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89화
생각해 보면 지금 상황에서 나보다 혼란스러울 사람은 연우진이었다.
전담 가이드라는 사람이 대뜸 빙의자라는 소리를 듣지 않나. 몇 년 전 자신이 죽였던 사람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더구나 그 사람은 그가 믿고 따랐다던 친한 형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그저 친했던 사람이라면 놀라는 한편 기쁠지도 모르나, 자신이 죽였던 사람이라면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문득 내가 너무 무신경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고 당장 도이현에 관한 이야기를 무분별하게 꺼낸 것 같았다.
“우진 씨.”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손등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전담 가이드 일이 아닌 그저 그를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었기에 조금 전과 달리 가이딩 파장은 최대로 낮춘 상태였다.
그의 시선이 제 손등 위에 내려앉은 내 손으로 떨어졌다.
“괜찮아요?”
“몸 상태는-.”
“가이딩 말고. 생각해 보면 저보다 우진 씨가 더 도이현 씨 일로 머리가 복잡할 것 같아서요.”
고개를 숙인 채였기에 나는 그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
“오늘은 우진 씨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많이 피곤했을 텐데 그…… 도이현 씨 이야기도 너무 생각 없이 말했던 것 같아요. 미안해요.”
“…….”
“가이딩 끝나면 다시 카페로 갈까요? 신메뉴로 크림 스튜를 만들었거든요. 괜찮다면 같이 먹어요. 오늘 일도 많았고, 우진 씨가 원하는 거 해 줄게요. 아, 자몽 허니 블랙 티 좋아했죠? 그거 해 줄까요?”
손끝에 단단한 뼈마디가 눌리며 여린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러나 대답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이어지는 무거운 침묵에 나는 뻘쭘하게 시계 초침을 세며 생각했다. 크림 스튜는 좀 별로였나?
하긴 갑작스러운 난리 통에 급히 불만 끄고 나왔으니 제대로 재료가 익었을지도 확신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원하는 거.”
“네, 우진 씨 뭐든 말해 보세요.”
한참 뒤에 돌아온 대답이 반가웠던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마치 무언가를 참아 내듯 손바닥 아래 그의 마디뼈가 도드라진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츠린 순간, 그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키스해도 돼요?”
짙게 일렁이는 금안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 * *
가볍게 닿기만 한 손끝에서는 아주 미미한 파장만이 느껴질 뿐이다.
저번처럼 한꺼번에 많은 양의 가이딩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 역시 안정적인 상태였다. 그러니 가이딩에 취해 넋을 놓을 이유는 없는데도 이상했다.
사실 그가 이상해진 것은 꽤 되었다. 그녀에게 닿을 때마다, 아니, 닿지 않더라도 열이 나는 것처럼 머릿속이 뜨거워졌기에.
문득 떠오른 것은 이전 데이트에서 김유정이 자신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였다.
「……제 착각이라면 죄송한데, 연우 씨, 혹시 저 좋아하세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연우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어떤 의미로 물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간 그녀가 주는 온기에 취해 머저리처럼 굴던 그는 그제야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단순히 높은 매칭률 때문에? 에스퍼의 본능이니까?’
아니, 그걸로는 부족하다.
연우진은 몸이든 정신이든 타고 나길 강하게 태어났다.
비록 축복받지 못한 매칭률을 가지긴 했으나, 그런 매칭률을 가졌음에도 지금껏 그가 고통에 미쳐 버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강한 정신력 덕분이었다.
그렇기에 친한 형이었던 도이현이 가이드로 인해 미쳐 버렸을 때 연우진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만난 지도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의 죽음. 고작 그 한 명 때문에 그를 비롯해 오래도록 함께한 이들은 죽어도 상관없는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으니까.
“오늘은 우진 씨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많이 피곤했을 텐데 그…… 도이현 씨 이야기도 너무 생각 없이 말했던 것 같아요. 미안해요.”
그러나 이제 연우진은 그런 도이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도이현을 이해하게 되었기에, 그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연우진이 느낌 감정은 슬픔, 미련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자신의 신을 잃고 나서도 그 끔찍한 시간을 이어 나갈 수 있었는지.
“가이딩 끝나면 다시 카페로 갈까요?”
김유정은 그런 연우진을 오해한 듯했다.
“신메뉴로 크림 스튜를 만들었거든요. 괜찮다면 같이 먹어요. 오늘 일도 많았고, 우진 씨가 원하는 거 해 줄게요. 아, 자몽 허니 블랙 티 좋아했죠? 그거 해 줄까요?”
그를 걱정하듯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목소리가 평소보다 다정했다.
손등에 그녀의 손이 닿아 있지만, 그걸로는 부족한 느낌이었다. 가이딩이 부족해서?
아니. 가이딩은 충분했다. 애초에 닿은 손에서 가이딩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목이 탔다. 바짝 말라 버려 간지럽게 느껴질 정도로 심한 갈증이 느껴졌다.
‘안고 싶다.’
다소 답답할 만큼 세게 끌어안고 가느다란 목에 숨을 묻고 싶었다. 감정을 조절하는 브레이크가 망가진 것처럼 알 수 없는 충동이 수차례 들었다.
그것을 억누르고자 했으나, 원하는 것을 해 주겠다는 그녀의 말에 그만 누르고 있던 본심을 내뱉고 말았다.
“키스해도 돼요?”
그의 물음에 김유정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당황한 듯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달싹이기만 하는 작은 입술을 쳐다보던 그는 결국 먼저 시선을 피했다.
김유정이 다쳤을 때는 혈관에 타르를 주입한 것처럼 시커먼 불쾌감이 온몸을 덮쳤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미소 짓는 그녀를 보면 기분이 가라앉았다. 김유정이 자신을 의지하고, 믿고, 그것이 무엇이든 그녀에게 우선순위가 되고 싶었다.
이런 음습하고, 집착적이고, 욕망이 다분한 감정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누나.”
그는 감히 이 감정에 사랑이란 이름을 붙이고자 했다.
“저는 좋아해요.”
늦은 대답 뒤로, 그는 사랑 대신 다른 말을 덧씌웠다.
“누나가 저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거짓말.
“그저 필요로만 해도 괜찮으니까. 계속 곁에 있게 해 주세요.”
거짓 속에 진심이 녹아들었다.
다행히도 그는 쓸모가 많았다. 세계는 항상 그를 찾았고, 무언가를 해 주기를 바랐으니까.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애정은 두 눈을 멀게 만들고 맹종하게끔 이끌었다.
아, 이제 끝났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흠뻑 젖어 버린 감정에 그는 눈꼬리를 부드럽게 휘었다.
* * *
“설마 우진이한테 전담 가이드가 생길 줄은 몰랐는데-.”
도가빈은 중얼거림과 함께 조금 전의 상황을 되뇌었다.
그러다 연우진을 소개해 준 제 형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김유정의 기억에서 봤던 ‘레이몬드’와는 다르게 유순하기 그지없었던 웃는 얼굴이.
친형제임에도 매사에 대충이고 성격이 나쁜 도가빈과 그 반대인 도이현은 성격이 맞지 않았다. 그래도 도가빈은 제 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도이현이 차해연을 만나기 전까지는.
「사실은 힘들었어. 수십 명을 구해도 내가 구하지 못한 누군가는 존재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의 원망도, 악의도. 어쩌면 전부 내 잘못 같다고 느껴져. 모든 순간이 내겐 악몽 같았어.」
그토록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 왔는데 제 형의 본심을 들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에스퍼는 신이 아니다. 전능하지 않고, 모두를 구해 내진 못한다. 그러니 죽을힘을 다해서 게이트를 닫아도 누군가는 욕하고 질책했다.
차라리 저나 연우진처럼 사람에 대해 기대를 품지 않았다면 좋았으련만.
도이현은 미련했다. 그러다 결국 처음으로 가진 온기에 모든 것을 내주고 망가졌다.
「우진아, 나 좀 도와줘. 그녀를 다시 내 곁으로 데려올 거야.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어. 그렇지?」
억지로 열린 레드 게이트 안, 검게 물든 숲은 사방이 각성자의 시신으로 난무했다.
권시현에 하도경, 살아 있는 상위 에스퍼들이 드문드문 보이긴 했으나 그들도 마물을 상대하느라 누군가를 구할 여유는 없어 보였다.
검고 붉은 풍경 속에서 도가빈은 고개를 숙여 반쯤 뚫린 자신의 복부를 내려다보았다.
도이현의 이능력에 당해 간섭 현상이 일어나며 문제가 생겼는지 능력조차 생각대로 발현되지도 않았다.
이대로 게이트 안에서 죽을 수도 있겠네.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지옥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연우진이었다.
「아니. 형의 가이드는 이미 죽었어.」
고작 15살의 나이에 사사로운 정을 뒤로 미루고, 제 형을 죽인 연우진에게 도가빈은 말하진 않았지만 감사했고, 조금은 원망했다.
그 사건은 이후 대격변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건의 주역들은 각자 길드를 창립했고, 국가가 독점했던 권력이 분산되며 나라의 형태도 조금씩 바뀌어 나갔다.
그런 와중 도가빈은 프리랜서처럼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드문 정신계 에스퍼를 원하는 곳은 많았으나, 어디 한 곳에 속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여전히 지옥은 끝나지 않은 채였다.
-나는 알아볼 수 있어. 그 애야.
레드 게이트가 닫히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도이현의 목소리였다.
타인의 기억이나 생각을 읽을 때와 비슷하게 그의 머릿속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막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자신이 미친 줄로만 알았다.
폭주 직전의 미친 사람처럼 임무 때마다 혼란스러운 행동을 보이니 자연스럽게 위험 분자 취급을 받았다.
감금도 당해 보고 치료도 받아 보았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목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졌다.
-이번에는 반드시 구할게. 너를 위해 다시 한번.
매 순간 수천 마리의 벌레가 머릿속을 갉아먹는 듯한 기분에 절로 신경이 예민해졌다. 예민해진 신경을 숨기기 위해 더 웃고 가볍게 굴었다.
「하하…… 진짜 내가 미친 건가?」
도가빈은 게이트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도이현이 복사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증명할 방법은 없었고, 도가빈은 순간마다 정말 도이현이 살아 있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미쳐 버린 건지 생각해야만 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뒤에서야,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를 얻었다.
「……레이몬드?」
예민한 인상의 여자였다.
그녀와 닿았던 짧은 순간, 도가빈은 낯선 세계에서 제 흉내를 내는 도이현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