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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72화
나는 번쩍 고개를 들어 하도경을 쳐다보았다. 무엇을 보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하도경의 입꼬리가 삐딱하게 올라갔다.
비웃으려는 의도보다는 그 나름대로 노력한 미소가 저것인 듯했다. 그의 입꼬리가 잘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도경의 입이 열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메시아로 들어오세요.”
* * *
하도경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우선 연우진이 내가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이템 덕분이라고 했다.
그가 내게 선물한 아이템에는 사용 시 연락이 가도록 되어 있었고, 그 탓에 내게 무슨 일이 터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위치 추적까지 된다는 말에 내 눈이 가늘어지자 하도경은 사용 전까지 추적 효과는 없다며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위치 추적은 되었으나, 거리 제한과 능력 방해로 정확한 장소를 알아내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애초에 주목적이 그게 아닌 아이템에 추가로 기능을 단 것이기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에 난항을 겪었으나, 여기에서 마침 호출기를 울린 양치기 소년 김재영이 있었던 것.
“김재영 씨 몸은 괜찮나요?”
“걱정할 사람을 걱정하셔야죠. 김유정 씨나 잘 챙기세요. 능력 과사용이 문제라 걔는 가이딩과 식사로 어느 정도 채워지거든요. 가이딩도 가리지 않고, 능력 부작용도 거의 없는 축복받은 놈이죠.”
하도경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그에 정연제에 관해서도 물어봤다.
도주 과정에서 떨어졌는데 그때 홀에서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가이드라면 무사해요. 안 그래도 김유정 씨의 면회를 부탁하더라고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면회요?”
“네. 그간 김유정 씨가 깨어나지 않아서 면회 금지였거든요. 김유정 씨의 상태가 안정될 때까진 관계자 빼고 접촉 불가일 거예요. 아, 일단 김유정 씨가 운영하는 가게 알바생에겐 사정 간략하게 말해 놓았어요.”
그러지 않아도 카페 운영이 걱정되던 참이었다.
물론 이런 재해가 발생 시 불규칙적으로 휴무를 할 수 있다고 언급은 해 놓았으나, 내가 쓰러져 있던 탓에 지금껏 그 상황을 알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김유정 씨 휴대폰은 현장에서 망가진 탓에 연락처 복구해서 새 휴대폰에 옮겨 놓았거든요. 일단 당장 급할 것 같은 직장 외엔 연락하지 않았으니까 지인께는 따로 연락하세요. 덧붙이자면 김유정 씨 3일간 잠들어 있었어요.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니 문제는 없을 거예요.”
깔끔한 대처에 감탄도 잠시, 문제없을 거란 대목에서 하도경이 해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긴 시간이 아니었다 말하는 것치곤 혼자 오랜 시간 감옥에서 옥살이라도 하다 온 것 같았다.
“혹시 제가 기절한 뒤에 무슨 일 있었나요?”
“아, 별건 아니고 연또 새끼가 배를 영해권 내로 옮겨 버려서요.”
“네?”
연또는 뭐지? 연우진을 말하는 건가?
의아한 내 얼굴에 하도경은 인자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덕분에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쪽에서 맡게 되었죠. 다 죽인다는 거 막느라 제가 죽는 줄 알았어요.”
“……네?”
“아, 못 들으셨구나. 연우진 능력 중 하나가 중력장이거든요. 배가 있던 장소가 법적 처벌이 불가능한 영역이라 배 통째로 법적 효력이 작동하는 영역 내로 옮긴 거예요.”
“배를? 옮겨요?”
무슨 비행선처럼 옮긴 건가. 도무지 상상되지 않아 되묻자 하도경이 말을 이어서 했다.
“네, 그럼 죄인 처벌이 가능해지거든요. 난리가 난리였던 터라 미리 발 뺀 사람이 많긴 한데, 뭐…… 우리 쪽도 과잉 진압이 대부분이라 그리 떳떳하진 못해서. 아, 김유정 씨 납치한 놈들도 다 잡았습니다. 감옥에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감옥에 들어가진 못하겠지만요.”
“그런 거 저한테 전부 말해 줘도 돼요?”
“네. 어차피 연우진은 김유정 씨가 물어보면 알려 줄걸요. 그리고 뭐든 아는 편이 좋잖아요. 계약 조건이 그런 거니까.”
하도경이 무릎에 팔꿈치를 댄 채 손에 턱을 괴었다. 이왕 들킨 거 제대로 해 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하긴 지금껏 내가 연우진을 주연우라는 이름으로 불러 왔다는 것은 그 역시도 잘 알고 있겠지.
“김유정 씨.”
“그냥 이름으로만 부르셔도 돼요.”
“네, 유정 씨. 당사자에게 허락받은 거니 그놈도 이름 때문에 뭐라고 하진 않겠죠.”
그놈이 누구기에 고작 이름을 부르는 것에 눈치를 보는 거냐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하도경이 눈치를 볼 만한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주연우 말고 연우진에게 적응해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이것저것 말 꺼내는 거예요. 유정 씨 앞에서는 얌전하지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아, 혹시 궁금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셔도 돼요.”
“그, 흔히 알려진 메시아 길마의 성격이 나쁘다는 말은 혹시 루머인가요?”
“네? 성격이 나쁘다뇨.”
하도경이 미소 지었다. 올라갔던 입꼬리가 순식간에 추락했다.
“썩었죠.”
“…….”
“아, 맞다. 포장. 그래도 외양과 능력은 괜찮으니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괜찮아요, 넣어 두세요.”
무슨 선물이라도 하는 듯한 말투에 나는 정중한 사양으로 답을 돌려주었다.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하던 하도경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그놈, 일일이 의심하실 필요는 없을 거예요. 적어도 유정 씨 앞에서 한 행동들은 거짓이 아닐 테니까.”
“이미 정체를 속였는데도?”
“네, 그래도요.”
하도경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정 씨는 가이드라 모르나 본데 에스퍼 입장에서 매칭률 높은 가이드란 결코 단순한 존재가 아니거든요. 물론 등급이나 개인 특성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뭐, 아무튼. 제가 보기에 연우진은 유정 씨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까지 할걸요?”
그렇게 말한 하도경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정교하게 세공된 은색의 원형 통이었다.
생긴 것만 보면 회중시계 같기도 하고 뭔가 싶어 쳐다보니 하도경이 엄지로 통을 지그시 눌렀다. 그 안에는 붉은 인주가 들어 있었다.
“객관적으로 말하는 건데, 이 계약은 유정 씨에게 나쁘지 않을 거예요. 급하게 수습하긴 했어도 놓친 부분도 있고, 이번 일로 얼굴 좀 팔렸을지도 모르고.”
“협박하는 거예요?”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릴 합니까? 혹시라도 연우진한테 말하지는 말아 주세요. 저는 그냥 유정 씨가 굳이 피곤하게 길을 돌아갈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겁니다.”
하도경은 다시금 계약서 조항을 짚어 주며 오면 얼마나 이득인지 설명했다. 다른 건 몰라도 영업원 하면 잘할 것 같은 스피치였다.
“조건 사항이 있긴 해도 이 조건만 지켜 주시면 1년 복무하는 동안에도 지금 운영하시는 카페에 지장이 안 가도록 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자영업은 계속하셔도 된다는 말씀이죠.”
“그 조건 사항이 뭔데요?”
“별건 아니고 저희가 제안하는 거주지에서 복무 기간 동안 생활하시면 됩니다. 물론 거주하시는 동안 비용은 저희 쪽에서 전부 부담할 거고요.”
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멀뚱한 내 표정에 하도경이 점점 설명에 열을 올렸지만, 사실 굳이 이렇게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계약을 수락할 생각이었다.
그걸 곧바로 말해 주지 않는 것은 연우진과 덩달아 나를 속인 것에 대한 아주 소소한 심술이었다.
수락하는 이유는 별거 없었다. 아니, 솔직히 그 이유가 이미 계약서에 다 적혀 있다.
우선 복무 기간이 3년에서 1년으로 확 줄었다. 법적으로 복무 기간은 3년이 기본이며, 최단 기간으로는 1년까지도 가능하다.
내가 들어가고자 했던 센터 팀 역시 법을 준수하기에 변경 없이 3년이었다.
보통 기간이 변동되는 경우는 길드 계약 시인데, 이 경우 계약 기간을 줄이는 이유는 임시 상태를 빨리 벗어나 바로 길드 가입 시기를 당기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더욱, 메시아가 내민 조건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복무 기간을 최단 기간인 1년으로 줄여 줬는데, 반드시 길드에 가입해야 한다는 조건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복무 종료 시 길드 가입 여부는 내 선택에 달려 있었다.
이들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계약서를 받았다면 바로 메시아의 이름을 빌린 사기 계약서라고 단정 지었을 거다.
높은 급여, 짧은 근무 시간. 그 밖의 다양한 복지와 경호 시스템.
솔직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번 사태로 이미 이 거지 같은 세상에서 평범을 바라는 것이 사치였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더욱.
‘그냥 외면한 거지.’
포기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것 같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묘한 기분에 하도경의 손에 들린 인주 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무렵이었다. 하도경의 시선이 똑바로 내 눈을 향했다.
“그건 그렇고 저도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대답해 줄 수 있어요?”
조금 전과 달리 살짝 무거운 분위기에 나는 고개를 들어 하도경을 마주 보았다. 기다리는 내 시선에 하도경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사회자를 죽였던 그건 뭐였어요? 아이템을 쓴 것 같진 않고. 아, 어떻게 알았냐면 배에 깔린 카메라 저희 측에서 회수했거든요.”
“…….”
“그 이후 유정 씨 파장에 문제가 생긴 걸 보면 어쩌면 가이딩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는데.”
나는 말없이 하도경을 응시했다. 제 추측이 맞냐는 듯 하도경이 가볍게 고개를 까닥였다.
“몰랐는데…… 도경 씨 머리가 좋았군요.”
“그거 칭찬 맞죠?”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