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3화 (3/200)

제3화

톡톡, 유은영은 제 옆구리를 차는 발길질에 미간을 좁혔다.

‘인간이 덜된 엄마 아들인가?’

하지만 오빠는 자신을 이런 식으로 깨운 적이 없었다.

“언니, 일어나 봐.”

더욱이 언니라는 호칭으로 부르지도 않았고.

“저기요, 유은영 씨? 안 일어나시면 저 혼자 공략하러 갑니다?”

“안 돼요!!”

유은영을 발로 차고 있던 건 지화자였다. 유은영이 지화자의 얼굴을 보고는 놀라 물었다.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신 거예요?!”

“출입증 목에 걸려 있잖아.”

“아아, 맞다.”

급히 몸을 일으키려던 유은영이 발목을 움찔거렸다.

“아야…….”

뭔가에 긁히기라도 한 건지, 자잘한 생채기가 잔뜩이었다. 지화자가 유은영의 발목에 난 상처를 보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힐러 아니야? 본인에게는 힐을 할 수 없나 보네.”

“그건 아닌데요…….”

유은영이 울퉁불퉁한 암벽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제가 능력치가 낮거든요.”

“그래 봤자 B급일 거 아니야.”

각성자 오백 명 중, 한 명이 나타날까 말까 하는 게 ‘힐러’였다. 귀한 몸인 만큼 그들의 능력치는 하나같이 높았다.

지화자가 그간 만난 힐러 중에서 그나마 낮은 등급이 B급이었다. 그 때문에 유은영의 대답은 지화자에게 놀라움을 선사해 줬다.

“F급이에요.”

“폐급?”

저도 모르게 내뱉은 소리였다.

어색해진 공기.

지화자가 머쓱한 얼굴로 유은영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유은영이 불퉁하게 그녀에게 물었다.

“지화자 씨, 배려심 없다는 소리 많이 듣죠?”

“응, 많이 들어.”

지화자가 가볍게 대꾸해 주고는 환하게 웃었다.

“폐급이면 어떻고, B급이면 어때? 힐러는 힐러잖아.”

“지금 그걸 위로라고 하시는 거예요? 폐급거리면서?”

“음, 미안.”

지화자가 어색해진 분위기를 타개하고자 유은영에게 선심 쓰듯 연고 하나를 내밀었다.

“뭐예요?”

“너희 부서가 기술 관리 부서랑 협력해서 이번에 개발한 거. 효과가 좋더라고.”

어쩐지 어디서 본 것 같았다.

유은영이 발목에 난 생채기에 연고를 발랐다. 아픔이 가시자 뒤늦게 주변 상황이 인지됐다.

“여기는… 게이트죠?”

“응, 그것도 타임 브레이커 유형. 시나리오가 아니라서 다행이네.”

게이트는 크게 ‘타임 브레이커’와 ‘시나리오’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타임 브레이커.

“타임 브레이커라면 그거죠? 제한 시간 내에 공략 못 하면 터지는 게이트!”

센터의 홍보 내용에서도 언급된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게이트를 닫고 있는 문을 사이에 두고 싸웠다.

이것을 여느냐, 마느냐.

아웅다웅 다투는 동안 시간은 흘러갔고, 제한 시간 내에 공략되지 못한 게이트는 터지고 말았다.

그대로 소멸되면 좋으련만, 터진 게이트 안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곳은, 그 몬스터의 소굴이라는 말이었다.

유은영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기는, 공략해야지.”

지화자의 말에 유은영이 울상을 지었다.

“시나리오였으면 좋았을 텐데.”

“모르는 소리.”

“난이도는 그쪽이 더 낮다고 들었는데요?”

“하지만 성가시기로는 세계 제일이지. 주는 퀘스트를 거절할 수도 없고, 무조건 받아야 해.”

지화자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난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실패’란 것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야.”

시나리오 게이트는 주어진 퀘스트를 성공할 때까지 나갈 수가 없었다.

“…잘 아시네요?”

“공무원이니까.”

지화자가 뒤늦게 말을 덧붙였다.

“현장 파견 부서 소속의.”

센터는 크게 네 가지 부서로 구분되어 있다.

우선, 유은영이 소속되어 있는 간호 관리 부서.

재해나 재앙이 일어난 지역에 의료 봉사 활동을 가거나, 센터 내 각성자의 치료 및 피로 회복을 돕는다.

그다음 지화자가 소속되어 있는 현장 파견 부서.

말 그대로, 게이트가 발생한 곳에 파견되어 이를 공략하는 것을 주된 업무로 삼는 곳이었다.

그리고 차례로 기술 관리 부서와 시스템 통제 관리 부서가 있다.

기술 관리 부서의 경우, 다른 부서와 연계하여 이것저것 많은 것을 발명하고 개발하는 곳이었다.

시스템 통제 관리 부서의 경우 A-Index와 관련된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부서였다.

지화자라면 몰라도, 유은영과는 접점이 없는 부서였다. 그렇기에 유은영이 물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A-Index는 일어난 게이트를 미리 감지하는 시스템이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가끔 오류를 일으켜.”

“오류요?”

“응.”

지화자의 손에 웬 지팡이 하나가 들렸다. 지팡이가 아니라, 봉(棒)이었다.

성인 남성의 손가락 두 개를 합친 것 같은 두께, 5~6자 정도의 길이. 양 끝에 하얗게 장식된 문양은 도깨비의 얼굴이었다.

지화자가 그것을 가볍게 휘돌렸다 잡고는 말했다.

“50년이 넘었잖아. 시스템이라고 해도 하늘 위에 떠 있는 인공위성의 도움을 받고 있는 거야.”

A-Index는 과학 기술의 집합체로 이뤄진 인공위성의 도움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 기계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

기계란 것은 낡고 노후 되면서 녹슬기 마련인지라, 최근 들어 이런 오류를 계속 일으키는 중이라면서 지화자는 말을 덧붙였다.

“아, 혹시 몰라서 말하는 건데 지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거나 그런 말 하지 마.”

“네? 왜요?!”

정곡을 찔렸다는 듯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에 지화자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타임 브레이커든, 시나리오든. 게이트 안에 각성자가 들어가 있으면 문은 닫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말이야.”

“그러니까…….”

“닫힌 지 오래란 말이지.”

유은영이 울상을 지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쉬시식―

“……?”

발목을 스쳐 지나간 무언가에 유은영의 얼굴은 희게 질렸다.

유은영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숙였다.

먼저 보이는 건, 기다란 더듬이. 다음으로는 도톰하게 살이 올라 있는 갈색의 몸뚱이다.

유은영의 두 눈이 살짝 떨린다. 그 옆에서 지화자가 감탄했다.

“오, 바퀴벌레. 미국산인가 봐. 엄청나게 크네.”

“흐아아악!!”

유은영의 비명이 어디인지 모를 공간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지화자가 유은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며 웃었다.

“공략하지 못하면 게이트는 터지겠지? 그럼 센터는 어쨌든 피해를 보게 될 거야.”

“그래서요?! 흐아악! 기어 온다!!”

다다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픽― 소리를 내며 터졌다.

가볍게 봉을 휘두른 지화자가 싱긋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언니, 우리 같이 바퀴 처리하자.”

“…….”

유은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기요, 바퀴가 죽기 전에 당신 무기 끝에 알을 깠어요.

라는 말은 삼킨 채.

지화자는 자신의 무기에 바퀴벌레가 알을 깠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후두둑―!

공중에서 찢겨 나가 버린 바퀴벌레의 사체에, 솜사탕 씻어 먹은 너구리와도 같은 얼굴을 보이고 있는 유은영과는 대조적이었다.

‘저 무기에 날이라도 달려 있나?’

하지만 두 눈을 씻고 쳐다봐도 지화자가 휘두르고 있는 건, 나무 재질의 기다란 막대기였다.

“충종(蟲腫) 중에 이런 애들이 있을 줄은 몰랐네. 게이트 닫기 전에 표본 하나 채집할까?”

“표본이요? 굳이?”

유은영이 질색하는 얼굴을 보였다. 지화자가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는 ‘고대의 포식자(B급)’였다.

A-Index는 게이트 내에서도 이용할 수 있었다. 지화자가 A-Index를 이용해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하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고대의 포식자는 무슨, 어떻게 봐도 바퀴벌레였기 때문이다.

찌익―!

막대기에 꿰뚫린 두툼한 몸뚱이에서 진액이 뿜어져 나왔다.

으으, 유은영이 기겁하며 지화자에게 물었다.

“이런 몬스터들 만난 적 있을 거 아니에요?”

“아니야, 없었어. A-Index에 몬스터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 걸 보면 해외에서 나타난 적이 있는 몬스터인 것 같은데 말이지.”

지화자가 한쪽 무릎을 굽히곤 바퀴벌레를 닮은, 아니. 바퀴벌레나 다름없는 몬스터들을 살펴봤다.

“그나저나 신기하네.”

“왜요?”

“충종이란, 벌레의 모습 따라 한 것들을 말하거든.”

“그런데요?”

“그런데요는 무슨 그런데요야. 얘네 좀 봐 봐. 그냥 바퀴잖아.”

지화자의 손에 날개가 뜯긴 바퀴벌레가 달랑 들린 순간이었다.

“…단순한 바퀴벌레가 아니라서 문제지.”

“그나저나 좀 이상한데.”

“왜요?”

“B급치고 너무 약해.”

“저게 약해요?”

“응, 그냥 바퀴잖아.”

“저게 무슨 그냥 바퀴예요!”

지화자의 손에 날개가 뜯긴 바퀴벌레가 달랑 들린 순간이었다.

바퀴벌레에서 흐른 진액이 지화자의 손가락에 화상을 입혔다. 하얗게 익은 살갗에 유은영이 놀라 지화자에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괜찮아. 그렇게 안 아파.”

“하지만……!”

“괜찮다니까?”

지화자가 짜증스레 유은영의 말을 막았다. 그러곤 손가락을 들어 위를 쳐다보게 했다.

【00: 04: 44】

숫자 한 번 죽여 준다.

유은영이 기가 막힌 숫자에 감탄할 때였다. 지화자가 짜증스레 한숨을 푹 내쉬었다.

“4분 내로 게이트 공략 안 하면 바깥으로 바퀴가 쏟아지게 될 거야. 그럼, 언니의 책상에 얘네가 알을 까게 되겠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소리를!!”

“그러니까 잠자코 따라오라고.”

지화자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가로막는 바퀴벌레들을, 기다란 막대기로 휙휙 휘두르며 찢어 버리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그렇게 1분 정도 흐르고.

거침없이 전진하던 지화자의 발걸음이 멈췄다.

“저… 지화자 씨?”

“지금 집중해야 하는 타이밍이니까 아무것도 묻지 마.”

“죄송하지만, 조금 물을게요.”

딱히 지화자가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때문에 유은영은 지화자에게 궁금한 것을 마음 편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게이트 하나 닫는데, 엄청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요.”

여기도 바퀴, 저기도 바퀴.

지화자가 휘두른 봉에 유명을 달리한 바퀴벌레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꿈에 나올까 두려운 광경.

유은영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멈췄던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풍문이었나 보죠?”

“풍문 아니야.”

지화자가 막대기에 묻은 진액을 털어 내며 말했다.

“현장 파견 부서 내의 팀은 총 다섯 개. 그중에서 0팀을 제외한 네 개의 팀은 열다섯 정도의 팀원들이 소속되어 있어.”

0팀을 제외한 모든 팀이란 것은, 0팀은 열다섯 이상의 팀원이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말.

“그럼 0팀은 몇 명인데요?”

“나 포함 다섯 명.”

꽤 적은 숫자였다.

“그중에서도 두 명은 일하러 나오지도 않아. 아주 썩을 녀석들이지.”

결국, 세 명이서 업무를 보는 중이란 말이었다. 유은영이 떨떠름한 얼굴로 지화자에게 물었다.

“…나올 필요를 못 느껴서 그런 건 아닐까요?”

현재 공략 중인 게이트의 난이도는 ?급이었다.

타임 브레이커 게이트는 각성자의 등급과 마찬가지로 S급에서 F급까지 총 일곱 단계로 구분됐다.

아마도 A-Index가 감지하지 못한 돌발 게이트라, 등급 측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로 뜨는 것 같았다.

그때, 지화자가 유은영의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뭐라고 했어?”

“아니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싱겁기는.”

지화자가 유은영에게서 관심을 돌렸다.

“그보다 찾았어.”

“뭘요?”

“핵이 있는 곳.”

타임 브레이커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품고 있는 ‘핵’을 파괴해야만 했다.

하지만 유은영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곳곳에 널린 바퀴벌레의 사체만 보일 뿐이었다.

찍―

진액을 내뿜는 것에 유은영이 질색하며 고개를 돌릴 때였다.

후웅, 지화자가 쥐고 있던 막대기를 허공에 크게 휘둘렀다. 그에 유은영이 지금 뭐 하려는 거냐고 물으려고 했으나.

콰과과광―!!

불어닥치는 돌풍에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허공을 벤 것에 격한 바람이 일어났다. 일어난 바람은 널려 있던 바퀴벌레의 사체를 찢고, 찢어 흔적도 남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

“세, 세상에.”

유은영이 눈앞의 광경에 입을 쩍 벌리고는 뻐금거렸다. 지화자는 넋이 나간 듯한 유은영을 무시하며 손가락을 들었다.

“저기 있네.”

화산석과도 같이 거친 표면을 가진 푸른 핵이 유은영의 두 눈에 들어왔다.

게이트를 공략하는 것에 도움을 준 건 없지만 유은영은 크게 기뻐하며 손뼉 쳤다.

“이제, 저걸 부수기만 하면……!”

되는데, 바퀴벌레가 까 놓은 알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게 보였다.

유은영은 빠르게 지화자의 뒤로 숨어선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지화자 씨, 파이팅!”

지화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유은영을 쳐다봤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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