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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103화 (103/119)

103화

남자는 얇게 뜬 눈을 둥글게 휘며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언뜻 시선이 마주친 것도 같다고 생각한 순간, 그가 말을 이었다.

“이대로 레드 게이트의 출입구가 닫히지 않은 채 동조율이 높아지면 게이트에서 나온 마물에게 공격받게 되잖아요? 그러니 추가 인원을 더 넣어 보자는 거죠. 8년 전, 입장 인원이 많았던 탓에 레드 게이트가 금방 닫혔었던 것 같다고 연구원들도 말했었고.”

“그게 무슨…….”

남자의 말에 누군가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물론 이론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치 제물을 뽑는 것처럼 여겨졌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레드 게이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점점 게이트는 커지고, 자신들보다 배는 강한 과거 영웅들이 안으로 들어갔는데 무슨 일이 생겼는지 차도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레드 게이트 입장 인원을 늘려 보자는 말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가이드와 힐러가 대부분입니다. 이해수 에스퍼님, 당신의 말을 따르기엔-.”

“뭐가 문제죠? 보통 게이트 원정은 가이드 하나에 에스퍼 둘이 기본 원칙이잖아요? 그럼 그대로 입장하면 되죠. 추가 입장하실 분? 따로 팀을 꾸려서 들어가죠.”

그래, 일반적이었다면 게이트 원정에 동원되는 인원은 보통 가이드 한 명당 에스퍼 둘 이상이 기본이다.

가이드의 수가 에스퍼에 비하면 적기도 했고, 에스퍼 또한 가이드를 지키면서 전투에 대비해야 해서 여러 효율성을 따져 본 결과 나온 기본값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게이트의 급이 낮을 때 해당되었다.

게이트의 등급이 위로 갈수록 에스퍼와 가이드의 등급도 엄격하게 따졌고, 하물며 레드 게이트인 이상 그런 기본값이 통용될 리가 있나.

“이해수 에스퍼. 지금 이게 허가도 없이 무슨 짓입니까!”

남자, 그러니까 이해수에게 센터 소속인 A급 에스퍼가 소리쳤다. 나는 힐끗 이로운을 쳐다보았다. 저와 같은 소속의 이가 나섰음에도 이로운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로운은 결계를 한 번 쳐다보고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내 옷자락을 잡아당겨 제 뒤로 나를 숨겼다. 언쟁이 커져 싸움이 될까 우려한 듯했다.

이해수는 상대방의 말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허가라뇨? 누구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야 당연히 상부에……!”

“어이쿠, 이번 일이 상부 명령에 따라 진행된 일로 보이십니까? 길드 간의 자진 참가에 불과하지요. 솔직히 말해서 연우진 에스퍼나, 권시현 에스퍼 중 누구 한 명이라도 거부했다고 상부가 뭐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센터의 영향력이 컸던 것은 과거에 불과하다. 이해수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에 센터 소속 에스퍼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 금방이라도 공격할 듯한 매서운 기세였다. 그것을 상관치 않고 이해수가 태연스레 물어 왔다.

“그래서 저와 함께 입장하실 분이 있으신가요?”

“허, 있겠습니까? 들어갔다간 목숨이 온전치 않을 게 분명한데!”

“으음…… 게이트를 닫는 게 일인 에스퍼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레드 게이트가 일반 게이트와 같습니까?”

남자가 사납게 쏘아붙였다.

나는 소란을 뒤로하고 잠시 시선을 게이트 쪽으로 돌렸다. 그 사이에 게이트의 범위가 조금 전보다 넓어져 있었다.

아까부터 소란을 피우는 이들은 하나같이 에스퍼였다. 가이드는 불안에 떨거나, 조용히 입을 닫은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단일로 마물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자진하여 손을 들 리가.

“저요! 저 갈래요.”

그러니 이렇게 가겠다고 먼저 지원하는 이들은 지금 말한 여자애와 같은 에스퍼였다.

이 분위기에서 대단하긴 하네. 다들 레드 게이트에 겁을 먹은…… 잠깐, 여자애 목소리?

나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다시 소란 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손을 들고 있는 조예나가 보였다.

“등급은 B급. 이온 길드 소속의 에스퍼 조예나입니다. 저도 게이트에 들어가고 싶은데요!”

키가 큰 남자 둘 사이에서 작은 키를 가진 조예나는 눈에 띄었다. 다들 지원자가 어린 것에 당황한 눈치였다.

실제로 조예나는 19살이었으나, 외양 탓에 더 어려 보이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조예나 에스퍼!!”

그 순간, 가이드들 사이에서 덩치 큰 남자 한 명이 튀어나왔다. 우락부락한 몸, 단단한 어깨. 키는 거의 2m를 넘긴 것 같았는데 언뜻 보기에 신체 계열 에스퍼로 보였다.

“가이드야. 저 사람.”

그런 내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듯 이로운이 작게 속삭였다.

“……아는 가이드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로운이 알 정도면 센터 소속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로운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온 길드 마스터의 전담 가이드.”

아, 권시현의.

이로운의 대답과 동시에 반대편에서는 노성이 벽력같이 뻗어 나왔다.

“길드 마스터가 출입을 금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어야지!”

“싫어요. 저는 그때도 말했지만 걱정되는 가이드가 있단 말이에요. 최유리 가이드님은 길마님이 걱정되지도 않으세요?”

“걱정되니까 이곳에 있는 거다. 가이드인 내가 가 봤자, 도움이 되긴커녕 오히려 나를 신경 쓰느라 전투에 지장이 갈 뿐일 테니까.”

“왜요? 가이딩이 부족한 상태일 수도 있잖아요.”

조예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예상치 못한 지원자에 당황한 듯한 센터 에스퍼가 입술을 짓이기더니 이해수를 향해 말했다.

“그래, 에스퍼 하나가 더 간다고 뭐가 달라지지? 그래 봤자 원정에 가이드가 없으면-.”

“저도 갈게요. 제가 가이드예요.”

나는 손을 들었다. 이로운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S급 가이드가 레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아무래도 센터 에스퍼는 나를 알고 있던 모양이다. 하긴 교육생 시절에 우수한 성적을 냈던 탓에 센터 측에서 몇 번이고 나를 회유하려고 했으니 알 법도 했다.

“메시아로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본인의 능력치를 생각하면 지금 어느 쪽이 나을지 판단하지 못하는 건가?”

애초에 내 전담 에스퍼는 게이트 안에 있는데. 나는 시큰둥한 낯으로 생각했다.

그는 가이드 몇 사람의 몫을 거뜬히 해내는 내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못마땅한 듯했다.

권시현이나 조예나를 비롯한 몇을 제하면 메시아로 들어갔다는 사실 외에 연우진의 전담 가이드가 되었다는 것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건 안 돼.”

단호한 대답이 떨어졌다. 가이드로서 쓸모가 있다고 타 소속 가이드의 의견을 이렇게 무시한다고?

화를 내려던 나는 목소리가 위가 아닌 뒤에서 들려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운아?”

이로운이 내 옷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 잘게 떨리는 보라색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안 돼. 위험해.”

“하지만-.”

“이곳에 있으면 내가 지켜 줄 수 있어. 그리고 걔가, 다른 곳에 두지 말랬어.”

이로운이 황급히 연우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옷자락을 쥔 새하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눈가를 설핏 찌푸렸다. 이러는 동안에도 이명은 점점 커졌다. 정령석은 이제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고, 가까이서나 볼 수 있던 흐릿한 빛은 점점 또렷해져 갔다.

“미안해.”

“그럼 나도-.”

“무슨, 이로운 에스퍼가 빠지면 안 되죠! 그럼 이곳은 누가 지킨다는 겁니까? E구역을 억제할 S급 에스퍼가 빠지면 분명 손쓸 틈도 없이 아수라장이 될 거예요!!”

이로운의 말에 이번엔 다른 각성자들이 나서서 소리쳤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당혹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야…… 사방에서 막으시네요.”

나나 조예나나 가겠다고 나선 것을 다른 쪽에서 막는 상황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해수가 작게 손뼉을 쳤다.

시비란 시비는 다 걸렸음에도 이해수는 기분이 상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웃고 있는 채였다.

오히려 센터 소속의 에스퍼가 흉흉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혹시 알아요, 여러분? 벌써 동조율이 67%까지 올라간 거.”

이해수의 말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히 측정 기기로 향했다. 곧이어 경악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전투 준비하죠, 여러분. 가이드님들은 이곳에 대기하는 것으로-.”

“이로운 에스퍼, 혹시 결계 상태는-.”

“여러분.”

혼란으로 일렁이는 분위기를 진압한 것은 이해수였다.

“다들 내심 알고 있잖아요? 애초에 앞서간 선발대가 전부 사망할 시 후발대가 선정되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지금 여기는 게이트가 열리지 않은 상태라서 잊고 계신 것 같은데 지금 다른 구역은 게이트에서 나온 마물 탓에 난장판인 상황이라고요?”

그는 빙긋 웃으며 논란이 될 법한 말을 태연히 입에 담았다.

“최상위에 다다른 에스퍼들이 레드 게이트 안으로 진입하여 그들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있지만, 최악의 상황은 가정해야 하잖아요? 더 상황이 악화되면 다른 구역으로 흩어졌던 상위 에스퍼들 또한 투입될 거고, 결국 늦냐 빠르냐의 차이죠.”

솔직히 사망이라는 단어에 불쾌한 것과는 별개로 나 또한 이해수라는 에스퍼의 말에는 찬동한다.

아마 다들 알고 있을 거다. 받아들이기 힘든 거대한 재앙에 외면하고 있던 것뿐이겠지.

순식간에 좌중이 고요해졌다.

어깨를 으쓱인 이해수가 물었다.

“더 지원자가 없으시다면 여기까지 받을 건데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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