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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75화 (75/119)

S급 자영업자

75화

하도경은 처음에는 그 연우진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아니면 예상치 못한 김유정의 총 실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나.

그러나 김재영의 입에서 나온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닌 가이딩이었다.

「이제껏 받아 온 가이딩 중 최고였어요. 저와의 매칭률 70은 가뿐하게 넘을 것 같던데요.」

「……너 김유정 씨한테 가이딩 받았어?」

「네, 중간에 능력을 많이 써서……. 아, 맞다. 마스터한테는 비밀로 해 주셔야 해요. 어차피 1단계였고, 시간이 없어서 짧게 받은 게 전부예요.」

김재영이 부스스 헝클어진 제 연하늘색 머리카락 끝을 매만졌다.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며 눈을 천천히 깜박이던 김재영의 눈꼬리가 살짝 휘어졌다.

허공을 향했던 새까만 눈동자가 하도경을 향해 옮겨졌다.

「확실히 매칭률이라는 게 위험하긴 하더라고요. 순간 저도 욕심이 생길 뻔했거든요.」

「야, 너…….」

「그런데 저는 제 목숨이 더 중요해서. 아, 그렇지. 이번 위험 수당은 따로 주시는 거 맞죠?」

하도경은 입술을 달싹였다.

김재영은 에스퍼로서는 축복받은 유형이었다.

능력 조건이나 매칭률이 까다롭지도 않고, 능력 사용 시 부작용은 공복감. 음식 섭취로 무난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무난한 매칭률 탓인지, 아니면 당사자의 천성 탓인지는 몰라도 가이드에 집착하는 면모도 없었다.

그런 김재영이 김유정의 가이딩을 욕심냈다. 물론 연우진의 가이드인 이상 김재영 본인이 뱉은 말대로 뭘 할 생각은 없을 거다.

저놈은 그냥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뿐이었을 테니까.

‘이건 이득일까 아니면 실책일까.’

하도경은 차분히 저울대 위로 손익을 올려놓고 재었다.

S급 가이드. 제가 몸담은 길드 상위 에스퍼 중 둘이나 높게 나왔다던 매칭률. 이상하리만큼 참사에 익숙한 모습. 에스퍼를 죽일 수 있는 가이드.

거기까지 생각하자 떠오른 것은 차해연 때의 일이었다. 솔직히 김유정의 입에서 차해연이란 이름이 나왔을 때는 놀랐다.

기밀 사항이라 김유정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하도경이 차해연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더 있었다.

그녀는 하도경과는 그리 연이 깊지는 않았지만, 연우진과 친하게 지내던 형에게 있어 특히 의미가 깊은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8년 전 레드 게이트가 열렸던 주원인 중 하나였다.

이렇게만 말하면 차해연이 재앙을 일으킨 것처럼 들릴 테지만, 정작 방아쇠를 당긴 것은 그녀가 아닌 그녀를 살해한 이였다.

그리고 각성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의 대부분은 가이드를 잃고 미쳐 버린 에스퍼에 의해 일어나곤 했다.

하도경이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잠긴 순간.

“뭐야, 연우진 전담 가이드 생겼다더니 상태 왜 저럼? 마약성 진통제라도 삼킴?”

또각또각, 구두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닫아 놓았던 출입문이 어느새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출입문을 연 당사자로 추측되는 권시현이 한쪽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린 채 연우진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우리가 통째로 빌려서 못 들어오게 막아 놨을 텐데 어떻게 들어-.”

하도경은 말을 끝맺지 못한 채 권시현 옆을 쳐다보았다.

김재영이 손에 돈다발을 들고 하도경의 얼굴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빠르게 상황 파악을 마친 하도경은 한숨을 길게 내리 쉬었다.

“……그래서 왜 왔는데.”

“우리 쪽에서 노리던 S급 가이드를 교육생에 관심도 없던 메시아에서 채 갔다기에 구경 옴. 데려가니까 좋음? 우리 귀여운 신입이 우리 쪽으로 데려왔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권시현이 뒤쪽을 향해 고갯짓했다. 그곳에는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 저번에 권시현이 게이트에 데려왔던…….’

하도경은 저 여자아이를 어디에서 봤는지 떠올렸다.

“우리 여린 애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알긴 앎? 귀여운 신입을 울리다니 못된 새끼들.”

여린 애? 울어?

하도경은 떨떠름한 얼굴로 권시현 뒤의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그 ‘귀여운 신입’은 순한 눈매를 흉흉하게 일그러뜨린 채 2층 난간에 바짝 매달려 연우진이 있는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여자아이를 귀엽다는 듯 쳐다본 권시현이 입에 물고 있던 담뱃대를 가볍게 털었다.

그녀의 담뱃대 끝에서는 잿빛의 연기 대신 보랏빛의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담배 특유의 맵고 싸한 냄새 대신 잘 익은 과실처럼 단내를 풍기는 연기에 하도경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폈다.

‘이번에는 약초인가?’

신경 안정제용 약초를 태우는 것 같았지만, 뭐든 과하게 사용하면 약도 독이 되는 법이었다. 그리고 지금 권시현이 사용하는 약초는 독이 되고도 넘치는 양이었다.

“왜, 좀 나눠 주리?”

권시현은 그런 하도경을 비웃듯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말릴 새도 없이 난간을 뛰어넘어 연우진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

권시현이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사막 한가운데 신기루처럼 공간이 일그러졌다.

권시현은 곧바로 고개를 숙인 뒤 담뱃대를 입에서 떼고 직선으로 휘둘렀다.

보라색 연기가 권시현 앞에 펼쳐지더니 곧이어 묵직한 무언가가 충돌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연기가 거세게 피어올랐다.

“길마님!!”

조예나가 난간 위로 상체를 내밀었다. 하도경은 그런 조예나의 뒷덜미를 잡아 뒤로 당겼다.

조예나는 곧장 제 뒷덜미를 잡은 하도경의 손을 거칠게 떨쳐 내며 그를 노려보았다.

“……뭐야, 당신.”

저번에 봤을 때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기에 오랜만에 상위 에스퍼 중 예의라는 것을 아는 에스퍼가 들어왔구나 싶었건만 그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하도경은 두 손을 슬쩍 들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얼굴 뭉개질 뻔한 거 구해 준 건데.”

여전히 경계 어린 조예나의 눈에 김재영이 하도경에게 한 소리 했다.

그러니까 자신처럼 얌전히 있었으면 괜히 도와주고 욕먹을 일도 없고 얼마나 좋냐고 말이다.

“내버려 두었다가 크게 다치면 권시현이 난리 칠걸.”

“제가 있는데 뭘 걱정해요. 물론 치료비는 좀 받겠지만.”

……어쩌다 애가 저렇게 자랐지. 내가 잘못 키웠나? 아니, 저쯤이면 내가 아니라 연우진이 키운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 성격의 출처는 연우진인 것 같다.

그에 하도경은 잠시 그간의 제 인생을 되돌아보고는 1층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기가 걷히고 보이는 것은 두 사람, 그리고 처참한 주변의 광경이었다.

독에 녹아 일그러진 두꺼운 벽과 바닥. 그리고 권시현이 피했던 부분은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하도경은 잠시 자신이 선 2층 난간 바로 아래쪽 벽이 뚫릴 것처럼 깊게 움푹 들어간 것을 보고 한숨을 내뱉었다.

이곳의 모든 벽과 바닥은 두꺼운 철제, 정확히 따지자면 단순한 철이 아닌 새롭게 개발된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기존의 재료에 비해 배는 단단하다고 센터 측에서 자랑했던 것을 들었던 것 같은데, 본의 아니게 강도 테스트를 해 준 셈이 되었다.

솔직히 완전히 뚫리지 않은 것도 개발된 금속보다는 이로운의 결계가 있는 게 더 컸으리라.

‘안 망가지게 개발에 좀 더 정진해 보라고 조언이라도 해 줄까.’

센터 개발부가 들었다면 바로 목 뒤를 잡고 쓰러졌을 말이었다.

하도경은 배상금으로 나갈 금액을 떠올리며 잠시 이마를 짚었다 놓았다.

아니지, 이번에는 권시현 쪽도 책임이 있었다. 정상이 아닌 길마를 둔 대가를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길마님! 괜찮아요?”

연기가 완전히 걷히자 어느새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간 조예나가 권시현을 살폈다.

저를 걱정하는 듯한 모습에 권시현은 크게 감동하여 눈썹을 늘어뜨렸다.

얼굴만 귀엽지 매번 쌀쌀맞기만 하던 신입이 이렇게 저를 생각해 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예나야, 걱정한 거야?”

“저 사람은 왜 저래요? 다짜고짜 공격부터 하다니!”

“그러게. 나는 그냥 안부 좀 물으려고 왔을 뿐인데.”

조예나를 따라 1층으로 내려온 하도경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안부의 정의는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차로 건네는 인사다. 평소 행적으로 보아 단언컨대 권시현은 안부는커녕 시비를 걸 생각밖에 없었을 거다.

물론 이번에는 그 말조차 건네기 전에 공격이 날아왔지만.

조예나가 제 앞에 선 연우진을 노려보듯 쳐다보았다. 물론 연우진은 누군지도 모르는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하는 말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돌아갈 채비나 하라며 하도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저런 폭력적인 사람이 유정 언니의 전담 에스퍼라니 믿기지 않아요.”

연우진이 조예나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그 이후 조예나 입에서 나온 김유정의 이름 때문이었다. 그제야 조예나를 바라본 그는 설핏 미간을 찌푸렸다.

아, 어디에서 보았나 했더니 제 가이드의 카페에 자주 드나드는 이온 길드의 에스퍼였다.

연우진의 시선이 조예나를 향하자 권시현은 조예나의 앞에 섰다.

물론 조예나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공격적인 시선으로 연우진을 쳐다보았다.

하도경은 그 풍경을 보며 성격 지랄 맞은 소형견을 떠올렸다.

금방이라도 어디 하나 물어뜯을 것이 같은 게 에스퍼답게 성격도 보통이 아니고, 좀 더 경력이 쌓이면 크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전담 가이드는 언제 보여 주실? 내가 직접 S급 가이드가 운영한다는 카페로 찾아가야 볼 수 있는 거임?”

서늘하게 가라앉은 연우진의 눈이 권시현을 향했다.

하도경은 권시현의 입을 닫는 게 나을까, 연우진을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는 게 나을까 고민했다.

전자든 후자든 몸이 성치는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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