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7화 (7/200)

제7화

한숨 자고 나면 원래의 몸으로 돌아와 있을 줄 알았더니, 아무래도 헛된 희망이었던 것 같다.

이 곤란한 상황에서 지화자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게이트 공략하면서 얻은 아이템이 문제인 것 같아.”

“아이템이요?”

“응.”

지화자가 어젯밤, 보고서를 정리하면서 얻은 정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게이트를 공략하고 나면 그에 따른 아이템을 보상받거든?”

“네.”

“그런데 등급 측정이 불가능한 아이템이 우리한테 흡수가 됐다고 하더라고. 보상받은 아이템은 그거 하나가 전부고. 자세한 건 A-Index를 한 번 살펴 봐.”

지화자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유은영은 A-Index를 살피는 대신 그녀에게 제안했다.

“우리 한 번 토해 봐요.”

“이미 흡수가 됐다는데 토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지화자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그래도 달라질 수 있죠!”

“그럼, 언니가 먼저 토하고 와.”

“같이 토해야죠! 화장실 두 개 있으니까 각자 하나씩 잡고 들어가서 토하고 나와 봐요!”

지화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은영 씨, 있잖아.”

“네.”

지화자가 먹고 있던 토스트를 내려놓았다.

“꼭, 아침 먹으면서 토하자니 뭐니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해?”

“그러면 어떻게 해요? 평생 이대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살지도 모르는데!”

국내 부동의 랭킹 1위인 ‘지화자’의 몸으로 평생을 산다?

‘물론, 좋은 집에서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겠지.’

하지만 ‘랭킹 1위’란 자리는 그만큼의 책임과 부담감을 짊어져야 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유은영은 그런 책임과 부담감을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화자가 유은영의 두 눈에 깃든 불안감을 읽고는 말했다.

“유은영 씨, 우리의 몸이 평생 이 상태는 아닐 거야.”

“지화자 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보상받은 아이템이 ‘불완전한 영혼석’이라고 했으니까.”

“그게 왜요?”

“언니, 머리 나쁘구나?”

지화자가 접시 위에 내려놓았던 토스트를 다시 들었다.

“불완전하다고 하잖아. 서로 완전하지 못한 상태이니, 결국에는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언젠가는 말이야.”

유은영이 눈가를 찌푸렸다.

결국, 언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지는 알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유은영 씨가 내 흉내를 좀 내줘야겠어.”

“제가 지화자 씨 흉내를 어떻게 내요?!”

“말했잖아? 세상에서 제일 잘난 인간처럼 행동하면 된다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신 적 없거든요!”

“어쨌든, 비슷하게 말했을 거 아니야?”

지화자가 먹고 있던 토스트를 한입에 삼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은영 씨, 다 먹었지?”

“아직 다 안 먹었는데요.”

유은영이 반쯤 남은 토스트를 우물거렸다. 햄스터가 해바라기씨를 갉아 먹는 모양새였다.

지화자가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다.

“언니, 그딴 식으로 먹지 말아 줄래?”

“지화자 씨, 세상에서 가장 짜증 나는 사람이 먹는 거 지적하는 사람이래요.”

“누가 그래?”

“제가요.”

저 망할 폐급 힐러는 왜 저렇게 겁이 없을까?

지화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그거 들고 일어나. 갈 곳이 있거든.”

“어디요?”

“센터.”

간결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유은영은 듣지 못할 소리를 들었다는 듯 외쳤다.

“거기를 왜 가요!”

황금 같은 주말이다. 그런데 직장에 가자니!

‘어떻게 저런 끔찍한 소리를!’

유은영이 소리 질렀다.

“절대 싫어요!”

“응, 나도 싫어.”

그러면서 지화자는 유은영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그대로 지하로 내려가 유은영을 차에 태웠다.

유은영이 바람 빠진 인형처럼 흐물거리면서 웅얼거렸다.

“지화자 씨, 진짜 싫어.”

“응, 나도 유은영 씨 진짜 싫어. 언니를 만나게 된 건 내 인생의 가장 큰 불행 중 하나야. 알겠으면 안전벨트 매.”

“…….”

유은영은 본전도 찾지 못하고 순순히 안전벨트를 맸다.

그렇게 지하 주차장을 나왔을 때였다.

유은영이 뒤늦게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기요, 지화자 씨.”

“왜.”

“생각해 보니 저 면허 없어요.”

끼이익―!

지화자가 몰고 다니는 붉은 스포츠카가 신호등 앞에서 멈춰 섰다.

“그걸 왜 이제 말해!”

“아니, 지화자 씨가 너무 자연스럽게 운전석에 앉아서요!”

유은영이 지화자의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기는.”

지화자가 유은영의 얼굴로 한껏 미간을 좁혔다.

“이대로 센터로 가야지.”

“그러다 걸리면요?!”

“안 걸려. 지금 시간이면 단속 도 없어.”

초록색 주행 신호가 떨어졌다.

지화자는 그대로 페달을 밟았다. 유은영이 안전벨트를 꼭 부여잡으며 외쳤다.

“지화자 씨, 천천히요!”

“천천히 달리다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이대로 센터까지 가자.”

“단속 없을 거라면서!”

“혹시 모르니까.”

지화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붉은 스포츠카가 굉음을 내며 강남대로를 가로질렀다. 유은영이 제발 좀 천천히 달려 달라고 소리 질러 댔으나.

“좋아, 도착.”

광란의 주행은 센터에 도착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유은영은 괜히 입을 틀어막으며 차에서 내렸다.

“멀미도 안 날 텐데 유난은?”

“시끄러워요!”

지화자는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린 후 유은영을 센터 내 단련실로 데리고 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단련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은영 씨, 내가 게이트에서 들고 있었던 무기 기억나?”

“네? 네, 기억나요. 양 끝에 귀면문(鬼面紋)이 새겨져 있던 막대기 맞죠?”

“응, 맞아.”

지화자가 기특하다는 듯이 싱긋 웃었다.

“그럼, 그거 한 번 꺼내 봐.”

“어디서요?”

“여기서지.”

“어떻게요?”

지화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왜 자신에게 묻느냐는 얼굴. 유은영은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열었다.

“지화자 씨, 제가 지금 지화자 씨의 몸에 들어와 있다고는 하지만요.”

“능력을 쓰는 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친절하게 가르쳐 달라고?”

지화자가 비딱하게 웃었다.

“미안하지만, 언니. 나한테 ‘친절’을 바라지 마.”

사람이 어쩜 저렇게 재수 없을 수 있을까? 유은영이 기가 차다는 듯 입을 벌렸다.

“그래도 도움을 하나 주자면, 내가 부여받은 성언은 ‘모든 것을 기억하라’야.”

“네?”

“고유 특성은…….”

“잠깐만요!”

유은영이 다급하게 지화자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 그렇게 중요한 정보를 저한테 막 말해 줘도 되는 거예요?!”

성언(聖言).

각성자의 근간이 되는 힘으로, 어느 순간 부여받는 메시지였다.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응, 막 말해 줘도 돼. 딱히 비밀도 아니거든. 그리고 이거, 웬만한 상위 랭커 녀석들은 알고 있는 정보야.”

“아무리 그래도요.”

“유은영 씨, 지금 뭐 착각하는 것 같네?”

지화자가 유은영의 얼굴로 서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 이 정보들 공짜로 가르쳐 주는 거 아니야. 상위 랭커 녀석들이 알고 있는 정보라고 해도 성언이 전부거든?”

“그, 그런데요?”

지화자가 성큼, 유은영 앞에 다가와서는 생글거렸다.

“언니도 말해 줘야지? 부여받은 성언 뿐만 아니라 고유 특성, 보조 특성 모두.”

유은영은 기가 찼다.

‘아니, 누가 알려 달라고 했나?’

유은영이 어처구니없어 하든 말든 지화자는 계속해서 자신에 대해 알려 주었다.

“고유 특성은 ‘회고록(回顧錄)’이야. 고유 특성이 각성자가 부여받은 성언에 맞춰 형성된다는 건 알고 있지?”

“당연히 알고 있죠. 저도 각성자라고요.”

고유 특성.

오직, 그 각성자만이 타고나는 것으로 부여받은 성언과 관련하여 형성되는 힘이었다.

“보조 특성은 세 개야. ‘인내’와 ‘견고’, 그리고 ‘예리한 감각’.”

반면, 보조 특성은 다른 각성자에게도 나타나는 힘이었다.

“웬만한 공격에는 반응할 수 있을 거고, 웬만한 부상을 입어도 참고 싸울 수 있을 거야.”

“그냥 참지 말고 안 싸우면 안 될까요?”

“응, 안 돼.”

지화자가 웃음을 지었다.

“너는 랭킹 1위 지화자니까.”

유은영이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지화자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지화자는 방긋 웃으며 유은영에게 물었다.

“자, 이제 언니도 말해 줄래?”

성언과 특성들에 대해 알려 달라는 거겠지.

“부여받은 성언은, 그…….”

유은영이 입 밖으로 내뱉기 껄끄럽다는 듯이 웅얼거렸다.

“상처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예요.”

“그게 언니가 부여받은 성언이야?”

“네.”

“특이하네. 힐러 맞지?”

“맞아요!”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그녀는 크흠, 헛기침을 두어 번 터트리고는 말을 이었다.

“고유 특성은 ‘안녕(安寧)’이에요. 보조 특성은 아시다시피 ‘힐(Heal)’이고요.”

“흐음.”

지화자가 오른쪽 팔꿈치를 왼손으로 받치며, 제 턱을 쓰다듬었다. 무언가 생각할 때 나오는 그녀의 버릇이었다.

“그런데 지화자 씨, 제 몸으로 제 상태창 안 떠요?”

상태창이란 것은 A-Index에 기록되어 있는 본인의 능력치를 불러오는 것이었다.

상대방에 관해서는, 열람 가능한 정보들만 확인할 수 있었다.

“언니의 상태창을 내가 제대로 볼 수 있었으면 굳이 언니한테 성언이나 특성들을 물어 봤을까?”

“그건 그렇네요.”

어쨌든 정보 탐색은 끝났다.

지화자가 유은영의 정강이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이제 무기나 빨리 꺼내 봐. 내가 이렇게까지 도와줬는데 아직도 못 꺼냈어?”

도와주기는 뭘 도와줬다고!

그보다.

“이거 지화자 씨 몸이거든요? 함부로 차지 마세요!”

“이거라니. 언니, 말이 좀 심한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지화자의 목소리는 왜인지 모르게 즐거워 보였다.유은영은 심통이 잔뜩 난 얼굴로 허공에 손을 뻗었다.

슬프게도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지화자의 흉내를 내야 했다.

유은영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모든 것을 기억하라.’

그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될까?

유은영은 우선, 직감적으로 그 메시지를 받아들였다.

우선, 머릿속으로 지화자가 무기를 꺼내던 순간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던 게이트 안에서 나타났던 막대기 하나.

성인 남성의 손가락 두 개 정도의 두께에 길이는 이 몸의 상반신 정도.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성격 파탄자. 랭킹 1위, 지화자 씨께서는 그 봉을 꺼내 들며 불꽃을…….

화르륵―!

갑작스럽게 일어난 불길이 맹렬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왁! 와아아악!”

다행히도 주변에 일어난 불꽃은 유은영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다.

문제는 지화자였다.

“야! 불 꺼, 불!!”

F급 몸뚱이에 빙의되어 있는 지화자가 뜨거운 열기에 당황해하며 비명을 질렀다. 당황한 건 유은영도 마찬가지였다.

“어, 어떻게 끄는데요?! 끄는 법 좀 알려 주세요, 지화자 씨!”

“감으로 해!”

“그걸 말이라고!!”

하지만 지화자는 그렇게 알려 줄 수밖에 없었다.

성언을 부여받자마자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일깨웠던 힘이었다. 그걸 저 빌어먹을 F급 힐러에게 어떤 식으로 설명해 준단 말인가?

결국, 유은영은 일어난 불꽃과 한참을 씨름한 끝에 가까스로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저기요, 지화자 씨.”

유은영이 제 얼굴을 바라보며 울먹였다.

“그냥 센터 때려치우면 안 될까요? 제가 굳이 당신 흉내를 내가면서 센터를 다녀야 할까요?”

지화자가 방긋 웃었다.

“그럼, 유은영 씨. 나도 센터 때쳐치워도 돼? 폐급이라 갈 곳 없을 것 같기는 한데.”

유은영은 눈물을 머금었다.

“한 번 더 도전해 볼게요…….”

어떻게든 이 망할 몸뚱이에 적응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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