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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90화 (90/119)

S급 자영업자

90화

당시에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때 도가빈은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8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도이현의 생존 가능성은 그 시간 동안 그녀 말고도 다른 놈에게 들었다.

하지만 그를 온전히 믿진 않았기에, 이렇게 확실한 증거를 얻은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또한 여자는 빙의에, 세계 교차에, 온갖 특이성이란 특이성은 다 갖추고 있었다. 그 연우진과도 얽혀 있었고.

도가빈은 김유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증거를 가져다준 이이기도 했고, 하는 행동도 유쾌했다.

연우진의 가이드이니 빼앗아 보고 싶다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목숨을 버릴 정도는 아니었기에 일단은 생각으로 그쳤지만.

“가빈 씨, 늦었어요! 저 한참 기다렸는데.”

상념은 다른 이의 외침으로 인해 끊겼다. 웃음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도가빈의 귀를 찔러 왔다.

깔끔하게 올린 포마드 머리, 괴담에 나오는 여우처럼 찢어진 눈.

에러의 길드 마스터 이해수였다. 도가빈은 습관처럼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갑자기 부른 건 그쪽이잖아?”

“드디어 그곳과 이어진 게이트 중 하나를 발견했거든요! 아, 이걸 아직 안 치웠네~.”

이해수의 손에는 상체만 남은 시신이 있었다.

시신의 온몸에는 검보라색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고, 구멍에서는 붉은 피 대신 검은색의 액체가 흘러내렸다.

“폭주 촉진 약물이 생각보다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이해수의 가느다란 눈매가 얄상스럽게 휘어졌다. 그의 발치에는 빈 주사기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저번 경매 사건의 주동자이기도 한 ‘새끼양[lamb]’은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게이트라는 이상 현상에 집착하는 일종의 종교 단체였다.

거대해 보이나, 실상은 작은 물고기들이 수없이 모여 커 보이는 것뿐이다. 공통 목표 또한 없었다.

한 나무에서 난 가지가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것처럼 그들은 각자가 믿는 것을 따라 행동했고, 가끔 목적이 겹치면 조직을 이루곤 했다.

게이트를 향한 집념과 행동 방식만 맞다면 새끼양의 이름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쓰는 무수한 이들 중 하나가 이해수의 길드인 ‘에러’였다.

김유정 외에 도이현의 생존 가능성에 관한 정보를 얻은 게 바로 저 이해수를 통해서였다.

한창 계속해서 들려오는 죽은 이의 목소리에 미치기 직전, 이해수가 도가빈을 찾아왔다. 그리고 도가빈은 그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그땐 내가 정신이 나갔지.’

아무리 정신이 나갈 것 같아도 종교쟁이한테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해수의 길드 ‘에러’는 길드원의 대부분이 게이트로 인해 가족이나 지인을 잃은 각성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8년 전 대격변은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렇게 소중한 존재를 잃은 이들에게 이해수는 ‘닫힌 게이트 안에서 인간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러니 우리가 다시 한번 그날의 게이트를 열면 된다.’며 희망이란 이름의 개소리를 지껄였다.

물론 이해수에게도 근거는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게이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실험해 왔고, 실험 중 하나가 살아 있는 인간을 게이트에 가두는 것이었다.

이해수의 능력은 게이트 안에 통신을 가능케 하는 ‘전파’.

그것도 A급으로, 다른 전파 에스퍼와는 달리 자신이 직접 들어가지 않고도 타인에게 능력을 심어 그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능력을 발동할 수 있었다.

이해수는 그 능력으로 몇 번이고 각성자를 게이트 안에 가뒀고, 그 결과 몇 가지 사실을 알아내었다.

첫 번째, 클리어된 게이트 내의 세계는 닫힘과 동시에 멈췄던 멸망이 재시작한다.

두 번째, 클리어된 게이트 내부에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세계의 멸망이 가속화되며 인간이 아닌 마물로 변해 이윽고 소멸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게이트가 클리어와 동시에 무너져 버렸기 때문에 이해수는 지금껏 살아남은 게이트를 보지 못했다.

8년 전 레드 게이트를 제하면 말이다.

C구역 랭크 S 레드 게이트, 검은 숲.

그날 이해수는 직접 원정을 나가진 않았으나, 그 레드 게이트에 차출된 에스퍼 중 한 명에게 자신의 능력을 심었다.

그 에스퍼는 중상을 입은 채 발견되지 못하여 끝내 게이트 안에 갇혔고, 이해수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그를 통해 지금까지와 다른 양상을 볼 수 있었다.

무척이나 놀라운 결과였다. 게이트 내의 세계는 무너지지 않았으며, 에스퍼 또한 마물이 되지 않은 채 인간으로서 죽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에스퍼가 죽은 후에 더는 그 안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능력이 끊기기 직전 이해수는 똑똑히 보았다. 살아 있는 사람을 말이다.

「그를 통해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은 도이현 에스퍼였어요. 도가빈 에스퍼, 도이현 에스퍼를 만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우리 다시 한번 그날을 재현해 보지 않을래요?」

에스퍼 중에 정신 이상자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도가빈은 그런 미친놈은 난생처음 봤다.

이해수는 말했다. 지금까지의 게이트와 다르게 이번 레드 게이트가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까닭은 검은 숲의 시공간이 멈춘 채로 닫힌 탓일 거라고.

「즉, 불완전한 소멸이라는 거죠. 그러니 작은 계기만 있다면 다시 열 수 있을 거예요.」

던전의 시공간이 멈춰 버린 탓에 게이트가 닫힘으로써 일어나야 하는 멸망도 함께 멈춰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마물화 또한 늦춰지고 숲 또한 형태가 남아 있는 것일 거라며.

‘그리고 정말로 목표에 근접했지.’

도가빈은 바로 어제처럼 생생한 회상을 끊었다. 발치에 굴러다니는 빈 주사기를 대충 치워 내며 물었다.

“언제까지 약물 거래를 하려고?”

“거래라면 그만두려고요. 폭주 상태의 에스퍼일수록 닫힌 게이트 안에서 오래 살아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건 확인했고, 얻을 것도 얻었으니 이제 필요 없어요.”

“꼬리가 안 밟혔을 것 같아?”

길드 에러는 실험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에스퍼의 폭주를 앞당기는 불법 약물에 손대고 있었다. 그에 관해 묻자 이해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으음, 안 그래도 이온 길드에서 주시하더라고요. 아~ 메시아면 좋았을 텐데. 어쩌면 저번처럼 메시아 길마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봐서 뭐 하게.”

“그야 팬이니까요! 길드 랭크를 굳이 올린 것도 상위 길드 란에 들어가면 모임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는데…….”

이해수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 하긴 걔가 모임에 나갈 리가 없지. 정말로 실망한 듯한 기색에 도가빈은 헛웃음을 쳤다.

제 팬 중에 저런 놈이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도가빈은 살면서 처음으로 연우진이 불쌍해졌다. 생각해 보면 메시아 팬 중 유난히 광신도가 많긴 했다.

“게이트를 여는 것에 관한 연구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데?”

“응? 뭔가 오늘따라 제게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혹시 가빈 씨 무슨 일 있었어요?”

“관심이야 늘 있었지.”

도가빈은 가볍게 대답했다.

이해수 또한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해수가 생글생글 웃었다.

“확실히 혈연의 피에 반응하더라고요!”

이해수가 실험대처럼 가운데에 놓인 유리관을 가볍게 두드렸다.

지금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에러 길드 건물 지하였다.

언뜻 보기에 실험실처럼 꾸며진 그곳은 사실을 아는 몇몇만이 오가는 방이었는데, 방 가운데에 놓인 유리관에는 여자 한 명이 있었다.

검은 머리를 가진 유순한 인상의 여자는 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이미 8년 전에 죽은 이의 시신이었다. 심장도 뛰지 않았고, 몸속의 세포 또한 반응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도이현의 능력으로 인해 여자의 육신은 지금까지 시간이 멈춰져 있었다.

차해연이 죽은 뒤 도이현은 연우진에게 그녀를 살려 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불가능하다는 대답이었고, 도이현은 자신이 직접 행하기 위해 연우진의 능력인 시공간 조작을 복사했다.

그러나 도이현은 그 능력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그저 썩지만 않을 뿐인 속이 텅 빈 시신만이 남았다.

차해연의 시신이 그날 닫힌 게이트에서 사라진 것이라 보고된 것과 달리, 실상 그것을 회수한 것은 이해수였다.

“진서 씨가 길드에 들어와 줘서 다행이에요! 차해연 가이드의 시신은 회수했다고 해도 상태가 그런 탓에 피를 얻을 수 없었는데.”

차진서라면 차해연의 친동생이었던가. 도가빈은 조용히 유리관을 내려다보았다.

누나인 차해연처럼 가이드로 발현된 차진서는 제 가족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에러에 들어왔다.

사람들의 대다수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했다. 그것은 시대가 혼란할수록, 절망이 클수록 더욱 짙게 드러났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기에 에러만큼 적절한 곳도 또 없었다.

8년 전의 게이트를 여는 것. 소중한 이가 아직 살아 있을 거라는 희망이라 하지만, 결국은 또 다른 이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연쇄였다.

이해수가 차진서를 길드에 끌어들인 것은 차해연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그녀의 혈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비각성자도 쓸 수 있게끔 해 주는 순간 이동을 비롯한 방어 아이템 등.

지금 세간에서 활용되는 모든 아이템들은 게이트 혹은 그 능력의 주인인 에스퍼에게서 비롯된 수많은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당연히 8년 전 가이드임에도 에스퍼처럼 능력을 가진 차해연 역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그로 인한 미완성 결과물이 지금 이해수의 손에 있었다.

수많은 시도 끝에 이해수는 그것이 혈액 반응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냈고, 긴 시간이 지나서야 차진서의 도움으로 게이트 발생을 촉발하는 물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물질이 한정된 탓에 모든 구역에 실험해 볼 수는 없어서 곤란했는데, 그전에 반응을 보여 줘서 다행이에요.”

“반응?”

“네. 예의 구역의 게이트를 촉발시키자, C구역에서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 구조의 검은 새싹이 났어요. 저쪽에서도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는 증거죠! 역시 차해연 가이드의 육신을 원하는 게 아닐까요?”

이해수가 흥분 어린 얼굴로 소리쳤다.

인위적으로 게이트를 여는 대역죄를 저지른 이라기엔 새로운 장난감을 얻은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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