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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96화 (96/119)

S급 자영업자

96화

나는 결국 김유하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는 대신 나보다 잘 알고 있을 전문가에게 데려갔다.

“누나!”

마침 엄마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나를 본 연우진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와 대조적으로 아이의 얼굴은 푸르죽죽해졌다.

옥상을 내려오기 전,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설명했는데도 김유하의 눈에는 연우진이 무섭게 보이는 것 같았다.

“……내 누난데.”

김유하가 종알거렸으나, 연우진은 못 들은 사람처럼 나만을 응시했다.

나는 내 뒤에 숨어 있던 김유하를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에 김유하가 화들짝 놀라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그제야 연우진의 시선이 내 품에 안긴 아이를 향했다.

“도이현 씨 능력 중에서 그런 능력이 있다고 했죠? 대상의 상태를 볼 수 있는 눈이요.”

이전에 연우진이 도이현의 능력에 관해 설명해 줄 때, 도이현은 다중 능력자이며 복사 외의 능력은 대상의 상태를 볼 수 있는 눈이라고 했었다.

거의 쓸모가 없다고 하기도 했고, 당시에는 그것보다는 복사 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김유하가 도이현과 유사한 능력을 가졌고, 조금 전 내게 한 말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제 동생이 에스퍼인 것 같아요. 그것도 어쩌면 도이현 씨의 눈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나는 김유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내내 김유하는 경계 어린 눈으로 연우진을 노려보고 있었고, 연우진은 김유하가 에스퍼라는 대목에서부터 아이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확실히 비슷한 능력인 것 같긴 하네요. 형도 그런 식으로 분류하는 것 같았거든요. 능력 유형이 겹치는 게 드문 일도 아니고.”

“아, 역시?”

“네. 굳이 따지자면 이쪽이 ‘눈’에 한해서는 더 강한 능력을 가진 것 같긴 해요. 적어도 형은 인간의 생김새를 구분할 수 있었으니까.”

“구분할 수 있거든!”

툭, 반박하듯 내뱉어진 말에 연우진은 고개를 내려 아이를 응시했다. 김유하는 그런 연우진과 시선이 마주칠 새라 재빨리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얘도 웃겼다. 연우진이 자신에게 관심 없을 때는 잘만 노려보면서 막상 상대방이 관심을 주면 눈도 못 마주쳤으니 말이다.

나는 바르작대는 김유하를 고쳐 안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연우진이 물었다.

“누나, 혹시 지금 가이딩 파장 풀었어요?”

“네, 에스퍼라니까. 그리고 원래 가족들과 있을 때는 가이딩 파장 안 낮춰요. 그것도 마냥 편하지만은 않아서.”

애초에 내가 가이드임을 알게 된 것은 몇 달간 있던 고향을 떠나 다시금 도시 구역으로 돌아왔을 때부터였다.

……잠깐, 그러면 선천적인 각성자라고 하면 지금껏 김유하는 어떻게 감당했지? 에스퍼인 이상 가이딩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섭리였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연우진이 대답했다.

“어쩌면…… 누나의 부모님 중 한 분이 가이드이실 수도 있겠네요.”

“예?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다 비각성자이신데요.”

“누나처럼 의무 각성 검사를 끝마치고 발현한 후각성자일 수도 있어요. 애초에 에스퍼와 달리 가이드는 늦은 나이에 각성하면 모르는 채로 사는 경우가 대다수고.”

에스퍼처럼 능력이 눈에 띄는 게 아니니, 뒤늦게 각성할 경우 의무 검사 기간도 끝나 에스퍼와 접할 기회가 없는 이상 자신이 가이드임을 모르고 산다고 한다.

등급이 낮은 경우라면 더욱 밝혀질 일이 드물고.

나는 그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가이드 후각성자 중 한 명으로서 그 드문 확률을 전부 제친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단순히 보기만 하는 능력은 가이딩 소모가 적어요. 더구나 저쪽은 아직 어리기도 하고, 무지하니 단순히 접촉으로 얻는 가이딩을 베푸는 대상을 편하게 느낀 게 전부일 수도 있어요.”

“저쪽?”

“누나 동생이요.”

“……혹시 우진 씨, 아이 싫어해요?”

아까부터 김유하를 이름이 아닌 다른 것으로 지칭하고 눈길도 안 주기에 물었다.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아요.”

“제 동생 귀엽지 않아요?”

나는 김유하를 살짝 올려 안았다. 여전히 아이는 연우진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연우진은 그런 김유하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생긴 게 누나를 닮아서 좋다고 생각해요.”

“…….”

나는 표정을 굳혔다. 어쩐지 목덜미가 뜨겁게 느껴졌는데, 설마 얼굴이 붉어진 건 아닌지 신경 쓰였다.

‘어쨌든 유하가 싫다는 건 아니라는 거네.’

하긴 이곳에 온 뒤로 연우진은 얌전했다.

내 앞에서는 얌전해서 잊고 있는 거지, 그는 타인에게 성격이 꽤 좋지 못한 편에 속했다.

그걸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했는데, 여기로 온 뒤로 연우진은 엄마가 갑자기 무슨 짓을 하든 김유하가 갑자기 화를 내든 순순히 따라 주었다.

“아직 의무 검사받을 나이가 되지 않았는데, 그러면 검사를 일찍 받아야 하나요?”

하지만 검사를 받고 정식으로 에스퍼임이 등록되기엔 아직 어리지 않나?

애초에 내가 생활비 지원부터 건강 검사, 병원비 등.

등록 시 많은 혜택이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숨기려고 했던 이유가 뭔가.

나라에 등록된 모든 각성자들은 전시 시 강제 징병이라는 애로 사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몇 년 사이 크게 달라져서 몇 세 이하는 동원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혹시 모르는 일이다.

“아뇨. 지금 그대로도 괜찮아요. 가이딩에 문제만 없다면 나라에 보고는 늦을수록 좋으니까. 그리고 보는 능력이 전부라면 전투 시 단일로는 쓸모가 없을 테니 위험한 임무에 차출될 일도 없고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정 뭐 하면 소속을 이쪽으로 돌리면 된다며 연우진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럼 저번에 도이현 씨의 능력 중 눈은 쓸모없다고 했던 게 단일 전투에 쓸모가 없다는……?”

“네. 지금이라면 몰라도 예전에는 공격이 불가한 능력을 그리 높게 안 쳤으니까요. 그리고 아까 이야기 말인데. 누나와 아멜리아 캠벨의 파장이 비슷하…….”

연우진이 뭐라 말을 잇는 순간이었다. 얌전히 안겨 있던 김유하가 갑자기 발버둥 쳤다.

“……누나, 나 케이크! 케이크 먹을래! 누나가 나 주려고 만들어 온 거!”

바닥에 내려 주자 곧장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에 연우진이 따라오려 하자, 발을 떼기 무섭게 김유하가 몸을 곤두세웠다.

“싫어! 누나랑만 먹을 거야!”

“…….”

어, 혹시 지금 싫어할 이유가 생긴 건가.

그 순간 어디에서 금이 간 듯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 * *

시골에서 머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연우진과 떨어져 있었다. 김유하가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연우진을 견제했기 때문이다.

가이딩 상태도 충분하고, 그간 계속 붙어 있었으니 조금은 괜찮겠다고 생각한 나와 달리 연우진은 심기가 좋지 않아 보였다.

오죽하면 그간 우리 사이에 말을 보태지 않던 아빠가 나설 정도였다.

“유하야, 형이랑도 같이 놀지 않을래? 저 형도 유하랑 같이 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아빠는 바보야? 저게 어떻게 놀자는 걸로 보여?”

“…….”

물론 김유하는 연우진의 파장 상태를 확인하고 한 말이었겠으나, 일반인의 눈으로 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연우진의 시선은 아이와 함께 놀고 싶다기보단 저걸 어떻게 떼어 놓느냐 하는 눈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아빠는 뭐라 반박하지 못한 채 입을 닫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가 허허 웃었다.

“내 새끼…… 말버릇 한번 싹수가 노랗구나.”

엄마가 연우진에게 약과를 내밀었다.

과일부터 시작해서 계속 뭘 못 먹여서 안달 난 사람처럼 뭘 먹여 댔는데 아무래도 엄마 나름대로 그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한 번은 김유하가 잠시 자리를 비운 때였다. 뒷마당 의자에 혼자 앉아서 멍하니 김유하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도중, 연우진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힐끔 나를 살피던 그가 천천히 팔을 벌렸다.

“누나, 저 가이딩 해 주세요.”

“응? 우진 씨 능력 썼어요?”

“밭일을 도와 달라고 하셔서요.”

……그래서 밭일에 능력을? S급 에스퍼가? 그걸로 뭐 했는데?

잠깐 인지 부조화가 왔다. 그를 아는 다른 이들이 들었다면 경악할 법한 이야기였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팔을 벌린 채 나를 조용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내 쪽에서 잡으라는 건가 싶어 그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그의 입이 열렸다.

“안아 주세요.”

나는 팔을 뻗다 말고 굳었다.

감정 자각한 뒤부터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그의 말과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저번과 달리 열이 몰리는 듯한 기분은 들지 않았기에 나는 내심 안심하며, 그의 품 안으로 걸어 들어가 허리를 끌어안았다.

처음 안을 때만 해도 어디를 잡아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었는데, 이젠 어디를 잡아야 안정적으로 있을 수 있는지 깨달았다.

‘유하가 오기 전에 끝내자.’

가이딩이라고 하나, 주변에 각성자가 없는 탓에 이런 것에 낯설 아이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으리라.

내가 자신을 끌어안자 연우진은 고개를 숙여 내 어깨 위에 이마를 묻었다.

넓은 등이 둥글게 구부러지자,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품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

“하아…….”

물 밖으로 겨우 빠져나온 잠수부처럼 길고 나직한 숨이 귓가 바로 옆에서 내뱉어졌다.

어깨 부근에 닿은 숨결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 때였다. 커다란 손이 내 등과 허리를 잡아 끌어당겼다.

“겨우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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