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78화
나는 붉어진 얼굴로 급히 옷소매를 끌어 그의 입술을 박박 문질렀다.
‘3단계!! 의료 목적의 3단계 가이딩!!’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반복해서 문질렀다.
나는 숨을 몇 번 고른 뒤에 그의 입술을 봤다. 어찌나 세게 문질렀는지 입술이 발갛게 변해 있었다.
어? 살짝 터진 것 같기도 한……. 본의 아니게 상해를 입혀 버려 찔렸던 나는 그로부터 살짝 시선을 빗긴 채 물었다.
“그, 이제 좀 괜찮아요? 그릇 상태는 어느 정도 안정화된 것 같긴 한데…….”
“조금만 더 안고 있어도 돼요? 아직 부족한 것 같아서요.”
문질러진 입술이 아플 만도 한데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기쁘다는 듯 내 허리에 얹은 손에 살짝 힘을 주고 좀 더 얼굴을 가까이했다.
‘3단계 다음엔 2단계인 포옹인가…….’
사실 아직도 정신이 멍했다. 가이딩 탓에 피로한 것도 있고, 머릿속이 텅 비워진 탓이었다.
확실히 연우진과의 가이딩은 소모가 컸다.
나는 S급이다 보니 지금껏 에스퍼 여럿을 가이딩 해도 다른 가이드들과 달리 크게 피로를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실습이라 그들의 가이딩이 안정화된 상태였다고 가정해도, 나는 비전조 게이트에서 폭주 직전의 서일후를 가이딩 한 전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멀쩡했으니 이는 연우진이 그릇이 큰 게 원인이라고 봐야 했다.
무엇보다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은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가이드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가이딩에 사적인 감정은 두지 않기로 하긴 했지만, 당황스러운 건 당황스러운 거였다.
뭔데 이 사람 전보다 익숙해졌지……? 무슨 속성 과외라도 받았나.
뜨겁게 뇌리를 헤집었던 감각이 떠올라 입술을 짓이겼다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여 서둘러 이를 뗐다.
누가 목을 살살 긁어내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간지러웠다.
뭐든 아직 가이딩이 채워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기에 나는 팔을 벌려 그의 어깨에 어설프게 두 손을 얹었다.
“……자, 오십쇼.”
아직 민망함이 남아 있던 탓에 저절로 몸이 굳었다.
전투라도 청하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의 어깨를 꽉 붙잡자 만개한 꽃처럼 환하게 미소 지은 그가 내 허리를 끌어안고 어깨에 제 머리를 댔다.
품에 파고들듯 그의 머리가 어깨 위로 가볍게 문질러졌다. 부드러운 연갈색 머리카락이 목을 간지럽히자 나는 그냥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가이딩을 쏟아부었다. 확실히 상태가 안정화된 상태라 그런지 조금 전보다 가이딩이 훨씬 수월했다.
‘이쯤이면 됐겠지.’
한참 뒤 끌어안았던 팔을 풀고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문득 어느 순간부터 주변이 조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를 내려다보자 그는 어느새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어깨는 빳빳하게 굳어 있었고, 목덜미며 귓가며 하나같이 새빨갰다.
“저기, 연우진 씨?”
“……네.”
그를 불러 보았지만, 그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희미한 대답만 겨우 내뱉었다.
“괜찮으세요?”
나는 당황스러웠다. 민망할 만한 일은 이미 한참 전에 있었는데 그때는 먼저 덤벼들더니 왜 지금 상태가 저렇게 된 건지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정신 상태가 안정되어서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연우진이 힐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누나.”
“네?”
“너무 아름다우세요…….”
그렇게 중얼거린 연우진은 다시금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귓가가 조금 전보다 더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저 상태에서 더 붉어질 수도 있구나 하며 감탄하는 것도 잠시, 방금 무슨 소리를 들었나 싶어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
내가 방금 무슨 미친 소리를 들었지? 나는 얼빠진 얼굴로 연우진을 내려다보았다.
혹시…… 집에 거울이 없나?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추측이었다. 내 얼굴이 못났다는 말은 아니다. 일단 내가 보기엔 아주 괜찮다고 생각했고,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저런 말을 들을 정도로 빼어나진 않았다.
더욱이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가 봐도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솔직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된다.
“맞다. 아까 보답하겠다고 말한 거 그냥 한 말 아니니까 일단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갖고 싶은 거라든가…….”
아. 연우진이 갖고 싶은 걸 내가 살 수 있을 리가 없겠구나. 애초에 내가 살 수 있을 정도면 본인이 직접 구매하겠지.
바로 깨달음은 얻은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뭐든 당장 이야기할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그는 곧장 답했다.
“원하는 거 있어요.”
“……제가 살 수 있을까요?”
내 물음에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누나만이 들어주실 수 있는 거예요.”
그가 수줍게 미소 지었다. 목소리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던 탓에 절로 긴장되기 시작했다.
뭘 부탁하려고……?
상상조차 되지 않았으나, 두려웠던 나는 곧장 대답했다.
“연우진 씨, 미리 말했지만 들어줄 수 있는 것에 한해서예요. 제가 감당할-.”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수 있, 네?”
“이름으로 불러 주셨으면 해요.”
“……부탁이 그거예요?”
“네.”
나는 입을 닫고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긴장한 것에 반해 그가 한 부탁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쉬웠기 때문이다.
혹시 농담인가 싶어 연우진을 쳐다보았지만, 아무래도 진심인 듯했다. 그는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듯 나를 조용히 응시해 왔다.
“그러니까…… 우진 씨?”
“말 놓으셔도 돼요. 사실 그때 다른 건 몰라도 누나가 제 이름 불러 주는 건 좋았거든요.”
“그때?”
“마지막으로 카페에 갔을 때 제 이름을 불러 주셨잖아요.”
“아, 그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화났던 탓에 중간중간 반말이 섞여 나왔는데 생각해 보면 그때 처음으로 그를 진짜 이름으로 불렀던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름에 대한 집착이 장난 아니었지.
“음, 일단은 이렇게 불러도 될까요? 갑자기 말을 놓기엔 지금은 좀 어색해서…….”
“……아직도 제가 어색하세요?”
어쩐지 시무룩해진 연우진에 나는 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연우…… 우진 씨 말고 제가! 제가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요. 그리고 존댓말이 더 좋지 않나요? 존중받는 느낌도 들고!”
“누나가 부르는 거라면 뭐든 좋아요.”
그의 눈가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순식간에 말문이 막힌 나는 당황한 탓에 생뚱맞게 감사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에 연우진은 혹시 손잡고 있어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얼떨결에 손을 내주었다.
연우진이 무슨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는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는 두 뺨을 붉혔고, 그에 나는 조금 흐린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뭐지. 뭔가 있어야 할 게 사라진 것 같은데? 정신이 멍한 와중 잡혀 있는 손이 따끈했다.
“맞다. 우진 씨,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누구요?”
“네?”
내 손을 만지작거리던 연우진이 고개를 들고 답했다.
내가 한 말에 대한 대답이라기엔 이상한 대답이 돌아와 반사적으로 되묻자 그가 작게 탄성을 흘렸다.
“아,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는 말씀이셨구나.”
대체 어떻게 들었기에 그런 대답이 나왔나 생각하던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저 인간, 누구를 묻고 싶냐는 의미로 받아들인 거였다.
그에 잠시 침묵하던 나는 계속 물어보려고 했던 것에 관해 물어보았다.
“차해연이란 이름의 가이드에 관해서 알고 있는 거 있으세요? 하도경 씨 말로는 자신보다 우진 씨가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하셔서요.”
내 입에서 차해연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그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하도경이 그래요?”
“네.”
“혹시 그 사람에 관한 것도 하도경이 말해 준 거예요?”
“아, 아뇨. 그냥 제가 궁금해서요.”
나는 만약에 연우진이 차해연에 관한 것은 어디에서 알게 되었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사실 제가 1년 전까지만 해도 어디 백작가 사생아의 몸에 빙의되었었는데, 갑자기 꿈에 그 몸의 원래 주인과 그곳에서 동료였던 사람이 나타나서 의미심장하게 그런 이름을 말했어요?
진실이었지만, 차라리 꿈에 조상님이 나타나서 이름을 점지해 주었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알던 형의 가이드였어요. 누나랑 같은 S급이었고…… 아, 하도경이 어디까지 말해 줬어요?”
그러나 그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말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는 그의 차분한 태도에 오히려 내 쪽에서 당황하여 되물었다.
“그, 저한테 그냥 말해 줘도 괜찮은 거예요? 아니, 이미 하도경 씨가 어느 정도 말하긴 했는데-.”
“누나가 알아서 안 될 건 없어요.”
“…….”
“어느 부분이 알고 싶은지 물어봐도 될까요? 전부 설명하기엔 지루하실 것 같아서요.”
조금 늦게 내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게이트에 관해서 그녀와 관련된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이미 죽었다는 것과 저처럼 일반적인 가이딩 말고도 다른 힘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흔히 말하는 선량한 사람이었어요. 사실 그렇게까지 친하지 않았어서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해요. 다만, 게이트와 관련된 거라면 그 사람의 능력으로 레드 게이트가 일어났어요.”
“레드 게이트요?”
“네. 세간에서는 ‘대격변’이라고 부르는 8년 전의 사건이요.”
그 대격변의 주역인 연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와 친했던 형, 그러니까 도이현이란 이름의 에스퍼는 그 가이드를 무척이나 좋아했어요.”
“……잠깐, 도이현?”
어딘지 낯익은 이름이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던 나는 이윽고 그 이름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떠올렸다.
올해 초에 에스퍼를 만나 보라며 두둔하는 한세영에게 반박하기 위해 꺼냈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