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6화 (6/200)

제6화

“음… 자네, ‘유은영’이라고 했나? 간호 관리 부서의 힐러.”

“네, 부장님.”

대답한 건 지화자였다. 유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지금 누구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잊고 대답할 뻔했다.

우종문은 유은영을 흘긋거리고는 말했다.

“갑작스럽게 게이트에 휘말려서 많이 놀랐을 텐데 불러서 미안하네. 하지만 이해해 주게나.”

“괜찮습니다, 부장님. 충분히 이해합니다. 시스템 오류로 일어난 게이트는 공략 즉시 보고를 받고 올려야 하니까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언변이었다. 유은영이 제 얼굴을 보며 입술을 오므렸다.

우종문은 ‘유은영’의 대답에 미소를 그렸다.

“간호 관리 부서의 힐러라더니. 누가 보면 우리 부서의 사람인 줄 알겠어. 그렇지 않나, 지화자 팀장?”

“네? 아, 넵.”

유은영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화자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현장 파견 부서의 일에 관심이 많아서요.”

“흐음.”

우종문이 입가를 만지작거리고는 웃음을 지었다.

“F급이라고 들었는데, 능력치와 상관없이 똑똑한 모양이야.”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부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는 능력치가 너무 낮아 게이트 공략에 있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화자의 몸에 들어가 있는 유은영이 몸을 움찔거렸다. 괜히 찔렸기 때문이다. 지화자가 그런 유은영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니 공략에 관한 정보는 지 팀장님께 듣는 것이 편하실 겁니다, 부장님.”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네. 그나저나 젊은 친구가 아주 똑 부러지는군. 마음에 들어.”

왜냐하면 그 젊은 친구, 지화자 씨거든요.

유은영이 침을 꿀꺽 삼키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 지 팀장.”

“네?”

“유은영 씨의 말을 들어 보니 이번 게이트를 혼자서 공략한 것 같은데 할 말 없나?”

“어… 으음…….”

유은영이 두 눈을 데굴 굴리고는 헤실거렸다.

“할 말 없는데요.”

지화자 씨의 말대로, 저는 한 게 아무것도 없어서.

유은영은 치미는 말을 삼키며 머리를 긁적였다. 부장실에 침묵이 무겁게 내렸다.

숨 막힐 듯한 정적 사이로 유은영은 저를 찌르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지화자가 보내는 살기 어린 눈빛이었다.

유은영은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죄송해요, 지화자 씨!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억울했다.

‘지화자 씨는 나한테 도대체 뭘 바란 거야?!’

게이트 공략에 대한 보고 따위, 아는 것이 없는 유은영이었다.

입사 후 내내 현장에 나가는 것 없이 키보드만 두드려 댔었는데 그 체계를 알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게이트에 휘말린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유은영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일 때였다.

“그렇군, 할 말이 없다라…….”

우종문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 말하는 걸 보니 특별한 이상은 없던 모양이군.”

“네? 네, 부장님! 그렇습니다!”

유은영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그럼, 지화자 팀장. 이번 게이트에 관한 것들을 월요일까지 정리해서 내게 올리게. 자네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새로운 몬스터를 중점적으로 정리해서 말이지.”

“월요일까지요……?”

오늘은 금요일.

하지만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 곧 토요일이었다. 그러니까 월요일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이틀뿐이라는 것.

“무슨 문제라도 있나?”

“네? 아, 아니요. 없습니다, 있을 리가 없죠.”

유은영은 높은 분께 착실히 엎드릴 줄 알았다. 하지만 주말에 보고서 정리라니.

어떻게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할 수 있느냐는 말들을, 유은영은 애써 집어 삼켰다.

‘우리 부장님보다 인상이 좋아서 사람이 좋을 줄 알았더니.’

못된 사람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민머리 부장보다 훨씬 더 못된 사람이었다.

‘적어도 우리 부장님은 주말에 일 안 시키는데!’

우종문은 ‘지화자’의 옆에 서 있는 F급 힐러를 향해 미소 지었다.

“유은영 씨는 내게 따로 보고를 올릴 필요 없다네. 자네는 자네 부장과 이야기 나누게나.”

“네, 감사합니다.”

지화자가 유은영의 얼굴로 눈웃음을 지었다.

“그럼, 두 사람 모두 수고했네. 피곤할 텐데 어서들 돌아가서 쉬도록 하게.”

유은영과 지화자가 사이좋게 고개를 꾸벅거리고는 현장 파견 부서의 부장실을 나왔다.

달칵, 문을 닫자마자 유은영이 우는 목소리를 내었다.

“도대체 뭘 보고하라는 거예요?”

“부장한테서 뭘 들은 거야? 내가 공략한 게이트에 관한 것들을 정리해서 보고하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뭘 정리해야 하는데요? 저 게이트에 대해 보고 올려본 적 단 한 번도 없단 말이에요!”

지화자가 피곤한 낯으로 친절을 베풀었다.

“게이트의 구조가 어땠는지, 나타난 몬스터는 어떤 종류였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공략했는지 등등을 정리해서 보고하면 돼.”

그러고는 “아”하고 바람 빠진 소리를 내고는 말을 덧붙였다.

“내 손에 상처입힌 바퀴, 그것들을 특히나 중점적으로 정리해. 부장이 명령한 대로.”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게이트의 구조는 잘 모르겠고, 나타난 몬스터는 바퀴벌레. 그 벌레들을 지화자 씨가 때려잡았죠. 그리고 지화자 씨의 손에 상처를 입힌 바퀴벌레에 대해 생각나는 건 엄청나게 긴 더듬이가 달려 있었다는 것?”

“그래, 그렇게 보고해 봐.”

지화자가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대차게 까이겠네.”

“…….”

유은영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랭킹 1위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형편없은 모습이었다.

“언니, 어깨 펴.”

“제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어깨를 펼 수 있겠어요?”

“하긴, 뭐.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 자고 일어나면 원래대로 돌아와 있을 테니까.”

“괜히 희망 회로 돌리는 거 아니에요, 지화자 씨?”

지화자가 그 입 닥치라는 눈빛을 보냈다. 유은영이 이를 귀신같이 알아듣고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뿐이었다.

유은영은 지화자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요, 지화자 씨. 자고 일어나도 저희 이대로면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기는? 그냥 X된 거지, 말해 뭐 해?”

대책 없는 말이었다.

유은영이 허망한 얼굴로 지화자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내 얼굴로 그딴 표정 짓지 말라니까?!”

지화자가 짜증스럽게 외쳤다.

***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지화자는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와아! 무슨 집이 이렇게 넓어요? 여기 혼자 사시는 거예요? 대박! 완전 부러워!!”

유은영과 함께 말이다.

자고 일어난 다음, 서로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가 있으면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문제였다.

그것도 아주 큰 문제.

지화자는 그 문제가 닥칠 상황을 대비해 유은영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대박, 한강 뷰! 지화자 씨, 월세로 사셨어요? 아님 전세?”

“매매. 내 집이야.”

“헐…….”

유은영이 멍하니 입을 헤벌렸다. 그 모습에 지화자가 얼굴을 사납게 찌푸렸다.

‘내가 저렇게 멍청한 표정도 지을 수 있었다니.’

자신의 얼굴로 그딴 표정 짓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도 귀찮을 지경이 됐다.

때문에 지화자는 별다른 말 없이 설레설레 고개를 젓고는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던졌다.

유은영이 그것을 집어 들고는 소리 질렀다.

“지화자 씨! 옷걸이는 둬서 뭐 해요?!”

“여기가 네 집이라도 돼? 쓸데없이 잔소리하지 마.”

“쓸데없는 잔소리라니요?”

유은영이 지화자가 벗어든 제 코트를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며 웃었다.

“자고 일어나서도 이 상태면, 이 집은 제 거잖아요?”

“뭐?”

지화자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유은영을 쳐다봤다.

“야, 너.”

“그런데 화장실은 어디예요?”

유은영이 해맑게 물었다. 지화자는 치밀어 오르는 욕을 꾹 눌러 담으며 말했다.

“…저기 안쪽에 하나. 그리고 작은 방에 하나 더. 둘 중 편한 곳 골라 써.”

“네, 알려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지화자 씨.”

“또, 뭐.”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화자 씨는 손 안 씻어요? 샤워도 안 하고요? 잊으신 모양인데, 저희 게이트 공략하고 왔거든요?”

그것도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게이트를 말이다.

지화자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유은영 씨, 언니야말로 뭔가 잊었나 본데. 그 게이트, 나 혼자 공략하지 않았었나?”

“어쨌든 함께 움직이기는 했잖아요. 그러니까 어서 샤워하시고, 손도 씻어 주세요. 옷도 갈아입어 주시고요.”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거 제 몸이니까요!”

유은영이 빼액 소리 질렀다.

넓은 거실을 울릴 만큼 커다란 목소리였다. 지화자는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랭킹 1위의 목청이란 건 원래 이런 건가. 폐급 몸으로 빽빽거리는 걸 듣고 있으니 머리가 다 울렸다.

‘한 대 때리고 싶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유은영이 들어가 있는 저 몸은 자신의 몸이었다. 유은영을 때리겠답시고 제 몸을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화자 씨!”

“알았어, 씻을게! 씻으면 되잖아! 잔소리 더럽게 많아!!”

지화자는 결국 몸을 일으켰다. 유은영이 그 행동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지화자에게 물었다.

“씻으러 가기 전에 옷 좀 주세요. 샤워한 다음에 옷 갈아입고 싶거든요.”

“저기 옷장 안에서 아무거나 꺼내 입어. 그만 귀찮게 하고!”

지화자가 사납게 일갈한 후 욕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유은영은 그녀가 가르쳐 준 옷장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와우.”

안타깝게도, 유은영이 고를 수 있는 옷은 별로 없었다.

아무 옷이나 꺼내 입기에는 지화자의 옷장 안에는 정장 세트만 여러 벌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같은 디자인, 같은 색의.

“여기서 도대체 뭘 꺼내 입으란 거야.”

그보다 이 사람은 회사밖에 안 다니나? 어떻게 된 것이, 그 흔한 청바지 하나 없을 수가 있지?

그래도 유은영은 옷장 안을 열심히 뒤진 끝에 트레이닝복 세트를 겨우 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유은영이 샤워를 끝마치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나왔을 때였다.

“푸흡.”

마찬가지로 위아래, 트레이닝복 세트를 입고 있는 지화자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꼴이 왜 그래요, 지화자 씨?”

“네 몸뚱이가 너무 길어서 이런 거잖아. 내 옷이 이렇게 안 맞을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안 크고 뭐 하셨어요?”

“언니, 죽고 싶지?”

유은영이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지화자는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리고는 말했다.

“잠은 저 방에서 자. 다른 방은 있는 게 없거든.”

“지화자 씨는요?”

“부장 새끼가 시킨 보고서 정리해야지. 원래 몸으로 돌아가면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잖아.”

“안 돌아갈 수도 있는데…….”

유은영이 입을 다물었다. 제게 닿는 지화자의 날 선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후다닥, 지화자가 가리킨 방으로 달려가며 지화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는 이만 잘게요, 지화자 씨! 너무 늦게까지 일하지 마세요, 몸에 안 좋으니까요! 그럼 안녕!”

저를 걱정해 주는 건지, 아니면 놀리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 인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이렇게 늦은 밤, 제게 건넨 인사는 참으로 오랜만이었으므로.

어쨌거나 지화자는 센터 내의 정보와 함께 A-Index상에 기록된 것들을 토대로 보고서를 정리해 나갔다.

“아이템…….”

밤이 새도록 보고서를 적고 있던 지화자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 보니 공략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은 어떻게 됐지? 안 받았을 리가 없는데?”

어떤 게이트든 공략이 되면 유산을 남겼다. 공략 보상 아이템이라고 불리는 것들 말이다.

A-Index상에 기록된 정보를 확인하던 지화자가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불완전한 영혼석이라…….”

그런 아이템 따위 받은 기억이 없었다. 혹시나 디바이스 내의 인벤토리에 저도 모르는 사이 보관됐나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뭐지? A-Index상의 문제인가? 아님, 공략하고 나왔던 게이트의 문제?”

후자라면 F급 힐러와 몸이 바뀐 이 빌어먹을 상황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등급 측정 불가, ‘불완전한 영혼석’이 흡수된 상태입니다.】

나타난 메시지에 지화자가 눈가를 찡그렸다.

“흡수가 됐다고……?”

뭔가 불안하다.

그리고 그 불안은, 머지않아 현실로 다가오고 말았다.

* * *

“지화자 씨, 일어나 봐요.”

“음……?”

보고서를 정리하다가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지화자가 두 눈을 비비고선 기지개를 켰다. 그러곤 보이는 얼굴에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저희 이제 어떻게 해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자신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촉촉하게 젖어 있는 두 눈에 졸음이 확 달아났다.

“울지 마, 제발 울지 마.”

그럴 리 없겠지만, 남들이 볼까 두려웠다.

지화자는 제발 이 모든 상황이 꿈이기를 바라며, 하루 지났다고 익숙해진 얼굴을 문질렀다.

“우리 한 번 죽어 볼까? 어때, 유은영 씨? 참 좋은 생각인 것 같지 않아?”

참 좋은 생각은 개뿔!

“지화자 씨, 미쳤어요?”

“네가 했던 말이잖아!”

지화자는 억울했다.

그 전에,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이 꿈이기를 다시 한번 더 바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