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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62화 (62/119)

S급 자영업자

62화

“사람 이름 정도는 똑바로 기억하시죠?! 그것도 그쪽 때문에 인생 망친 사람인데.”

“망쳤다뇨?”

“당신, 당신 때문에 평가표에 오점이 생겨서 길드에서 컨택을 취소했어요! 당신만 아니었다면 내 인생은…… 이제 끝났어요. 그때 이후로 괜찮은 곳에서 연락도 안 오고, 이렇게 내 인생은 내리막길을 걷게 될 테니까!”

“말을 똑바로 해야죠.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그쪽이 평가에 오점이 될 만한 짓을 해서 그래요.”

차분히 사실을 짚어 주자 정연제가 화가 나 미치겠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두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위협적이기보단 처량하기 그지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구해 준 거 아닌가?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지만 결과만 놓고 따지자면 상위 에스퍼의 역가이딩으로부터 구해 준 셈이다.

물론 그다음에 바로 신고 때리긴 했지만 그건 그쪽의 업보고.

나는 한숨을 내리 쉬며 손을 들었다 내렸다. 머리를 쓸어 올리려다 손이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봐요, 정연제 가이드. 지금 당신 자존감 상담해 줄 시간 없어요. 나한테 무슨 피해 의식을 가진지는 모르겠으나, 관심도 없고.”

차분히 이어지는 내 목소리에 정연제가 울컥하다가도 막상 할 말은 없는지 입술을 짓이겼다.

“지금 상황이 뭔지 모르겠는데…… 그때 도와 달라고 소리쳤던 사람이 당신 맞죠?”

어둠 속에서 소리쳤던 목소리가 지금 정연제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아무래도 정답인 듯 정연제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나는 고개를 내려 정연제를 똑바로 응시했다.

표정 하나 없는 내 얼굴에서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듯 정연제의 태도는 조금 전과 달리 얌전했다.

“그럼 설명해 봐요.”

* * *

상황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저번 내 고발로 정연제의 입지가 꽤 나빠진 모양이다. 미리 이야기되어 있던 컨택이 취소된 것은 물론이요, 괜찮은 길드로부터의 복무가 싹 끊기자 정연제는 정신적으로 몰렸다.

그쯤이면 그냥 센터에 들어올 만도 하건만, 정연제는 제 등급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센 사람이었다.

센터는 컨택을 받지 못한 이들도 들어갈 수 있는 국가 기관일 뿐이다.

공공의 목적 혹은 센터 쪽이 적성에 맞거나 아니면 그쪽 조건이 제게 더 맞는다는 이유로 센터를 택하는 각성자들도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정연제의 머릿속에서 센터는 ‘패배자’로 향하는 길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B급이라는 등급상 상위에 속하는 등급을 가진 그녀는 컨택을 받지 못하자, 다른 연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아보던 도중 상위 길드와 연결해 주겠다는 업체를 만나게 되었고, 그 업체와 계약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나갔던 게 바로 기념일 전날.

그래, 예의 사건이 벌어진 날이었던 거다.

“……그러니까, 사기 계약?”

“어떻게, 어떻게 사람의 간절함을 이용해 이런 짓을……!”

정연제가 울먹였다. 왜 일어나자마자 내 얼굴을 보고 나 때문에 인생이 망했느니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엄연히 따지고 보면 나 때문은 아니지. 나는 한쪽 눈썹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아니, 그냥 센터에서 복무해도 됐었잖아. 따지고 보면 그쪽에게 말려든 거니까 내게 사과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이 모든 게 제 잘못이란 말이에요?! 제가 속아서?”

“아뇨, 그건 속인 쪽이 잘못이죠.”

“…….”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던 듯 정연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응시했다.

“하지만 저와 있었던 일은 정연제 가이드가 제게 사과해야죠.”

“그건-.”

“정연제 가이드 몇 살이에요?”

“……스물한 살.”

“네, 그 나이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죠. 일어난 일은 당신이 한 일의 결과이며 제 탓은 아니죠. 애초에 그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니까.”

“…….”

“그리고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게 그쪽의 잘못은 아니라고 해도 어쨌든 말려들게 했으면 미안하지 않나?”

정연제는 바닥을 내려다본 채 대답이 없었다.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양심이 찔린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되었다. 내가 무슨 유치원 교사도 아니고 지금 정연제의 행동이 옳으니 옳지 않으니를 따질 필요는 없었다.

무슨 화난 말티즈처럼 하도 당당하게 소리치기에 조금 기를 죽일 필요성을 느낀 것뿐이지.

그나마 자유로운 다리를 이용해 소파를 벽 쪽으로 옮겼다. 벽 쪽에 작고 동그란 창문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문이 워낙 작고 높아서 그냥은 밖을 살펴볼 수 없었다.

‘문 하나, 철창, 창문, 소파.’

방은 이상한 구조였다.

원룸 크기의 작은 방에는 유일한 출구로 보이는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바로 앞을 철창이 메우고 있었다.

또한 창문은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동그란 창 하나가 전부였고, 창틀은 두툼한 철로 되어 있었다.

‘묘하게 방이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맞아서 그런가? 멀미라도 하는 것처럼 머리가 아프고 속도 울렁거렸다.

힘겹게 소파를 옮기고 소파를 밟고 일어서려는 무렵, 정연제가 대뜸 중얼거렸다.

“……빨리, 빨리 나가야 해.”

“그걸 누가 몰라요. 나가고 싶은데 못 나가는 거지.”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놈들은 당신이 가이드라는 것만 확인했어. 당신 등급에 대해서 알게 되면 더 상황이 안 좋아질 수도 있어.”

“네?”

“아까 그놈들이 가져온 건 각성 여부 정도만 판독할 수 있는 기기 같았어. 당신, 흔한 등급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지금 나를 걱정하는 건가? 갑작스러운 태도 전환에 어이없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살짝 미간을 좁힌 채로 쳐다보자, 정연제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도, 그냥 생각해 보니까 내 잘못이 맞는 것 같아서. 내가 멍청한 짓을 한 건 맞으니까…… 당신에게는 미안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뿐이야.”

정연제가 묶인 팔을 들어 눈물로 범벅된 제 얼굴을 북북 문질렀다. 눈물은 닦였으나, 거칠게 문질러진 두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만약 이곳에서 나가게 된다면 정식으로 사과할-.”

“어, 어 잠깐. 그거 사망 플래그니까 입 좀 다물어 봐요.”

나는 화들짝 놀라서 정연제의 말을 가로챘다.

“그보다 뭔가 자연스럽게 저한테 반말 쓰고 있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 그런 걸 따져요? 그리고 당신, 아까부터 너무 태연하지 않아요? 죽, 흡, 죽을 수도 있다고요!”

정연제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목소리에는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바짝 두려워하고 떨고만 있으면 안 죽고요? 그러지 말고 계속 말이나 해 봐요. 이 타이밍에 사망 플래그 말고, 도움 될 만한 말. 보아하니 저보다 깨어 있던 시간도 길고 이곳으로 납치해 온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좀 들은 것 같은데.”

“진짜 싫어…….”

“예에- 그래서 무슨 말 했는데요.”

대충 대답하고는 다시금 시선을 창문 쪽으로 돌렸다. 소파를 밟고 올라섰음에도 아직 부족했다.

힘겹게 발꿈치를 세우며 어떻게든 창문 밖을 보기 위해 목 길이를 늘였다. 끝까지 세운 발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당신을 붙잡은 남자가 당신이 가이드라는 것을 눈치채고 각성 판독기를 돌린 것 같았어요.”

“예.”

“가이드 각성 여부는 확인되었으나, 판독기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등급 측정에서 판독기가 고장 났고…… 그들은 어차피 가이드니까 등급은 나중에 확인해도 된다고 하고 우리를 이 방에 가두고 갔어요. 어차피 저항할 수 없을 거라고.”

“그런가요.”

정연제는 정리되지 않은 기억을 더듬어 보듯 기억나는 대로 답했다. 그녀 역시 깼다 잠들기를 반복한 터라 제대로 기억은 안 난다고 했다.

아, 보인다.

비틀, 잠시 소파 쪽이 기울어지며 시야에 창문 너머가 비쳤다. 두꺼운 유리 너머로 밖이 보였다.

정연제가 생각났다는 듯 소리쳤다.

“아, 맞다. ‘상품’을 조심히 다루라고 했던 것 같아요!”

“…….”

“이봐요, 내 말 듣고 있어요?”

정연제가 대답을 재촉했지만, 나는 조금 전과 달리 평온히 대답이나 할 상황이 아니었다.

침묵 끝에 나는 멍하니 뇌까렸다.

“……아무래도 그 상품이 우리인 것 같은데요.”

창밖으로 비친 것은 드넓은 바다였다.

괜히 멀미 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게 아니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기 바다 위예요.”

“……!”

화들짝 놀란 정연제가 자신도 확인해 보겠다며 일어났다. 그런 정연제에게 소파 자리를 비켜 준 뒤, 나는 천장과 모서리 부근을 살펴보았다.

일단 방 안에 감시 카메라로 보이는 것들은 없는 것 같았으나 문밖은 다를 수도 있다. 아니, 그전에 문밖으로 어떻게 나갈지도 문제였다.

……이거 진짜 잘못하다간 큰일 나겠는데.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섭다.

비전조 게이트라는 기괴한 공간에 갇힐 때도 멀쩡하던 뇌가 팽팽 돌아갔다.

* * *

“-미확인 가이드 하나 포획했습니다.”

클리어 기념일을 앞에 두고 전 세계적으로 들뜬 분위기를 보였다. 그런 정신 없는 상황에서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경매가 열렸다.

경매 주최자 중 하나인 중년 남자는 건네받은 사진을 책상 위로 내려놓은 채 고개를 까닥였다.

“어느 쪽이 데려왔지?”

“대한민국 U구역 쪽 시정잡배들입니다. 계약 사기나 치는 놈들로 유명하더군요.”

“적당히 값을 치러 주고, 경매 시간 되기 전에 등급 확인해.”

“네.”

게이트가 생성되며 전 세계적으로 지형과 기후에 변화가 생겼다. 게이트가 나타나기 전과 비교해 달라진 대륙의 형태에 각국의 영역 또한 다시 나뉘었다.

지금 배가 위치한 곳은 재정립된 대한민국의 영해권 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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