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돼… 됐다! 됐어요, 지화자 씨! 제가 성공했다고요……!”
유은영이 지화자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유은영은 수십 번의 노력 끝에 불꽃 없이 막대기를 꺼내 들 수 있었다.
지화자가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던 게이트 안에서 휘둘러 댔던, 불꽃을 일으켰던 그 막대기를 말이다.
지화자가 손뼉을 작게 쳐 주고는 말했다.
“좋아, 그럼 이제 한 번 다뤄 봐.”
“네?”
“실전이야, 언니.”
“잠깐만요!!”
지화자는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녀가 벽에 설치되어 있던 장치를 조작하자, 텅 빈 공간이었던 단련실 안에 여럿의 몬스터가 빽빽하게 들어차기 시작했다.
게이트가 구현된 거다.
지화자는 게이트가 형성된 구역에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유은영이 하는 양을 지켜볼 셈이었다.
구현된 게이트는 E급.
나타난 몬스터들 역시 E급의 ‘흐물거리는 슬라임’으로, 지화자라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지화자의 몸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유은영. 단 한 번도 몬스터를 사냥해 본 적 없는 F급의 힐러였다.
그렇기에 유은영은 기껏 무기를 꺼내 들었음에도 주춤거리며 뒷걸음치기 바빴다.
그런 그녀를 보며 지화자가 비웃음을 입에 걸었다.
“뭐 해, 유은영 씨? 가만히 서 있다가는 다칠걸? 구현된 몬스터들이라고 해도, 실제나 다름없거든.”
“아니, 왜 그렇게 태연해요?! 이거 지화자 씨 몸이잖아요!”
“이제는 유은영 씨의 몸이지.”
아오, 진짜!
유은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주마등이라도 좋으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떠올려 보고자 했다. 다행히도 유은영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은영아, 남자든 여자든 사람이든 몬스터든 가랑이 사이를 발로 차면 끝이야.”
사람이 덜된 엄마 아들의 충고였다.
유은영이 두 눈을 부릅뜨며 막대기를 치켜들었다.
‘가랑이 사이!’
하지만 상대는 몬스터.
그것도 흐물거리는 슬라임(E급)이었다. 가랑이란 게 존재할 리가 없었다.
유은영이 황급히 몬스터의 다른 급소를 찾았다.
‘뚜, 뚝배기!’
어디가 뚝배기인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상대는 흐물거리는 슬라임(E급). 위와 아래의 구분이 없는 몬스터였다.
‘그냥, 두 눈 꼭 감고 한 번 더 불을 일으켜 볼까?’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유은영은 몬스터의 급소를 알아차렸다.
흐물거리는 슬라임(E급)의 투명한 몸 안에 붉게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게이트에서 봤던 것과 유사한 형태. 몬스터의 핵이었다.
‘저거다!’
유은영이 몬스터를 향해 손에 쥐어진 것을 강하게 휘둘렀다.
일으켜진 강풍에 몬스터들 내부에 자리하고 있던 핵이 깔끔하게 쪼개졌다.
순식간에 단련실 안에 구현된 몬스터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지화자는 처음으로 당황했다.
‘이 언니, 뭐야…? 진짜 폐급 맞아?’
솔직히 말해 지화자는 유은영이 고전할 거라 생각했다.
자신의 몸을 차지한 것인 만큼 하드웨어는 뛰어날지 몰라도 소프트웨어는 F급이니까.
하지만 유은영은 슬라임의 약점을 알아차리기가 무섭게 그것들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저렇게 할 수 없었다.
한편 자신이 뭘 한지도 모르는 유은영은 그대로 바닥에 대(大)자로 드러누웠다.
지화자가 그 옆에 다가와서는 입꼬리를 올렸다.
“언니 연습 좀 더 해.”
“허억, 허억, 허억… 너무한 거 아니에요? 지화자 씨한텐 별거 아니겠지만, 저는 이런 거 처음 해 본단 말이에요!”
“더 연습해. 온종일 연습하면 내 흉내 잘 낼 수 있어.”
‘내 흉내 잘 낼 수 있어.’는 지화자의 입장에서 칭찬이었다.
‘너도 나만큼 될 수 있어!’
라는 뜻.
평범한 사람들이 저 말을 하면 잘난 척이겠지만 지화자는 정말 잘났고, 랭킹 1위였다.
즉, 나름대로는 최고의 칭찬을 한 건데, 안타깝게도 유은영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온종일 연습하라는 말에 맥이 풀린 유은영에게 지화자가 말을 덧붙였다.
“문제는 네 인성인데.”
유은영이 얼굴을 찌푸렸다.
“제 인성에 문제가 있나요?”
“아니? 문제는 나한테 있지.”
그럴 줄 알았다.
“먼저, 유은영 씨. 존댓말 금지야. 굳이 써야 한다면 돈 주는 사람한테만 써.”
“돈 주는 사람이요……?”
“그래, 우리 월급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지?”
유은영과 지화자.
그녀들은 센터 소속의 공무원들이었다. 공무원들의 월급은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법.
유은영이 지화자의 말을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장님한테는요?”
“그 인간한테도 당연히 써야지. 내가 상사한테까지 말 깔 정도로 그렇게 싸가지 없지는 않아서.”
상사한테 말 깔 정도로 싸가지 충분히 없어 보이는데. 눈치 좋은 유은영은 지화자에 대한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
“그런데요, 지화자 씨. 가장 중요한 걸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응?”
지화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언이랑 특성들, 그리고 주의할 점. 모두 가르쳐 준 것 같은데? 여기에서 뭘 더 바라?”
“지화자 씨가 이끌고 있는 0팀에 관해서 알려 주셔야죠. 지화자 씨 포함해서 다섯이서 움직이고 있다면서요?”
“아, 걔네…….”
지화자가 입을 떼려던 때였다.
우웅―!
휴대폰이 울렸다. 지화자는 저도 모르게 걸려 온 전화를 받으려다가 유은영에게 이를 넘겼다.
“뭐, 뭐예요? 지화자 씨 휴대폰을 왜 저한테 주세요?”
“이제 언니가 써야지. 어서 받기나 해. 우리 팀원이야.”
유은영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팀장님, 하태균입니다. 곧 게이트 열리는데 어디 계십니까?
“게이트요……?”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중얼거린 말에 지화자는 이마를 짚었다.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화자가 유은영에게 입을 뻐금거렸다.
금방 간다고 하고, 전화 끊어.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금방 갈게요.”
―네? 팀장님? 저기, 팀장님 맞습니까?
“네네, 맞아요.”
유은영이 당황스러워하는 남자에게 대충 대꾸해 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놀란 눈으로 지화자에게 물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게이트라니요?”
“까먹었어.”
“뭐를요?”
“오늘 게이트 열린다는 거.”
“네에?!”
유은영이 어처구니없어하며 지화자에게 물었다.
“아니, 랭킹 1위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걸 잊어요?!”
“랭킹 1위도 사람이니까. 그리고 유은영 씨도 내 입장이 되어 봐. 갑자기 폐급이랑 몸이 바뀌었는데, 정신없지 않겠어?”
“폐급 앞에서 함부로 폐급거리지 마세요!”
“자기도 방금 전에 폐급거렸으면서 나한테 난리야.”
유은영이 뚱한 얼굴로 지화자를 쳐다봤다. 지화자는 그 시선을 무시하며 말했다.
“게이트는 서울 중구 덕수궁 근처에서 열릴 거야. 기억하기로는 E급으로 알고 있어. 유형은 타임 브레이커. 원래 중구는 2팀 담당인데, 걔네 게이트 예고되기 전에 출장 나갔거든.”
“그래서요?”
“우리가 그 녀석들 땜빵을 때워야 한다는 말이지. 정확히는, 내 몸 안에 있는 언니가.”
“네에?!”
유은영이 놀라 되물었다.
“도대체 왜요?”
“우리 팀이 원래 그런 팀이야. 땜빵 전용. 그러니까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일어나.”
“길드 있잖아요! 그 사람들한테 맡기면 안 돼요?”
“진작 맡기려고 했지. 그런데 신입을 들인 길드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공략하려는 길드가 없더라고.”
“왜요?”
“거참, 궁금한 게 많은 언니네.”
지화자가 짜증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E급 게이트잖아? 얻을 수 있는 보상 아이템이 형편없으니까 그러지. 신입이라도 있었으면 걔네 감각 익히게 한다고 공략하려고 했을 텐데 뭐…….”
지화자가 목소리의 끝을 흐리곤 말했다.
“어쨌든 궁금한 건 이제 끝이지? 움직이자.”
“자, 잠깐만요! 아무리 E급이라고 해도 그렇지! 랭킹 포인트 얻으려고 혼자서 공략하려는 사람도 없었어요?!”
“우리나라는 단독 공략을 법으로 금지한 나라잖아? 나야 A-Index 오류로 어쩔 수 없었던 거고. 자, 그러니까 이제 가자.”
“진짜 이대로 저보고 게이트 공략하러 가라고요?”
“응. 괜찮아, 언니. 내가 일러 준 대로만 하면 돼.”
“뭘 일러 줬다고!”
유은영이 쨍하게 소리 질렀다.
“그보다 또 차를 몰고 가려고요? 이번에는 안 돼요!”
“안 되기는 뭐가 안 돼? 돼.”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언니는 할 수 있어. 랭킹 1위의 눈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 난 한 번도 틀린 적 없어.”
***
서울 중구 세종대로 99번지.
덕수궁이 위치한 곳에 당직을 서고 있던 센터의 직원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도 유독 여유로운 두 사람이 있었으니.
“형님, 팀장님 지금 어디래요?”
“금방 오신다는데 잘 모르겠네.”
“저기 오시네요.”
0팀의 팀원들이었다.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는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옆에 누구시지? 하성아, 팀장님 옆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
“저도 보여요, 형님. 세상 혼자 살 것처럼 구시는 분께서 웬일로 사람을 옆에 데리고 계시네.”
두 남자는 의아한 얼굴로 유은영과 지화자를 보았다.
두 여자는 두 남자에게로 걸음을 옮기며 대화를 나눴다.
“저기, 머리 파란색으로 염색한 놈은 가하성. 옆에 있는 놈은 하태균이야.”
알고 보면 지화자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뿐이었다. 유은영은 두 귀를 쫑긋 세우며 경청했다.
“가하성은 나 못지않게 싸가지 없고, 하태균은 불명예 퇴역 군인이야. 끝.”
“끝이요?”
“응. 팀원들 알려 달라며? 두 명 더 있는데, 걔들은 여기 없으니까 일단은 소개 끝. 자, 이제 가 봐.”
지화자가 유은영의 등을 밀었다. 하지만 유은영은 밀리지 않았다.
“가기는 뭘 가요! 지화자 씨는 뭐 하고요?!”
“응원. 그리고 지화자 씨가 아니라, 유은영 씨라고 부르셔야죠. 지 팀장님.”
유은영이 기가 차 입을 벌렸다.
‘진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뻔뻔한 것으로 따져도 분명 지화자가 국내 랭킹 1위의 자리를 거머쥐고 마리라.
“저… 지 팀장님?”
유은영은 답이 없었다. 지화자가 유은영에게 속닥거렸다.
“지화자 씨, 부르시잖아요,”
“아, 네……!”
유은영의 존댓말에 센터의 직원이 놀라 두 눈을 끔뻑였다.
“네……?”
유은영은 빠르게 말을 고쳤다.
“아니, 왜.”
그뿐만이 아니라 태도도 한껏 흉내 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상대를 아래에서 위로 노려봤다. 귀찮아 죽겠다는 듯이 말이다.
유은영에게 말을 건 남자, 하태균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어제 게이트에 휘말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메시지 보냈는데 답이 없으셔서 걱정했습니다.”
“메시지?”
유은영은 뒤늦게 이 몸뚱이로 단 한 번도 휴대폰을 확인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 그랬어? 미안! 정신없어서 확인을 못 했네!”
하태균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왜?”
“그…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태균은 당황스러웠다.
그딴 걸 왜 보냈냐고, 멀쩡해 보이지 않냐는 질책이 날아올 줄 알았는데 사과라니.
하태균이 당황스러워하는 사이, 지화자는 파견 나온 센터의 직원에게 불려 갔다.
“지 팀장님, 잠깐 와 주시겠습니까? 이번 게이트에 대해 알려 드릴 게 있습니다.”
“응? 어어, 알겠어.”
유은영이 고장 난 기계처럼 삐걱거리며 센터의 직원에게 향했다. 하태균이 그 뒷모습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성아, 팀장님께서 묘하게 분위기가 달라지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 F급 힐러 분이랑 같이 게이트에 휘말리셨다더니, 많이 무리하신 모양이야.”
“글쎄요.”
가하성이 자신의 팀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무슨 대화 중인지는 모르겠으나, 연신 알려 줘서 고맙다고 고개를 꾸벅이는 걸 보니…….
“하지만 확실히 정상은 아니신 것 같네요.”
천하의 지화자가 고맙다면서 고개를 꾸벅이고 있다니.
가하성이 잘못 본 건가 싶어 두 눈을 비비는 순간이었다.
파지직―!
공중에서 전기가 튀는가 싶더니 커다란 싱크홀이 형성됐다.
“게이트 형성됐습니다!”
A-Index의 알림이 정확하게 맞아 들었다.
“가하성 님, 하태균 님. 시민들 대피 모두 이뤄졌고, 주변에 안전 펜스 또한 설치 완료했습니다. 이제 공략하러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 말에 하태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준비 끝났다는데 이제 들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유은영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에요, 나는 당신네 팀장이 아니란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듣지 못한 척 꾸물거리고 싶었다. 하지만 빌어먹을 S급 몸뚱이는 청력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그냥 팀장님 혼자 들어가시면 안 되나요? 게이트 단독 공략하신 경험도 있잖아요.”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유은영이 두 눈을 부릅뜨고 가하성을 노려보았다.
“0팀, 안 들어갈 겁니까?”
“네!”
“네……?”
“아, 아니요! 들어가야죠!!”
유은영은 가하성을 노려보는 걸 멈추고 한껏 입꼬리를 올렸다.
“하하, 오랜만에 몸 좀 풀겠네요? 아이, 신이 난다! 신이 나!!”
“…….”
가하성과 하태균이 미친 사람 보듯 유은영을 쳐다봤다. 하태균이 조심스럽게 유은영에게 물었다.
“저, 팀장님. 혹시 어디 아프신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아픈 곳 있으면 게이트 공략하러 들어가지 않아도 되나요?”
그럴 리가.
하태균은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져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다음으로 가하성이 물었다.
“아니면 뭐 잘못 드시기라도 하셨어요? 갑자기 웬 존댓말?”
“아, 맞다.”
아, 맞다라니? 저 태연한 대꾸는 뭐란 말인가?
가하성 역시 넋이 나간 얼굴로 제 팀장을 바라보았다.
유은영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그게 제 신상에 좋을 것 같았다.
말이 사라진 0팀을 향해 센터의 직원이 목소리를 내었다.
“저, 0팀? 이번 게이트는 E급으로 낮은 등급이기는 하지만, 30분 안으로 공략해야 하는 타임 브레이커 아웃 유형입니다.”
그러니까 어서 공략하러 들어가라는 소리였다.
유은영이 지화자의 얼굴로 한껏 울상을 지었다.
그 모습이 마치, 학교 가기 싫어하는 철부지 아이의 모습처럼 보여 0팀을 재촉했던 센터의 직원은 몸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유은영은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며 말했다.
“가요, 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유은영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을 느끼며 게이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