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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79화 (79/119)

S급 자영업자

79화

「아~ 오래전에 일어났던 A급 에스퍼 ‘도이현’ 같은 사례? 하도 유명해서 알지. 가이드에게 집착한 나머지 그와 연관된 에스퍼들을 모조리 죽이고, 끝내 제 가이드까지 죽였다던.」

분명 S급 하나에, 같은 A급만 여럿 죽였다던 국가 소속의 에스퍼였다.

가이드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건의 당사자인 에스퍼는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저보다 상위 에스퍼를 죽였다는 것과 가이드까지 폭주로 죽게 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사람들에겐 다소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예전에 아르바이트 하면서 직장 동료에게 들었던 건데 설마 여기에서 그 이름을 듣게 될 줄이야.

“들어 봤어요. 그럼 그 사람이 차해연을…… 그럼 차해연은 도이현의 폭주에 휘말려 죽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아뇨, 순서가 달라요. 폭주는 그녀가 죽은 다음이에요.”

“다음이요?”

“그때 도이현이 속했던 팀이 있었는데, 그 팀원 중 한 명이 도이현을 싫어했거든요. 그래서 임무 수행 중 도이현에게 환각을 걸었고, 한참 날이 서 있던 도이현은 악몽과 현실을 혼동했죠.”

“그럼…….”

“네, 도이현은 환각에 당해 차해연을 살해했고, 제 손으로 가이드를 죽였다는 사실에 끝내 미쳐 버렸어요.”

친했던 이에 대해 말하는 것치곤 지나치리만큼 담담했다.

연우진이 내 손을 살짝 움켜쥐었다가 놓았다.

그가 손을 놓고 나서야 나는 지금까지 계속 손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전해진 손을 한 번 쥐었다가 펴고는 다시 내 쪽으로 물렸다.

“그 뒤는 잘 알려진 대로예요. 그는 자신의 폭주를 막는 많은 수의 에스퍼들을 살해했고, 결국 처분당했죠.”

“아-.”

“레드 게이트는 도이현의 폭주가 방아쇠였어요. 굳이 도이현만이 원인은 아니었지만, 때마침 세계에는 동시다발적으로 게이트의 수가 늘고 있었고, 폭주 과정에서 도이현은 게이트를 열었어요.”

“게이트를 열어요? 하지만 그건 차해연의…….”

“도이현의 능력은 ‘복사’. 그녀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능력을 가져왔어요. 그날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레드 게이트가 열린 원인으로는 연구원들이 말하길 안 그래도 불안정한 힘이 동시에 자극을 받아 폭발한 거라고.”

연우진은 그렇게 이야기를 끝맺었다. 대화가 끝나자 주변이 고요해졌지만, 그와 반대로 내 머릿속은 그 여느 때보다 시끄러웠다.

‘8년 전…… 8년 전…….’

대격변. 8년 전. 다른 세계. 아멜리아. 그리고 차해연.

각각의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대격변은 8년 전에 일어났다. 지금껏 그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과거의 역사를 배우듯 그때 레드 게이트가 일어났고, 규모가 커서 세계적으로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하고 새로운 세계의 상식 삼아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겹치기 시작했다.

비비안은 레이몬드가 갑자기 아멜리아를 차해연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했다. 헤르만 제국에서 그런 이름은 결코 흔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비안, 어쩌면 헤르만 제국은 그곳과 이어져 있는 게이트 중 하나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꿈속의 아멜리아는 그렇게 말했다.

아멜리아가 실제로 8년 전에 죽었다던 차해연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역시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8년 전 그날이었기 때문이다.

대격변이 일어났던 것은 5월, 그리고 내가 아멜리아로 빙의된 것도 8년 전, 5월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게 그저 우연일 리가.

‘나 정말로 그냥 쓰러진 게 전부인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8년 전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던 도중, 지하철을 기다리다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져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을 땐 이미 아멜리아의 몸이었다.

보통 빙의자는 빙의하게 된 계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그건 나도 별다른 바 없었다.

다른 몸에 빙의되어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무슨 원리로 이렇게 되었는지 따질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돌아갈 방법이라면 수도 없이 찾아 헤맸지만.

그리고 그건 원래의 몸으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돌아오자마자 집이 사라진 데다, 세계도 바뀌어 적응하느라 바빴다.

생각해 보면 가족들은 내가 ‘그 사건’ 뒤로 기억에 혼란을 겪고 있다며 내게 말을 아꼈다.

나는 그것을 지하철에서 쓰러진 사건이라 자연스럽게 이해했고, 그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세계가 바뀐 것도 있으니 다른 자잘한 일도 그에 맞춰 바뀌었나 보다 하고 넘겼기 때문이다.

‘한세영…… 아니, 엄마한테 물어보는 게 더 정확한가?’

안 그래도 조만간 시골에 한 번 내려가기로 약속했었는데, 그 김에 물어보면 될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말없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 연우진이 흘러내린 내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내 귀 뒤로 넘겨주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그를 쳐다보자 그는 나보다 더 당황한 얼굴로 눈을 깜박이더니 이내 귓가를 붉게 물들였다.

“죄송해요, 놀랐어요?”

“괜찮아요. 눈 찌를까 봐 정리해 준 거죠?”

“네.”

그의 시선이 다시금 내 손을 향했다.

또 필요해졌나 싶어 내밀자, 그는 그런 나를 묘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이내 천천히 손을 잡아 왔다.

“……링거는 이제 빼도 된대요?”

“네, 오늘 뺐어요. 이제 체력 회복만 하면 된대요. 솔직히 저는 이미 멀쩡해진 것 같은데 한동안 쉬라고 하네요.”

그의 엄지가 내 손등 위를 조심스럽게 훑었다.

송화연이 바늘 자국까지 말끔하게 없애 준 탓에 이젠 어디에 자국이 있었는지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는 미간을 좁힌 채로 링거가 꽂혔던 곳을 응시했다.

“누나가 그 능력 쓰는 거 싫어요. 아프잖아요.”

“처음이라서 그랬던 거예요. 파장 조절만 잘하면 저번처럼 크게 문제 생기진 않을 것 같아요.”

물론 부작용이 전혀 없을 거라고는 자신하지 못하나, 만약 다시 쓰게 된다면 적어도 저번처럼 엉망이 되진 않도록 해 볼 생각이다.

능력에 익숙해지도록 연습해 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지만 냉정히 따져 보면 어려웠다.

애초에 가이딩을 없애는 훈련을 가이딩에 목숨이 달린 에스퍼에게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게 있어 위험 부담도 적지 않았다.

‘뭐가 되었든 공격 수단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지.’

실험처럼 당장 써 보지는 못하겠지만, 만약 저번 같은 일이 벌어지면 그땐 명분도 주어지니 써 볼 생각이었다.

“그래도 누나, 만약에 제가 폭주하거나 더는 제어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누나가 위험해지게 된다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연우진도 무언가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는 가만히 나를 응시하다 말을 이었다.

“그땐 저를 죽이세요.”

“……네?”

“죽이셔도 돼요.”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잔잔한 호수처럼 감정의 고저가 없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되묻고는 미간을 구겼다.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에스퍼에게 가이드가 필요한 이유는 결과적으로 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하는 말은 그 기본 명제를 무너뜨리는 말이었다.

조금 전까지 했던 수많은 생각이 한순간에 머릿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제 죽음을 논하는 것치곤 그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그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누나를 해치고 싶지 않아요.”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에 나는 구겼던 미간을 폈다.

어쩌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연우진의 친했다는 형인 도이현은 결국 제 손으로 가이드를 죽이고 말았다.

그때 그가 무엇을 보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몰라도 그 일은 연우진에게 있어 기억에 남는 일이었으리라.

상황상 납득은 되는데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가볍게 주먹을 쥐어 그의 머리를 살짝 내리쳤다.

난데없이 머리를 맞은 연우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으나, 정작 맞았다는 사실에는 불쾌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황 봐서요.”

매칭률 극악인 그에게 나라는 가이드가 어떤 의미인지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로 이해했다. 그러나 죽음은 그 모든 것들을 모순되게 만들었다.

죽는다면 가이딩이, 가이드가 무슨 필요가 있지?

“저는 저를 우선시할게요. 그러니까 우진 씨도 우진 씨를 우선시해 줘요.”

연우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는 무언가 항의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곧바로 이어지는 내 말에 끝내 입을 다물었다.

“저는 우진 씨가 가능한 한 오래 살았으면 좋겠거든요.”

“…….”

이 말이 그에게 어떤 의미로 들릴지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그가 제 목숨에 가치를 느끼길 바랐고, 저 자신을 향한 냉정함이 좀 더 누그러지길 바랐을 뿐이다.

수십 번을 욕했던 사람이 이제는 살기를 바라게 된다니. 이래서 정이 무섭다는 건가 보다.

* * *

그간 방 안에만 있어서 몰랐는데 지금 있는 곳이 앞으로 내가 머물 연우진의 현재 거주지였다.

예전에 머물렀던 집과 달리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나와 연우진이 거주하는 곳은 맨 위층으로, 그 층 자체가 두 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는 구조였다.

방은 저번에 머물렀던 집보다 더 많았고, 계단 외에도 거실 중앙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그걸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옥외 공간도 따로 있어서 솔직히 나갈 필요 없이 집만 돌아다녀도 충분히 운동이 될 듯했다.

송화연이 며칠간은 반드시 절대 안정이라고 했을 때만 해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도 그럴 게 그만큼 피를 쏟은 사람치고는 너무나도 멀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고 알려 주듯 연우진과 화해하고 불과 이틀 뒤,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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