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지금쯤이면 진작 게이트를 공략하고 나오실 줄 알았는데…….”

아직도 공략 중인 줄 몰랐다는 말을, 조수현은 애써 삼켰다.

지화자는 조수현이 삼킨 말을 알아차리고는 방긋 웃었다.

“지화자 팀장님께서 저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거든요. 어제의 일이라면 게이트 관련해서죠? 괜찮으시다면 저한테 여쭤보세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유은영 씨.”

조수현이 곧장 본론을 꺼냈다.

“게이트에서 지 팀장님과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지화자가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아무래도 눈앞의 남자가 제게 생긴 이상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내가 언니와 몸이 바뀐 상태란 건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나 보네.’

하지만 조수현이라면 그 사실을 순식간에 알아차리고 말 거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금 당장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화자는 일단 웃는 낯으로 대답해 주기로 했다.

“글쎄요, 별일이라고는 없었어요. 굳이 말하자면 지화자 팀장님께서 멋지게 몬스터들을 처리하다가 부상을 입으셨다는 걸까요?”

지화자가 유은영의 얼굴로 걱정스레 조수현에게 물었다.

“혹시, 지화자 팀장님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친절하게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조수현이 고개를 꾸벅이고는 몸을 돌렸다. 지화자는 그 뒷모습을 아주 오랫동안 보았다.

***

“꺄아악! 아아악!”

―키륵? 키르아?

대왕 고블린은 당황스러웠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인간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비명을 질러 대며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문제는, 그 공격을 쉽게 피할 수 없다는 거였다. 접근하기도 쉽지가 않았다.

접근한다면 곧바로 타오르는 불에 먹기 좋게 익고 말 거다.

―크르륵!

대왕 고블린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어서 앞길을 막는 저 망할 인간을 죽여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데!

―키르아아악!

결국, 대왕 고블린이 참다못해 일격을 날리기로 했다. 가시가 박힌 거대한 몽둥이를 높이 치켜든 거다.

하지만 대왕 고블린은 유은영을 향해 그것을 휘두를 수 없었다.

“꺄악! 제발 좀 저리 가! 가라고!!”

따악―!

유은영이 휘두른 막대기가 대왕 고블린의 가랑이 사이를 정확히 명중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막대기의 끝에서 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어난 불은 곧이어 대왕 고블린의 온몸을 휘감았다.

―캬악! 캬아악!

대왕 고블린이 고통에 울부짖기 시작했다.

“어… 엄마야…….”

유은영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뒷걸음질 치던 그때.

쿠르릉-!

벽이 무너져 내렸다.

“와악! 뭐야, 저거?!”

“가하성 씨!”

“팀장님?”

벽을 무너뜨리면서 등장한 가하성이 놀란 눈을 보였다.

“뭐예요, 저거? 팀장님이 그러신 거예요?”

“그, 그런 것 같아요.”

유은영은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하성이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팀장님이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팀장님 혼자서 게이트 공략하셔야 했다니까?”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유은영이 두 눈을 부릅떴다.

“으럇차아!”

그 순간, 기합과 함께 하태균이 천장 위에서 등장했다.

하태균은 그대로 불타고 있던 대왕 고블린의 머리를 우그러뜨린 뒤, 뒤로 물러났다.

“아, 뜨거!”

하태균이 주먹 쥔 커다란 손을 호호 불었다.

“형님, 오셨어요?”

“하성이? 팀장님도 계셨습니까?”

유은영이 하태균을 향해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가하성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형님께서 오실 필요 없었는데 말이에요. 저거, 팀장님이 이미 처리해 놨더라고요.”

“오!”

하태균이 감탄했다.

“역시 팀장님이십니다!”

아니에요, 아니라고! 어쩌다가 잡은 것뿐이라고요!

유은영은 울지 못해 웃으며 대왕 고블린을 쳐다봤다.

“그런데 팀장님, 대왕 고블린을 왜 그렇게 바퀴벌레 보듯 쳐다보세요?”

“바퀴벌레라니요!”

어젯밤의 악몽이 떠올라, 유은영은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하태균은 가하성과 함께 떨떠름한 얼굴로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하성아, 아무래도 우리 팀장님께서 미치신 것 같다.’

‘그러게요.’

두 사람은 게이트 공략이 끝나는 대로 간호 관리 부서에 연락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팀장님께서 아무래도 미치신 것 같은데, 좀 봐줄 수 있느냐고 말이다.

하태균이 가하성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으으, 가하성 씨나 하태균 씨가 핵 좀 대신 부서뜨려 주면 안 될까요? 고블린 침이 잔뜩 묻어 있어서 건들기 싫은데!”

가하성과 하태균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결국, 핵을 부수고자 가하성이 나섰다.

가하성은 고블린의 침이 잔뜩 묻어 있는 핵에 총구를 가져다 대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경쾌한 총성과 함께 핵이 산산이 조각났다.

[축하합니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 99번지에 생성된 타임 브레이커 게이트(E급)의 공략에 성공하셨습니다.]

쏴아아―!

상쾌한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게이트로 형성된 공간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들은 바깥으로 나오게 됐다.

“0팀 나왔습니다!”

“0팀, 부상자 있습니까?”

나왔다……!

유은영이 두 눈에 비치는 바깥의 풍경에 주저앉았다.

“지화자 팀장님?”

센터의 직원이 걱정스럽게 다가왔다. 가하성이 그를 막고 말했다.

“내버려 둬요. 우리 팀장님 오늘 좀 이상하더라고요.”

이상할 수밖에 없지! 그렇게 끔찍한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고!

물론, 어제의 바퀴벌레들보다는 나았지만.

어쨌든 간에.

“후우…….”

무사히 목숨을 부지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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