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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59화 (59/119)

S급 자영업자

59화

……어떻게? 아니, 어떻게라는 건 이상한 말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정보 통제를 하고 그녀와 친분이 있어 보이는 에스퍼들과 마주치지 않게 주의를 기울였어도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을 테니까.

다만, 김유정이 이렇게까지 화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아니, 정말 생각하지 못했나? 지금이 좋아서 외면했던 게 아니라?

김유정은 아프고 약한 사람에게 약했다. 그랬기에 연우진은 주연우라는 껍데기가 마음에 들었다.

하급이라는 등급에 약한 몸.

비록 오해로 시작된 것이라고는 하나, 여러모로 연우진에 비해 주연우는 김유정의 호감을 샀기 때문이다.

“그간 재미있었나 봐. 대답은 충분히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하죠.”

할 말을 마친 김유정이 그의 귓가에서 고개를 뒤로 뺐다. 가까웠던 거리가 멀어지며,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손에 땀이 찼다. 그는 저도 모르게 축 늘어진 손을 쥐었다 펴며 김유정을 응시했다. 경고등처럼 머릿속이 쉴 새 없이 하얘졌다가 붉어졌다.

“민지야, 나 잠깐만 쓰레기 좀 버리고 올게. 잠깐 카운터 좀 맡아 줄래?”

“……어, 아, 넵!”

은연중에 이쪽을 살피던 강민지는 어쩐지 가라앉은 듯한 분위기에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진은 고개를 떨군 채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다 뒷문으로 나가는 김유정을 급히 쫓았다.

이렇게 대화를 끝낼 수는 없었다. 뭐든 말해야, 뭐든 해서 용서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황급히 김유정을 쫓았다.

탁.

뒷문이 닫히고, 밖과 안이 격리되었다.

* * *

뒷문 밖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와 가끔 대화나 기계 소리가 들렸던 카페 안과 달리 고요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팔이 아플 정도로 꽉 잡힌 탓이었다.

“윽.”

신음이 작게 흘러나오자 주연우, 아니, 연우진이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주춤, 그가 내게서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 섰다.

마치 죽음을 앞둔 사형수처럼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응시하는 이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주연우가 연우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조예나로 인해서였다.

그와 데이트를 했던 날, 카페 앞에 데려다주었는데 그때 조예나가 봤던 모양이다.

「언니, 혹시 메시아 길마랑 친해요? 설마 그쪽으로 가는 건 아니죠?」

「그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야?」

「어? 저번에 카페 안 여는 거 깜박하고 들렸는데 메시아 길마가 언니 차 문 열어 주고 있던데요.」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해가 된 다음에는 뭔지 모를 감정이 머리를 휩쓸었다.

연우진이 주연우라는 것을 속이게 된 시작은 이해된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 연우진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던 와중 통성명을 했던 것 같고, 그런 와중 자신이 연우진이라고 대답하기엔 불편했을 테니까.

또한 당사자 앞에서 그렇게 욕을 했다는 것에 미안함과 수치심도 들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문이 드는 거다.

그 이후로도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이 짧았던가? 당신이 내게 사실을 말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던가?

재회했을 당시 출입증을 보여 달라 요구했을 때에도 당신은 가명이 새겨진 출입증을 뻔뻔하게 내밀었고.

심지어 데이트에서는 지금까지 한 말이 정말 사실이냐는 질문에도 끝까지 말간 낯으로 거짓을 내뱉기까지 했다.

한참 말없이 서 있으니 연우진이 입술을 짓이겼다. 상처가 난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가 불안 어린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누, 나. 제가, 잘못,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잘못이요?”

나는 조용히 연우진을 마주 보았다. 정말요? 그렇게 되묻는 목소리는 의외로 태연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

“초반엔 이해했죠. 설령 내가 먼저 오해했던 거라고 해도 그쪽이 말할 의무는 없었으니까. 이렇게 따지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일 수도 있겠네요. 내가 당신에게 뭐라고.”

“아뇨, 아니에요. 누나는 제게-.”

“하지만 전 몇 번이고 당신에 관해 물었어요. 물론 그쪽이 다 대답해 줄 의무는 없다고 해도 전 나름대로 친해졌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 걸 물어봐도 될 정도로. 아, 나만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겠네.”

“누나, 아니에요. 제발…….”

연우진이 빌듯 내게 속삭였다. 고장 난 장난감처럼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던 그는 평소와 다르게 날이 선 내 시선과 마주치자 고개를 내렸다.

너무 친해졌나 보다.

더는 타인의 목숨을 짊어지기 싫다고 생각했던 내가 가이드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누군가의 가이드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는데.

등급을 끈질기다 싶을 정도로 물었던 것도 처음엔 의아함 때문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단순히 그가 걱정되어서였다.

“……차라리 가까워지지 말지.”

친해지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처음부터 그가 거짓말만 할 품성의 인간으로 보였다면 이렇게까지 배신감은 느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내 앞에서는 누구보다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전부 거짓말이었네. 이름에 등급, 소속, 직업…… 진짜였던 게 있긴 하나? 제게 진실을 말할 생각이 있긴 했어요? 언제? 대놓고 들킨 뒤에서야?”

그가 내게 보여 주었던 다정함과 미소, 행동 그리고 아픔까지.

나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나? 단순히 가이드가 필요해서 그런 척을 한 건?

내가 믿어 왔던 게 사실은 전부 가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혼란스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아니다. 이제 말할 필요 없어요. 안 믿을 거니까.”

어깨를 움츠린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가 이어진 내 말에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두 눈이 잘게 떨렸다. 버려진 아이처럼 공포에 질린 눈을 한 채,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 건지 의아할 정도로 호흡이 가빴다.

시체처럼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평소라면 걱정의 말을 던져 보았을 만한데도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지, 그러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목소리가 떨리자 주연우가 입술을 세게 짓이겼다.

“제가, 전부, 다 설명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겁에 질린 얼굴. 속은 피해자는 나건만 어째 내가 가해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나는 두 손으로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속이 답답했다.

“설명? 아니, 기만이겠지.”

툭. 메워지지 않은 손가락 사이로 힘겹게 뻗어졌던 손이 나를 움켜쥘 듯하다가 힘을 잃고 떨어지는 게 보였다.

나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고했다.

“당분간 그쪽 얼굴 볼 일 없길 바랍니다. 제발, 부탁이니까.”

적어도 머리가 식을 때까진 보고 싶지 않았다.

* * *

게이트가 최초로 발생하고 몇십 년밖에 안 지났을 무렵. 그때 나라는 서서히 혼란에서 깨어나 정비하며 군국주의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었다.

나라는 강한 군사를 원했고, 많은 각성자들을 각지에서 끌어모았다.

지금은 권력이 어느 정도 분산되어 있다고 하나, 그때는 국가가 권력을 전부 틀어쥐고 있었기에 불합리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거의 폐허나 다름없던 땅에 다시 기반을 세우던 때라 폭력이나 비윤리적인 행위 역시 흔했다.

그런 시대에서 연우진은 어린 나이에 에스퍼로서 각성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태어난 그를 부모는 꺼림칙하게 여겼고, 이내 돈을 받고 국가에 아이를 보냈다.

그를 거둔 국가는 그의 희생을 당연시했다.

「대단해……! 이 나이에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니! 단언컨대 저 힘은 후에 많은 생명들을 구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올바르게 사용만 한다면 세상은 좀 더 평화로워지겠지.」

그렇게 연우진은 어릴 때 대의를 위해 살았다. 이유는 별것 없었다.

그게 옳다고 듣고 자라기도 했고,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조금 공허하고 지루했을 뿐이지.

연우진은 강한 힘을 가진 것과 별개로 타고난 성정 자체가 그리 어진 사람은 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당시 친하게 지냈던 형인 도이현은 이렇게 말했다.

「게이트가 나타나기 전에도 세상은 비슷했대. 평화로운 나라가 있으면 혼란한 나라도 있고, 어린 나이에 소년병으로 전쟁에 불려 갔던 애들도 많다고 했어. 그러니까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야. 예전에도 세상은 그랬고, 그게 게이트로 인해 더 커진 것뿐이니까.」

우리가 좀 더 힘내면 누군가에게 절망 대신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어. 설령 죽는다고 해도 우리의 죽음은 무가치하지 않아. 더 많은 사람이 살게 될 테니까.

그런 말들을 버릇처럼 하곤 했다. 어쩌다 보니 어울리긴 했으나 솔직히 그와 연우진은 성격이 맞지 않았다.

도이현은 올바름을 추구했고, 이상을 늘어놓는 이상주의자였으며, 연우진과 달리 모범생에 속했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실험에도 주저 없이 참여했으며, 내려진 명령 또한 큰 저항 없이 따랐다.

도이현은 자신이 고생하면 세상이 좀 더 평화로워질 것이라 믿었으며, 힘을 가진 자가 희생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이였다.

어쩌면 결과만 놓고 보면 그의 말은 틀리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은 점점 변해 가 대놓고 깊숙이 파 보지 않는 한 썩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보기 좋게 바뀌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은 반대로 깊숙이 파 보면 결국 근본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 년 사이 빠르게 바뀌었다는 건 그만큼 토대가 탄탄하지 못하다는 뜻.

완전한 척 꾸며 낸 평화의 실상은 울퉁불퉁한 땅을 갈아엎은 게 아닌, 그저 보기 좋게 덮고 세운 것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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