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5화 (5/200)

제5화

02. 서로를 위해 알아야 할 것.

각성자 관리국.

일명, ‘센터’라 불리는 곳은 현재 난리였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게이트 때문이었다.

덕분에 야근하던 센터의 모든 직원이 뛰쳐나왔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할 새도 없이, 게이트는 지화자의 손에 의해 간단하게 공략당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몸에 빙의된 유은영은 벌어진 사태에 두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중이었다.

“내 얼굴로 그런 멍청한 표정 좀 짓지 말지?”

“제가 언제 멍청한 얼굴을 보였다고 그러세요? 그보다 지화자 씨, 저희 이제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기는? 말했잖아, 나인 척 행동하라고. 나는 언니처럼 행동할 테니까 말이야.”

“그게 말이 쉽죠!”

“쉿, 목소리 낮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센터의 직원들이 유은영과 지화자 쪽을 흘긋거리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왜 오지 말라고 하시는 거지?”

“지 팀장님 옆에 있는 여자는 누구야? 이혜나 팀장 쪽 사람인 것 같던데.”

목소리가 닿기에는 먼 곳에 있는 그들이었지만, 유은영의 귀에는 그들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들리고 있었다.

F급에서 S급으로 나눠지는 각성자의 등급.

그 등급이 높아질수록 신체 능력치뿐만 아니라, 오감이 발달한다고는 들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오감이 얼마나 뛰어난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유은영이 지화자의 몸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할 때였다. 지화자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선 유은영에게 속닥거렸다.

“정신 차려, 유은영 씨. 시간이 지나면 내 몸에 익숙해질 테니까 조금만 참으라고.”

그 말에 안심이라도 된 걸까?

사방에서 들려오던 목소리들이 순식간에 수그러들었다. 유은영이 멍한 얼굴로 지화자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내 얼굴로 그런 멍청한 표정 짓지 말라니까? 앞이나 좀 제대로 쳐다봐.”

“그러니까 저는 그런 얼굴 보인 적 없다니까요?!”

유은영이 짜증을 내고는 정면을 쳐다봤다. 지화자 역시 정면을 바라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이것 하나만 기억해, 유은영 씨. 언니가 안에 들어가 있는 그 몸의 주인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인간이라는 걸.”

그에 질세라 유은영도 입을 나불거렸다.

“지화자 씨도 이것 하나만 기억해 주세요. 당신이 안에 들어가 있는 ‘유은영’은 사내 왕따란 걸요.”

“뭐?”

지화자가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이 유은영을 쳐다봤다. 하지만 유은영의 시선은 정면을 향한 채였다.

그때, 그녀의 눈치를 보던 현장 파견 부서의 직원이 외쳤다.

“지 팀장님! 다가가도 괜찮겠습니까?”

지화자가 유은영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에 유은영이 화들짝 놀라 외쳤다.

“네, 괜찮아요! 아, 이게 아니지. 잠깐만, 내가 갈게!”

유은영이 그렇게 대답하고는 현장 파견 부서의 직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화자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거 괜찮으려나 몰라.’

괜찮지 않을 거라는 직감이 본능적으로 드는 지화자였다.

“은영 씨.”

그런 지화자에게 간호 관리 부서의 팀장인 이혜나가 심기 불편한 얼굴로 물었다.

“조금 전에 뭐라고 말한 거야? 뭐가 나빴다고?”

“아…….”

습관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끄라는 말이 튀어 나갈 뻔했다. 지화자가 나오려던 말을 삼키고선 태연하게 웃었다.

“운수요, 운수. 오늘 운수 더럽게 나쁜 것 같다고요.”

지화자는 이 더럽게 나쁜 운수가 오늘로 끝나기를 바랐다.

***

유은영은 지금 굉장히 당황스러운 상태였다. 정확히는, 처음 마주한 광경에 놀라고 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 팀장님! 시스템 오류가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정말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남자가 연신 고개를 꾸벅거렸다.

“각국과 현재 ‘A-Index’의 업데이트를 진행하고자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니, 부디 이번 일을 너그럽게 넘어가 주십사……!”

시스템 관리 부서의 직원이 계속해서 떠들어 댔지만, 유은영의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나, 지금 사과받고 있어?’

이제껏 센터를 다니면서 사과라고는 들어 본 적이 없는 유은영이었다.

비록, 지화자의 몸으로 듣는 사과였지만 유은영은 좋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한없이 너그러운 얼굴로 남자를 다독였다.

“괜찮아요!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는 거죠, 뭘. 그리고 따지고 보면.”

유은영이 재빠르게 남자의 목에 걸려 있는 센터 출입증을 확인하고선 방긋 웃었다.

“권도혁 씨 잘못도 아닌걸요? 시스템이 낡은 걸 어쩌겠어요.”

권도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시스템이 낡은 걸 어쩌겠느냐니? 권도혁의 귀에는 시스템이 낡은 만큼 일하지 않고 뭐 했냐는 신종 돌려 까기로 들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다정한 목소리에 권도혁은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을 보였다.

“그러니까 이건, 천재지변과 같은 일이 일어난 거잖아요? 예상할 수 없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도혁 씨 잘못은 하나도 없으니까 그렇게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권도혁이 두리안을 맛본 침팬지와 같은 표정을 보였다. 유은영은 그가 왜 그런 표정을 보이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저… 제가 너무 상냥하게 말했나요……?”

“네… 답지 않게요…….”

“아, 죄송해요.”

유은영이 황급히 말을 고쳤다.

“죄송한 게 아니라 미안해.”

“아니요… 괜찮습니다…….”

당직 근무를 서고 있었던 시스템 관리 부서의 권도혁은 여전히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지 팀장님이 원래 저렇게 상냥한 분이셨나?’

절대 아니었다.

평소의 지화자였다면 변명 따위 하지 말라고 욕을 해 댔을 거다.

실제로 권도혁은 지화자에게서 신랄하게 욕을 얻어먹은 전적이 꽤 있었다.

그런데 그런 지화자가 괜찮다고 말해 줬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다독여 주기까지 했다.

권도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게이트 공략하시다가 머리라도 부딪치셨나? 아니면 죽을 때가 다 되신 건가?’

그가 그렇게 지화자의 안위를 걱정할 때였다.

“지 팀장님, 제가 잠깐 살펴봐도 괜찮을까요?”

간호 관리 부서의 팀장, A급 힐러인 이혜나가 타이밍 좋게 다가왔다.

“원래 저희 부장님께서 오셨어야 했는데, 오늘 일찍 퇴근하셔서요.”

그래서 왔다며, 넉살 좋게 웃는 이혜나에게 유은영이 지화자의 얼굴로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혜나 팀장님도 오늘 일찍 퇴근하시지 않았었나요?”

“네?”

아차차, 말투.

유은영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랬던 것 같아서. 아님 말고.”

그러고는 이혜나에게서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새침해 보이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이혜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뭐지……?’

지화자의 싸가지 없음이야 한두 번 겪어 본 일이 아니니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데?’

간호 관리 부서는 센터 내에서 규모가 가장 작았다. 부서 안의 팀도 하나가 전부였다.

그렇다고 해도 간호 관리 부서는 센터 내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곳이었다.

소중한 힐러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대접해 달라고?”

국내 랭킹 부동의 1위, 지화자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지화자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 이혜나가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싸가지 없는 건 그대로인데, 묘하게 분위기가 달라졌단 말이지.’

그렇게 이혜나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유은영이 아니, 그녀의 얼굴을 하고 있는 지화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팀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어? 아니, 아무 일도 없어. 그보다 은영 씨, 수건에 물 좀 묻혀서 가져다줄래? 물은 시원한 물로 부탁할게.”

지화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움직일 생각이 없는 그녀의 모습에 이혜나가 얼굴을 찌푸렸다.

“은영 씨, 안 움직이고 뭐 하는 거야? 수건에 물 좀 묻혀서 가져다 달라니까?”

“수건이 없는데요.”

“그건 은영 씨가 찾아와야지!”

지화자가 장난하냐는 듯이 이혜나를 쳐다봤다. 이혜나는 그 시선이 보이지 않는 듯, 말을 고쳤다.

“아니다, 그냥 우리 부서에서 냉찜질팩 좀 가져다줘.”

“냉찜질팩이요.”

“그래, 그러니까 어서 움직여!”

지화자가 이혜나를 한 번 노려보고는 몸을 돌렸다. 가만히 상황을 보고 있던 유은영이 한쪽 눈가를 찡그리며 말했다.

“이봐요, 이혜나 팀장님. 저분도 게이트에 함께 휘말렸었는데, 저렇게 부려 먹어도 괜찮아요?”

“부려 먹다니요?”

이혜나가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다면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지 팀장님이 지켜 주셨을 거 아니에요? 그리고 다친 곳도 없는 것 같더라고요. 많이 놀란 것 같지도 않고요. 그러니까 지 팀장님께서는 신경 쓰지 마세요.”

유은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신경을 어떻게 안 써.’

지금, 자신의 몸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지화자다.

‘나중에 어떻게 보복하실지…….’

걱정은 무슨, 기대가 되는 유은영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팀장님.”

지화자가 이혜나가 부탁한 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혜나는 지화자가 내민 냉찜질팩을 신경질적으로 빼앗아 들고는 짜증을 부렸다.

“유은영 씨, 왜 이렇게 늦었어? 지 팀장님 손에 화상 입은 거 안 보여? 이거 덧나면 은영 씨가 책임질 거야?”

“죄송합니다.”

지화자가 할 말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유은영은 보고 말았다.

지화자의 얼굴에, 아니. 자신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살의 가득한 미소를 말이다. 그렇기에 유은영은 다급하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

“이 팀장님, 저는 괜찮아요. 아니, 괜찮아.”

“제가 안 괜찮아요.”

팀장님! 당신의 안위를 위해서 괜찮다고 말해 주세요!!

유은영이 울고 싶은 심정으로 이혜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이혜나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지 팀장님도 게이트 안에서 느끼지 않았어요? 유은영 씨 굼뜬 거요.”

“…….”

유은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설마, 이렇게 앞담화를 듣게 될 줄이야.

같이 앞담을 들은 지화자 역시 입술을 꾹 깨물었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서였다.

이혜나가 그 모습을 보고선 얼굴을 찌푸렸다.

“은영 씨, 그 얼굴은 뭐야?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기분 나쁜가 봐? 응?”

“설마요.”

지화자가 싱긋 웃었다. 그 웃음이 왜인지 모르게 기분 나빠 이혜나가 얼굴을 찌푸렸다.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이 팀장님, 지 팀장님 치료 다 끝났습니까?”

“네? 어머, 수현 씨! 수현 씨도 퇴근 안 하고 계셨나 봐요?”

“일이 바빠서 말입니다.”

남자가 이혜나에게 간단히 대꾸해 주고는 말했다.

“지 팀장님, 부장님께서 부르십니다. 그리고 유은영 씨도요.”

유은영이, 아니. 그녀의 얼굴을 하고 있는 지화자가 대놓고 싫다는 티를 내었다.

유은영이 그런 지화자를 몸으로 가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헉, 부장님께서 찾으신다고요? 높으신 분을 기다리게 하면 안 되죠! 어서 가요, 수현 씨!”

현장 파견 부서 제1팀의 팀장, 조수현의 얼굴이 묘해졌다.

수현 씨라니.

지화자가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건 처음이었다. 아니, 애초에 제대로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었다.

지유화가 지화자의 손에 죽기 전까지 말이다. 조수현은 지화자를 흘긋거리고는 시선을 돌렸다.

남자의 시선이 멀어지자 유은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들어가 있는 지화자는 짜증스레 그녀에게 물었다.

“왜 자꾸 존댓말을 쓰는 거야?”

“저는 누구랑은 다르게 존댓말이 입에 밴 사람이라서요.”

“그래도 고쳐. 네가 말한 그 누구 씨는 존댓말 따윈 안 쓰니까.”

유은영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며 자신의 얼굴을 볼 때였다.

“지 팀장님, 안 오십니까?”

“네? 네, 가요!”

유은영이 부르는 목소리에 뛰어갔다.

“존댓말 쓰지 말라니까.”

지화자가 작게 중얼거리고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도착한 현장 파견 부서 부장실.

조수현이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부장님, 두 분 모시고 왔습니다.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조수현은 두 사람이 들어가기 편하게 문을 열어 주었다.

유은영은 고개를 꾸벅였고, 지화자는 남자를 못 본 척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부장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질문이 날아들었다.

“그래, 다쳤다지?”

현장 파견 부서의 부장, 우종문의 질문이 향한 대상은 ‘지화자’였다. 하지만.

“다쳤다고 해도 경미한 부상을 입은 것뿐입니다. 처음 보는 몬스터를 뭣도 모르고 만져서요.”

대답한 사람은 ‘유은영’이었다.

유은영의 몸에 들어가 있는 지화자가 자신도 모르게 답하고는 뒤늦게 말을 덧붙였다.

“지화자 팀장님께서요.”

아니, 저 인간이?

유은영이 벙찐 얼굴로 지화자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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