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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63화 (63/119)

S급 자영업자

63화

어느 나라의 영해권에도 속하지 않는 푸른 영역.

그곳은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죄를 지어도 붉은 글씨로 새겨지지 않았다.

드넓은 바다 위에서 이러한 경매를 주최한 이는 한 조직이었다.

조직명 ‘새끼양[lamb]’

죄목은 살인부터 테러, 불법 거래까지.

그들은 과격한 범죄 조직이었으며, 게이트로 인한 세계의 혼란을 옹호하는 비틀린 신앙을 가진 사이비 종교이기도 했다.

이 조직에 속하는 이들이 전 세계 곳곳에 존재했으며, 그들은 각자의 믿음에 따라 행동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단체인 동시에 개인에 가까웠다. 단체라기엔 목표 의식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여러 갈래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직에 속한 이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게이트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거점이든 조직원이든 자주 바뀌었으며, 활동 역시 일정하지 않고 변칙적이었다. 이번에는 그 활동을 하는 곳이 푸른 영역이었을 뿐이다.

경매에서 판매하는 것은 보석부터 시작해 약, 마물, 게이트 물품, 인간 등. 가치가 있다면 그게 뭐든 가리지 않고 취급하고 있었다.

그러한 조직이 여는 경매이기에 범죄자들만이 참여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다양한 국적과 신분의 사람들이 이 경매에 참여했다. 설령 들킨다고 해도 법의 영향력은 이곳에서 미치지 않는다.

참가들 역시 대부분이 사회에서 지위를 가진 이들이라 쉽사리 건드리기도 힘들었다.

‘오…… 망했는데.’

그리고 주최 관계자들 중 한 명의 수행원으로서 우연히 이 거대 유람선에 타 버린 남자.

그는 제 고용인 뒤에 서서 멍하니 생각했다.

‘이런 게 취업 사기라는 걸까.’

쏠쏠한 단기 알바라고 생각했던 게 이런 것일 줄이야.

물론 각성자로 살며 별일 다 해 보긴 했으나 이런 식으로 사건에 연루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기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 골치 아픈 벌집을 건드릴 능력도 없고, 굳이 건드려야 할 이유도 없고-.

당황도 잠시, 남자는 적당히 눈치 보다 빠져나가자고 마음먹었다. 혹시 몰라 예전에 샀던 비싼 귀환석을 들고 오긴 했는데, 설마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남자는 조금 우울해졌다. 아직 돈도 반밖에 못 받았는데 귀환석 값으로 다 나가게 생겼다.

현재 대한민국은 이 범죄 조직과 크게 얽힌 적이 없기에 마땅한 대처 방안이 없었으나, 미국 혹은 웬만큼 땅덩어리가 큰 나라에서는 ‘새끼양[lamb]’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럼 최근 실종 사건에 게이트 말고 이쪽도 연관이 있는 건가?’

남자는 흘낏 눈을 굴려 제 고용주 앞으로 떨어진 사진을 쳐다보았다. 상품 중 하나인 듯 잠들어 있는 여자의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응?’

담담하던 남자의 표정이 바뀐 것은 사진 속 이의 얼굴이 묘하게 낯익다는 것을 깨달은 후였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 예민한 인상…… 한참을 살펴보던 남자는 사진 속의 여자를 어디에서 봤는지 떠올렸다.

죽은 생선처럼 초점 없이 흐리멍덩하던 그의 눈에 빛이 스며들었다.

“아.”

남자는 조금 전 자신이 내린 판단을 정정했다.

망한 게 아니었다.

‘X 됐네.’

그는 곧바로 반지 형태를 한 호출기를 눌렀다.

* * *

정연제는 대격변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버려진 구역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끔찍하게 따라다니던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 했고, 그런 참에 각성자가 되었다는 소식은 그녀의 인생에서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각성 등급은 B로, 상위 등급이었다. 복무만 마치면 평생 매달 어느 정도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고작 지원금으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드높은 길드에 들어가 돈과 명예를 손에 넣을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정연제 씨, 과거 회상할 시간에 소파나 옮겨요. 혹시 지금 주마등 보고 있어요?”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차분한 목소리가 상념을 끊었다.

정연제는 뾰족한 눈으로 김유정을 쳐다보았다.

저보다 늦은 나이에 각성한 사례. 교육생 때부터 뛰어난 가이딩 실력으로 유명했으며, 상위 에스퍼와 개인 연줄이 있었다.

굴곡이라고 해 봐야 안 좋은 소문도 잠시, 그 이후 재측정 등급은 S급.

그녀가 부러워하는 것들을 다 가지고도, 매번 아무래도 좋다는 듯 태연자약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줄곧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저런 사람은 세상의 좋은 것만 보고 곱게 컸겠지…….’

평생을 안전 구역 안에서, 언제 죽을지 목숨 걱정할 일도 없이.

돌아갈 집이 없다는 걱정도, 당장 먹을 게 없다는 걱정도 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거겠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을 테니까.

비죽 열등감이 솟았다. 때를 가리지 않고 흘러나왔던 열등감이 자취를 감춘 것은 눈앞에 펼쳐진 김유정의 특이 행동 때문이었다.

“잠, 그거 뭐예요?”

김유정이 바지 벨트 부근에서 작고 동그란 무언가를 꺼냈다. 동그란 물체 아래에는 빨판이 달려 있었다.

그걸 문 앞에 붙이고 말겠다는 듯 김유정은 소파 밑에서 나무 막대 하나를 분리해 내 끝에 그걸 단 채로 철창 사이로 손을 뻗었다.

철창과 문 사이는 그리 멀지 않았기에 어떻게 도구를 사용해 힘껏 뻗으면 닿을 것도 같았으나, 문제는 저게 뭔데 문에 붙이려 하냐는 것이다.

뭐냐는 물음에 김유정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폭탄이요.”

“미쳤어요?!”

어딘가 해탈한 듯한 미소에 정연제는 급히 김유정을 막아 세웠다. 저런 폭탄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혹시라도 진짜 폭탄이라면 막아야만 했다.

“어? 그렇게 치면 어떡해요?! 큰일 날 뻔했잖아요! 잘못해서 다른 데 붙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혹시 잔해 튈 수 있으니 소파나 여기로 옮기라니까.”

“그쪽이야말로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배 위에서 폭탄을 터뜨려도 되나? 그리고 만약에 실패할 경우 자신들을 납치한 이들이 와서 해를 끼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들었다.

그것을 소리치자, 김유정은 답했다.

“일단 배에 문제가 갈 일은 없을 거예요. 폭탄 위력은 기껏해야 벽 하나 부수는 정도라고 들었거든요. 어디에 붙이는 용도라 주변 파괴도 적다고 했고.”

“아니, 그런 걸 왜 가지고 있는데!!”

“선물 받았거든요.”

“어떤 미친놈이 폭탄을 선물, 아니, 그전에 그런 무기를 갖고 있어도 돼요?!”

“구매한 곳에 호신용품 등록서를 내면 된다던데요.”

정은제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주인으로 등록된 사람에겐 일정 배리어가 작동한다고 하는데, 정연제 씨는 그런 거 없을 테니까 소파 끌고 와요. 제 뒤에 숨고 소파로 막으면 되겠죠.”

“……들키면! 만약 실패해서 들키면 어쩔 건데요?! 맞거나 심한 짓을 당할 수도 있고…… 설령 이 방을 나간다고 해도 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도망칠 건데요?”

“나도 몰라요.”

공포로 울렁거리는 그녀의 심경과는 달리 너무나도 단순하게 돌아오는 대답에 정연제는 울컥했다.

정연제가 뭐라 소리치려는 순간, 그녀보다 먼저 김유정이 답했다.

“그러면 우릴 납치한 범죄자들이 올 때까지 얌전히 착하게 기다리기나 하자고요?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 줄 알고? 그 ‘상품’이란 것으로 팔리게 된 후 이런 단순한 수갑이 아니라 다른 것을 차게 되면? 지금보다 더 도망치기 힘들게 될 수도 있잖아요.”

“이 바다 한복판에서 어떻게 나갈 건데요!”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보단 수가 생기겠죠. 뭐라도 해야 무슨 일이 생기잖아요? 그냥 난 순순히 죽어 주긴 싫으니까 뭐라도 해 보려는 것뿐이에요.”

정연제는 김유정에 관한 생각을 정정했다. 자신이 죽을 생각조차 하지 못해 저러는 게 아니었다.

그냥 저 여자는 최악의 경우 자신이 죽는다는 가정하에 그전에 범인에게 피해라도 주게 발악이라도 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미친 거 아니야?’

이제 됐냐는 듯 어깨를 으쓱인 김유정이 다시금 막대를 들어 철창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정연제는 그것을 저지하지도 못한 채 멍하니 응시했다.

뾱. 귀여운 소리를 내며 문에 작은 폭탄이 붙었다.

무언가 조작이라도 하는 듯 몇 번 막대로 폭탄을 꾹꾹 누르던 김유정이 소파 뒤로 몸을 숨기자, 정연제는 그런 그녀를 따라 뒤로 몸을 숨겼다.

콰앙─!

몇 초 후, 굉음과 함께 폭탄이 터졌다.

쿵! 두툼한 문짝은 가운데가 구겨진 채 복도 벽으로 처박혔다.

“-잡아!!”

정장을 입은 가드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늬 없는 검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마취총을 이쪽으로 겨누려는 이들에 급히 2차로 연막탄을 터뜨렸다.

“뛰-.”

“아악!!”

뛰라고 하기도 전에 정연제가 반대쪽 복도로 달려 나갔다. 당황도 잠시, 곧바로 정연제를 따라 뛰었다.

연기가 천장까지 차오르기 전, 무심결에 위를 보다 카메라 렌즈와 눈이 마주쳤다.

“콜록, 켁…….”

매캐한 연기로 인해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숨쉬기도 벅찼지만 그런 걸 따질 여유는 없었다. 그저 멈추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달렸다.

“허억……헉…….”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다 정연제를 잃어버렸다.

가드들에게 쫓겨 복도를 뛰다가 갈림길이 나타났는데, 내가 왼쪽으로, 그리고 정연제가 오른쪽으로 가 버린 탓이었다.

뒤늦게 눈치채고 급히 정연제를 뒤돌아보았지만, 그녀는 주문처럼 욕설을 지껄이며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졌다.

정연제에 대해서 아는 건 없지만, 오늘부로 생존 욕구가 충만한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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