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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55화 (55/119)

S급 자영업자

55화

“그래도 유목민 생활이 꼭 나쁘지만도 않은 것 같네요.”

“-네?”

맞잡은 손에 집중하고 있던 그가 약간 늦게 대답했다. 나는 시선을 그에게서 조금 빗긴 채, 멀리 떨어져 있는 조명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홀 안, 은은히 빛나는 조명이 사람의 기분을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먼 과거를 상기하듯 아련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진짜, 그 개새끼가 또 게이트 사고로 모처럼 마련한 원룸을 부쉈다는 소릴 들었을 때는 그냥 다 접고 본가로 내려갈까 하는 생각도 순간 했는데…….”

“…….”

“어쩌다 인연이 되어서 주연우 씨도 만나고, 무사히 카페도 개업하고, 괜찮은 알바생도 구하고, 가게도 잘 되고…… 최근 좋은 일밖에 없어 무섭네요.”

아, 그래도 가이드인 것을 들킨 탓에 군인이 된 것은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언젠가 들킬지 모른다는 생각은 은연중에 하고 있어서 크게 충격받진 않았다.

물론 던전에 휘말려서 들키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뭐, 최근에 나쁜 일도 생기긴 했지만, 흔히 그런 말 있잖아요. 나쁜 일 다음에는 좋은 일이 생긴다고.”

이렇게 타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평소라면 잘 하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왠지 술술 나왔다.

어쩌면 주연우 앞에서는 이미 한 번 해 봐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중간에 필름이 끊긴 탓에 전부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 주연우 앞에서는 가족 이야기나 한탄을 늘어놓았던 전적이 있었다.

‘그래,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굳이 들을 필요가 있나…….’

본인이 하고 싶으면 언젠가 하겠지. 그런 건 억지로 추궁해서 들을 이야기도 아니고, 애초에 나부터가 본인 감정에 확신을 못 하는 데 당장 정말 그렇다고 하면 어쩌리.

누군가는 감정에 확신하지 못해도 사귀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건 서로에게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았다.

만약 상대방을 좋게 여기고 있었다면, 특히.

나는 반쯤 해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주변이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홀에서는 여전히 작은 오케스트라의 악기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지만, 정작 지금까지 내 말에 꼬박꼬박 대답해 주던 주연우는 입을 닫은 채였다.

차갑게 식은 그의 손이 나를 붙잡아 왔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동아줄을 붙들듯 다급한 손길이었다.

나는 가이딩이 부족한 건가 싶어 그의 손가락 사이로 깍지를 꼈다.

“혹시 어디 안 좋아요?”

불과 몇 분 전 주연우가 내게 했던 말을 이젠 내가 하고 있었다. 그만큼 주연우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가이딩이, 부족한 것 같아서요.”

“자, 반대쪽 손도 주세요.”

나는 주연우의 반대쪽 손도 끌어 두 손으로 감쌌다. 무슨 미사 때나 볼 법한 기도하는 모습이 되었지만, 그리 우습지는 않았다.

아니, 가이딩을 이렇게 쏟아붓는데 부족하다고? 설마 단계를 높여야 하나? 그래도 여기에서 포옹은 좀…….

심각하게 내 두 손안에 담기지 않는 주연우의 손을 쳐다보는데, 그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누나, 혹시…… 그 사람 많이 싫어해요?”

주어가 없어 누구냐고 되묻자 연우진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에 나는 가만히 눈을 깜빡이다 내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연우진을 욕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버릇처럼 흘러나온 모양이었다. 나의 지난 1년은 그놈이 없으면 설명이 불가했기에.

친한 사이가 아니면 연우진 욕은 되도록 자제하는 편이었다. 내겐 원래 세계로 돌아오자마자 신고식 거하게 치러 준 놈이었어도 다른 사람들에겐 세계를 구한 영웅이었으니까.

‘……그래도 저 사람이면 괜찮지 않나?’

이 정도면 친한 사이고, 더구나 그는 내가 연우진 욕하는 것을 예전에 몇 번 목격한 전적이 있었다.

실수긴 했지만, 그가 손님일 때 그의 앞에서 뉴스를 보다 욕한 적도 있었고, 저번 강도 사건 때는 함께 욕해 주지 않았던가.

결론을 내린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싫어해요.”

나처럼 집을 잃었다고 모든 사람이 연우진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 그는 세계를 구한 영웅이었고, 이 세계는 그런 각성자가 당연한 세계였다.

애초에 능력을 쓰지 않으면 크게 가이딩을 소모할 일이 없다. 그럼에도 능력을 쓴다는 것은 게이트를 클리어 한다는 의미고, 그것은 즉 세계를 지키는 일이었다.

게다가 게이트로 인한 실종자만 매해 몇백인지. 만약 현존하는 게이트 너머에서 마물이 쏟아져 나온다면 그로 인해 발생할 사상자가 몇인지 감히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세계는 각성자들을 칭송했다.

더구나 연우진은 8년 전 대격변 때의 영웅이었다.

당시 전세계적으로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생성되기 시작했을 때 가장 위험도를 자랑했던 건 우리나라에 생긴 레드 게이트였다.

한 구역을 통째로 잡아먹은 그 게이트에서는 다양하고 수많은 마물들이 흘러나왔고, 자연히 그 주변 땅은 독기로 말라비틀어져 갔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수십만 명의 사람이 죽거나 중상을 입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레드 게이트를 닫은 게 바로 연우진을 중심으로 한 몇 명의 에스퍼들이었다.

5월 25일, 지금은 대격변이라 불리는 그날.

많은 희생자를 기리고 미래를 이어 나가자는 의미로 레드 게이트 클리어 날이 기념일로 지정되고, 매해 축제도 열리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길드가 국가 소속을 벗어나 지금처럼 권력을 갖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연우진의 길드, ‘메시아’를 시작으로 길드가 그 자체로서 권력을 가지고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잦은 전쟁과 게이트로 인해 다소 혼란했던 세상에 규범과 체계도 잡히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이 그 당시 어린 나이였을 소년이 해낸 것이라니.

그를 새로운 시대를 연 영웅으로 추대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이야기지 않은가?

‘대단하지. 그렇긴 한데…….’

다른 세계에서 살다 온 내겐 그저 판타지 소설 영웅 서사 중 하나로 들릴 뿐이었다.

애초에 내게 있어 이 세계는 헤르만 제국보단 나아도 현대 판타지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단순하게 내 관점에서 결과만 따지고 보면 연우진은 돌아오자마자 돌아갈 집을 없앤 주범에 불과했다.

그게 한 번이면 나도 별 특이한 일을 다 겪네 하고 넘겼겠지만, 그게 두 번 세 번이 되면 어떨까.

한세영에게 물어보니 나처럼 재수 없는 사람도 드물 거라고 하니 이런 게 흔한 일은 아닌 듯했다.

그쯤 되니 내가 전생에 연우진 집 기둥이라도 뽑았나 싶었지.

나는 시선을 돌려 내 대답 이후로 한참 동안 말이 없는 주연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맞잡은 손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 시선이 그에게 닿은 순간, 손에 힘이 들어갔다.

“혹시, 싫어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이제껏 내 손이 작은 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의 손에 들려 있으니 무척이나 작아 보였다.

손가락 사이를 채운 단단한 뼈대에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츠렸다가 폈다.

방금 주연우가 뭘 물어봤지? 아, 연우진을 왜 싫어하냐고 했던가.

하긴 연우진 이름이 나올 때마다 매번 내 반응이 심상치 않았는데, 궁금할 만도 하다 싶었다.

“음…… 그러니까, 힘든 시기에 더 힘들게 만들었던 놈, 아니, 사람이라?”

그래, 내가 연우진을 싫어하는 이유는 아마 이 이유가 제일 컸다.

세계가 바뀐 것은 안다. 폭주하는 에스퍼가 비각성자는 상상도 못 할 고통을 겪는다는 것도 들었다.

그가 세계를 구한 영웅이며, 당국 최상위급에 오른 에스퍼라는 이야기도 말이다.

그런데 보통 자신이 힘든 상황에서 그런 게 일일이 머리에 들어오던가?

동정은 할 수 있겠지. 안타깝게 여길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그것도 내 상황이 괜찮아야 할 수 있는 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집을 잃었을 때, 지원금이 들어왔다. 분명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메꿀 만큼 큰돈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제가 예전에 상황이 여러모로 안 좋았거든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들 하지만, 때때로 사람은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으면 그걸 생각하는 것조차 꺼리는 경우가 있으니까.”

당시 나는 이방인이었다. 분명 내 가족이 있는 세계로 돌아왔는데, 가족도, 내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도, 상황도, 세계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일종의 화풀이라면 화풀이일 수도 있다. 그때 내겐 원망할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잘못한 게 없었고, 그건 내 곁에 있는 한세영이나 다른 누구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연우진은 탓할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였다. 실제로 집을 몇 차례 부수기도 했고.

“제게 연우진은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그냥 생각만 해도 피곤하고, 힘들고? 그래서 가능하다면 만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실제로 만나면 내가 저놈 얼굴이라도 한번 때려 보겠다고 나설 것 같다는 이유가 더 컸다.

최상위급 에스퍼를 때렸다간 곧장 저승행일 터. 내 목숨을 위해서라도 그놈과는 만날 일이 없어야 했다.

“잠깐, 괜찮아요?”

주연우의 안색이 창백했다.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그의 얼굴을 살펴보려는데 내가 손을 놓으려는 순간 그가 화들짝 놀라서 내 손을 움켜쥐었다.

“응? 손 좀-.”

“……안 놓으면 안 돼요?”

주연우가 맞잡은 손 위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이마가 닿으며, 결 좋은 머리카락이 손등을 간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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