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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84화 (84/119)

S급 자영업자

84화

문득 떠오른 것은 카페를 꾸릴 적 조금이라도 아껴 보겠다고 가구 하나하나 직접 봐 가며 정성껏 골랐던 과거의 기억이었다.

아까의 진동 이후로 계속 머리가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그리고 내가 정성껏 고른 탁자는 완전히 박살이 났고.

“……아.”

“그, 누나-.”

내 중얼거림에 두 사람이 그제야 아차 싶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도가빈이 혹시 상태가 많이 안 좋냐며 물어왔고, 연우진은 안절부절못하더니 슬그머니 눈치를 보듯 부서진 탁자를 발로 치웠다.

“내가 내 카페 건드리면 가만 안 둔다고 했죠.”

나는 내 앞으로 굴러들어온 탁자 다리를 주워 들었다.

둘 다 상위 에스퍼니 적어도 몸은 튼튼할 것 같아 다행이었다.

콰득.

차올랐던 분노는 그들의 팔에 부딪힌 탁자 다리가 되레 부러지는 것을 보고 진정되었다. 역시 충격만큼 진정에 효과적인 것은 없었다.

부러진 탓에 날카로워진 나무 끝부분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도가빈이 서둘러 내 손에서 막대기를 빼앗아 들었다.

그는 내가 다시 쥘세라 그것을 저 멀리 던져 놓고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실수했네. 우진이가 장난치기에 놀자는 건 줄 알고.”

“잘못했어요…….”

연우진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왔다. 내쳐질세라 내 옷자락을 꽉 붙잡는 커다란 손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리 쉬었다.

그런 연우진을 본 도가빈은 매끄럽게 말아 올렸던 입매를 무너뜨렸다. 불쾌한 골짜기를 보듯 도가빈의 눈에 짧게 감탄이 어렸다가 이내 미간 사이로 주름이 졌다.

“가빈 씨, 아직 얘기할 게 있어요. 우진 씨, 그런 얼굴 하지 말고 우진 씨 집으로 갈 거니까 우진 씨도 따라오세요. 저 아직 저 사람 완전히 못 믿겠으니까.”

“나는 예쁜이 공격할 생각 없는데~.”

“그러기엔 제가 근래 변을 당해서요. 일단 여기에서 나가죠.”

나는 카페를 위해서라도 저 사람들을 여기에서 내보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조용히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박살 난 탁자 탓에 엉망이 된 바닥과 아직도 쓰러져 있는 사람 셋이 보였다.

연우진의 말로는 있다가 메시아 쪽에서 회수해 갈 거라는데 부디 그들이 치료소로 잘 이송되길 바랄 뿐이다.

가스 불을 끄고, 먹음직스럽게 끓여진 크림 스튜를 냄비 뚜껑으로 덮었다.

문은 안 닫고 나가도 된다기에 그대로 문을 열고 나오는데 가게 앞에 짙은 밤색 머리의 남자 한 명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듯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벽에 기대서 있었다.

카페 손님? 아니면 온다던 메시아 쪽 사람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그쪽을 바라보던 그때, 남자의 고개가 돌려지며 시선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유…….”

“누나, 탁자는 똑같은 거로 준비해서 보내 드리면 될까요?”

남자가 입을 벙긋거리더니 이내 나를 따라 나온 연우진과 도가빈을 발견하고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바짝 위협을 느낀 동물처럼 몸을 움츠렸던 남자는 곧 무언가에 자신감을 얻은 듯 내 쪽으로 달려왔다.

“유정아!!”

남자가 소리쳤다.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분명 내 이름이었다. 곧바로 연우진의 얼굴에 불쾌감이 드리워졌다.

“……누구?”

“어, 아는 사람?”

도가빈은 올 사람이 더 있었냐며 내게 태평하게 물어 왔다.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채 고개만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름을 부른 것으로 보아선 단골손님은 아닌 것 같고, 애초에 내 좁은 인간관계에서 내 또래의 남성은 근래 들어 알게 된 각성자들을 제하면 없었다.

……그동안 했던 아르바이트 직장 동료 중 한 명인가? 그렇다기엔 편히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해진 사람이 없었다.

“유정아, 혹시 번호 바꿨어? 아무리 전화해 봐도 받지 않고, 급기야는 근래 들어서 없는 번호라고 뜨기까지 해서 무슨 일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되더라. 아, 나한테 바뀐 번호 알려 주는 거 깜박했구나?”

“네? 저를 아세요?”

“서운하게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해……. 그건 그렇고 이 두 사람은 누구야? 카페 손님?”

그쪽이야말로 정말 누구시죠.

최근 겪은 사건으로 휴대폰을 바꾸긴 했다.

이름에, 내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나를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번 남자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 보았다. 짙은 밤색 머리카락에 처진 눈꼬리를 가진 남자였다.

그는 연우진과 도가빈이 신경 쓰이는지 두 사람에 관해서 물었다.

하긴 연우진이나 도가빈이나 둘 다 외양도 그렇고, 키도 190에 다다랐다.

보통 약속을 잡을 때 그 장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에서 만나지 않는가.

그것과 비슷했다. 저절로 시선이 쏠리는 랜드마크를 보듯 남자가 계속해서 내 뒤쪽을 힐끔거렸다.

이쯤 되면 그가 내게 용건이 있는 건지 내 뒤의 두 사람에게 용건이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솔직히 눈앞에서 대뜸 아는 척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기보단 뒤쪽이 더 신경 쓰였다.

슬며시 고개를 틀어 뒤쪽을 바라보니, 도가빈은 무슨 영화라도 보듯 흥미롭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우진은…… 저러다 살인 일어나겠는데.

나는 이 자리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느꼈다. 누구인지는 모르나 아멜리아의 지인이거나 그러겠지.

정 뭐 하면 나중에 한세영에게 물어보고 친했던 사이라고 하면 대충 답장 보내 놓으면 될 것 같았다.

이름을 물어보려는 그때, 남자가 애달픈 낯을 꾸며 내며 호소했다.

“네가 본 거 정말 오해야. 나 다른 여자 안 만났어. 알잖아. 나 너밖에 없는 거, 응? 우리 이야기 좀 하자.”

“……함시혁?”

아, 저 말을 들으니 알 것 같다.

“응. 나 시혁이야, 유정아. 네 남자친구인-.”

함시혁이 너구나?

“-누나.”

그때 어깨 위로 팔이 감기며 연우진이 나를 가볍게 뒤로 당겼다. 그 탓에 나와 함시혁의 거리가 벌어졌다.

나는 연우진의 손길에 순순히 끌려가 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끌려가는지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게 들어만 보았던 그 함시혁을 실제로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한세영은 혹시라도 함시혁의 얼굴을 보면 내가 다시 찾을까 봐 보여 주지도 않았고, 나 역시도 관심이 없었기에 굳이 궁금해하지 않았다.

“저거, 남자친구예요?”

막 피어오른 꽃봉오리처럼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머리 바로 위에서 들려왔다.

나는 어느새 연우진에게 반쯤 끌어안겨 있었는데, 그 탓에 그가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지금 그의 표정이 좋지 않을 거란 것은 알 수 있었다.

연우진을 마주한 함시혁의 얼굴이 숲속에서 맹수라도 마주친 것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와…… 남자친구 있었어? 나와의 관계는 단순한 불장난에 불과했던 거야?”

그러자 이 상황을 관람하고 있던 도가빈 역시 장난기가 솟은 건지 실실 눈웃음을 쳐 가며 헛소리를 시작했다.

진짜 확 불을 질러 버릴까. 고민도 잠시, 나는 더 미루지 않고 대답했다.

“남자친구 아닌데요?”

내 카페 앞에서 일을 벌일 듯한 연우진의 기세도 기세였지만, 정말로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대답하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함시혁은 내가 아닌 아멜리아의 남자친구였으며, 설령 이곳에 있는 게 아멜리아였다고 해도 저놈이 바람피워서 헤어진 상태니 남자친구가 아니었다.

“유정아, 그게 무슨 소리야. 아직 화 안 풀렸어?”

“나는 왜 찾아왔는데? 용건만 간단히 말해.”

동갑이라고 들었으니 말 놓아도 되겠지.

솔직히 나는 함시혁에게 별다른 유감이 없었다.

물론 들은 게 있으니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쓰레기 같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여전히 오백만 원에는 미련이 남아 있지만, 지금은 저놈보다 이 둘을 데리고 이 자리를 뜨는 게 더 급했다.

혹시라도 소동을 일으킬까 내 어깨에 두른 연우진의 팔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러자 고개를 숙인 듯 머리 위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쩌다 이런 난장판이 되었을까…….’

이때만 해도 별생각 없었다. 당시 내 머릿속을 맴돈 것은 오늘 무슨 날인 것 같다는 생각과 빨리 쉬고 싶다는 생각이 고작이었다.

“……역시 많이 화났구나. 그, 가이드가 되었다고 들었어. 잘 생각해 봐. 우리 예전에 좋았잖아. 유정아, 네가 자주 그랬잖아. 가이드로 발현하면 반드시 내 가이드가 될 거라고.”

그러나 이어 함시혁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누구에게 가이드가 되었다고 들었는지 평소라면 그 생각부터 했을 텐데 그때는 달랐다. 무심결에 되물었다.

“-너였어?”

“응?”

“내가 너한테 그런 말을 했었냐고.”

“아…… 응. 이제 기억나? 정말 그때의 바람대로 우리는 이렇게 운명이 되었…….”

“입 다물어 봐. 네 운명 여기 없으니까.”

세기의 사랑 이야기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애틋한 표정으로 떠들기에 쏘아붙였다.

한결 낮아진 내 목소리에 당황한 듯 함시혁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놀랄 만도 했다. 그가 아는 김유정이라면, 아멜리아라면 그렇게 말할 리가 없으니까.

「으음- 의무 검사 말고도 추가 검사를 몇 번 더 받으셨네요? 지금이라도 가이드인 게 발현되셔서 기쁘시겠어요. 축하드려요.」

함시혁의 말에 떠오른 것은 과거 김유정이 의무 검사 외에도 추가 검사를 몇 번 더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적지 않은 금액을 내고 몇 번이고 검사를 받았다는 것에 당시에는 지원금이 목적이었나,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었나 고민했었는데 그 답을 지금 알 수 있었다.

아멜리아는 함시혁을 위해서 가이드가 되고 싶었던 거다.

함시혁이 에스퍼니까 그에게 필요한 존재인 가이드가 되길 바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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