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어처구니가 없는 것도 잠시, 지화자는 쥐고 있던 막대기의 끝을 세웠다.
유은영이 그런 그녀를 보며 애잔하게 미소를 그렸다.
‘아무리 지화자 씨라도 바퀴벌레의 알이 들러붙어 있는 핵을 맨손으로 만지기는 싫나 보네.’
당연했다.
랭킹 1위라는 수식어와 비위가 좋은 것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지화자가 끝을 세운 막대기로 핵을 파괴하려던 순간이었다.
―쉬이, 쉬이익!
불쾌한 숨소리와 함께 유은영과 지화자의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유인영이 바닥에 길게 그려진 더듬이의 인영을 보고선 헛숨을 삼켰다.
지화자는 머리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에 잔잔히 미소를 띠었다.
“언니, 그거 알아?”
“알고 싶지 않아요.”
유은영의 단호한 목소리에도 지화자는 말했다.
“고대 바퀴벌레는 크기가 50cm가 넘었다고 해.”
“알고 싶지 않다니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것도 50cm는 족히 될 법한 크기였어요!!”
유은영이 빼액 소리를 질렀다. 지화자는 웃으며 쥐고 있던 무기를 크게 휘둘렀다.
“숙여.”
라는 아주 간단한 명령과 함께 말이다.
“꺄악!”
유은영이 가까스로 휘둘러진 막대기를 피했다. 그녀는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 채 지화자를 향해 외쳤다.
“지화자 씨, 미쳤어요?! 맞을 뻔했잖아요!”
“안 맞았잖아. 그리고 친절하게 숙이라고도 말해 줬는데 뭐가 문제야?”
지화자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유은영은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마음 같아서는 당신 인성이 문제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키이이익!
불길에 활활 타고 있는 바퀴벌레의 웅장한 자태에 그럴 수가 없었다.
유은영은 바퀴벌레도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감탄하며 지화자를 찬양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꼼짝없이 거대 바퀴벌레의 희생양이 됐을 테니 말이다.
“지화자 씨, 완전 최고! 도대체 못 하는 게 뭐에요? 아니, 부족한 게 뭐예요?”
“없어.”
겸손이 부족하네, 겸손이 부족해.
유은영이 떫은 감을 먹은 얼굴로 지화자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뭐.”
높은 사람에게 아부할 줄 아는 유은영이 지화자가 언짢아하고 있음을 느끼고선 방긋 웃었다.
“아니요. 지화자 씨와 함께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었어요.”
유은영이 지화자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지화자는 그런 유은영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그러고는 막대기를 들어 가볍게 휘둘렀다.
툭, 부딪친 핵에 금이 갔다.
당장에라도 부서질 듯 쩍쩍 갈라지는 핵의 모습에 유은영의 얼굴이 밝아졌다.
‘해방이다!’
유은영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화자는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불길함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화자가 느낀 불길한 예감은 여지없이 맞아떨어지고 말았다.
우웅―!
금이 간 핵에서 푸른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윽…! 뭐야……?!”
두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눈부시게 발하는 빛에 지화자가 팔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지화자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유은영의 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화자 씨! 저 눈이 안 보여요!! 어떻게 해요?!”
“눈을 가려, 이 바보야!!”
“가렸다고요!!”
거참, 귀찮게 하는 언니네.
지화자가 짜증스레 얼굴을 구기고는 유은영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각성자라고 하나, F급.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능력치를 가진 그녀는 지켜 줘야 할 대상이었다.
“악! 뭐야?!”
붙잡힌 머리채에 유은영이 비명을 질렀다.
지화자는 손가락 사이로 잡히는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무시하며 그녀를 끌어당겼다.
“내 머리!!”
유은영이 지르는 목소리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 순간이었다.
쿠웅―!
게이트 내부가 크게 울렸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한 진동에 지화자는 그만 유은영을 놓쳐 버렸다.
“꺄아아악!”
동시에 땅이 아래로 쑥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는 몸뚱이에 유은영이 소리 질렀다.
“꺄아악! 공략한 거 아니었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공략했어! 했는데……!”
지화자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머리를 둔탁하게 울리는 충격과 함께 의식이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밑에 깔린 유은영이 충격을 최소화해 줬지만, 지화자는 신음 한 번 흘리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00: 01: 04】
푸르게 빛을 내던 핵이 나란히 기절해 버린 두 여자 위에 두둥실 내려왔다.
[축하합니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 1-3079에 생성된 타임 브레이커 게이트?급의 공략에 성공하셨습니다.]
나타난 시스템 창을 뒤로하며 푸르게 빛을 발하던 핵이 흐물거리며 흘러내렸다.
툭, 투둑.
흘러내린 액체가 정신을 잃은 두 여자의 뺨에 닿았다. 주르륵, 뺨을 타고 흐른 것이 유은영과 지화자의 입술을 적셨다.
[공략 기여도에 따라 보상 아이템 분배를 시작합니다.]
푸른 윈도우 창에 나타난 메시지를, 유은영도 지화자도 확인하지 못했다.
[각성자 ‘지화자’와 ‘유은영’이 규격 외의 보상 아이템, ‘불안정한 영혼석(등급 측정 불가)’을 획득하셨습니다.]
확인을 해야 했는데 말이다.
게이트가 ?급인 데는 수많은 바퀴벌레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
―국가 넘버, 82.
서울 서초구 내곡동 1-3079에 생성된 게이트 공략 완료.
Type: 타임 브레이커.
Lank: ?급.
Time Limit: 10분.
Atack Time: 8분 56초.
S급 각성자 ‘지화자’와 F급 각성자 ‘유은영’의 이름이 A-Index에 기록되었습니다.―
***
“아야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뒷목도 심하게 땡겼다.
유은영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두 눈을 떴다. 그러다 보이는 익숙한 천장에 상체를 일으켰다.
“나왔다!”
드디어 바퀴벌레의 소굴에서 탈출했다. 유은영이 만세를 부르며 두 손을 번쩍 들 때였다.
“시발! 무거워!!”
“악!”
유은영의 아래에 깔려 있던 여자가 그녀를 발로 차 버렸다. 덕분에 유은영은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유은영은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지 않고 곧장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지화자 씨! 괜찮… 으세요?”
“안 괜찮아! 괜찮아 보여?!”
지화자의 성난 목소리에 유은영은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지화자는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가 눈앞에 보이는 얼굴에 멍하니 중얼거렸다.
“설마, 이중 게이트였나? 바퀴벌레 다음에는 도플갱어야?”
“아니요.”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잠깐만.
지화자가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내뱉은 목소리가 너무나도 높았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소프라노 뺨칠 정도로 높지는 않았지만, 지화자의 기준에서는 높은 목소리였다.
또한 익숙한 목소리이기도 했다.
“…이거, 설마 진짜야?”
“그런 것 같은데요.”
지화자가 던진 질문은, 너와 내가 정말 몸이 바뀌었냐는 거였다.유은영의 태연자약한 대답에 지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태평해?”
“태평한 게 아니라 지금 사고가 잠깐 정지됐거든요? 생각 좀 정리하게 말 시키지 말아 줄래요, 지화자 씨?”
지화자의 몸으로 눈을 뜬 유은영이 크게 심호흡했다.
‘이건… 그래, 빙의란 거겠지……?’
인간이 덜된 엄마 아드님이 즐겨보던 판타지 소설에 이런 설정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잠깐만, 빙의가 된 거라면!’
유은영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지화자 씨, 우리 한번 죽어 볼래요? 혹시 모르죠! 죽으면 다시 몸이 바뀔지도?”
“그러다 진짜 죽으면?”
“그러게요, 어떡하지.”
이 언니는 도대체 뭐지?
지화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유은영을 쳐다봤다. 유은영은 울상을 지었다.
“제 얼굴로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내 얼굴이, 아니. 네 얼굴이 뭐 어쨌다고. 그보다 너야말로 내 얼굴로 그딴 표정 짓지 마.”
지화자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와우.”
“왜요?”
“시야가 높아서. 신세계가 펼쳐지네. 키 큰 사람들은 이런 세상을 보고 살았구나?”
유은영의 키는 지화자보다 컸다. 대략, 지화자의 머리 하나보다 조금 더 큰 키였다.
유은영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보이는 시야가 낮았다.
한순간에 좁아진 시야에 유은영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울상을 지었다.
“내 얼굴로 그딴 표정 짓지 말라니까?”
“슬픈 걸 어떻게 해요! 제가 키 크려고 우유를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아세요?”
“누구는 안 마신 줄 알아?”
“몰라요! 지화자 씨는 바보야! 이 사태를 도대체 어쩔 거예요?!”
“난들 알겠어?”
지화자가 골치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그때였다.
“지 팀장님!”
간호 관리 부서실이 위치해 있는 A동과 연결되어 있는 통로에서 수 명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사람들은 모두 지화자가 소속되어 있는 현장 파견 부서의 직원들이었다.
“거참, 빨리도 오네.”
“어떻게 해요, 지화자 씨? 인사해요? 아님, 저희들 몸 바뀌었다고 말해요?”
“인사는 무슨 인사야. 그리고 퍽이나 우리 말을 믿어 주겠다.”
믿어 줘도 문제였다.
우선 센터는 이 사태를 덮으려고 할 게 뻔했다.
‘그런 다음, 좋을 대로 몸이 바뀐 우리를 이용하려 할 테지.’
그렇게 둘 수야 없었다.
수년간 센터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몸이지만, 그렇다고 실험체로 전락하는 건 사양이었다.
그렇기에 지화자는 말했다.
“자연스럽게 행동해. 언니가 바로 ‘지화자’인 것처럼 말이야.”
그 말에 유은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지화자’인 것처럼 어떻게 행동하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괜찮아요!!”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지만 지화자는 미쳤냐는 듯이 유은영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유은영은 뒤늦게 지화자란 인간이 예의 바르게 존댓말을 쓰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유은영이 달려오는 사람들을 향해 황급히 말을 고쳤다.
“괜찮으니까 오지 마! 아니다, 천천히 와! 뛰어오다 넘어질라!!”
“……?”
달려오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들이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당혹감이 가득한 현장 파견 부서 직원들을 본 지화자는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어 버렸다.
‘망할!’
왜 하필 쓸데없이 친절하고 상냥한 폐급과 몸이 바뀌어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아니. 지화자 씨가 지금 맛이 갔다고 해야 하나?’
지화자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간호 관리 부서의 팀장, 이혜나가 뒤늦게 등장했다.
“세상에, 은영 씨! 지 팀장님이랑 함께 게이트에 휘말렸던 거야?! 혼자 휘말렸으면 죽었을 텐데, 운도 좋지!”
“아니, 나빴는데.”
“……?”
이혜나가 미간을 좁혔다. 유은영은 입을 쩍 벌리고는 지화자를 쳐다봤다.
아주 뻔뻔하고 거만하게 고개를 기울이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유은영과 지화자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망했다.’
‘X됐다.’
말은 다르나, 어쨌든 의미는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