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86화
그걸 보며 나는 그가 만졌을 때 인간이 아닌 사물의 기억도 읽어 낼 수 있는지의 가능성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무슨 질문을 해야 할까…….’
묻고 싶은 것은 많았으나, 상대측에서 질문이 떨어지면 그걸로 끝날 질의응답이었다.
나는 가능한 많은 답을 얻어 낼 수 있는 질문에 관해 생각했다.
도가빈이 비비안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내 기억을 통해서일 확률이 높았다.
헤르만 제국에서도 서식하는 쿠아 열매가 있는 E구역에서 비비안의 정령석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아마 그쪽이 헤르만 제국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겠고.
그리고 그 E구역은 8년 전 대격변이 터졌던 C구역 근처였다.
“레이몬드와는 무슨 사이죠?”
앞서 생각했던 것처럼 레이몬드와 도가빈은 묘하게 닮았다.
똑같다고 할 정도로 닮은 것은 아니나, 그저 단순한 우연이라고 넘기기엔 그 우연이 너무나도 많았다.
내 질문에 도가빈은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짝퉁은 내가 아니라 다른 쪽이라니까?”
자신이 레이몬드를 흉내 낸 게 아닌, 레이몬드가 자신을 흉내 내는 거다.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아는 사이에요? 어떻게?”
대답이 충분치 않았기에 나는 연이어 물었다.
“저쪽이 나를 흉내 내고 있다고 생각한 것뿐. 나도 확실하게 아는 사이인지는 몰라. 그럼 이제 내 차례지?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에 어떤 행동을 했어? 어떻게 게이트에서 돌아온 거야?”
도가빈은 게이트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정확히는 내가 어떻게 게이트에서 돌아올 수 있었는지를 궁금해했다.
그러나 그것에 관해서는 나도 대답해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몸 상태가 안 좋아졌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원래의 몸으로 돌아와 있었어요. 그게 제가 기억하는 전부예요.”
“정말로?”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최근까지만 해도 잊고 있었던 일들이었다. 여기서 거짓말을 한다고 내게 이득 될 것도 없었다.
나를 응시한 채 도가빈이 천천히 입술을 벌렸다.
“예쁜아, 그거 알아? 닫힌 게이트에 갇힌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실종자라고 부르긴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찾지 않아.”
도가빈은 소파에 상체를 반쯤 누운 채로 고개를 들었다.
“닫힌 게이트를 다시 열 방법도, 게이트에 갇힌 사람이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는 예도 없으니까.”
“네, 그건 알고 있어요.”
게이트 안에 갇힌 실종자를 물색하는 경우는 없다. 사라진 게이트를 다시 나타나게 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은 해 봤어? 게이트에서는 왜 괴물들 밖에 나오지 않는 건지. 살아 있는 인간은 왜 보이지 않는 건지. 왜 게이트 안의 세상은 항상 혼란스러우며 이쪽 세상을 향해 공격성을 드러내는 건지.”
“……네?”
“닫힌 후 게이트 안은 어떻게 되는 걸까? 정말 통째로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다른 세계로서 다른 차원에 공존하는 걸까.”
폭포처럼 쏟아지는 의문 앞에서 나는 천천히 두 눈을 끔뻑였다.
아니, 이 사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민간인이라 웬만해선 게이트 들어갈 일도 없는데.
그러나 도가빈은 내게만 물어본 것은 아닌 듯했다.
“인간은 게이트 안에서 존재할 수 없다. 마물만이 존재하는 게이트의 풍경에 학자들은 이런 결론을 냈지. 그리고 똑같은 게이트는 열리지 않는다. 이 역시 닫힌 게이트를 다시 열 수 없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토대로 결론이 났고.”
그의 시선이 내 옆의 연우진을 스쳤다.
“그런데 그 이론들이 지금 깨진 거야. 예쁜이가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왔으니까.”
“그건 좀…… 애매하지 않나요? 아시겠지만 저는 빙의? 그런 거라 완전히 게이트에 들어갔다고 볼 수 없는데요. 그러니까 게이트 내에서 저처럼 살아 있는 인간이 있을 거라는 보장은-.”
“아니, 맞아. 애초에 게이트는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 그런데 그 게이트가 이쪽 세계에서 열릴 때마다 인간에게 공격성을 가진 괴물들만 있다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유요?”
그냥 원래 그런 거 아닌가? 나는 머리를 싸맨 채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지금 정리해 보자면 게이트 너머에서는 인간이 아닌 괴물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열린 게이트는 대개 이쪽을 향해 공격성을 띠고 있다는 건데.
‘어? 그런데 왜 아멜리아는 헤르만 제국이 게이트 중 하나라고……?’
게이트는 다른 세계와의 통로.
아주 만약에 8년 전 대격변 때 내가 게이트에 휘말린 거고, 그로 인해 아멜리아의 몸으로 빙의된 것이라면 그때 열렸던 게이트는 헤르만 제국이 존재하는 세계라고도 볼 수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그곳 역시 살아 있는 사람이 없어야 옳았다.
나 대신 도가빈의 물음에 답한 것은 연우진이었다.
“게이트가 ‘멸망하는 세계’라는 설이에요, 누나. 증거가 없어서 수많은 가설 중 하나로 묻혔지만, 예전에 누군가가 의견을 낸 적이 있어요.”
“멸망하는 세계요?”
“네. 게이트 내부는 곧 무너질 듯한 미궁이나 문명이 사라진 숲 같은 황폐한 풍경이 많아요. 인간은 없고, 세계는 파괴되어 있고 공간은 한정되어 있죠.”
정확히는 도가빈의 질문에 대답했다기보단 내게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연우진은 대충 빈 찻잔 하나를 가지고 와 탁자 가운데에 놓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말은?”
“이 찻잔이 게이트를 통해 이어진 세계라고 하고, 탁자는 그 나머지 세계라고 하면-.”
연우진의 손가락이 가볍게 탁자를 두드렸다. 무언가를 생각할 때 그의 버릇이었다.
“게임 스테이지라고 보시면 돼요. 게이트 안은 대개 세계 전체라기보단 세계의 한 부분을 도려 내어 마련한 것처럼 한정된 공간이 있고, 던전의 중심이 되는 것을 없애면 닫을 수 있게 되어 있잖아요.”
“으음…… 게이트 안 세계가 하나의 스테이지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멸망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거예요? 단순히 풍경이 황폐해서?”
그런데 그건 보통 던전이 대부분 그렇지 않나. 지금껏 던전 하면 단순히 게임에 이입해 이해해 왔기에 뭐가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게이트로 나타난 던전은 다른 세계의 멸망 부분을 도려 낸 거고, 이쪽에 공격성을 보이는 것은 일종의 땅따먹기라고 보면 돼요. 멸망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이쪽 세계를 차지하기 위해서요.”
차분히 이야기를 잇던 와중 연우진의 시선이 돌연 나를 향했다. 무언가를 망설이듯 입술을 작게 달싹이던 그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누나가 게이트에서 돌아왔다거나 몸이 바뀌었다는 말은 잘 모르겠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놀랐다기보단 풀죽은 기색이었다.
그 반응에 되레 당황한 나는 도가빈과의 대화가 끝나면 설명하겠다고 소리쳤다. 그에 연우진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속은 것 같기도 하고. 묘한 기분도 잠시, 나는 레드 게이트에 관해서 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의 주역이 여기 있었다.
“그, 제게 이변이 일어났던 게 대략 8년 전 레드 게이트 때라 그때 게이트 안이 어땠는지 묻고 싶어요. 아무래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서요.”
내 질문에 연우진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말이 없더니 이윽고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레드 게이트가 열렸을 때 동시다발적으로 다른 곳들 역시 게이트가 열렸어요. 그중 가장 피해가 컸던 C구역은 당시 국가 기관이 있던 위치라 많은 수의 각성자들이 휘말렸고, 그 게이트 안 풍경은 그냥 숲이었어요.”
“숲이요?”
“정확히는 상급 마물들이 득실거리고, 바닥이든 나무든 온통 검게 칠해진 숲이요.”
검은 숲.
곧장 떠오른 것은 마지막으로 봤던 꿈속에서 아멜리아가 있던 검은 숲이었다.
황성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있는 숲은 대륙의 사막과 비견될 정도로 광대했다.
“뭔가 생각났어?”
덜컹, 갑작스러운 움직임과 동시에 단단한 무릎에 탁자가 들리며 탁자 위 찻잔이 그의 소파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게 보였다.
찰나의 속삭임과 이물감. 도가빈의 손이 내 손등 위로 덮어졌다.
“……!”
그러나 그것은 아주 찰나에 불과했다. 바로 굉음과 함께 바닥이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콰득, 콰드득.
도가빈이 있던 자리가 거인의 발에 짓밟힌 것처럼 무너졌다.
나는 어느새 연우진에게 안긴 채 공중에 떠올라 있었고, 도가빈은 공격의 범위에서 몸을 피한 채 두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우진아, 성급하게 굴지 마. 예쁜이도 괜찮잖아? 잠깐 기억 좀 읽은 것뿐이야.”
“성급하게 굴긴. 내가 게을렀지. 진작 팔부터 못 쓰게 만들어 놓는 건데.”
“으음, 역시 형이 잘못 키웠다니까? 어쩌다 저런 사람으로 자라서는.”
“뭘 키워? 나는 원래 이랬어.”
“그건 그렇지. 내가 착각했네. 기분이 나빠진 줄 알았더니 그냥 평소처럼 성격이 나쁜 거였구나.”
“…….”
연우진은 말없이 나를 안지 않은 쪽의 손을 가볍게 까닥였다.
천장부터 무너진 바닥까지 공간이 조금씩 일렁거렸다. 이러다 뭔 일 나겠구나 싶었던 나는 급히 연우진을 막아 세웠다.
“자, 잠깐!! 우진 씨 우리 진정해요. 저 사람 말대로 기억 좀 읽은 것뿐이니까!”
닿은 시간이 아주 짧았던 데다, 직전 검은 숲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도가빈이 읽은 기억은 그에 관련된 거라고 보는 편이 타당했다.
물론 허락도 없이 기억을 읽은 것은 기분이 더럽지만, 당장 집도 잃고 눈앞에서 방금까지 대화하던 사람이 죽는 것보단 나았다. 무엇보다도 상위 에스퍼들 사이의 전투에 휘말리기 싫었다.
“일단 나 내려놓고! 집 그만 좀 부수고!!!”
후자의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한이 맺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사람은 같이 안 살 때도 남의 집을 부수더니 자신의 집도 망설임 없이 부쉈다.
솔로몬급의 공평함에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