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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115화 (115/119)

115화

이해수가 무대 위에 올라선 배우처럼 과장스레 팔을 펼쳤다.

“우리 함께 끝을 봐요! 그렇다면 저는 죽어도 좋아요.”

그의 목 위로 도이현의 몸에 떠오른 것과 같은 문양이 떠올랐다.

나는 방금 들은 것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미간을 찌푸렸다.

‘증폭. 감폭.’

이제 이해가 된다.

막, 이 알현실에 들어왔을 때 이해수가 내게 쓴 것은 도이현의 현상을 감폭시키는 능력이었을 터다. 그리고 지금은 도이현의 마물화 진행 속도를 가속하는 데 일조한 것이고.

이 레드 게이트에 들어온 뒤로 이해수는 내게 모든 것을 굳이 숨기지 않고 말했다. 마치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이.

이런 경우 보통 둘 중 하나다. 멍청하거나 혹은 알려져도 상관없거나.

이해수는 정신이 나가 보이긴 해도 마냥 멍청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저놈이 진짜 멍청하기만 했다면 진작 제 비뚤어진 성정을 타인에게 들켜 무슨 일이든 일어났을 테니까.

‘어떻게 되는 거지?’

이해수는 완벽한 후자였다.

그는 이곳에서 모든 걸 끝낼 생각이었다. 제 안위조차 그에겐 상관할 것이 되지 못했다.

불안정과 안정 사이를 삽시간에 오가는 세계로 인해 마물들이 조각났다가 합쳐지기를 반복했다.

몇몇은 여전히 공격성을 띠고 인간들을 공격했지만, 하나둘 점점 마물들의 형태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건데? 누가 제발 말 좀 해 봐!”

“다시 레드 게이트의 출입구가 열리는 거야? 그럼 다른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멍하니 일그러져 가는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거나, 흥분한 상태로 소리쳤다.

넋 놓고 있던 이들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에스퍼가 이해수를 향해 달려갔다. 그의 손끝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불쑥 생겨나더니 허공으로 떠올랐다.

“너 이 자식! 지금 대체 무슨 짓을……!”

공중에 떠오른 수십 개의 가시가 이해수를 향해 쏟아졌다.

그러나 가시가 이해수의 몸을 꿰뚫기 전, 에스퍼의 손 위로 이해수가 가진 문양과 같은 문양이 떠오르며 순식간에 가시가 산산조각이 났다.

콰칭.

자신의 무기가 사라진 것에 에스퍼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틀었다. 그런 에스퍼의 몸을 이해수의 옆에 서 있던 민하성이 제압했다.

쾅.

에스퍼의 머리가 바닥에 세게 처박히고 민하성의 손에 닿은 어깨 부위가 썩어 문드러지며 팔이 축 바닥에 늘어졌다.

한순간에 팔을 잃어버린 에스퍼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아이고, 갑자기 덤비시면 어떡합니까. 제가 이보다 더 증폭하면 어쩌시려고요.”

그런 에스퍼를 내려다보며 이해수가 능청맞은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각성자들은 눈앞의 처참한 사태에 함부로 접근하지 못한 채 표정을 굳혔다.

아직 공격성이 남아 있는 마물이 있는 탓에 각성자들 중 몇은 전투 중이었고, 그나마 이 상황을 알아챈 이들마저 섣부르게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이해수의 다른 능력조차 지금 안 상황이었다. 정말 저 말대로 이해수가 능력을 써 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면-.

연우진이 나를 좀 더 제 품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고개를 드니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약간의 성가심, 짜증 그런 감정이 담긴 표정이었다.

그 순간, 빠르게 접근한 권시현이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이해수의 멱살을 쥐었다.

민하성이 권시현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권시현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돌려차기를 민하성의 배에 내리꽂았다.

“컥-.”

민하성이 권시현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까지 날아갔다. 꽤 세게 맞은 듯 그가 위액을 토해 냈다.

권시현은 민하성의 손이 닿아 썩기 시작한 팔을 내려다보며 대충 혀를 차고는 멀쩡한 손으로 이해수의 멱살을 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윽, 권시현 씨 아픈데요. 그보다 제게 이러시면…….”

“허, 사기도 작작 치지? 이보다 더 증폭할 수 있다면 진작 그랬겠지. 이미 불은 피웠고, 거기서 더 번질지 말지는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음?”

그런 이해수를 본 민하성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몸은 신경도 쓰지 않고 이해수를 향해 달려가려는 민하성을 막은 것은 서윤호였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는 손으로 민하성의 얼굴을 덮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야, 그거 아냐? 게이트 내에서 범죄를 일으킬 경우 처리에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거.”

아, 아니까 이딴 짓을 저질렀겠구나?

화륵, 단번에 타오른 불길이 서윤호의 손을 감싸고 민하성의 얼굴을 뒤덮었다.

서윤호는 무척 화가 난 눈치였다. 그의 몸 위로 이해수의 문양이 떠올랐다. 불길은 멎었으나, 민하성의 상태는 이미 말이 아니었다.

그런 민하성을 확인한 이해수는 가볍게 눈을 굴리더니 이번에는 서윤호의 능력을 증폭시켰다.

“아악!!”

“살, 살려 줘!”

화르륵. 강하게 피어오른 불길에 근처에 있던 이들이 말려들었다.

서윤호는 급히 미간을 찌푸리며 능력을 거두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조절이 힘든 듯했다. 그 난장판을 본 권시현이 버럭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내가 능력 안 쓴 거 보면 몰라? 당장 안 꺼?!”

“마음대로 안 꺼진다고!”

“그러니까 애초에 능력을 쓰질 말라고! 덩치도 커다란 놈이 몸은 뒀다 뭐 해?!”

말은 그렇게 했어도 서윤호가 단번에 민하성을 처리한 게 다행이었다. 능력을 쓰지 않고 몸싸움을 했다가는 권시현처럼 피해를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서윤호가 민하성의 얼굴을 잡았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의 능력 범위는 손에 한정된 듯했다. 물론 서윤호가 이것을 알고 저질렀을 리는 없겠지만.

권시현은 미간을 좁혔다.

지금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이는 없었고, 그렇다고 일반 무기를 쓰기엔 이해수가 두른 수십 개의 방어 아이템으로 인해 통하지 않았다.

권시현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이해수의 몸을 바닥에 처박아 누르고 있는 것까지였다.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몸에 타격이 가지 않는 이상 방어 아이템은 작동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긴 싸움으로 인해 지친 숨을 몰아쉰 권시현의 몸은 온통 마물의 피로 가득했다.

“야, 너 미쳤음? 지금 이렇게 되면 세상이 무슨 꼴이 되는 줄 알고?”

권시현의 물음에 이해수는 무언가를 생각하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조용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걸 모르니까 확인하고자 하는 거죠.”

“그렇게 된 세상에서 너는 무사할 것 같음?”

“하하, 권시현 씨 말이 모순되었네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신다면서 왜 반드시 무사하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세요.”

결과를 미리 단정 짓는 것만큼 시야를 좁히는 일도 없답니다.

이해수는 여전히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설령 당장 제가 죽는다고 해도 똑같을 것 같았다.

나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천공을 응시했다. 뭐든 지금 중요한 건 이해수를 잡는 게 아니었다. 이미 상황은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게이트 내 세계가 차례차례 무너져 가고 있었다. 아니, 던전과 현세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었다.

이게 전부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동조율이 다 채워진다는 것은 레드 게이트 내의 세계가 현세와 합쳐질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지옥이 현세로 이어지게 된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 기분이었다. 더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 생각조차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지? 던전 보스를 죽이면 해결될까? 공격해 봤자 바로 회복되는데 어떻게?

검붉은 빛이 사방에서 튀어 올랐다. 주저앉은 도이현의 몸을 거센 힘이 감싸고 있어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동조율은 이미 거의 채워졌다. 지금 상황으로 보아 거의 100에 임박한 시점이리라.

“누나.”

연우진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때 제가 했던 말 잊지 않았죠? 만약에라도 제가 누나를 해칠 것 같다면 망설이지 말고 죽이세요. 폭주 직전이라면 누나를 공격하지 않도록 어떻게든 참아 볼 테니까.”

“그게 무슨-.”

뭐라 물을 새도 없이 나를 내려놓은 연우진이 거리를 벌리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발치로 금빛 선이 그어지기 시작하며, 빠르게 번져 나가 공간을 채웠다.

드넓은 천공 위로 금빛이 수놓아졌다. 마치 별빛처럼 찬란하기 그지없는 문양이 공간을 메꾸듯 끊임없이 빛이 앞으로 뻗어 나갔다.

키이이익-!

동조율이 전부 채워지고, 완전한 마물로 변한 도이현이 저를 감쌌던 던전의 파장을 깨고 몸을 일으켰다.

세계가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처럼 크게 요동치던 순간, 그와 동시에 빛의 시작과 끝이 이어졌다.

완성된 문양에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시계였다. 시간을 분간조차 할 수 없게 비록 있는 것이라고는 초침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올려다보며 도가빈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저래도 되나? 지금까지 공간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참아 놓고…… 뭐, 뭘 하든 끝장날 상황이니 아무래도 좋나.”

나는 다급히 도가빈을 붙잡았다. 지금 연우진이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건지 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곧장 던전 내 공간이 금빛으로 물들며, 모든 것이 멈췄으니까.

무의식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세계의 시간이 일시적으로나마 멈췄다는 것을.

요동치던 세계가 순식간에 멎고, 찬란한 금빛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찰나에 불과한 모든 풍경이 필름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하나하나 또렷하게 보였다.

이해수가 능력을 쓴 듯 기괴한 문양이 빛 위로 얼핏 나타났지만, 곧바로 깨져 산산조각이 난 채 강렬한 빛에 파묻혔다.

“역시…….”

이해수가 흥분 어린 시선으로 그것을 우러러보았다. 그가 멍하니 손을 뻗었다.

무너져 가던 던전은 이제 강렬한 금빛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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