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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65화 (65/119)

S급 자영업자

65화

‘에러.’

나는 머리를 굴려 지난 기억을 뒤졌다.

낯익은 단어였다. 그도 그런 게 올해 초 게이트 안을 촬영했다가 에스퍼 폭주 사망 과정을 그대로 생중계했다는 길드의 이름이었으니까.

그 길드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아는 거라고는 몇 년 사이 빠르게 치고 들어와 상위 길드와 엇비슷한 위치까지 올랐다는 것과 이번에 차진서가 복무 장소로 택한 길드라는 것 정도.

‘일단 대화로 들어 보아 저쪽이 주최 측은 아닌 것 같고…….’

참가자인가? 그럼 ‘에러’ 길드도 참가자에 속한다는 건가?

그리고 지금 나를 숨겨 준 남자는 에러 쪽은 아닌 듯하지만, 그쪽에서 길드 가입을 요청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상품. 주최. 참가. 경매. 허술한 수갑. 가이드.

들었던 단어들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었기에 나는 한결 침착해진 낯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헤르만 제국에서도 노예 경매는 존재했다.

대중의 눈치가 있으니 대놓고 열진 않았지만, 그러한 경매의 참여자는 대부분 돈 많은 상인이거나 귀족들이었다.

와, 어떻게 인생이 이럴 수 있나.

연우진 집 기둥을 뽑은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내가 전생에 세계 기둥이라도 뽑은 모양이었다.

‘이번에 살아 돌아가면 진짜 굿하자.’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것을 다짐하던 무렵, 에러 길드원이 밖으로 나갔다.

밖에 서 있을 테니 옷이나 입으라고 말을 던지고 나가 버린 이에 나는 급히 이불 속을 빠져나왔다.

“예쁜이는 이름이 뭐야?”

남자가 셔츠에 팔을 꿰어 넣으며 물었다.

난데없는 호칭에 나는 황당으로 물든 낯으로 스스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예로 시작하는 호칭이 나를 부르는 게 맞냐는 의미였다.

그러자 셔츠에 이어 넥타이를 매던 남자가 제 앞의 거울로 나를 힐끗 쳐다본 채 말했다.

“응, 기껏 숨겨 줬는데 이름 정도는 알려 줄 수 있지 않아? 쫓기고 있었잖아.”

틀린 말은 아니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김영희요.”

“와 거짓말.”

“네, 사실 김수미예요.”

“말해 주기 싫으면 말고. 그보다 웬 존댓말? 아까처럼 반말해도 괜찮은데~.”

남자가 실실 쪼갰다.

뭐가 되었든 도움을 받았으니 예의를 차린 것뿐이다.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를 응시했다.

그러자 작게 비음을 흘린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도가빈이야.”

가명인가? 조금 전 상대측의 입에서 나온 이름인 것을 생각하면 가짜 이름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저 이름이 본명이든 가명이든 중요한 건 왜 내게 알려 줬냐는 거다.

“……어차피 죽을 사람이니 이름 알려 줘도 상관없다는 건가?”

나는 덤덤히 중얼거렸다. 도가빈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그러자 도가빈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응? 왜 죽어? 너 살걸?”

“그쪽이 목숨 건지게 도와주기라도 하려고요?”

“으음…… 그건 좀 부담이 커서. 그리고 어차피 내가 하지 않아도 살걸? 예쁜이한테 이미 쓸모있는 게 있잖아.”

“쓸모있는 거?”

기대도 안 하긴 했지만, 자포자기로 던진 물음에 돌아온 대답이 의문스러웠다.

쓸모 있는 거? 일회용 방어막 아이템이 하나 남긴 했는데 이걸로 어떻게 여기에서 탈출하라고?

아니면 말 그대로 목숨만 건져서 상품으로 팔린다는 말인가?

“그게 무슨-.”

내가 재차 물음을 던지려는 순간, 문 너머로 노크 소리와 함께 출발하자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남자의 목소리였다.

정장을 전부 갖춰 입은 도가빈이 문고리를 돌렸다. 문이 열리기 직전, 그가 나를 보며 작게 속삭였다.

야살스럽게 눈꼬리를 휜 채, 그의 두 눈에는 무엇인지 모를 감정이 진득하게 고여 있었다.

“그럼 조만간 또 봐.”

* * *

별 이상한 놈을 다 만났네.

도가빈이 방을 떠난 뒤 나 또한 방을 나왔다.

계속 여기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저쪽이 내 편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그 방에 있다고 탈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기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일단 방 안에 있던 레터 나이프 하나를 가져오긴 했다.

복도는 조금 전과 달리 휑했다. 마치 다들 어딘가로 가 버린 것처럼.

‘……분명 곧 경매가 시작된다고 했었지.’

휑한 복도 한가운데에서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긴장한 탓인지 숨이 차가웠다.

솔직히 계속 있다간 그대로 끌려가겠다는 생각에 갇혀 있던 방을 빠져나오긴 했지만, 나라고 뾰족한 해결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감시 카메라가 없는 이곳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대처를 궁리하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차라리 이런 거라면 가이드가 아닌 에스퍼였다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하물며 위험이 될 만한 능력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각성하고 폭주 감시 대상인 에스퍼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또 후회를 한다.

“일단, 정연제부터 찾자.”

나는 마른 얼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들었다. 하나보단 둘이 낫겠지.

일단 정연제가 갔던 길부터 되돌아가 보자고 발걸음을 돌린 순간, 바로 모퉁이를 돌던 누군가와 맞닥뜨렸다.

급히 손에 들려 있던 레터 나이프를 바꿔 쥐고 휘두르려는데, 상대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왔다.

“아? 어? 어, 잠깐. 김유정 가이드님, 진정하세요.”

진정시키려는 의도라기엔 나른하다 싶을 정도로 고저 없는 목소리였다.

나는 상대방의 목 바로 옆에서 나이프를 쥔 손을 가까스로 멈춰 세웠다. 목에 칼이 들어와 있는데도 상대의 표정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와, 수갑 단 손으로 잘도 휘두르시네. 혹시 어디에서 서바이벌 수업이라도 받으셨어요?”

“그쪽은…….”

나는 나이프를 쥔 손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탈색한 것처럼 결 나쁜 연하늘색 머리카락, 퀭한 검은 눈. 낯익은 얼굴이었다.

“주연우, 아니. 연우진 옆에 있던 그 친구?”

얼굴은 낯익었으나 이름을 알고 있지는 않았기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남자가 설핏 미간을 좁혔다.

“저 친구 없는데요. 그런 사람이랑 친구 아니에요. 어? 그런데 마스터 본명 이제 아시네요? 아, 그래서 길드에 연또 경보가 떨어진 건가…… 어쩐지 훈련장이 날아갔더라.”

남자가 혼자 중얼거렸다. 나를 속인 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연우진의 지인에 마스터니 뭐니 하는 것을 보면 그 또한 메시아 길드원이라는 말이 된다.

왜 메시아 길드원이 이런 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쁜 소식은 아닌 것 같았다.

어찌 되었든 만약 저쪽 또한 참가자라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연우진이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되니 말이다.

“그-.”

“아, 통성명이 아직이었네요. 김재영입니다.”

“그래요, 김재영 씨. 혹시 연우진도 여기 있어요?”

“예? 아, 아뇨. 저는 그냥 알바 사기를 당한 것뿐이라서요. 마스터는 이런 일에 관심 없어요.”

“아…… 그러면 혹시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까요? 보다시피 지금 납치를 좀 당해서요.”

내 말에 김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분하기 그지없는 그의 낯에 조금씩 안심되기 시작했다.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저한테 순간 이동 아이템이 있긴 한데.”

“세상에, 순간 이동 아이템!”

“사용자 등록이 되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거라서요. 저는 가능하겠지만, 김유정 가이드님은 아마 무리지 않을까요.”

아마 무리가 아니라 그냥 무리다. 담담한 얼굴로 기운 빠지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그에 낙담도 잠시, 나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럼 돌아가서 누구든 불러 줘요. 신고든 뭐든.”

“아, 안 그래도 길드용 호출기로 호출하긴 했거든요. 단순히 위치 알림용으로 쓰는 거긴 한데.”

“호출기! 다행…….”

“그런데 바로 와 줄 줄 모르겠네요. 안타깝게도 제가 상습범이라.”

“상습범이요?”

“시도 때도 없이 호출을 울린 전적이 있거든요. 위험한 알바도 많이 뛰었고. 뭐, 사춘기였죠.”

아, 사춘기.

나는 당장이라도 김재영의 멱살을 쥘 것 같은 손을 들썩이며 그냥 순간 이동으로 가서 누구든 데려와 달라고 말했다. 그에 김재영은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하지만 제가 없는 동안 김유정 가이드님이 돌아가시면 어떡합니까. 혹시라도 저 없는 사이 돌아가셨을까 봐 열심히 찾았어요.”

“저를요?”

“마스터의 가이드시니까요. 제 목과도 연관이 있으시죠.”

연우진의 가이드라는 말에 입술을 달싹인 것도 잠시, 한숨을 내리쉬었다.

뭐든 조금 전보다는 나은 상황이었다. 일단 우리나라 랭킹 1위 길드의 길드원이 내 목숨을 보전해 준다고 했으니 말이다.

연우진과 가까운 사이인 것 같으니 등급도 높을 것 같고.

“일단 제 수갑부터 풀어 주실 수 있나요? 아무래도 움직이기에 불편할 것 같아서요.”

무슨 능력을 가진지는 모르나, 수갑 정도는 부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손을 내밀자 김재영이 침음을 흘렸다.

“음…… 그러면 일단 손목부터 잘라 주시겠어요? 제가 말끔하게 붙여 드릴게요.”

“뭐요?”

지금 미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아, 제가 말 안 했나요? A급 힐러입니다. 뼈부터 재생까지 특화되어 있어요. 돌아가시지 않도록 죽기 전에 구해 드릴게요.”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공격용 능력은?”

“전무하죠. 저 연약합니다. 잡히면 큰일 나요.”

“아하…….”

말문이 막혔다. 하나보단 둘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확신하지 못하겠다.

아니, 죽지만 않으면 살려는 준다니 나은 건가? 나는 혼란스러움 끝에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지금 공격 수단이 아예 없는 건가요?”

“일단 총이 있긴 해요.”

그의 재킷 안쪽에서 성인 남성 손바닥만 한 크기의 총 하나가 나왔다.

“아.”

김재영이 아차 싶은 얼굴로 총을 한 번, 내 손목의 수갑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가 내 손목을 향해 총구를 조준했다. 안전장치를 풀기 전 그가 말했다.

“아, 맞다. 튜토리얼 외에 실전은 처음인데. 적당히 조심해 주세요.”

……저 사람 데려가도 될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팀 킬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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